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보다 짧은 옷 아래
황톳물 든 속옷을
부끄러워할 겨를이 없다 

 

콧잔등엔 언제나
송글송글 진땀 솟아나 있고
한마을 연택이조차
자리를 바꿔 달래는 아이 

 

손이 가늘은 아이
목이 가늘은 아이 

 

뼈뿐인 그 애의 손을 잡고
손톱을 깎아 준다.
튀어 오르는 까만 손톱보다
더 가벼워 보이는 그 애의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눈다. 

 

힘이 들면 잔디밭에 누워
하늘 바라보다가
잠이 들기도 한다는 아이
그 아이 눈에서
나도 오늘 하늘을 본다. 

 

목이 가늘은 아이
손이 가늘은 아이 

 

- 임 길택 <유순이> 전문

 

 

 

 

 

 

 

  


요즘 읽고 있는 책이다.
그동안, 어린이책들을 읽기 시작하고부터 조금씩 커져가던 물음의 답을 찾아보기 위해 고른 책인데, 그 안에 위의 '임 길택'이라는 시인의 시가 인용되어 있었다. 아직 읽는 중이기 때문에 책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리뷰로 올리기로 하겠지만, 평론집이라는 것이 이렇게 재미있을 수도 있구나 하면서 읽는다. 

다음은 위의 시를 쓴 임 길택 시인의 말. 시인의 다른 책에 실린 구절인데 역시 위의 책에 인용이 되어 있다. 

나는 내가 쓴 이야기들을 통해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 보겠다는 욕심은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다만 시골에서 살아보지 못한 아이들에게 지금 우리 농촌 어른과 아이들이 무엇을 어떻게 하고 살아가는가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곳곳의 아이들이 조금이나마 넓은 생각을 갖기를 바랬다.
말이 될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쓴 이야기들도 하나의 역사라 여겼다. 나는 역사책에 나오는 큰 사건들도 중요하나 이에 못지않게 그 역사의 뒤안길에서 이름없는 사람들이 가꾸어 나가는 정서 또한 중요한 역사로 대접받아 마땅하다고 여기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아이들이 이 책 속 아이들의 정서를 이해하고, 이 아이들을 이웃으로 받아들이며, 이 아이들과 함께 꾸릴 세상을 꿈꿔 보았으면 했다. (임 길택 <내가 쓴 동화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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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9-20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엇을 가르치기 위해 쓰는 게 아니라는 말씀에 감동 받아요.
"그 역사의 뒤안길에서 이름없는 사람들이 가꾸어 나가는 정서 또한 중요한 역사로 대접받아 마땅하다"는 말씀에도 공감하고요!

hnine 2010-09-20 15:34   좋아요 0 | URL
이 책을 읽으며 우리나라 어린이문학계에 엄연히 존재하는 대립, 갈등 관계에 대해 조금 감이 잡혔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이분 글 참 잘 쓰시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