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
김이설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서 윤영 님에게 


우리 의사와 상관없이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우리의 삶이 어떠할 것이라고 예측이나 할 수 있었을까요? 그저 잘 살아보고 싶었을 밖에요. 남들 사는 만큼 살고 싶었을 밖에요. 하지만 남들 사는 만큼이란 얼마나 밑도 끝도 없는 표현인가요. 남들이 대체 어떻게 살길래요. 나와 남의 차이는 얼만큼이게요. 우리는 남이 어떻게 사는지 모릅니다. 내가 남들만큼 살고 싶은게 아니라 내가 사는 정도로 남들도 비슷하게 살거라 생각해요. 우리는 남들의 삶에 대해 모릅니다. 누리는 삶과 견디는 삶을 세치 혀로 쉽게 말할 게 아니라는 것을 모릅니다.
삶이라는 글자마저 징글징글해보이는 때가 저기 저 웃고 있는 사람의 지금인지 누구도 모릅니다. 삶은 그렇게 때로 징글징글한 것. 그 누군가에겐 출구마저 보이지 않는 고통의 시간의 연속이라는 것.
당신은 질기게 버텨왔어요. 전 감히 흉내도 못 낼 만큼.
당신의 그 파닥거림은 다른 사람들의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위로받을 일이 아니라, 차라리 말없는 절규이고 사는 것이 무엇이라는 외침입니다.
당신을 위해 살아요. 결국 당신 삶에 책임을 질 사람은 이 세상에 당신 한 사람이라는 것 모르나요? 한시름 놓고 씁쓸하나마 웃을 수 있는 날은 당신 외엔 그 누구에 의해서도 오지 않아요. 제발 당신을 위해 살아요. 
환영은 잠시, 가끔 보는 것으로 족해. 그 속에서 너무 오랜 시간 머무르진 말아요. 거기에 아주 잠겨버리지는 말아요.

 

2011년 6월 13일 

당신과 별로 다르지 않은 사람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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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임이네 2011-06-13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으로 팍팍 와 닿네 ....윽
님 잘 지내시죠 ..
오늘 무덥네요 .

hnine 2011-06-14 06:26   좋아요 0 | URL
꽃임이네님, 안녕하셨지요? 꽃임이네님 작품 모델 따님도 잘 크고 있고요? ^^
정말 사는 것이 구차하고 뜻대로 안되고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있겠지만, 책 속에서 그 누구도 그 삶을 포기하지 않아요. 구질구질할 망정 버텨나가고 있는 모습이 오히려 우울을 입에 달고 자신 속으로 빠져드는 누구의 삶보다 더 순수하고 고귀해보이기도 하더군요.

stella.K 2011-06-14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판형이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표지가 마음에 들어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h님 이리 쓰시고, 별을 다섯 개 주신 것보면 기대 이상인 것 같습니다.^^

hnine 2011-06-14 15:39   좋아요 0 | URL
200쪽이 좀 안되는 아담한 책이어요 (전문적인 판형 용어를 몰라요 ㅠㅠ).
표지 그림은 전 좀 마음에 안들었어요.
한번 읽어보세요. 요즘 소설 같지 않은 면이 있어요.

꿈꾸는섬 2011-06-14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이설님 신작이 나왔군요.^^

hnine 2011-06-14 15:41   좋아요 0 | URL
저도 다른 분 서재에서 보고 알았어요. 손에 들어오자 마자 금방 읽었지요. ^^

다락방 2011-06-14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그래도 저도 이 책 출간되면 읽어봐야겠구나 싶었는데 벌써 다 읽으셨군요! 잠깐 줄거리를 읽으면서 박범신의 [비즈니스]를 떠올렸었어요. 신문을 펼치면 아주 작게 구석에 드러나는 삶. 제가 책을 읽고나면 hnine님이 쓰신 이 글이 한층 더 공감되겠죠.

저도 읽어볼게요.

hnine 2011-06-14 15:48   좋아요 0 | URL
이 작가의 소설에 나오는 사람들을 저는 처음엔 동정하면서 안됐다, 정말 소설 속의 이야기구나...이런 생각으로 읽었는데 아니었어요ㅠㅠ 차라리 이들은 치열하게, 생명에 대해 끈질긴 줄을 놓지 않고, 온몸을 파닥거리며 살아내고 있었어요. 오히려 그렇게 정면 대결하지 못하는 삶이 더 나약하고 비겁한 것 아닐까, 누가 누구를 감히 쉽게 동정하려 하는가...이번 작품을 읽으면서는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박 범신의 <비즈니스>는 제목만 들어보고 안 읽어봤는데 이 책 여운이 가시기 전에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저는 오늘 다락방님 서재 갔다가 레몬케잌 보고서 꼭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찜하고 왔답니다. ^^

2011-06-15 07: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15 18: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16 2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17 18: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1-06-17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님 ^^

제가 정말 좋아하는 연주자. 그리고 곡입니다. 더위에 힘 팍팍 보태 드리고 싶네요!!

hnine 2011-06-17 18:58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 감사합니다. 이 곡, 이 연주자, 좋아하시는군요. 어제 밤에 제 아이도 옆에서 듣더니 누구의 어떤 곡이냐고 물어보더군요. 어떤 분이 보내주셨다는 얘기까지 해주고 함께 들었습니다.
 

 

 

근 황 

 

 

2시 30분
세상이 잠자고 있을때
저는 눈이 번쩍 떠집니다
시계를 보기전에 
3시 반은 넘어 있기를 바래봅니다
자리에서 몸을 수직으로 일으켜 세울 때의 느낌을 아시는지요
수영장 안에 있다가 물살을 헤치고 밖으로 나올 때의 느낌
바람을 가르고 내달리기 시작할 때 코끝에 와닿는 느낌
비슷합니다 

 

혼자일때 혼자임을 즐기지 못하고
함께 있을 때 함께를 즐기지 못합니다
어리석음의 출발이 거기서부터라는 것
알면서 여전히
출발도 거기
끝도 거기입니다 

 

머리가 맑지 못할 때
손이 그것을 압니다
손이 꼼지락 거리기 시작하면
저는 그 손으로 무엇이든 해야합니다
머리를 달래는 건
마음이 아닌 저의 두 손
가끔은 두 발입니다 

 

세상은 보라색에서
회색 사이의 어디쯤
동일 색조 범위에 있지만
한 발자욱만 더 가도 덜 가도
다른 세상입니다
그 색조의 범위에서 뛰쳐 나오는 일을
꿈꾸기보다는 피하며 삽니다 

 

근황이라하면
이쯤 해서 마쳐야지요
근황이라 해놓고
너무 깊은 얘기를 하면 안되겠지요 
고백이나 고해성사가 되면 안되겠지요
듣는 당신 마음에 부담이 되어서는 안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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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2 16: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1-06-13 04:24   좋아요 0 | URL
거기는 비가 왔었군요. 여긴 완전 햇빛 쨍쨍한 날이었어요. 아이랑 잠깐 공을 차는데도 금새 땀이 맺혔습니다. 일부러 바람 쐬러 나가지는 못했어요. 그러고 싶었는데 식구들 엉덩이가 무거워서 말이지요. 하루가 아쉽게 가더군요 ㅠㅠ

세실 2011-06-12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무언가 힘든일이 있으신가요?
저도 오늘 새벽 2시에 깨어 있으면서 이런저런 생각 들었습니다.
산다는건 참.....

hnine 2011-06-13 04:28   좋아요 0 | URL
특별히 힘든일이 있다기보다 저는 어떻게 보면 불면증을 달고 산다고 봐야하는데 불면증이라 생각하지 않고 그냥 새벽에 좀 일찍 일어나서 내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다고 생각하며 지내요. 오늘은 3시 반은 넘어서 일어났네요. 밤에는 대신 일찍 누울 때가 많고요. 그러고 보면 불면증이 아니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
과제 하시느라 새벽까지 깨어 있으셨죠? 완결하는 성취감, 이것도 살면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나이 들어갈수록 스스로 그런 계기를 만들지 않으면 없겠더라고요.

섬사이 2011-06-13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에 적으신 '내가 바라는 건 신분상승이 아니야'라는 시도 그렇고,
뭔가 님의 기운을 쭉 바지게 하는 그런 일이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꿈꾸기 보다는 피하며 삽니다'라는 말이 참 아파요.
오늘은 세 시를 넘겨 일어나셨나요...??

hnine 2011-06-13 19:47   좋아요 0 | URL
꿈꾸기 보다는 피하며 산다는 말은, 이제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사는 것이 자연스런 나이가 되어서 그런 것 같아요. 나의 색깔, 나의 세계, 나의 생각, 나의 성격...불만스러운게 더 많았고 고쳐보고 싶었던 시기를 지나 이제 가진 것을 되돌아보자는, 그런 뜻이었어요.
예! 오늘은 세시 반 쯤 일어났습니다. 그 정도만 해도 성공이랍니다 ^^

하늘바람 2011-06-13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hnine 2011-06-13 19:47   좋아요 0 | URL
제가 저 속에 다 들어있어요 ^^

sslmo 2011-06-13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
세시까지 잠 못들고 있는다는 것보다는,
세시에 일어났다, 가...더 건설적으로 들리는 제 심사는 어찌 된거란 말입니까?^^

자리에서 몸을 수직으로 세울 때의 느낌은 알 수 없어요.
매일 아침 일어나는 건 비몽사몽인고로...
다만 고고할 거라는 짐작은 해봅니다~^^

근황이 고백이나 고해성사가 돼도 괜찮아요.
나누면 그만큼 덜어낼 수 있잖아요.

같이 해요, 우리~

hnine 2011-06-13 19:50   좋아요 0 | URL
아이 낳고 키우면서 부터인것 같아요. 그 전까지는 저도 완전 야행성 인간 이었거든요. 아이 재우고 그 옆에서 같이 잠들어 눈 떠 보면 꼭 저 시간이었지요. 이제 아이 옆에서 잠들지 않아도 그 시간에 눈이 떠져요. 안 그럴 때도 있는데 그때는 몸이 어디 아플 때랍니다. 그런데 저는 그 새벽 시간이 싫지 않아요. 싫기는 커녕 너무나 아끼는 시간인데 아무래도 몸이 따라주지 않아서 몽롱하고 어지러울 때가 종종 있어 그게 아쉽지요.
양철댁님, 같이 하자는 말씀에 막 의지하고 싶어집니다...

꿈꾸는섬 2011-06-14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요새 너무 잘 자고 잘 먹고 너무 잘 지내고 있는데......hnine님은 불면증......그래도 행복하게 지내시길^^

hnine 2011-06-14 15:49   좋아요 0 | URL
전 새삼스럽게 불면증이라고 할 것도 없어요. 매일 저의 일상인걸요. 그래서 남들보다 더 빨리, 팍팍 늙고 있어요 ㅠㅠ

2011-06-16 2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17 19: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가 바라는 건 신분상승이 아니야
꼬박꼬박 받아오는 월급
번듯한 벌이가 있는 가장
하루 세끼 따순 밥
자가용이 아닌 버스를 타고
슬리퍼짝을 끌면서
대형마트 구경 가도 누가 뭐래
아이 손에 싸구려 장난감 하나 들려오면서
평생 진창 속에 살진 않을거라는 희망
그 희망이 있다는 것이 희망이지 

내가 바라는 건 신분상승이 아니야 

 

새벽.
책을 읽다가 만난 어느 한 구절에 갖혔다, 머문다.

그리고, 

그래서,

책 속의 문장을 가지고 다시 써본다.
주인 허락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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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2 08: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12 1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꿈꾸는섬 2011-06-14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슴에 와닿는 구절이네요. <환영> 너무 궁금해지네요.^^

hnine 2011-06-14 15:52   좋아요 0 | URL
책에 나오는 몇 줄이 가슴에 계속 남아 있는 거예요. 어디다 이렇게 적어놓고 싶어졌지요.
희망이 있다는 것이 희망. 그런 희망때문에, 산다는 것이 아름답기도 하고 눈물 겹기도 하고...그런 것 같아요.
 
곰스크로 가는 기차 (양장)
프리츠 오르트만 지음, 안병률 옮김, 최규석 그림 / 북인더갭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그는 평생을 꿈꾸던 곰스크에 가지 못한다. 그리고 그렇게 늙어가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포기 내지는 깨달아 간다. 나도 처음엔 주인공의 그 읊조림에 공감하고 동감했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나서도 어느 새 내 머리 속에 책 내용이 다시 들어와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사라졌다 다시 나타났다 하는 사이에 조금씩 다른 생각들의 씨앗이 자리잡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는 곰스크에 갈 수도 있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오로지 그 목적으로 일을 해서 모은 돈으로 마침내 기다리던 곰스크행 기차에 올랐다가 왜 다시 내려야 했을까. 그래야만 했을까? 무거운 안락의자를 기어이 끌어내고 있는 아내를 보며, 아내를 두고 가는 한이 있어도 가고야 말거라는 생각을 포기하고 자기 발로 기차에서 내려오는 대신, 그냥 그대로 곰스크를 향해 갈 수도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선택의 순간에 기차에서 내려오는 쪽을 택하겠지만 이 세상에는 그냥 기차에 탄채 자기가 가고 싶던 곳으로 향하는 사람도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친 것이다. 물론 극소수이긴 하지만 말이다. 어쩌면 이 세상은 기차에서 내리고 마는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보다, 그대로 그들만의 곰스크 행을 감행하는 사람들에 의해 움직이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거기까지 뻗어가고, 나는 슬퍼지기 시작했다. 이 생각을 더 가지치기 못한 상태에서 다음 글들을 읽어보지만 곰스크만한 영향력을 받지 못한다. 그다지 마음에 크게 들어오지 않는다. <배는 북서쪽으로> 같은 글만 해도 주제가 너무 뻔히 드러나지 않는가. 목적지와 방향키의 불확실성 속에 움직이는 배를 타고 가야하는 우리의 삶. 뛰어내릴 수도 없고,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따져 물을 마땅한 상대도 없는 이 오리무중의 삶.  

읽으면서 얼마전에 읽었던 샐린저의 <아홉 가지 이야기>가 연상되었던 것은 단순히 단편 모음이라는 책의 구성 방식 때문은 아닐 것이다. 인생을 보는 관점이 어딘지 모르게 비슷해 보였다고 할까. 약간 방관적인 입장, 중심에서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인생이라기 보다 주변에서 관조하는 입장. 하지만 오르트만은 그런 점에 있어서 샐린저보다 고단수는 아닌 것 같다는 내 멋대로의 생각. 

제목의 독일어 전치사 nach (Reise nach Gomsk) 를 보니, 그 옛날, 고등학교 2학년 독일어 시간에 nach와 zu가 얼핏 생각하기엔 비슷한 뜻 같지만 얼마나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설명해주시던 독일어 선생님도 생각난다. 지금은 이미 고인이 되신. 

곰스크.
언젠가 꼭 가고 말리라는 그 곰스크 행을 목적으로, 또는 못 이룬 꿈을 위로받을 안락의자를 목적으로 오늘도 열심히 살고 있는 이 땅의 많은 사람들에게 축복이 있으라. 그 속에 질펀히 섞이지 못하고 온갖 복잡한 시선으로 구경만 하고 있는 나 자신은 차라리 계속 그렇게 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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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과 소설의 차이는 무엇일까.
염두에 두고 쓰는 대상의 차이만 알고 있었는데 자꾸 읽다보니 대상 연령 외에 다른 차이도 분명히 있는 것 같아 문학을 공부한 사람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그 사람 말에 의하면 뚜렷한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린이 책을 쓸때는 어느 정도 가르침, 즉 교훈이 들어가게 써야한다고 수업 시간에 배웠다고 했다. 끄덕끄덕 했는데, 국내 작가의 어린이책과 외국 작가의 어린이책들을 읽다 보면 확실히 우리 나라 어린이책들은 그 가르침이라는 것이 너무 드러난다. 재미를 앞서는 경우도 많다. 조금 읽어나가다 보면 그만 읽어도 어떻게 끝날지, 무엇을 가르치려고 하는 것인지 어른의 입장에서는 다 보여서 흥미가 떨어지기도 한다. 반면 우리 나라에서 인기있는 외국 작가들의 책을 보면 어른인 내가 봐도 그 결말이 금방 눈에 보이지 않는다. 가르침도 있지만 일단 재미가 있다.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지 알겠지만 그래도 현재까지 나의 생각은 그렇다. 말로 가르칠 때에도 그것이 너무 앞서서 드러나면 효과가 떨어지는 법인데 하물며 재미있자고 읽는 책에서야 말할 것도 없다. 책은 일단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결말이 너무 쉽게 짐작이 되면 안된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요며칠 읽은 어린이 책들에서도 그런 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최 나미 <바람이 울다 잠든 숲>

엄마를 병으로 여의고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밑에서 지내는 주하. 외할머니는 잔소리꾼, 외할아버지는 무뚝뚝하기 이를데 없어 차라리 아빠 계신 서울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외할아버지와 끝내 감정적인 벽을 허물지 못하고 외할아버지댁을 떠나는데, 나중에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 마음을 헤아리게 된다는 내용인데 너무나 평범하게 읽히는 내용이라 아쉬웠던 책이다.

 

 

 

 

 
수지 모건스턴 <박물관은 지겨워> 

아이들을 데리고 박물관, 미술관에 가본 부모들은 한번이라도 이런 생각을 해봤을까? 살아움직이는 것들에 더 관심이 많은 아이들, 그리고 아이들의 의사는 안중에도 없이 꾸역꾸역 박물관으로 데리고 가며 흐뭇해하는 부모. 아이들의 심리를 어찌 이렇게 잘 써 놓았는지. 수백년 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그대로 있고 앞으로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그런 구닥다리 물건들은 관심 없다면서 이번엔 아이가 부모를 자기만의 박물관으로 안내한다. 대체 어떤 박물관일까? 

 

 

 


수지 모건스턴 <공주는 등이 가려워> 

수지 모건스턴의 작품에는 공주가 자주 등장한다. 어린이책은 아니지만 <딸에게 주는 편지>를 쓴 것을 봐도 작가는 아마 같은 여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으로 생각된다.
공주가 결혼할 상대를 찾는데 조건은 단 하나. 자기의 등이 가려울 때 긁어줄 사람이면 된다. 말을 돌려서 한것도 아니고 그대로 등 좀 긁어달라고 하는데 그것을 해주는 남자가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다른 조건들은 훌륭하면서.
결혼할 상대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읽는 어른들은 뭔가 깨닫는 것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수지 모건스턴 <사인 받기 대소동> 

자기만의 소중한 것을 가져오기를 숙제로 내주자 아이들이 집에서 가져오는 것들은 정말 가지각색이다. 한 아이가 유명한 첼리스트 로스트로비치의 사인이 있는 종이를 가져와서 천재의 손길의 흔적이라고 자랑하자 반 아이들은 너도 나도 유명인의 사인이라며 진품인지 의심되는 사인이 끄적거려있는 종이를 들고 오고, 담임 선생님은 아예 자기가 좋아하는 유명인의 사인 받아오기를 숙제로 내준다.
수지 모건스턴의 다른 책 <엉뚱이 소피의 못말리는 패션>에 나오는 소피 같은 아이가 여기에도 등장. 이 아이가 가져오는 것은 누구의 사인일까? 역시 재미도 있으면서 결국엔 끄덕끄덕하게 만드는 책. 




플로랑스 세이보스 <파스칼의 실수> 

어느 날 학교에 지각하게 된 파스칼은 지각의 이유를 묻는 선생님에게 자기도 모르게 엄마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라고 한다. 얼떨결에 나온 거짓말 때문에 또다른 거짓말을 하게 되고. 그것 때문에 걱정하느라 정말 엄마가 돌아가셔서 시무룩한 아이처럼 되어가고.
혼자 끙끙 앓는 아이의 심리가 잘 나타나 있다.
아이들의 실수를 어른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해나가는지, 내가 이 책에서 배운 것은 그것이었다. 

 

 

아이를 위해 비룡소의 난 책읽기가 좋아 시리즈를 대여해주고, 나도 틈틈이 읽는 재미가 좋다. 한권 읽는데 10분 정도 걸릴려나?
오늘 아이 데리고 어딜 가는데 버스에서 읽는다고 이 책 몇권을 집어들다가 아이가 그런다.
"버스에서 사람들이 보면 다 큰 애가 저렇게 어린 아이들 보는 책을 읽고 있다고 할지 모르겠어요."
하긴 글자가 큼직큼직 하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람?
"내가 읽고 싶으면 읽는거지, 아이들 책, 어른 책이 어디있어?"
버스에서 아이와 나는 나란히 앉아 큼직큼직한 글씨의 책을 읽으며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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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1-06-10 0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재미가 있어야한다,에 동의해요.
그런 점으론 수지 모건스턴은 보증수표 같아요.^^
나인님, 흐린아침이지만 좋은 하루 보내요~~~

hnine 2011-06-11 05:06   좋아요 0 | URL
특히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책은 재미라는 요소를 못한다고 봐요.
말씀처럼 수지 모건스턴은 작품 수도 많으면서 모두 어느 정도 이상은 한다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지요.
어제는 정말 하루 종일 흐렸는데 비는 안오더군요. 오늘도 여기 저기 다닐데가 많은데 (아이 데리고) 비는 오지 않았으면 하고 바래봅니다. 특히 축구를 해야하는 오전에는요 ^^

파란놀 2011-06-12 0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가 있어야 하기보다는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울 수 있어야 한다고 느껴요.
재미는 있으면서 아름답지 않거나 사랑스럽지 않다면
아이한테는 조금도 밥이 못 되는 책이라고 느껴요.
어른책도 매한가지이고요...

hnine 2011-06-12 11:59   좋아요 0 | URL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이야기, 저는 그것도 글을 읽는 재미에 포함시켜 생각하거든요. '흥미'와 재미가 조금 다르달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