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포도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5
존 스타인벡 지음, 김승욱 옮김 / 민음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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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발표된 미국 문학 작품들은 제목은 익숙한 것들이 많아도 실제로 책으로 읽은 것은 그리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20세기라면 영화 산업이 한창 발달하며 인기 가도를 달릴 때이고 미국은 수익 창출에 유리한 영화 산업이 특히 발달한 나라이기 때문에 인기 있는 작품들은 바로 영화로 만들어져서 책 보다 영화로 더 접근하기 쉽기 때문이었던 것도 이유 중 하나가 아닌가 생각된다.

존 스타인벡의 대표 작품중 하나인 <분노의 포도>는 출판한 바로 그해 (1939) 내셔날 북어워드, 다음해 (1940) 퓰리처상을 받음으로써 일찍부터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1942년 존 포드 감독에 의해 헨리 폰다를 주연으로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대중에게 더욱 유명해졌으며 1962년 존 스타인벡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지정될때에도 이 소설의 작품성이 언급되었고 지금도 미국 고등학교에서 대학입학을 위한 필독서 리스트에 빠지지 않는 작품 중 하나이다.

산업 자본 주의 바람으로 일부 계층은 막대한 부를 이루기 시작하지만 대부분의 중산층 사람들은 농사를 주업으로 하고 살던 미국 1920, 3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중부 오클라호마주 한 마을에서 할아버지 세대, 아버지 세대, 그리고 그의 여섯 자녀, 큰 아버지 이렇게 대 식구가 한 집에서 목화 농사를 짓고 살고 있는 조드 가족의 사는 모습은 이웃과 다를 바 없다. 그러다가 1930년대 경제 대공황이 밀어닥쳤고 가뭄과 한파, 모래 폭풍의 자연 재해로 농민들은 경제적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자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은행으로부터 농사 자금을 대출받아 버텨보지만 가뭄은 계속되고 농사는 흉작으로 이어진다. 결국 은행에 담보로 맡겼던 토지는 빼앗기고 사람이 짓던 농사는 트랙터가 대신함으로써 임금을 덜 들이고 수확을 거두는 농사 방법이 확산되어 간다.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진 농민들은 일자리가 많다는 서부 캘리포니아로 이주를 감행한다. 그동안 수십년 살아오던 터전을 버리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타지로 온 가족이 떠나는 극단의 모험이었다.

한 가족이 땅을 떠났다. 아버지가 은행에서 돈을 빌렸는데, 이제 그 은행이 땅을 원한다. 토지 회사, 혹은 토지를 소유한 은행은 트랙터를 원한다. 그들은 땅 위에서 평범한 가족들이 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트랙터가 나쁜 것인가? (...)

우리는 한때 우리 것이었던 이 땅을 사랑한 것처럼 트랙터도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트랙터는 두 가지 일을 한다. 땅을 갈아엎는 일과 우리를 땅에서 쫓아내는 일. 이 트랙터는 탱크와 거의 다르지 않다. 둘 다 사람들을 위협하고 상처를 입혀서 쫓아내 버린다. 우리는 이 점을 반드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1권, 315쪽)

캘리포니아로 가기만 하면 오렌지 농장, 포도 농장에서 얼마든지 일을 하여 돈을 벌수 있고 그러면 배고픔은 해결할 수 있을거라는 희망 하나로 대가족이 겨우 마련한 트럭을 타고 굶주려 가며, 이주의 수단이지만 수시로 고장을 일으키는 낡은 트럭을 수리해가며, 하루라도 빨리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일정, 즉, 왜 이주하게 되었고, 어떻게 이주해갔으며, 이주하여 정착은 어떻게 해갔는지가 이 소설의 큰 줄기이다.

'아메리칸드림'이라는 말은 미국 자국 내에서 시작된 말이었던 것이다.

사회적으로 어려운 시기, 생존의 위기, 상실의 위기에 닥친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주제 때문에 고발의 성격이 짙고 사회적인 목소리가 강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읽는 동안 작가의 목적과 의도가 꼭 거기에 있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히려 무너지는 것보다는 어떡해든 다시 일어날 것 이라는 믿음을 주고 싶어한달까.

등 뒤의 공포로부터 도망치는 사람들. 그들에게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지독하게 잔인한 일이 일어나기도 하고, 믿음에 영원히 불이 켜질 만큼 아름다운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1권, 252쪽) 

"앞으로 어떻게 될지 너무 생각을 많이 하면 지치기만 할 뿐이지. 앞으로 우리가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수많은 가능성이 있지만, 실제로 우리가 살게 되는 삶은 하나뿐이야. 만약 내가 그 가능성들을 다 생각해 본다면 견디기 어려울 거다. 넌 아직 어려서 앞날을 먼저 생각할 수 밖에 없겠지만, 난 그냥 지금 이 길만 생각해. 그리고 식구들이 언제쯤 돼지 뼈를 더 먹겠다고 할지, 그런 것만 생각해." (1권, 256쪽)

작품 속 등장 인물 중 가장 믿음과 확신을 주는 인물로 대표되는 것은 젊은 세대인 아들 톰 조드보다 오히려 그의 어머니였다. 위의 인용문은 앞일이 잘 될까 걱정하는 아들에게 하는 어머니의 말이다. 하루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걱정과 계획이 아니라 당장 오늘 먹을 끼니라는 현실적인 생각이다. 끼니 걱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근시안적인 차원이라고 과소평가하면 안되는 것은 작품의 결말에서 확실해진다.


힘들게 도착한 캘리포니아 땅. 듣던 대로 오렌지 농장, 포도 농장, 목화 농장은 있지만, 따야할 수확물의 양의 몇백배 되는 사람들이 동시에 일자리를 찾아 이주해오는 바람에 일당은 계속 내려가고 그러다보니 하루 종일 일을 해도 끼니나 겨우 면할 정도의 임금으로까지 내려간다. 사람들은 분노한다. 농장을 버리고 간 사람들 때문에 과일은 그냥 떨어져 썩어가고, 바로 옆에 통조림 공장이 세워져서 과일은 사람이 아닌 기계에 의해 통조림으로 만들어져 팔려간다. 썩어가는 과일 수확엔 그저 최저 임금을 주고 최소량만 수확할 뿐이다. 

굶주린 사람들의 눈 속에 점점 커져가는 분노가 있다. 분노의 포도가 사람들의 영혼을 가득 채우며 점점 익어 간다. 수확기를 향해 점점 익어간다. (2권, 255쪽)

사람들은 분노한다. 그리고 분노의 결과는 여러 가지 길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어떤 방향을 선택하여 보여주고 있을까. 

작품 곳곳에서 희망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고 있다고 보였던 것은 결말에서 더 확실한 작가의 목소리로 맺음한다. 비를 피해 들어간 헛간에서 발견한 모르는 한 노인과 조드가의 딸 로져산과 어머니. 인간이 인간과 뭉칠 수 있는 힘, 혼자가 아니라 서로 기대며 일어설 수 있는 바탕은 다름 아닌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사랑에 있다는, 어떻게 보면 종교적인 메시지로도 보일 수 있는 결말이다. 

사용된 언어와 주제 때문에 일부 지역과 단체에서 금서로 지정되고 소각되기도 했었다는 작품. 루스벨트 대통령의 부인 엘레노아 루스벨트가 읽고서 광팬이 되었다는 작품. 지금까지 전세계적으로 천사백만권 이상 팔렸다는 작품.

개인적으로 결말 부분이 옥의 티 같아 별 네개를 주려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작이라는 생각에 별 다섯개를 주었다.

바로 이어서 작가의 다른 대표작, <에덴의 동쪽>으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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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05-20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말 부분의 옥의 티....는 유럽 문명에선 ˝시몬과 페로˝라는 이름으로 일반화된 장면의 패러디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 생각하시면 조금 덜 끔찍하실 겁니다.
<에덴의 동쪽>도 영화보다 훨씬 재미있습니다!

hnine 2021-05-21 05:21   좋아요 0 | URL
옥의 티라 여겼던 이유는 저의 개인적인 소견으로, 앞의 내용에 비해 좀 감상적이고 억지스런 결말이지 않았나 싶었거든요.

<시몬과 페로> 그림 보고 왔습니다 ㅠㅠ
책을 읽으면서는 인간에 대한 여성의 근원적 모성 본능, 생명에 대한 애착 등으로 나름 해석하며 넘어갔는데 오히려 그림으로 시각화 된 것을 보니 ‘허걱!‘ 하게 되네요.
알려주시지 않았다면 저는 존 스타인벡의 머리 속에서 나온 결말인줄로 알았을텐데, 덕분에 알고 넘어갈 수 있었어요. 감사드립니다~.
<분노의 포도>에서도 살짝 기독교적 메시지를 느꼈는데 <에덴의 동쪽>은 제목에서부터 그런 느낌이 팍 오는데 과연 내용은 어떤지 이제 50쪽 정도 읽었으니 더 읽어봐야겠어요.

scott 2021-05-20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작 승!
영화보다 원작!

개인적으로 찰리와 함께 한 여행 에세이를 가장 좋아 합니다 (ᐡ-ܫ•ᐡ)

hnine 2021-05-20 22:52   좋아요 0 | URL
찰리가 사람 친구가 아니었군요 ^^
책 소개글 읽어봤더니 저도 딱 좋아할 내용인데 절판.
중고라도 사서 읽으려고요.
scott님, <분노의 포도> 영화도 보셨나봐요. 정말 미국의 웬만한 문학 작품들은 영화화된것들이 많은 것 같아요.

scott 2021-05-20 22:54   좋아요 0 | URL
영어 원서가 러프컷으로 출간되어서
소장용으로도 강추
문장도 깔끔합니다.


hnine 2021-05-20 23:04   좋아요 1 | URL
주문하고 왔어요~ ^^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stella.K 2021-05-21 12: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단함다. 이 두꺼운 장편을!! 짝짝짝!
영화와 문학은 샴쌍둥이 같은 관계 아니겠습니까?^^

hnine 2021-05-22 13:26   좋아요 1 | URL
재미없고 지루한 책이라면 절대 못했을거예요.
그만큼 내용도 재미있고 책장 넘기게 하는 힘이 있더라고요. 작가는 이런 사람이 해야하는구나 생각이 들만큼 긴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힘은 단순히 노력에만 있을것 같지 않고 작가 자신의 타고난 재능이 필요한 것 같아요.
영화로 보고 책으로 읽는건 좋은데 책 부터 읽고 영화를 보면 실망하기 마련이라고 하던데 아마 책 읽으면서 더 큰 상상력이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