왑샷 가문 몰락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93
존 치버 지음, 김승욱 옮김 / 민음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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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왑샷 가문 연대기 (The Wapshot Chronicle)>의 후속작이다. 원제는 The Wapshot Scandal 

번역자도 고심하여 '몰락기'라는 단어를 제목으로 선택하였겠으나 그러고나니 한 가문이 완전 풍지박산 하는 것 같은 뉘앙스를 주어 은근히 그런 내용을 기대하며 읽었다. 그런데 몰락기라기 보다는 한 가문이 겪어가는 흥망성쇠를 그렸다고, 더 넓은 의미로 보고 싶다. 가족중 누구도 큰 성공을 이룬 사람은 없으나 꼭 성공을 이루어야하나. 계획대로 흘러가는 인생이어야 하나. 도덕적이고 양심적인 삶만 가능한가.

아버지 리앤더의 죽음으로 끝난 왑샷 가문 연대기에 이어, 재정적 도움을 줄 수 없으니 고향 세인트보톨프스를 떠나 각자 생존을 위한 길을 가라는 사촌 고모격인 오노라의 명을 받고 리앤더의 두 아들 모지스와 코벌리가 집을 떠나 그들의 길을 개척해가는 과정이 왑샷 가문 몰락기의 중심 뼈대를 이룬다. 모지스와 코벌리는 결혼하여 그들의 가정을 꾸리지만 그들의 일과 가정 생활, 부부 생활은 험난한 과정을 겪는다. 큰아들 모지스는 부유한 후견인을 둔 여자 멜리사와 결혼하여 넓은 저택에 살게 되지만 멜리사는 자기보다 훨씬 어린 식료품 배달원과 눈이 맞아 혼외정사를 벌이고, 테이프기록원으로 일하게 된 남편 코벌리를 따라 척박한 군사도시 탤리퍼로 내키지 않는 이사를 하게 된 부인 벳시는 장소와 사람 모두에 적응을 못하여 힘들고 불만스런 생활을 억지로 버텨나간다. 성격이 정상은 아닌 것 같은 상사 캐머런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코벌리는 우연히 의도하지 않게 반미활동위원회에 연루된것이 아닌가 조사를 받기도 하는 등, 코벌리는 코벌리대로 계획대로 되는 일 없이 별 소득 없는 삶만 이어질 뿐. 모지스와 코벌리 모두 고향을 떠나 새로운 장소에 영 뿌리를 못 내리고 방황은 계속되지만 이런 중에서도 사회의 유혹에 무릎 꿇거나 도덕적 경계를 벗어나지 않으며 살아내려는 노력은 계속된다. 

삶이란 위험한 도덕적 여정이다. - 존 치버 -

아버지 리앤더는 아들들에게 도덕적이고 신앙의 가치를 강조하는 메모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삶이 어차피 위험한 도덕적 여정이라면, 생을 붙들고 사는 방법으로서 도덕적 경계를 벗어나지 말라는 것. 그것은 아버지 리앤더의 충고임과 동시에 작가인 존 치버의 목소리라고 해석하면 안될까? 작가 자신이 꼭 도덕적인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니지만 (알콜중독, 평탄하지 못한 가정생활, 마약, 동성애) 그런 경험에서 얻은 작가의 통찰이랄까 그런 것을 작품 속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인생 말년에 금욕과 절제를 강조했던 톨스토이의 삶이 그러했듯이. 원제 Scandal이라는 단어와도 그렇게 연관지어 생각을 해보았다. 그렇게 책장을 덮고 나니 왑샷 가문의 '몰락기'가 아닌, 매우 다른 관점으로 이 책을 보게 된다. 


왑샷 가문 연대기를 내고 2년 후 이 소설 집필을 시작하여 5년 걸려 완성했다고 한다. 그는 왜 후속작을 쓰고 싶었을까. 왜 5년의 시간이 걸렸을까.

노벨상을 제외하고 미국에서 받을 수 있는 거의 모든 문학상을 다 받았다는 존 치버.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은 한 가문의 몰락기가 아닌, 물질 주의와 인간성 상실로 가는 현대 사회에서 도덕적으로 흔들리는 인간상, 특히 젊은 세대의 분투와 방황을 그리고 싶었다고, 내 맘대로 해석해본다. 그들은 아직 몰락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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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05-14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으면서 제목에 불만이 있었습니다.
아주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납니다.

hnine 2021-05-15 05:14   좋아요 0 | URL
Falstaff님 리뷰 읽어보고 왔어요.
존 치버가 더 오래 살아서, 이 책의 다음 후속작을 더 냈더라면 이 책 제목도 바뀌었겠죠? ^^
이 사람 단편을 아직 한편도 못읽은 사람으로서 곧 단편소설의 대가 책을 읽어봐야겠어요.
하나를 배우면 모르는게 열가지씩 생긴다더니, 책도 한권을 읽으면 이어서 읽고 싶은 책이 몇배로 늘어나니 참. ^^

scott 2021-05-14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왓샵 가문 스토리가 치버 자신의 집안에 대한 이야기라서 후속작을 오년 뒤에 출간 하게 된 이유도 이모 때문이라고 합니다
가장 먼저 출간 한 왑샷도 어머니가 돌아가신후에 출간 했고 가족들은 치버가 정신 분열증 증세를 글쓰기로 억누르고 있다고 생각했데요.
치버는 평생 헤밍웨이의 문장력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정작 헤밍웨이는 치버의 단편 이야기를 아주 즐겨 읽었던 애독자였고 나보코프도 치버는 장편 보다 단편! 이라고 평가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카버의 단편이 치버보다 많이 읽혀지고 있지만
치버는 단편! ^ㅅ^

hnine 2021-05-15 05:24   좋아요 0 | URL
작품 해설을 찾아보니 그런 얘기가 써있더군요. 치버 가족 얘기가 많이 들어가있다고요. 특히 엄마인 새러 왑샷은 치버의 어머니가 가장 많이 반영된 인물이라네요. 그렇다면 치버 자신은 여기 나오는 인물중 어디에 가장 많이 반영되었을까 생각해보게되는데 모지스 아니면 코벌리이겠죠?
단편과 장편은 읽는 사람에게도 그렇지만 작가 입장에서도 참 다른 장르처럼 취급되나봅니다. 확실히 다른 기술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절제된 길이 속에 강한 임팩트와 여운을 남겨야 하는 단편도 매력있고, 전체적인 구성과 스토리를 치밀하게 엮어나가야 하는 장편도 매력있고요.

서니데이 2021-05-15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명한 작가의 책 같은데, 저는 이 책 처음 보는 것 같아요.
몰락기와 스캔들은 느낌이 조금 다른데, 잘 모르는 책일 때는 hnine님이 리뷰 첫부분에 쓰신 것처럼 제목을 보고 기대하는 것들이 없진 않은 것 같아요.
이번주 날씨가 더웠는데, 주말엔 비가 오고 있어요.
hnine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hnine 2021-05-15 22:49   좋아요 1 | URL
저도 존 치버의 작품은 이게 처음인데 여기서 끝낼 작가는 분명 아닌 것 같네요. 단편을 꼭 읽어봐야겠어요.
저는 비를 아주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서 특히 주말에 비가 오니까 좀 처져있던 중이랍니다.

페크pek0501 2021-05-20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인 님 따라서 읽고 싶은데 이 책은 4백 쪽이 넘네요. 4백 쪽이 넘는 건 안 사려고 맘 먹고 있었는데...ㅋ
너무 유명한 작가라 많이 들었음에도 저는 한 권도 읽지 못했네요.
해서 저도 검색해 보고 한 권 구매해 봐야겠단 생각이 드네요.

hnine 2021-05-20 21:29   좋아요 1 | URL
두권 짜리니까 4백쪽 x 2 입니다 ^^
재미있는 책 부터 읽으시고 천천히 읽으세요~
분량이 많지 않아도 끝내는데 오래 걸리는 책이 있는가 하면, 이 책 처럼 의외로 빨리 읽히는 책이 있기도 하네요.
방금 읽은 분노의 포도 역시 비슷한 분량인데 더 빨리 읽히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