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책과 소설의 차이는 무엇일까.
염두에 두고 쓰는 대상의 차이만 알고 있었는데 자꾸 읽다보니 대상 연령 외에 다른 차이도 분명히 있는 것 같아 문학을 공부한 사람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그 사람 말에 의하면 뚜렷한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린이 책을 쓸때는 어느 정도 가르침, 즉 교훈이 들어가게 써야한다고 수업 시간에 배웠다고 했다. 끄덕끄덕 했는데, 국내 작가의 어린이책과 외국 작가의 어린이책들을 읽다 보면 확실히 우리 나라 어린이책들은 그 가르침이라는 것이 너무 드러난다. 재미를 앞서는 경우도 많다. 조금 읽어나가다 보면 그만 읽어도 어떻게 끝날지, 무엇을 가르치려고 하는 것인지 어른의 입장에서는 다 보여서 흥미가 떨어지기도 한다. 반면 우리 나라에서 인기있는 외국 작가들의 책을 보면 어른인 내가 봐도 그 결말이 금방 눈에 보이지 않는다. 가르침도 있지만 일단 재미가 있다.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지 알겠지만 그래도 현재까지 나의 생각은 그렇다. 말로 가르칠 때에도 그것이 너무 앞서서 드러나면 효과가 떨어지는 법인데 하물며 재미있자고 읽는 책에서야 말할 것도 없다. 책은 일단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결말이 너무 쉽게 짐작이 되면 안된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요며칠 읽은 어린이 책들에서도 그런 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최 나미 <바람이 울다 잠든 숲>

엄마를 병으로 여의고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밑에서 지내는 주하. 외할머니는 잔소리꾼, 외할아버지는 무뚝뚝하기 이를데 없어 차라리 아빠 계신 서울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외할아버지와 끝내 감정적인 벽을 허물지 못하고 외할아버지댁을 떠나는데, 나중에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 마음을 헤아리게 된다는 내용인데 너무나 평범하게 읽히는 내용이라 아쉬웠던 책이다.

 

 

 

 

 
수지 모건스턴 <박물관은 지겨워> 

아이들을 데리고 박물관, 미술관에 가본 부모들은 한번이라도 이런 생각을 해봤을까? 살아움직이는 것들에 더 관심이 많은 아이들, 그리고 아이들의 의사는 안중에도 없이 꾸역꾸역 박물관으로 데리고 가며 흐뭇해하는 부모. 아이들의 심리를 어찌 이렇게 잘 써 놓았는지. 수백년 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그대로 있고 앞으로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그런 구닥다리 물건들은 관심 없다면서 이번엔 아이가 부모를 자기만의 박물관으로 안내한다. 대체 어떤 박물관일까? 

 

 

 


수지 모건스턴 <공주는 등이 가려워> 

수지 모건스턴의 작품에는 공주가 자주 등장한다. 어린이책은 아니지만 <딸에게 주는 편지>를 쓴 것을 봐도 작가는 아마 같은 여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으로 생각된다.
공주가 결혼할 상대를 찾는데 조건은 단 하나. 자기의 등이 가려울 때 긁어줄 사람이면 된다. 말을 돌려서 한것도 아니고 그대로 등 좀 긁어달라고 하는데 그것을 해주는 남자가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다른 조건들은 훌륭하면서.
결혼할 상대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읽는 어른들은 뭔가 깨닫는 것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수지 모건스턴 <사인 받기 대소동> 

자기만의 소중한 것을 가져오기를 숙제로 내주자 아이들이 집에서 가져오는 것들은 정말 가지각색이다. 한 아이가 유명한 첼리스트 로스트로비치의 사인이 있는 종이를 가져와서 천재의 손길의 흔적이라고 자랑하자 반 아이들은 너도 나도 유명인의 사인이라며 진품인지 의심되는 사인이 끄적거려있는 종이를 들고 오고, 담임 선생님은 아예 자기가 좋아하는 유명인의 사인 받아오기를 숙제로 내준다.
수지 모건스턴의 다른 책 <엉뚱이 소피의 못말리는 패션>에 나오는 소피 같은 아이가 여기에도 등장. 이 아이가 가져오는 것은 누구의 사인일까? 역시 재미도 있으면서 결국엔 끄덕끄덕하게 만드는 책. 




플로랑스 세이보스 <파스칼의 실수> 

어느 날 학교에 지각하게 된 파스칼은 지각의 이유를 묻는 선생님에게 자기도 모르게 엄마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라고 한다. 얼떨결에 나온 거짓말 때문에 또다른 거짓말을 하게 되고. 그것 때문에 걱정하느라 정말 엄마가 돌아가셔서 시무룩한 아이처럼 되어가고.
혼자 끙끙 앓는 아이의 심리가 잘 나타나 있다.
아이들의 실수를 어른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해나가는지, 내가 이 책에서 배운 것은 그것이었다. 

 

 

아이를 위해 비룡소의 난 책읽기가 좋아 시리즈를 대여해주고, 나도 틈틈이 읽는 재미가 좋다. 한권 읽는데 10분 정도 걸릴려나?
오늘 아이 데리고 어딜 가는데 버스에서 읽는다고 이 책 몇권을 집어들다가 아이가 그런다.
"버스에서 사람들이 보면 다 큰 애가 저렇게 어린 아이들 보는 책을 읽고 있다고 할지 모르겠어요."
하긴 글자가 큼직큼직 하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람?
"내가 읽고 싶으면 읽는거지, 아이들 책, 어른 책이 어디있어?"
버스에서 아이와 나는 나란히 앉아 큼직큼직한 글씨의 책을 읽으며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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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1-06-10 0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재미가 있어야한다,에 동의해요.
그런 점으론 수지 모건스턴은 보증수표 같아요.^^
나인님, 흐린아침이지만 좋은 하루 보내요~~~

hnine 2011-06-11 05:06   좋아요 0 | URL
특히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책은 재미라는 요소를 못한다고 봐요.
말씀처럼 수지 모건스턴은 작품 수도 많으면서 모두 어느 정도 이상은 한다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지요.
어제는 정말 하루 종일 흐렸는데 비는 안오더군요. 오늘도 여기 저기 다닐데가 많은데 (아이 데리고) 비는 오지 않았으면 하고 바래봅니다. 특히 축구를 해야하는 오전에는요 ^^

숲노래 2011-06-12 0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가 있어야 하기보다는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울 수 있어야 한다고 느껴요.
재미는 있으면서 아름답지 않거나 사랑스럽지 않다면
아이한테는 조금도 밥이 못 되는 책이라고 느껴요.
어른책도 매한가지이고요...

hnine 2011-06-12 11:59   좋아요 0 | URL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이야기, 저는 그것도 글을 읽는 재미에 포함시켜 생각하거든요. '흥미'와 재미가 조금 다르달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