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생 열네명의 분교에서 교사로 재직하고 있는 김은영 시인의 동시집이다. 2001년에 초판이 나왔고 내가 읽은 것은 2006년도에 창비에서 출간된 것.   

 

김치를 싫어하는 아이들아  

 

샐러드는 잘 먹어도
김치는 싫어하는 아이들아
케첩은 잘 먹어도
된장 고추장은 싫어하는 아이들아  

 

딱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된장 고추장에
푸르딩딩한 풋고추
푹 찍어 먹어 보자  

 

아려 오는 혀와 입술
타오르는 목구멍
입 크게 벌리고
허 -
숨을 내뱉으면
혀 밑으로
끈끈하고 맑은 침이 고이리라  

 

바로 그 때
시원한 나박김치 국믈
몇 숟갈 떠먹어 보자
그래도 맵거든
백두산 천지를 마시듯
후루룩 들이켜 보자.

 이 시 하나만 보아도 김은영이라는 시인이 어떤 시를 지향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참고로 그는 이름에서 짐작되는 것과 달리 남성임.) 

 

 

 

 

 

 

 

 


 김은영 시인의 첫번째 동시집인 '빼앗긴 이름 한글자'
1994년 초판에 이어 2000년에 창비에서 2판이 나왔다. 

   
  

빼앗긴 이름 한글자 

 

처음엔 나도 몰랐어
호박꽃 속에 든게 양벌이란 것을
우리 나라 벌이 많은 곳에선
사이 좋게살지만
양벌들의 수가 많아지면
싸움을 일으켜
몸집이 작은 우리 나라 벌들을
마구 죽인단다 

 

 

우리 나라 벌들은
자꾸 쫓겨나서
지금은 두메 산골에서만 살지
'벌'이라는 한 글자 이름마저
서양꿀벌에게 빼앗기고
이름 석 자 '토종벌'로 불리면서 

 

 

기름에 튀긴 양념 통닭 맛있지
어떻게 기르는지 아니
조금도 못 움직이게
철창 속에 가두어서
싱그러운 풀잎 한 번 못 뜯어 먹고
수입 사료 먹으면서 살만 찐 닭이야

  



본디 우리나라에선
닭을 놓아 길렀지
꼬-끼-오 홰를 치며
새벽을 알려 주었는데
지금은 깊은 시골에서만 살지
'닭'이라는 한 글자 이름마저 빼앗기고
'토종닭'이라 불리면서

  

 

개도 그렇고
소도 그렇고
몇 년 안걸려
쌀도 그렇게 될지 몰라
우리 나라 짐승들
우리 먹을거리
하나 둘 이름 빼앗기며
사라져 갈지

 
동시집에 실려있긴 하지만 현실참여, 역사인식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시이다.

 

 

 

 

 

 

 


실천문학사에서 나온 임 길택 시인 (1952-1997)의 시집.
짧은 생을 살고 세상을 떠났다. 제목에서처럼 탄광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지내면서 일하는 아이들, 가난을 안고 사는 아이들의 삶이 어떤지 눈으로 보고 그 속에서 함께 살고 느끼며 그것이 시가 되었다.

 

 

 

 

 

 

 


우리 나라 대표적인 어린이문학가인 이 오덕 선생은, 어린이문학에도, 눈에 뜨이지 않는 그늘에서, 먹고 살기 위해 부모를 도와 일하며 살고 있는 어린이들의 현실이 반영되어야 하고, 그것이 반영되어 있지 않은 시들은 동심(천사)주의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의 저서에서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의 이런 주장을 보이기 위해 반례로 자주 등장하는 시인 중 한 사람인 채 인선 작가. 그녀 역시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많은 독자층을 가지고 있는 우리 나라 중견 어린이문학가 중 한 사람이고 그녀의 작품 경향은 확실히 위의 두 작가와 다르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현실 참여적이지 않은 작품들을 '동심천사주의'라고 불러야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다.
그런 의미에서 바로 이어 채 인선 작가의 <삼촌과 함께 자전거 여행> 이라는 책을 읽었다. 김 동성 화백의 그림에 마음이 쏠려 오히려 글이 눈에 잘 안들어온다. 그림 때문에 글에 몰입이 안되어보기는 처음이다. 이야기 자체는 매우 단순하기 때문에 과연 초등 저학년 정도의 아이들이 이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을지 궁금해졌다. 

 

 

 

 

 

 

 

 
<감자를 먹으며>. 이 오덕 선생의 산문 같은 동시집이다. 내용으로 보나 형식으로 보나 산문에 가까와보이는데 동시집이라고 쓰여있으니 그렇게 부른다. 무채색의 저 표지 그림의 인물은 아마 이 오덕 선생을 그린 것으로 보이는데, 호미를 들고 감자를 캐고 있는 얼굴에 미소가 번져 있다. 이분이 어린이문학에서 무엇을 주장했던간에 참 따뜻한 내용의 책이었다. 마지막 쪽의 내용을 옮겨와본다.

내가 믿는 하느님도
그렇다,
감자를 좋아하실 것이다.
맑고 깨끗하고 따스하고 포근하고 부드러운
감자 맛을 가장 좋아하실 우리 하느님,
내가 죽으면 그 하느님 곁에 가서
하느님과 같이 뜨끈뜨끈한
감자를 먹을 것이다.

저자는 지금 하늘 나라에서 그렇게 지내고 계신지.  

구수하고 예쁜 우리말 표현들도 자꾸 소리내어 읽어본다. '팍신팍신 달고소한 그 감자맛', '보리매미이초강 이초강 울어 쌓고'
보리매미는 보리가 익고 감자를 캐기 시작할 때부터 우는 매미를 말하는데 매미 우는 소리가 이초강 이초강......

 

 

 

 

 

 

 

 

 

 오늘 마지막으로 읽은 어린이책은 우리나라에서도 출간될 때 홍보가 꽤 많이 되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 아서 콘버그'미생물 이야기'인데 '노벨상 수상자가 들려주는' 이라는 작은 글씨가 제목 앞에 붙어 있다. 아서 콘버그라면 관련 분야를 전공한 사람들에게 '역전사 효소'를 알아낸 사람으로, 분자 생물학 교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직접 저서를 쓰기도 한 사람으로서 모를 수가 없는 인물이다.
책이 생각보다 무척 크고 튼튼해서 뜻밖이었는데 보기보다 내용은 간단하다. 우리에게 주로 많이 알려진 미생물의 종류들을 쭉 나열해놓고, 어떤 병, 혹은 약과 관련되어 있는지 간단하게 설명해주고, 어떻게 생겼는지 그림과 사진으로 보여주는 것이 전부.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구성도 내용도 그저그랬다. 이 책을 읽은 아이들은 재미있었을까?

 

 아이가 축구경기를 관람하러간 두어 시간 동안 도서관에 앉아 몇권의 책을 자리에서 꼼짝 않고 읽다보니 밖에 비가 오는지도 몰랐다. 추석날엔 비가 오지 말아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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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09-19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석 앞이라서 그런가요?
다 먹는 시네요~

전,개인적으로...
'맑고 깨끗하고 따스하고 포근하고 부드러운 감자'를 맛보고 싶어요.

풍성한 한가위보내세요~^^

hnine 2010-09-19 22:00   좋아요 0 | URL
ㅋㅋ 수제비 먹고 싶어졌잖아요~
긴 하루였어요...
잘 다녀오시고 또 재미있는 얘기 많이 들려주세요~ (이야기 조르는 아이 같나요? ^^)

꿈꾸는섬 2010-09-20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은영, 임길택 시는 처음봐요. 정말 좋으네요.^^
추석 연휴 잘 보내세요.^^
나인님도 재미있는 어린이 책 소개 많이 해주세요.^^

hnine 2010-09-20 15:24   좋아요 0 | URL
꿈꾸는 섬님도 좋아하실 시들이예요.
영동에 내려가신다고요. 길이나 안 막혔으면 좋겠네요. 아이들이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잘 적응했으면 좋겠고요. 의외로 사람들이 북적북적하는 분위기를 아이들은 좋아하더라고요.

순오기 2010-09-20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님의 필터로 걸러진 시 이야기, 책 이야기 참 좋으네요.
다시 한번 동시의 의미를 생각해 보는...

행복한 추석 명절 보내시어요~^^

hnine 2010-09-20 15:26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필터 사이로 마구 빠져나간 것들이 아마 많을거예요.
아이들책은 한번 잡으면 참...놓기가 싫어요. 나이가 들어가니 더욱 더 처음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조금씩 생겨나는가봐요.
아이들책 읽고 나서 이런 글을 쓸 때에는 꼭 순오기님 생각이 자동 반사적으로 떠오르네요. 읽으셨을까? 어떻게 읽으셨을까? 하고요 ^^

순오기 2010-09-23 12:40   좋아요 0 | URL
아~ 여기 올려주신 책은 임길택 선생님 '탄관마을 아이들'만 읽고 다른 책은 아직 못 봤어요. 부지런히 찾아 읽어야지요.^^

hnine 2010-09-23 17:35   좋아요 0 | URL
임길택 시인 사진도 보았는데 인상이 정말 쓰신 시와 비슷했어요.
동시, 동화를 쓰는 사람들 모두 아이들을 염두에 두고 쓰지만, 어떤 눈으로 보느냐 하는 것은 또 다 같지 않구나...요즘 그런 걸 새삼 느낍니다. 제가 보는 아이들은 어떤 색일까도 생각해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