왑샷 가문 연대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92
존 치버 지음, 김승욱 옮김 / 민음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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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치버는 사실 장편 보다 단편 소설을 훨씬 많이 쓴 작가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오 헨리가 그렇고 앨리슨 먼로, F. 스콧 피츠제럴드가 그러한데 존 치버는 고등학교에서 퇴학당한 후인 17세에 첫 단편 <퇴학>을 시작으로 생전에 157편의 단편 소설을 발표하였다. 

1912년 매사추세츠주 퀸시에서 부모의 원치 않는 둘째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의 파산과 자살 시도, 부모의 결혼 생활 파경, 학교에서 퇴학 등으로 순탄하지 않은 성장기를 거친 그는 고등학교 퇴학이 학력의 전부였지만 몇몇 작가들이 그러하듯이 그의 불우하고 좌절스런 삶의 경험은 그의 문학적 동기 부여로 작용했을 뿐 아니라 그의 문학의 소중한 자료 역할을 하였다. 

소설이란 예술이며, 예술은 혼돈에 대한 승리 - 존 치버 -

고등학교 재학시 공부에 관심도 없었지만 담배를 피다 적발된 것을 계기로 퇴학을 당했다. 17세때 그 경험을 <퇴학>이라는 단편으로 써서 잡지사에 보내 채택된 것은 그의 작가로서의 첫발로 성공의 사인이었고 좌절과 방황 끝에 자신의 존재 이유를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1950년대 그의 나이 40대에 이르기까지 단편 소설만 발표해오다가 장편 소설가로 인정받고 싶은 도전을 하게 되었는데 그 첫 변신이 이 소설 <왑샷 가문 연대기>였고 비평가들로부터는 긍정적 평가보다는 부정적 평가가 더 많았다. 그 이유는 이 소설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기대하던 소설 형식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중 하나이다. 탄탄한 플롯 이런 것과는 거리가 멀고 그저 에피소드의 나열로 읽히기 쉬운 내용이라는 것은 어쩌면 제목에서부터 시사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한 가문의 연대기라니까.

나는 플롯을 가지고 작품을 쓰지 않는다. 나는 직관, 이해력, 몽상, 개념으로 작품을 쓴다. - 존 치버 -

에피소드들의 나열일 뿐이라는 것은 비평가가 아니라도 읽어보면 알수 있지만 그것은 작가가 선택한 방식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존 치버 그가 그려내고 싶은 세계는 플롯에 짜여 촘촘하게 흘러가는 방식이 아니라 구비구비 흘러가는 물처럼 무계획 처럼 보이기도 하고 산만하게 보이기도 하는 방식 속에서 더 잘 표현될 수 있다는 생각이었을지도.

발음이 입에 잘 안익다가 책을 다 읽을 때쯤 겨우 제대로 발음하게 된 <왑샷 가문 연대기> (자꾸 '왓샵'이라고 읽었다) 는 미국 동부 뉴잉글랜드 어촌 마을에서 터전을 잡고 살아온 왑샷 집안의 연대기를 다룬 내용이다. 성경의 한 구절처럼 누구는 누구를, 누구는 누구를 낳고 하는 식의 서술이 나오기도 하는데 중심 인물은 리앤더 왑샷, 그리고 그의 두 아들 모지스 왑샷과 코벌리 왑샷이다. 흥망성쇠, 그중 흥과 성이 망과 쇠로 이어지는 것은 아버지 리앤더 세대에서 시작된다. 아버지와 다른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는 아들들 모지스와 코벌리는 고향 을 떠나 뉴욕, 하와이등을 다니며 자수성가를 꿈꾸지만 그들의 운명은 그들의 의도되로 되어갈지. 아버지인 리앤드 왑샷의 죽음으로 끝나는 이 작품이 나오고서 7년 후 발표된 <왑샷 가문 몰락기>에서 알 수 있을 것이다.

존 치버를 일컬어 타고난 이야기꾼이라고 한다는데 그 말은 어쩌면 이 소설보다는 그의 단편소설에서 더 확실히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고 장편소설에서는 그런 선입견이 오히려 작품을 제대로 보는데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산만한 에피소드의 이어짐으로 지적된 바 있는 작품에서 이야기꾼 작가의 능력을 찾을 기대를 하고 읽는 것은 실망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번역된 문장이긴 하지만 그가 문장 표현에 매우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음을 보여주는 곳이 읽아보니 꽤 여러 곳 있었다.


나지막이 뜬 태양을 가리며 구름이 지나가자 계곡이 어두워지고, 식구들은 순간적으로 크게 불편해진다. 마치 마음이라는 대륙이 어둠에 잠길까 봐 걱정하는 사람들처럼. 바람이 기운을 북돋워 주자 그들은 자신의 회복 능력을 새로이 인식한 사람들처럼 모두 기분이 좋아진다. (51쪽)


단지 태양이 구름에 살짝 가려졌다가 지나가는 장면일 뿐인데 정작 작가가 나타내고자 했던 것은 이 장면을 이용한 사람들의 분위기 묘사라는 걸 알수 있는 대목이다.

리앤더 왑샷이 평소에 자기가 죽으면 장례식에서 낭독해달라고 부탁한 문구도 인상적이다.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에 나오는 프로스페로의 연설문이다.

이제 잔치는 끝났다. 내가 예언했듯이, 우리의 이 배우들은 모두 정령이었으며, 이제 공기 속으로 허공 속으로 녹아 들어갔다. 우리는 꿈과 같은 존재들이며, 우리의 하찮은 삶은 잠으로 완성된다. - 셰익스피어, <템페스트> 중 프로스페로의 대사 -

'이제 우리의 잔치는 끝났다 (Our rebels now are ended.)' 는 말의 유래를 알게 되기도 하는 구절이다.

이 문구는 리앤더 왑샷의 장례식에서 아들 코벌리에 의해 낭독된다.

이어서 발표된 <왑샷 가문 몰락기>는 제목이 결론을 이미 말해주고 있을지 모르지만 결론만 중요한게 아니니까, 경로와 과정이 더 의미있을 수 있는게 인생이니까, 이어서 읽어보기로 한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템페스트>는 잘 알지만 세익스피어의 <템페스트>는 읽어본 적 없다. 영화로 보든가 읽든가 해야겠다. 그리고 존 치버의 단편들도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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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1-05-08 11: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놈의 플롯이 문제입니다.ㅋ 맞아요. 처음엔왓샵. 그러나 욉샤.발음이 의외로 어렵승다.ㅠ

hnine 2021-05-09 04:59   좋아요 1 | URL
학교에서 배웠잖아요? 소설의 3 요소 중 하나가 플롯이라고.
플롯을 무시할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저 정도 인정을 받은 작가의 경우엔 그만한 주관이 있어서 채택한 방식이라고 봐주면 되지 않을까 생각도 들었어요.
저 책 뒤에 번역자의 해설이 나오는데 예전엔 안읽고 넘어갔던걸 요즘은 해설까지 다 읽을 때가 많아요. 해설 읽으면서 배우는게 많더라고요. 작가 연보로만 알 수 없었던 작가에 대한 사실도 좀 더 알수 있고요.
예전에 권여선 작가가 그러던데 단편과 장편은 완전 다른 장르라고 생각해도 좋다고요. 독자의 입장에서도 단편소설과 장편소설의 매력은 따로 있다고 느끼고 있어요. 이 작가의 단편을 꼭 읽어보고 싶어요.

바람돌이 2021-05-09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국 고등학교에서 담배 피다 퇴학당했다는데서 깜놀입니다. 미국도 그럴때가 있어군요. ㅎㅎ
항상 좋은 책을 소개해주시는 hnine님 오늘도 잘 읽었습니다. 남은 주말 즐겁게 보내세요.

hnine 2021-05-09 05:03   좋아요 1 | URL
담배 피운 것 만은 아닌 것 같고 ( 제 짐작에 ^^) 워낙 미운 털 박혀 있는 상황에서 학교 규율에 명시 되어 있는 위반 행위를 하다가 딱 걸린게 아닐까...^^
제가 생일때마다 생일선물로 민음사와 펭귄클래식 세계문학시리즈를 한 세트씩 선물로 요청해서 받기를 몇년 했더니 (남편에게 요청) 세계문학 책들이 꽤 되어서, 요즘 핫한 책들 보다 문학전집 속의 책들을 주로 읽게 되네요. 그래도 아직 못 읽은 책이 수두룩 하지만요.
바람돌이님도 주말 잘 보내시길. 여기는 바람이 장난이 아닙니다. 그냥 바람이면 좋은데 미세먼지를 잔뜩 담고 있는 바람이라니 ㅠㅠ

scott 2021-06-04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치 나인님
존 치버 단편집들 완독의 문턱에 들어가셔야 할것 같습니다.
이달의 당선작 !
추카~추카~~

hnine 2021-06-06 04:36   좋아요 0 | URL
그렇게 될 것 같아요. 제가 한 작가 작품 파헤쳐 읽는 것 좋아하기도 하고요.
scott님도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리고, 감사합니다~

초딩 2021-06-04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월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hnine 2021-06-06 04:3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초딩님은 이달의 리뷰와 이달의 페이퍼 더블 당선!!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