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국주의 마지막 무렵부터 전두환 군사 독재 마지막까지 40여 년 동안 학교 선생질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아이들 앞에서 죄도 많이 짓고, 고민도 많이 했지요. 산골 학교를 쫓겨다니면서 그 긴 세월을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아름다운 산과 골짜기가 있는 곳마다 우리 아이들이 그 자연과 함께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
이런 정도로 살았는데도 한때 나는 정권을 비판하는 좋지 않은 글을 쓰는 사람으로 몰려 고생한 경력이 있습니다.
지금은 나이가 일흔일곱. 아! 언제 이렇게 됐나? 마음은 아직도 어린 아이인데! 그저 죽는 날까지 하늘 우러러 부끄럽지 않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을 뿐입니다.

이 오덕 선생이 이 책 <버찌가 익을 무렵> 의 뒤에 후기 형식으로 쓴 글의 일부이다. 하얗게 센 머리, 주름진 얼굴, 쑥 들어간 눈, 하지만 그의 얼굴은 늘 잔잔하게 미소를 머금고 있다. 어린이와 평생을 지내며 어린이들 앞에 권위를 세우려 하지 않고,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어루만져주려 애쓴 이의 얼굴이다. 

마치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의 국어 책을 보는 듯한, 아련하고 부드러운 윤곽의 삽화들, 그리고 딱 그 정도로 정감있는 내용이 마음을 훈훈하게 한다. 동시에 요즘 초등학교의 분위기를 떠올려 보게도 했다. 학교 근처 숲의 버찌나무에 열린 버찌를 따지 말라고 조회시간에 훈계하는 교장 선생님. 잎이 뜯기고 가지가 꺾이고 해서 벚나무가 울고 있다고. 요즘 그런 훈화를 하는 교장 선생님이 계실까?
교장선생님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날이 갈수록 버찌나무의 열매가 버찌나무 아래에 떨어져 밟혀있는 것이 발견되고, 범인을 잡자고 학교 선생님이 시간 날 때마다 자발적으로 보초를 서기도 하지만.
책의 뒤에는 부록처럼 벚나무에 대한 설명과 그림이 그려져 있고, 요즘 우리가 흔히 보는 벚나무는 왕벚이라는 일본에서 들여온 벚나무이고, 우리 나라에 옛날부터 있던 것은 산벚나무라고 친절히 알려준다. 산골 학교에서 아이들과 같이 나날을 보내면서, 학교에서 하고 있는 교육의 방법과 그 내용이 마음에 안들어 괴로와 하였고, '내가 교장이 되면 이런 교육을 하고 이런 교장이 되어야지' 하며 쓴 것이 이 이야기라고 한다. 그러면서 책을 읽는 독자가 될 어린이들에게 당부의 말을 한다. 여러분들도 학교 생활에서 마음에 안 차거나 답답한 일, 억울한 일, 슬픈 일, 기쁜 일, 고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일들을 글로 한번 써보라고. 머리로 만들어 내는 동화를 쓰라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말, 마음 속에 쌓여 있는 생각을 풀어내보라고. 이 오덕 선생의 그 말을 어린이는 아니지만 내가 그 자리에 서서 고스란히 받아 듣는다.   

 

나도 모르게 소리내어 읽으며 재미있어 한 책 <금자를 찾아서>. 충청도 사투리와 경상도 사투리가 이렇게 한 책에 함께 소개되어 있는 어린이책도 흔치 않을 것이다. 확실히 지방 사투리에는 서울 표준말에 비해 운율이 숨어있어 소리내어 읽거나 말해 보면 느껴지는 특유의 흥과 재미가 있다. '금자'란, '金으로 만든 자(尺)'란 뜻. '경주에 가 본 적 있나요?' 로 시작되는 책 앞 부분의 지은이의 말에 의하면, 경주에 있는 금척 고분과 관련있는 '금척설화'라는 전설을 씨앗으로 쓴 이야기라고 한다. 금자가 묻혀 있다고 전해져 내려오는 금척 고분. 경주에 몇 번 가보면서도 나도 아직 가본적이 없다 했더니 지은이의 말에 의하면 일반인들에게 그리 잘 알려진 유적지는 아니라고 한다. 절박한 사정때문에 지금의 충청도, 사는 곳에서 경주까지 금자를 찾으러 떠나는 주인공 돌배의 이야기이다. 이야기 구성도 재미있게 쓰여졌지만, 지은이의 우리말 다루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문장 문장마다 느낄 수 있었다.   

 

추석 전날과 오늘 산소까지 오가는 차 안에서 읽었다.
돌아오는 길, 어느 집 대문 앞의 감나무가 빨갛게 익은 것을 보고 사진으로 담아 왔다. 우리 아파트 앞의 감나무는 아직 푸른 색인데. 
파란 대문 집 앞의 감나무,
파란 대문 집 앞의 감나무......

 

 

 

 

 

 

 

 

 

 

 

  

 

 

 

 

 

 

 

 

 

 

 

 

 

 

비가 오락 가락 하더니 다행히 산소에 있는 동안엔 비가 많이 오지 않아 참 다행이었다. 가고 오는 길은 무지 막혔지만. 

추석은 이렇게 저물어가고, 이제 여름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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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0-09-23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소 다녀오시는 길에도 책을 읽으셨군요.
이오덕 선생의 버찌가 익을 무렵, 저도 오래 전 읽은 기억이 나요.
파란대문앞의 감나무가 탐스럽네요. 소소한 이런 것에도 눈길을 주시는 나인님.^^
여기도 오늘 아침부터 빗줄기가 오락가락, 기온이 제법 내려갔어요.
선선해요. 가을이네요!
나인님, 몸살 나지 않으셨어요? 내일은 좀 쉬세요.^^

hnine 2010-09-23 08:21   좋아요 0 | URL
이 오덕 선생에 대해 귀로만 많이 들었지 실제로 그분이 직접 쓰신 작품을 별로 읽은 것이 없는 것 같아 한번 읽어보았어요. 역시 프레이야님은 두루두루 독서의 범위가 넓으세요. <버찌가 익을 무렵>은 정말 저희 초등학교 국어책을 연상시키는 책이었어요.
대전은 추석 전날, 추석 당일도 비가 왔어요. 아버님 산소 모신 경기도 쪽으로 가니 이슬비 정도 오다 말다 하여 다행이었지요.
그런데 이젠 정말 여름 다 갔다 싶지요?
추석 잘 쇠고 돌아오셨기를 바랍니다.

순오기 2010-09-23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오덕 선생님 글과 오미경의 금자를 찾아서 읽으셨군요.
오미경 작가는 이금이 작가와 같은 충북 청원 출신이라 충청도 사투리가 리얼하지요.^^

파란 대문집의 감나무 보기 좋아요~ 이젠 정말 가을이에요!

hnine 2010-09-23 17:30   좋아요 0 | URL
오미경 작가의 글을 아마 저는 처음 읽지 않나 싶은데요, 아마 금척전설이라는 짧은 이야기 꼭지 하나 가지고 저렇게 재미있게 이야기를 엮으셨네요. 얼마나 생생하게 글을 쓰셨는지, 꼭 드라마를 한편 보는 것 같기도 했어요. 경상도 사투리도 얼마나 잘 써놓으셨던지, 기회되시면 한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세실 2010-09-25 07:11   좋아요 0 | URL
오미경작가라....왠지 아는분 같다는.
중앙도서관 근무할때 이용자이기도 했고, 지난번 어떤 모임에서 우연히 만났다는..그분이 그분이라면 말이죠.
저도 금자..책 읽어봐야 겠습니다.

순오기 2010-09-25 12:02   좋아요 0 | URL
금자를 찾아서는 봤어요.^^
오미경씨 '교환일기'랑 '신발귀신나무'도 괜찮아요!

Grace 2010-09-24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It's a heartache도 듣고, 하얀 튤립 사진도 백합인양 쳐다 보고, 달필이던 학생수첩을 보며 가볍기만 했던 나의 학창시절에 부끄러워도 해가며, 몇몇 아동문학가들의 이름들도 새겨보고...박인희, 사이먼 가폰컬, 겨운새운...등등 오전을 내내 그러고그러고 한참을 허대다 갑니다. 잎사귀 다 떨어진 나뭇가지에 홍시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감나무를 보면 저는...미친답니다.^^ 가득가득한 훌륭한 서재입니다!

hnine 2010-09-24 15:26   좋아요 0 | URL
구석구석 다 보아주시니 고맙고 또 부끄럽습니다.
감나무 풍경을 좋아하시는군요. 저도 그래요 ^^

sslmo 2010-09-25 0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시댁은 감나무도 대추나무도 아직 초록색이던데 말이죠.
감나무가 있는 풍경,왠지 정겨운 걸요~^^


hnine 2010-09-25 07:06   좋아요 0 | URL
같은 지역이라도 감나무가 서있는 위치에 따라 익은 정도가 달라지기도 하더라고요. 저희 집 앞의 감나무도 아직 푸르딩딩~ 해요. 차례상에 올린 감도 아직 푸른기가 조금 남아 있는 것이었지요.

세실 2010-09-25 0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오덕 선생님의 후기를 읽으면 괜히 부끄러워 집니다.
"그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을 뿐입니다."
저도 그렇게 살도록 노력해야 겠습니다.......

감이 주황빛으로 물들어 가네요. 아 예뻐라.
이곳은 아직 초록빛이예요.


hnine 2010-09-25 20:41   좋아요 0 | URL
다른 사람 이목을 신경쓰기보다는 나 자신에게, 그리고 하늘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 하루하루를 산다는 것이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오덕 선생님 같으신 분도 저렇게 말씀하셨겠지요.
감나무가 키는 저렇게 높아도 가지는 약해서, 감이 익은 것 보고 섣불리 따보겠다고 감나무에 올라갔다가는 큰 일 난다고 제 남편이 늘 하는 소리랍니다. 한번 올라갔다가 떨어져서 큰일 날뻔 했대요 ㅋㅋ

비로그인 2010-09-25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며칠전만하더라도 한낮에는 꽤 더웠는데 이제 "여름" 이라는 단어를 말하는 것이 무색할만큼 가을이 이~만큼 우리 앞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런 느낌을 전해주는 사진이네요.

바람이 꽤 쌀쌀해졌습니다. hnine님, 건강 유의하시고요.

hnine 2010-09-25 22:44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 잘 다녀오셨어요?
이렇게 금방 쌀쌀해질 것을, 그렇게 더위로 힘들어했네요.
마루에서 이불 다 차버리고 자던 아이도 이제 방으로 들어가서 이불 꼭꼭 덮고 자요 ^^
몸도 마음도 건강한 가을이 되어야겠어요.

비로그인 2010-09-26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절 잘 보내셨어요?
ㅎㅎ감이 참 사랑스럽게도 달려있네요.
어렸을 적 교과서 얘길 하시니까...한참(?푸히히)을 되짚어 올라가서 정감을 느껴보고 왔습니다.
콩깍지의 콩들이 여물어 각자가 살 터를 찾는 내용이었는데...ㅎ

hnine 2010-09-26 11:59   좋아요 0 | URL
아, 저 그 얘기 생각나요. 그림도 생각나요. 우리 국어 책에 참 뭉클한 얘기들이 많았어요, 그치요?
명절은 뭐, 숙제하는 기분으로 보냈지요. 숙제 무사히 잘 마쳤고요 ^^
 

 

 

CD의 속지를 보니, '1996년 8월, S. Lee 로부터' 라고 적혀 있다. 

난 누구를 마중나가 보았던가.
누가 나를 마중나와 주었지? 

정겹고 뭉클한 단어이다 '마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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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0-09-20 0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네요. 최근에는 마중나가 누군가를 기다린 적도, 누군가를 나를 마중나와준 적도 거의 없는 것 같아요.

hnine 2010-09-20 15:28   좋아요 0 | URL
아이가 어릴 때, 일하고 걸어서 집에 오는 길, 가끔 남편이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저를 마중나오곤 했었던 기억이 지금 나네요. 아이는 엄마 얼굴을 알아보고 벙글벙글 하고, 피곤했던 저의 얼굴을 금방 활짝 펴지고...
아이가 유치원 다닐 때에는 집에 올때쯤 시간 맞춰 아이 마중을 나갔었고요.
그당시에는 그게 다 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이지요.

꿈꾸는섬 2010-09-20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람회...오랜만이에요. 저도 참 좋아했던 음반이네요.^^

hnine 2010-09-20 15:30   좋아요 0 | URL
1996년이라는 날짜를 보고 참, 짧은 한숨이 나왔더랬어요. 시간이 이렇게 흘렀구나 하고요.
저 CD에 좋은 노래가 많은데 특히 저 노래를 계속 반복해서 들었지요. 노래라보다 속삭임 같고 독백 같지요. 꿈꾸는 섬님도 좋아하셨구나...^^

비로그인 2010-09-20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 노래 참 좋아하는걸 어찌 아시고 ^^..유투브에서는 언제나 찾아 들을 수 있겠지만 hnine님 공간에서 듣던 시간을 잊지 못할듯 합니다.

추석 내내 고단하시겠지만 어깨가 들썩이도록 웃는, 그런 시간들도 되셨음 좋겠습니다.
전 고향 잘 다녀올게요 :D

hnine 2010-09-20 21:06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도 이 노래를 좋아하신다니, 전혀 뜻밖이 '아닙니다'~ ^^
함께 들어주셔서 늘 감사드리고,
고향에 안녕히 잘 다녀오세요, 꾸벅~ (배꼽인사)

프레이야 2010-09-20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인님, 차례 모시고 시댁 식구 거느리고 성묘 가시고 일이 많으시군요.
대단해요. 저도 맏며느리인데 사실 아직은 그러지 않지만 은근히 부담되어요.
언젠가 제일이 될텐데 어쩌나 하는 그런거요.^^
먹기에 아까울 정도로 이쁜 송편이랑 요것조것 음식솜씨도 좋으시죠.
좀 쉬어가며 일 하세요.

마중! 어두운 밤기차역, 늘 그리워하는 이가 나를 마중 나와 있는 꿈을 꿉니다.
오로지 그 사람만 보이겠죠, 제 눈에는.
기다리던 사람을 마중 나가는 일도 얼마나 설레는 일인지요.^^

hnine 2010-09-21 06:17   좋아요 0 | URL
추석 차례 음식은 나박김치와 식혜만 어제 해놓았고 오늘 본격적으로 하려고 합니다. 시댁에 내려가서 다른 사람들과 마음 맞춰 가며 일해야하는 분들보다 저는 이렇게 혼자서 알아서 하니 몸이 좀 더 힘들기는 해도 마음은 더 편하지 않나 생각해요. 제가 알아서 쉬어가며 일 할 수도 있고요 ^^

프레이야님의 댓글을 읽으니 제가 위의 글을 썼을 때보다 '마중'이라는 말이 더욱더 그리워집니다. 마중...
추석 잘 쇠시고, 맛 있는 음식도 많이 드시고요. 큰 따님도 집에 오겠네요? ^^

sslmo 2010-09-25 0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다른 사람들과 마음 맞춰 가며 일하는 것보다,
몸이 좀 더 힘들어도 마음이 편한 쪽을 선호한다고나 할까요~^^

오랫만에 다시 들었는데...여전히 좋네요.

hnine 2010-09-25 07:07   좋아요 0 | URL
저랑 같은 과이시군요 ^^
 

 

 

 

 

 

 

 

 

전교생 열네명의 분교에서 교사로 재직하고 있는 김은영 시인의 동시집이다. 2001년에 초판이 나왔고 내가 읽은 것은 2006년도에 창비에서 출간된 것.   

 

김치를 싫어하는 아이들아  

 

샐러드는 잘 먹어도
김치는 싫어하는 아이들아
케첩은 잘 먹어도
된장 고추장은 싫어하는 아이들아  

 

딱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된장 고추장에
푸르딩딩한 풋고추
푹 찍어 먹어 보자  

 

아려 오는 혀와 입술
타오르는 목구멍
입 크게 벌리고
허 -
숨을 내뱉으면
혀 밑으로
끈끈하고 맑은 침이 고이리라  

 

바로 그 때
시원한 나박김치 국믈
몇 숟갈 떠먹어 보자
그래도 맵거든
백두산 천지를 마시듯
후루룩 들이켜 보자.

 이 시 하나만 보아도 김은영이라는 시인이 어떤 시를 지향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참고로 그는 이름에서 짐작되는 것과 달리 남성임.) 

 

 

 

 

 

 

 

 


 김은영 시인의 첫번째 동시집인 '빼앗긴 이름 한글자'
1994년 초판에 이어 2000년에 창비에서 2판이 나왔다. 

   
  

빼앗긴 이름 한글자 

 

처음엔 나도 몰랐어
호박꽃 속에 든게 양벌이란 것을
우리 나라 벌이 많은 곳에선
사이 좋게살지만
양벌들의 수가 많아지면
싸움을 일으켜
몸집이 작은 우리 나라 벌들을
마구 죽인단다 

 

 

우리 나라 벌들은
자꾸 쫓겨나서
지금은 두메 산골에서만 살지
'벌'이라는 한 글자 이름마저
서양꿀벌에게 빼앗기고
이름 석 자 '토종벌'로 불리면서 

 

 

기름에 튀긴 양념 통닭 맛있지
어떻게 기르는지 아니
조금도 못 움직이게
철창 속에 가두어서
싱그러운 풀잎 한 번 못 뜯어 먹고
수입 사료 먹으면서 살만 찐 닭이야

  



본디 우리나라에선
닭을 놓아 길렀지
꼬-끼-오 홰를 치며
새벽을 알려 주었는데
지금은 깊은 시골에서만 살지
'닭'이라는 한 글자 이름마저 빼앗기고
'토종닭'이라 불리면서

  

 

개도 그렇고
소도 그렇고
몇 년 안걸려
쌀도 그렇게 될지 몰라
우리 나라 짐승들
우리 먹을거리
하나 둘 이름 빼앗기며
사라져 갈지

 
동시집에 실려있긴 하지만 현실참여, 역사인식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시이다.

 

 

 

 

 

 

 


실천문학사에서 나온 임 길택 시인 (1952-1997)의 시집.
짧은 생을 살고 세상을 떠났다. 제목에서처럼 탄광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지내면서 일하는 아이들, 가난을 안고 사는 아이들의 삶이 어떤지 눈으로 보고 그 속에서 함께 살고 느끼며 그것이 시가 되었다.

 

 

 

 

 

 

 


우리 나라 대표적인 어린이문학가인 이 오덕 선생은, 어린이문학에도, 눈에 뜨이지 않는 그늘에서, 먹고 살기 위해 부모를 도와 일하며 살고 있는 어린이들의 현실이 반영되어야 하고, 그것이 반영되어 있지 않은 시들은 동심(천사)주의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의 저서에서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의 이런 주장을 보이기 위해 반례로 자주 등장하는 시인 중 한 사람인 채 인선 작가. 그녀 역시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많은 독자층을 가지고 있는 우리 나라 중견 어린이문학가 중 한 사람이고 그녀의 작품 경향은 확실히 위의 두 작가와 다르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현실 참여적이지 않은 작품들을 '동심천사주의'라고 불러야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다.
그런 의미에서 바로 이어 채 인선 작가의 <삼촌과 함께 자전거 여행> 이라는 책을 읽었다. 김 동성 화백의 그림에 마음이 쏠려 오히려 글이 눈에 잘 안들어온다. 그림 때문에 글에 몰입이 안되어보기는 처음이다. 이야기 자체는 매우 단순하기 때문에 과연 초등 저학년 정도의 아이들이 이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을지 궁금해졌다. 

 

 

 

 

 

 

 

 
<감자를 먹으며>. 이 오덕 선생의 산문 같은 동시집이다. 내용으로 보나 형식으로 보나 산문에 가까와보이는데 동시집이라고 쓰여있으니 그렇게 부른다. 무채색의 저 표지 그림의 인물은 아마 이 오덕 선생을 그린 것으로 보이는데, 호미를 들고 감자를 캐고 있는 얼굴에 미소가 번져 있다. 이분이 어린이문학에서 무엇을 주장했던간에 참 따뜻한 내용의 책이었다. 마지막 쪽의 내용을 옮겨와본다.

내가 믿는 하느님도
그렇다,
감자를 좋아하실 것이다.
맑고 깨끗하고 따스하고 포근하고 부드러운
감자 맛을 가장 좋아하실 우리 하느님,
내가 죽으면 그 하느님 곁에 가서
하느님과 같이 뜨끈뜨끈한
감자를 먹을 것이다.

저자는 지금 하늘 나라에서 그렇게 지내고 계신지.  

구수하고 예쁜 우리말 표현들도 자꾸 소리내어 읽어본다. '팍신팍신 달고소한 그 감자맛', '보리매미이초강 이초강 울어 쌓고'
보리매미는 보리가 익고 감자를 캐기 시작할 때부터 우는 매미를 말하는데 매미 우는 소리가 이초강 이초강......

 

 

 

 

 

 

 

 

 

 오늘 마지막으로 읽은 어린이책은 우리나라에서도 출간될 때 홍보가 꽤 많이 되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 아서 콘버그'미생물 이야기'인데 '노벨상 수상자가 들려주는' 이라는 작은 글씨가 제목 앞에 붙어 있다. 아서 콘버그라면 관련 분야를 전공한 사람들에게 '역전사 효소'를 알아낸 사람으로, 분자 생물학 교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직접 저서를 쓰기도 한 사람으로서 모를 수가 없는 인물이다.
책이 생각보다 무척 크고 튼튼해서 뜻밖이었는데 보기보다 내용은 간단하다. 우리에게 주로 많이 알려진 미생물의 종류들을 쭉 나열해놓고, 어떤 병, 혹은 약과 관련되어 있는지 간단하게 설명해주고, 어떻게 생겼는지 그림과 사진으로 보여주는 것이 전부.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구성도 내용도 그저그랬다. 이 책을 읽은 아이들은 재미있었을까?

 

 아이가 축구경기를 관람하러간 두어 시간 동안 도서관에 앉아 몇권의 책을 자리에서 꼼짝 않고 읽다보니 밖에 비가 오는지도 몰랐다. 추석날엔 비가 오지 말아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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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0-09-19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석 앞이라서 그런가요?
다 먹는 시네요~

전,개인적으로...
'맑고 깨끗하고 따스하고 포근하고 부드러운 감자'를 맛보고 싶어요.

풍성한 한가위보내세요~^^

hnine 2010-09-19 22:00   좋아요 0 | URL
ㅋㅋ 수제비 먹고 싶어졌잖아요~
긴 하루였어요...
잘 다녀오시고 또 재미있는 얘기 많이 들려주세요~ (이야기 조르는 아이 같나요? ^^)

꿈꾸는섬 2010-09-20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은영, 임길택 시는 처음봐요. 정말 좋으네요.^^
추석 연휴 잘 보내세요.^^
나인님도 재미있는 어린이 책 소개 많이 해주세요.^^

hnine 2010-09-20 15:24   좋아요 0 | URL
꿈꾸는 섬님도 좋아하실 시들이예요.
영동에 내려가신다고요. 길이나 안 막혔으면 좋겠네요. 아이들이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잘 적응했으면 좋겠고요. 의외로 사람들이 북적북적하는 분위기를 아이들은 좋아하더라고요.

순오기 2010-09-20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님의 필터로 걸러진 시 이야기, 책 이야기 참 좋으네요.
다시 한번 동시의 의미를 생각해 보는...

행복한 추석 명절 보내시어요~^^

hnine 2010-09-20 15:26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필터 사이로 마구 빠져나간 것들이 아마 많을거예요.
아이들책은 한번 잡으면 참...놓기가 싫어요. 나이가 들어가니 더욱 더 처음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조금씩 생겨나는가봐요.
아이들책 읽고 나서 이런 글을 쓸 때에는 꼭 순오기님 생각이 자동 반사적으로 떠오르네요. 읽으셨을까? 어떻게 읽으셨을까? 하고요 ^^

순오기 2010-09-23 12:40   좋아요 0 | URL
아~ 여기 올려주신 책은 임길택 선생님 '탄관마을 아이들'만 읽고 다른 책은 아직 못 봤어요. 부지런히 찾아 읽어야지요.^^

hnine 2010-09-23 17:35   좋아요 0 | URL
임길택 시인 사진도 보았는데 인상이 정말 쓰신 시와 비슷했어요.
동시, 동화를 쓰는 사람들 모두 아이들을 염두에 두고 쓰지만, 어떤 눈으로 보느냐 하는 것은 또 다 같지 않구나...요즘 그런 걸 새삼 느낍니다. 제가 보는 아이들은 어떤 색일까도 생각해보고요.
 

 

 

키보다 짧은 옷 아래
황톳물 든 속옷을
부끄러워할 겨를이 없다 

 

콧잔등엔 언제나
송글송글 진땀 솟아나 있고
한마을 연택이조차
자리를 바꿔 달래는 아이 

 

손이 가늘은 아이
목이 가늘은 아이 

 

뼈뿐인 그 애의 손을 잡고
손톱을 깎아 준다.
튀어 오르는 까만 손톱보다
더 가벼워 보이는 그 애의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눈다. 

 

힘이 들면 잔디밭에 누워
하늘 바라보다가
잠이 들기도 한다는 아이
그 아이 눈에서
나도 오늘 하늘을 본다. 

 

목이 가늘은 아이
손이 가늘은 아이 

 

- 임 길택 <유순이> 전문

 

 

 

 

 

 

 

  


요즘 읽고 있는 책이다.
그동안, 어린이책들을 읽기 시작하고부터 조금씩 커져가던 물음의 답을 찾아보기 위해 고른 책인데, 그 안에 위의 '임 길택'이라는 시인의 시가 인용되어 있었다. 아직 읽는 중이기 때문에 책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리뷰로 올리기로 하겠지만, 평론집이라는 것이 이렇게 재미있을 수도 있구나 하면서 읽는다. 

다음은 위의 시를 쓴 임 길택 시인의 말. 시인의 다른 책에 실린 구절인데 역시 위의 책에 인용이 되어 있다. 

나는 내가 쓴 이야기들을 통해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 보겠다는 욕심은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다만 시골에서 살아보지 못한 아이들에게 지금 우리 농촌 어른과 아이들이 무엇을 어떻게 하고 살아가는가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곳곳의 아이들이 조금이나마 넓은 생각을 갖기를 바랬다.
말이 될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쓴 이야기들도 하나의 역사라 여겼다. 나는 역사책에 나오는 큰 사건들도 중요하나 이에 못지않게 그 역사의 뒤안길에서 이름없는 사람들이 가꾸어 나가는 정서 또한 중요한 역사로 대접받아 마땅하다고 여기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아이들이 이 책 속 아이들의 정서를 이해하고, 이 아이들을 이웃으로 받아들이며, 이 아이들과 함께 꾸릴 세상을 꿈꿔 보았으면 했다. (임 길택 <내가 쓴 동화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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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9-20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엇을 가르치기 위해 쓰는 게 아니라는 말씀에 감동 받아요.
"그 역사의 뒤안길에서 이름없는 사람들이 가꾸어 나가는 정서 또한 중요한 역사로 대접받아 마땅하다"는 말씀에도 공감하고요!

hnine 2010-09-20 15:34   좋아요 0 | URL
이 책을 읽으며 우리나라 어린이문학계에 엄연히 존재하는 대립, 갈등 관계에 대해 조금 감이 잡혔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이분 글 참 잘 쓰시더라고요.
 

크라이슬러의 전주곡과 알레그로.
이착 펄만 연주. 

 

이런 시작이 좋다.  
이렇게 시작되는 음악이,
그리고
이렇게 시작되는 음악을 들으며 시작하는 아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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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0-09-18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바람결님서재랑 님 서재오면 항상 마음이 차분해지네요.
기분도 정화되고요

hnine 2010-09-18 11:27   좋아요 0 | URL
이 곡의 시작을 들으면 마치 성큼성큼 걷는 걸음걸이가 연상되지 않나요? 일반적인 곡의 도입부와 좀 다르지요. 그래서 묘한 긴장감과 또 희열을 느끼게 해요.
날씨도 좋고 한가로운 토요일인데, 하늘바람님은 오늘도 출근하셨나요? 그렇다면 토요일이니 기분좋게 일하시고 퇴근하시길 바랄께요.

stella.K 2010-09-18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악 좋군요!^^

hnine 2010-09-18 21:29   좋아요 0 | URL
시작부터 힘이 들어간 음이 나오지요.
지금은 하루를 마감할 시간, 무슨 음악이 어울릴까...사실 지금 음악 들을 상황이 아니랍니다 ㅠㅠ 새벽에 저 혼자 깨어있을때에나 가능하지요.

굿바이 2010-09-18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곡을 여기서 듣습니다. 참 좋아하는 연주입니다.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hnine 2010-09-18 21:29   좋아요 0 | URL
같이 들어주시고 공감해주시니 제가 더 고맙고 기쁘지요.
굿바이님, 반갑습니다 ^^

sslmo 2010-09-18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부지런 하시네요~
이른 아침이 때론 설레임이기도 하지만,
강행군한 다음날,이른 출발은 죽을 맛입니다.

그래도 이작 펄만이 있어 다행입니다~!

hnine 2010-09-18 21:33   좋아요 0 | URL
저도 위의 글 쓰면서 그 생각 했어요. 누구에게는 고역인 아침을 이렇게 평화로운 느낌, 어쩌며 글을 올려도 될까하고요. 가끔 저런 날도 있다는 것이지요 뭐.
정경화가 연주한 것도 있던데 느낌이 많이 다르더라고요. 저는 이착 펄만 연주가 조금 더 좋던데요.

비로그인 2010-09-18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악과 함께 시작한 하루. 잘 보내셨는지요?^^ 낮엔 쫌 더웠는데 역시 밤에는 영락없는 가을이네요..

hnine 2010-09-18 22:51   좋아요 0 | URL
시작은 좋았으나 오늘 하루도 만만치 않은 하루였답니다. 낮에는 아직 더위가 남아있는데 말씀하신대로 밤에 잘 때에는 쌀쌀하지요. 이불 잘 덥고 주무세요~ ^^

라로 2010-09-18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음악에 질렸어요,,^^;;
딸아이가 5학년때 이 곡으로 콩쿨을 나가느라 질리게 들었거든요,,그래서 지금도 썩 좋아하지는 않아요,,,하지만 님의 말씀에 동의해요,,,^^

hnine 2010-09-18 21:39   좋아요 0 | URL
듣는 사람이 질릴 정도이면 따님은...? ^^
그래서 음악을 정말 '사심없이 즐기려면' 전공이나 직업으로 하면 안되겠구나, 제가 고등학교 때 그런 생각을 했었답니다. 정작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연주를 들려주기 위해서 연주자는 그야말로 그 곡이 듣기도 싫어질 때까지 연습을 해야하니까요.

봄날 2010-09-20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부터 좋은 음악 들어 가슴이 벅차오네요. 다른 곡도 찾아들어야 겠습니다.

hnine 2010-09-20 21:25   좋아요 0 | URL
아, 봄날님. 잠시라도 가슴 벅찬 시간이 되셨다니 저도 영광입니다 ^^

꿈꾸는섬 2010-09-20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전 오늘 아침 이 곡을 듣네요.^^ 참 좋네요.^^
오늘 하루 잘 보내겠어요.^^

hnine 2010-09-20 15:34   좋아요 0 | URL
좋지요? 그쵸?

순오기 2010-09-20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낮에 들어도 좋은데요~
사흘간 좀비처럼 잠만 자고 일어나 밀린 일 하느라 분주하지만,
알라딘 들락거리며 음악도 듣고...^^

hnine 2010-09-20 15:35   좋아요 0 | URL
피곤할때 잠만한 처방이 없어요. 좀비처럼이 아니라 정말 잘 하신거예요.
저도 지금 알라딘 들락거리며 일도 해가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