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미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북쪽 바다에 사는 커다란 물고기, 그 크기는 몇 천리나 되는지 알 수 없는데 그 이름을 곤이라고 한다. (...) 이 물고기는 남쪽 바다로 가기 위해 변신하여 새가 되는데 그 이름을 붕이라고 한다. 그의 등은 태산과도 같이 넓고 날개는 하늘을 가득 메운 구름과 같으며 한번 박차고 날아오르면 구만리를 날아간다 ('장자' 중에서)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국어 사전을 읽는 것으로 시작한다는 작가가 있다. 많이는 못 읽고 기껏해야 스무 쪽 내외라고. 이 책의 저자인 구병모 작가이다.
그걸 기억하고 있어서인가. 그녀의 문체가 얼마나 개성이 강한지 다시 보게 되고 그녀가 사용하는 어휘들이 컴퓨터 화면에서 (전자책을 구입했으므로) 톡톡 튀어나오는 것 같은 느낌을 여러 번 받는다.
생활고라고만 표현하면 드러나지 않는 극한의 상황을 견디다 못해, 그야말로 매일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목숨을 붙이고 있는 어린 아들을 더 보다 못해 "편하게 해줄께" 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함께 물에 투신하는 남자. 그 아이를 구조해낸 노인, 그리고 그 노인이 데리고 살고 있던 외손자 강하. 그 아이는 '곤'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고 세사람은 이렇게 한 가족의 형태로 살기 시작한다. 정작 이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는 화자 역할을 하는 사람은 역시 투신했다가 곤에 의해 구조된 양해류라는 여자이고, 강하의 엄마 이령의 등장은 이야기의 흐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과거에 강하의 엄마 이령은 일곱 살 난 강하 손에 짐가방을 들린채 버스에 태워 물건 부치듯이 자기 아버지에게 보내버렸고, 자기의 그런 배경을 아는 강하에게 이 세상 모든 것은 불만의 대상일 뿐이다. 어느 날 갑자기 물에 빠진 어린 아이를 할아버지가 건져와 함께 지내게 되자 그 아이'곤'을 대상으로 자기의 온갖 불만과 컴플렉스를 해소하는데, 정말 못되고 잔인한 방식의 해꼬지도 많이 하고 '곤'은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지만 당하는 곤만큼이나 가여운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네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보통 인간의 모습과는 다른, 수중 생활에 적합한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곤은 이래 저래 외부 출입을 되도록 삼가고 집안에서만 지내기 때문에 그에게 이 세상은 할아버지와 강하, 그리고 그들과 함께 사는 집이 전부이다. 자기 생각을 표현할 기회도 없고 들어주는 사람도 없거니와 받는 것은 강하로부터의 폭력과 구박이 전부인 나날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강하의 엄마 이령으로부터 들은 "너 참 예쁘다." 라는 말은 곤의 세상을 다른 세상으로 바꿔놓게 된다.

곤은 한마리의 생선이 되어 도마 위에서 토막 나지 않도록, 자신의 살과 내장에서 간유를 짜내고 그 찌꺼기가 어박과 어분으로 분리되어 어느 짐승의 입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어딜 가든 감추는데 급급해온 자신의 몸이 누구도 들려준 적 없던 그 말 한마디로 구원받은 것만 같았다

 이미 약물 중독이 심각한 수준에 달했던 이령을 구해보려던 곤의 시도는 결국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부르게 되고, 강하의 지시에 따라 집을 떠나가게 되는데, 그 상황에서 곤이 할 수 있는 것이란 저항도 반항도 아닌 겨우 이런 말이었다.

"사정이 나아지면 다시 와도 돼?"
강하는 얼굴을 딴데로 돌린 채로 손을 펄럭였다.
"다시는 오지 마."
곤의 발소리가 완전히 멀어지고 나서야 강하는 이녕 앞에 다가가 마주 앉았다. (...)
"아, 나 진짜 ...... 도대체 왜 그랬어 이 여자야......"

작가가 사용하는 언어의 무기는 섬뜩하게 날이 서있고 처절하지만 그 무기로 막상 그녀가 지어낸 것은 사람의 마음을 얼려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흐물흐물 녹아내리게 한다.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서 이 영애의 연기가 그러했듯이 싸늘한 표정 속에 감춰져 있는 깊고 깊은 물길 속 같은 사람의 마음이랄까.

그녀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위저드 베이커리'가 나온 것이 2009년이었다. 2년만에 내놓은 작품이니 다작의 작가는 아닐지 모르지만 이 정도의 작품이라면 다작이 아니어도 좋으리라. 한줄 한줄, 작가의 범상치 않은 필력과 독창성이 번뜩이는 수작(秀作)이라고 평하고 싶다. 하나 더, 이 책을 읽다 보면 그녀가 어휘 선택에 매우 신중하다는 것, 숨어 있는 우리 말을 찾아 쓰려고 노력한다는 것이 여기 저기서 보인다. 나도 모르게 읽으며 메모하게 되었다.
앞으로 나올 작품을 기대하게 하는 작가, 다음 작품에 대해 조마조마하지 않아도 될 작가라고 내 마음 속 카테고리에 넣어두기로 한다. 

(해설을 쓰신 최정우님은 알라디너이신 그분?) 

 


댓글(18)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11-07-22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괜찮나요? 하긴 다들 괜찮다고 그러긴 하는데
전 아직 마음이 동하지는 않네요.
근데 괄호안의 그분은 닉넴이 어떻게 되시길래...?

hnine 2011-07-22 22:26   좋아요 0 | URL
위저드 베이커리도 그랬지만 이 책도 호, 불호가 갈릴만해요. 현실과 환타지가 접목된 플롯, 작가의 노련한 문체 등, 저는 좋았는데 stella님은 어떠실지 모르겠네요.

(람혼님이요~ ^^)

람혼 2011-07-23 02:15   좋아요 0 | URL
네, 제가 쓴 해설 맞습니다.^^

hnine 2011-07-23 09:59   좋아요 0 | URL
와, 맞군요! 해설 부분, 다시 읽어보러 갑니다~
아 참, 안녕하세요? (꾸벅)

람혼 2011-07-24 14:06   좋아요 0 | URL
네, 안녕하세요! 너무 반갑습니다.^^

마녀고양이 2011-07-22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번에 곡우님이 이 책 괜찮다고 리뷰의 댓글에 달아주셨는데
결국 아직도 못 읽었네요. 솔직하게 위저드 베이커리도 사놓고 못 읽고.
그런데 인용구가 너무 맑은데요... 확 끌리네요.

hnine 2011-07-22 22:28   좋아요 0 | URL
음...일단 내용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아무나 흉내내지 못할 세계를 확실하게 확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할까요? 전 이런 작품들을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좀 있는 것 같아요.
이 책, 한마디로 독특합니다!

가슴뭉클 2011-07-22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가끔 트윗멘션을 읽으면.. 굉장히 생각많고 예민하단 느낌이 들어요. 좀 어둡기도 하구요. hnine님 말씀대로 뭔가 묘하고 독특하단 생각이 들더군여.

hnine 2011-07-23 00:15   좋아요 0 | URL
제가 생각하는 작가 이미지 그대로군요. 생각 많고 예민하고 어두운 면도 있고요. 한가지 더 있다면 빈틈없어 보인다는 것? 작품으로 작가의 성향을 짐작해보는 것, 이거 좋은 취미인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

2011-07-23 0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23 1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sslmo 2011-07-23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위저드 베이커리 때 톡톡히 예방주사를 맞아서 그런지...그렇게 까지는 아니었어도 별 다섯개가 아깝지 않은 수작임에는 틀림없더군요~^^

근데, 컴퓨터 화면으로 읽게되는 책 어때요?
전 전자책은 아직이거든요~

hnine 2011-07-23 14:34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도 이 책 읽으셨군요. 위저드 베이커리 읽으며 독특하고 어둡고 서늘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일단 독특하면 저는 오래 기억에 남더라고요. 현실과 환상을 이렇게 미끈하게 접목시키기 까지 작가의 노력과 시간과 땀이 존경스럽기도 하고요.
저는 스마트 폰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빨리 읽고 싶어서 전자책을 구입해서 책상에 앉아 노트북으로, 보통 책 읽는 것 처럼 똑같은 자세로 읽었어요. 더 빨리 읽게 되고요, 음... 컴퓨터 화면 자체가 환하니까 따로 방에 불 끄고 읽어도 되어서 좋고요. 아직 밑줄 치고 접어 놓고, 그런 기능들에 익숙하지 않은 것이 흠이라면 흠이더군요.

세실 2011-07-23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저드 베이커리의 그 작가이군요.
곤. 강하, 이령...이름들이 참 예뻐요.
산다는 건 참.....문득 사람은 어디까지 참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hnine 2011-07-23 14:40   좋아요 0 | URL
이름도 무지 신경써서 지었대요. 읽다보면 어느 하나 대충 했을 것 같지 않은, 작가의 그런 성향이 막 느껴져요.
목숨이 참 모질다는 말을 예전에 어른들이 하셨잖아요. 그게 무슨 뜻인지 잘 몰랐어요. 극한 상황이 되었을 때 적어도 어린 아기들에게서는 초능력적인 힘이 발휘되어 상황을 견딜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작가가 했다더군요.
물에 잠겨가는 방에서 혼자 눈만 말똥거리며 말도 못하는 아기가 아빠를 기다리는 상황, 아내가 집을 나간 후 분유 담긴 젖병을 다섯개 아기 머리 맡에 놓아두고 밖에서 방문을 잠그고 출근하는 아빠...여기서 그 아기가 바로 주인공인 '곤'이라는 아이여요. 에공...마음이 아픕니다.

순오기 2011-07-25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저드 베이커리는 봤는데 '아가미'는 읽을 생각 못했어요~~~~
이 리뷰를 읽으니 건너뛰면 안 될 거 같아요.^^

hnine 2011-07-25 22:06   좋아요 0 | URL
위저드 베이커리만큼 독특하고 상징이 있는 책이고요, 아가미가 생겨난다는 발상을 어찌 할 수 있었는지 감탄하게 되어요.

청학 2011-08-12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정말 문장 하나 하나가 가슴을 아릿하게 만들더군요. 님의 댓글이 한번 더 가슴 속
샘물 방울을 자극합니다.
 

민들레 꽃 

 

                                                 박 소명 

 

귀퉁이에
납작 엎드려 있다고? 


꽃밭 맨앞자리의 채송화 
안 부러워  


햇빛 좋은 담장 앞 맨드라미
안 부러워


골목길 내려다보는 키 큰 해바라기도
안 부러워 


왜냐고?


훨훨 날아갈 생각이거든 


달나라까지  

 

(한국아동문학인협회 우수동시 선정, 2011. 6)


아무나 시인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해오고 있지만
동시를 쓰는 시인에 대해서는 특히 더 그런 생각이 든다.
어떻게 어른이 되어서도 이런 시각을 지닐 수 있는 것인지.
난 어릴 때 조차 이렇게 어린이 특유의 낙천적이고 당당하고 희망적인 마음을 가져본 적이 없었던것 같은데 말이다.

내가 동화랍시고 끄적거린 것을 읽어본 사람들로부터
이건 소설이지 동화가 아니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그게 무슨 뜻의 말인지 몰랐었다.  
그러다
가 최근에 와서 알게 되었다.
동화란 단지 어린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내용도, 문체도, 어휘도,
동화를 위한 것들은 다 따로 있다는 것을.
그래서
그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따로 있다는 생각도 든다.
요즘 알게 된 제일 중요한 사실이라면 그것이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2011-07-21 1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1-07-21 17:07   좋아요 0 | URL
그렇게 봐주시니 감사드려요. 돈벌이로 동화작가를 생각한다는 사람이 저는 더 신기하네요 ^^

하늘바람 2011-07-21 16:55   좋아요 0 | URL
동화가 소설 담으로 돈이 되어서 사실 돈이 될 때는 엄청 되거든요. 그래서 돈벌이로 생각하는 사람 무지 많아요

sslmo 2011-07-21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작년에 올려주신 님의 그 동화, 참 좋았어요.
따라 읽는 재미가 쏠쏠했었어요.

비록 혼자 끝내버리셔서 그렇지~^^

hnine 2011-07-21 16:41   좋아요 0 | URL
나름대로는 결말을 짓긴 지었는데 여기는 결말 부분은 안 올렸나보네요?
제가 그때 참 얼굴이 두꺼웠습니다 ㅋㅋ 그걸 갑자기 깨달았던 모양이어요.
아무튼 재미있게 읽어주셨다니 감사드려요. 누가 그렇게 관심을 가지고 읽어주시겠어요 ㅠㅠ

파란놀 2011-07-22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으로 더 차근차근 삭여서 아름답게 나눌 동화 하나 나누어 주셔요~

hnine 2011-07-22 17:59   좋아요 0 | URL
예, 그래야지요. 다른 사람들의 땀과 시간과 노력은 안보고 그들이 이룬 것만 보아서는 안되니까요.
격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비로그인 2011-08-06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호호 아줌마 2012-06-22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시를 써봤는데 비교가 안되네요
정말 잘 쓰셨어요.
 

내가 학교 다닐 때와 달리 요즘은 대학에서 가르치는 사람도 학생으로부터 평가를 받는다. 이른바 강의 평가라는 것이다. 전공 과목인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교양 과목으로 강의를 한 경우에 있어서는 늘 강의가 너무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나름대로 깊이보다는 '흥미' 위주로 강의를 하려고 노력함에도 노력 부족인지. 거기다가 내가 알아서 들은게 그렇다는 것이지 학생들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기가 꺼려질 정도로 막된 표현들도 많다. 솔직히 상처를 받는다. 상처는 상처고 아무튼 학생들의 의견이 그러하니 나는 고민에 빠진다. 어떻게 하면 더 이해하기 쉽게 강의를 할 수 있을까. 쉬운 예를 많이 들어야 하는데.
그런데 또 아이러니한 것은 고등학교 때 배운 것에서 더 배운 것이 없다, 수준이 너무 낮다는 의견들도 꼭 올라온다는 것이다. 이래 저래 학기 끝나고 강의 평가 내역을 보고 나면 여기 저기 퍼렇게 멍이 드는 기분이다. 그 멍이 풀리려면 시간이 좀 걸린다. 

이런 와중에 또 나는 이번엔 대학생이 아닌 초등학생 정도 아이들에게 과학을 실험으로 체험할 수 있게 가르치는 사람을 양성하는 코스를 신청해서 지난 한 달 동안 듣게 되었다. 교육이 끝난 마지막 시간에 한사람씩 각자의 지도안을 작성해서 발표했는데, 강의 개요에 많은 사람들이 '과학이 어려운게 아니라 쉽다는 것을 어린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라는 말을 하더라. 그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과연 과학이 쉬운가?

과학의 한 분야를 전공하고 있다는 나는 지금까지 한번도 과학이 쉽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하면 할수록 어려워서 과학이란 분야에 아무리 흥미가 있고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다 할지라도 이런 줄 알았더라면 전공으로까지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말이다. 
실험으로 직접 보여줄 때 이해가 더 잘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모르는 상태에서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과학 뿐 아니라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실험이 충분하지 않은 교육 환경 탓을 많이 한다. 실험이 충분한 교육 환경이란 어느 정도의 환경이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보다는 오히려 어릴 때부터 자연을 가까이 하고 거기서 일어나는 변화를 직접 보고 자라는 것, 그 변화는 왜, 어떻게 생기는 것인지 스스로 의문을 품어보고 왜 그럴까 생각해보는 기회가 만들어질 수 있는 생활 환경. 과학을 공부해보고자 하는 동기는 그런 자연에 대한 경외심, 호기심, 파헤쳐 보고 싶은 탐구심에서 생겨나는 것이지 과학이 쉽다는 생각때문은 아닐 것이라고 말하면 그야말로 내가 시대착오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가. 

대학 때 다른 학교에 다니던 친구가 자기 교수님으로부터 들었다며 내게 해준 말을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DNA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있다면 다섯 살 짜리 아이에게도 설명해서 이해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과학이란 무엇인가, 과학을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생각할 때 들춰보는 책이다. 과학에 대한 경외심을 잃지 않는 동시에 이 세상이 과학만으로 이루어지진 않았다는 것도 인식하고 있는 노과학자의 자기 성찰적인 글들로 꽉 차 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slmo 2011-07-19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과학이 어려운 건,
시 같은, 인생 같은 학문이지만...시나 인생은 아니여서 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과목이 다 어려운데, 수학이나 과학이 상대적으로 더 어렵게 느껴지는 건 독해의 문제라는 생각도 같이요.
어려운 얘기도 재밌게 풀어내면 좀 쉬워지기도 하니까 말이죠.^^

hnine 2011-07-20 04:06   좋아요 0 | URL
제가 머리가 굳었나봐요. 양철나무꾼님 댓글도 어려워 금방 접수가 안되고 있어요 ㅠㅠ

sslmo 2011-07-21 14:34   좋아요 0 | URL
제 생각이 또 이리저리 널을 뛰었군요~
님의 머리를 탓할 게 아니라, 저를 반성해야 할 듯~ㅠ.ㅠ

hnine 2011-07-21 16:49   좋아요 0 | URL
아니에요, 양철나무꾼님. 제 머리가 이제 풀렸나봐요. 어제 여러번 읽고 오늘도 몇번 읽어보니 무슨 뜻으로 말씀하셨는지 이해가 될 것 같아요. 조금 기다렸다가 댓글 쓸걸 ㅠㅠ
 
작가 - 작가가 되는 길, 작가로 사는 길
박상우 지음 / 시작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리뷰를 오늘까지 미룬 것은 좀 더 생각하고 좀 더 잘 정리해서 써보고 싶었기 때문이지 하필 오늘, 이런 기분인 날이 될 때를 기다려서 그런 것은 결코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책 읽는 것을 좋아함에는 변함이 없지만 학교 다닐 때 한번도 장래 희망으로 작가를 생각했던 적은 없었다. 오히려 나이를 먹을만큼 먹은 최근에 와서 작가란 사람들을 선망의 눈으로 보게 되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아마도 창작 활동이라는 것에 대한 새로운 매력을 느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내가 직업으로 해오고 있던 일에 대한 반항일 수도 있겠다.

작가가 되기를 꿈꾸던 사람이 작가가 되는 건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작가가 된다는 것작가로 평생을 사는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작가라는 직함만 붙이고 산다고 해서 작가의 인생이 조성되는 것도 아니다.
보통사람과 마찬가지로 작가는 죽는 날까지 완성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평생 결핍감에 시달리며 자신을 보완하려는 열정을 잃지 말아야 한다. (103,104쪽)

 평생 결핍감에 시달리며 사는 길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어야 한다. 또한 작가가 된다는 것이 곧 작가로 사는 일을 뜻하진 않는다.
그럼 어떤 사람들이 작가가 되는 것일까?

사람으로 태어나 세상을 산다는 건 자기 방식의 인생을 배우고 터득하는 과정이다. 각자 다른 인생과 개성이 생겨나는 과정이지만 뒤집어 말하면 보편성을 상실하는 과정이기도 하다....그처럼 인간의 삶은 굴곡을 만들고 그것은 정신에 주름을 남긴다. 소설을 쓰는 기초 단계는 결국 나의 주름진 정신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것을 이해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자신을 극복하는 초기단계를 넘어서지 못하면 소설을 쓰기 어려워진다. (178쪽)

 글을 쓰게 하는 내적 동기가 무엇이었든, 어떤 치유되지 않은 한이 나의 손을 움직이게 했든, 그안에 갇혀서, 그것을 넘어서는데 성공하지 못하면 소설가가 될 수 없다는 말이다.
작가란, 그리고 작가로서의 삶이란 한마디로 말하기 어려운, 참으로 다양하고도 복잡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떤 한가지에 얽매여서도 안되고, 천개의 눈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 같으면서도 어느 순간엔 그 천개의 눈을 하나로 통일시킬 수 있는 집중력도 필요한 삶. 구도자와 같은 자세로 평생을 정진해야 함은 비단 작가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구도자와 같은 자세란 말 속에는 어떤 한가지 일의 무한반복 과정이 내포되어 있고, 그 말은 목표를 향하여 정진하는 방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여기 올려두진 않겠지만 이 책에는 소설가로 서기 위해 습작을 위한 여러 가지 팁, 그리고 소설 작법에 대한 혼동하기 쉬운 사항에 대한 친절한 설명 등이 들어있는데 최근 신춘문예 당선작들을 예로 들어주고 있다. 가령 플롯과 줄거리는 어떻게 다른가, 서사와 묘사의 뜻, 서사가 쓰여야 할 곳, 묘사가 쓰여야 할 곳, 문학과 학문의 차이, 단편과 장편은 길이 외에 어떤 점이 달라야 하는가 등.

소위 화려한 등단이라는 것을 한 이후 주목받는 작가로서 순조로운 여정을 시작했으나 10년 동안의 침잠의 세월을 보내야했던 그의 목소리는 줄곧 진지하고 자기 성찰적 이다. 그래서 책을 읽는 사람도 진지하다 못해 때로 경건한 마음까지 들게 했다.
우연히 어떤 분이 같은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꼭 읽어보라고 강력 추천하시기에 읽어보게 된 책이다. 2009년에 초판이 나왔는데 품절 상태여서 재판 요구 신청 해놓고 몇달을 기다려 구입할 수 있었다. 다 읽고서 권해준 그 분께 짧은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감사하다고.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실린 어느 신춘문예 당선자의 당선 소감은 소설이 아니더라도 자기의 길을 선택하여 걷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감이 될 듯하여 옮겨놓고 나 역시 나의 선택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려한다. 그 선택을 위해 지불해야할 비용에 대하여, 그럴 때 나의 마음가짐에 대하여.

선택은 선택하지 않는 것들을 비용으로 지불한다고 했다.
소설을 위해 포기했던 많은 것들은 때때로 내게 감당하기 힘든 대가를 요구했다. 춥고 어두운 터널을, 그 끝 어딘가에 있을 출구를 그리며 무작정 걸었다. 나는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선택하지 않은 것들의 끊임없는 아우성. 그것들에서 해방되는 순간은 오로지 글을 쓰는 시간뿐이었다. 달콤하고 불온한 유혹에서 나를 붙잡아준 것 역시 소설이었다.
두 평 남짓한 골방은 세상에서 가장 크고 따뜻한 나의 정원이었다. 싹을 틔운 글감은 그곳에서 무럭무럭 자라났다. 때론 애만 태우다 시들고 말라버렸지만 그것조차 내겐 소중한 가르침이었다.
이제 첫 번째 터널을 지났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얼마나 긴 터널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뒤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270쪽)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1-07-16 1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16 13: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1-07-16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꿈은 간직하고 있을 때가 좋은 거 같아요.
원재훈 작가가 어느 책에서 자신은 아직도 꿈을 이루지 못했다고
하는데 그게 어찌나 마음에 와 박히던지요.^^

hnine 2011-07-16 22:25   좋아요 0 | URL
제멋대로 생각인지 모르지만 어쩐지 stella님의 댓글 첫줄이 무슨 말씀인지 저도 확 와 닿아요. 그럼에도 꿈은 가지고 있는 것으로도 충분히 좋을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하기가 주저스러운걸요. 저는 꿈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본 적이 부끄럽게도 아직 없지만, 그렇지 않고 평생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생각대로 목표를 이루지 못한 사람도 없지 않을텐데 그런 분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싶어서요.

비로그인 2011-07-16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 다섯개 주셨군요 ^^
실은 안보이게 한 열개쯤 더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요 ㅎ

hnine 2011-07-16 18:22   좋아요 0 | URL
예, 바람결님도 한번 읽어보시라고 하고 싶어요.
작가가 하는 일에 대해서도 알 수 있지만,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는 저자의 태도로부터도 배우는게 있었거든요.

sslmo 2011-07-16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요즘 우리나라 작가들의 처우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게 돼요.
글을 써서 밥을 벌어먹을 수 있는 사람은 소수에 지나지 않잖아요.
어젠가 최승자님의 신작을 보다가...딸린 기사를 같이보게 됐고,
지병이 있다는 것과는 별개로,
정부의 보조를 받는 아주 어려운 삶을 산다는 얘기를 듣고 한동안 어쩌지 못하겠더라구요~ㅠ.ㅠ

제가 글로 밥을 벌어먹을 정도로 글을 쓰지 못하는 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순간이었어요.에효~.

hnine 2011-07-16 18:24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글 써서 생계가 유지되려면 일년에 한번 정도 소위 '대박'이 터져야 그나마 가능하다고 저도 어느 소설가가 하는 말을 들은 적 있어요. 그래서 글 쓰는 일 외에도 여러 가지 다른 활동을 병행하고 있는 것 같아요.
생계가 되느냐 그렇지 않느냐. 중요한 문제이지요.

마녀고양이 2011-07-16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쓴다는게
그 사람이 가진 생각 뿐 아니라 자신도 모르던 무의식적 상념을 얼마나 많이 투사하는지
알고난 이후로, 글을 쓴다는 자체에, 그리고 감히 작가의 길로 나서는 분들께
일종의 경외감을 가지게 되었어요.

저는 자신이 쓴 글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소유가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답니다~

hnine 2011-07-16 18:27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그래서 나에게서 나온 내 글인데도 지나고 읽어보면 나의 본질이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그 글을 쓸 당시의 내 기분만 들어있을 뿐인 때가 있지요. 그래서 사실 요즘, 이렇게 아무 글이나 내킬 때 막 써올리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인가 생각해보고 있는 중이어요. 마녀고양이님 말씀하신대로 일단 공개되고 나면 그것은 내 소유만은 아니니까요. 리뷰나 페이퍼 한편을 써도 정말 공들여서, 깊이 생각해서 쓰시는 분들을 볼때는 누구나 다 같지는 않다고 아무리 합리화 시켜도 슬그머니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프레이야 2011-07-16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되기와 작가로 살아가기.
많은 차이가 있는 말 맞네요.
선택하지 않은 것들을 비용으로 지불하고 선택한 한 가지 길에 얼마나 성심을
다하는지 가끔 돌아보면 부끄럽기도 해요.
최근 '내 인생의 키워드'라는 주제를 생각해 볼 기회가 있었는데
'글'이라는 키워드로 머릿속에 정리만 해봤어요. 떠오르는 여러 기억들이 있는데
어쭙잖을 거 같아 글로 옮기진 않았네요. 근데 한 번 써봐야겠다 싶어요.
글로 나오면 그만큼 책임감도 들지 않겠어요? ^^
나인님의 리뷰와 페이퍼는 제겐 더없이 좋아요. 다른분들도 그렇게 느낄거에요.

hnine 2011-07-17 06:06   좋아요 0 | URL
'작가로 살아가기'에서의 작가란 말에는 더 이상 직업만을 의미하진 않는 것 같지요. 어떻게 보면 한 생을 살아가는 것도 무언가 자기만의 것을 지어내는 과정 아닐까 생각하니 작가의 마음을 이해할 것도 같고요.
내 인생의 키워드라니, 멋져요. '글'이 맨처음 떠오르시는군요!
정말 좋은 주제인걸요. 꼭 써보실거죠? ^^
 
윤동주 시인과 함께하는 송알송알 동시논술

오늘 출판사 초록우체통 소인이 찍힌 소포를 받았다. 하늘바람님께서 엮으신 책 <윤동주 시인과 함께 하는 동시 논술> 책이 온 것이다. 

 

 

 

 

 

 

 

 

윤 동 주.
중학교 1학년 국어 시간. 선생님으로부터 처음 그 이름을 들었고, 이어 '서시'를 읊어주시는 것을 들으며 그야말로 한눈에가 아니라 한귀에 반했다고 해야하나. 그 나이 때가 원래 별 일도 아닌  것을 계기로 느닷없이 누군가, 또는 무언가를 마음에 담고 좋아하게 되는 때라고는 하지만 아무튼 그날부터 나는 윤 동주의 시를 찾아 읽고 마침 집에 있던 윤 동주의 평전도 읽어치우고는 젊은 나이에 옥사한 탓에 더 읽을 작품이 남아있지 않음을 아쉬워 했었다. 대학에 들어간 후엔 그의 시비가 있는 남의 학교까지 찾아가보았던 것을 생각하니 지금은 웃음이 나온다. 
그가 아이들을 염두에 두고 쓴 시들이 한권 속에 모였다. 아이들 마음 속엔 어떻게 파고 들어갈까 궁금하다. 책을 보더니 내 아이가 먼저 후다닥 읽는다. 처음은 그렇게 후다닥 읽더라도 꼭 또 한번 들춰보게 되었으면 좋겠다.

자연, 동물, 아기 등이 주로 등장하는 그의 동시들은 운율을 띠고 있어 소리내어 읽기 좋다. 

아래 발치에서 코올코올/부뚜막에서 가릉가릉/나뭇가지에 소올소올/하늘 한가운데서 째앵째앵 ('봄' 중에서)

 요즘 시들에서 보기 힘든 리듬이 느껴지니 반갑고 재미있다. 원래 있던 주어를, 여기에 인용해오면서 생략했음에도 누가 주체인지 알 것 같다. (애기가) 코올코올, (고양이가) 가릉가릉, (바람이) 소올소올, (햇님이) 째앵째앵. 

눈을 보고 길이랑 밭이 추워할까봐 덮어주는 이불이라고 했고 ('눈'), 바람이 불어 나무가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춤을 추면 바람이 분다고 했다 ('나무'). 

자연을 주제로 한 시들이 몇 편 묶어 나온 뒤엔 그 시에 나온 예쁜 우리말을 소개하고 (예. 우리가 흔히 여우비라고 하는 '햇비') 비슷한 소재의 다른 시를 소개하여 비교해보게 했다. 눈 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인지 무작위로 한번 써보라고 했다. 아이들로 하여금 시 쓰는 과정을 조용히 유도해보자는 시도로 생각된다.  

'만돌이'나 '거짓부리' 같은 시에서는 시인의 장난기가 느껴지며 웃음이 나온다. '참새'는 어딘가 초보 시인의 식상함이 느껴지기도 하고, '귀뚜라미와 나와'에서는 자연이나 동물을 나와 동일시하고 서로 비밀까지 만드는 관계로 설정하는 시인의 마음이 전해온다. 42쪽 예문에서는 태은이도 나오고, 그 뒤에는 하늘바람님의 자작시 '엄마와 우산' 그리고 '겨울'이란 시도 나온다 ^^
아이가 어릴 때 자주 읽어주던 '호주머니'란 시를 다시 보니 반갑다. '주먹 두개 갑북갑북'이란 표현이 재미있어 그 부분만 더 과장해서 읽어주곤 했는데. 

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시 '새로운 길'과 '소년'은 중학교때 나만의 노트에 적어 놓고 읽고 또 읽고, 새로운 친구가 생길 때마다 편지에 적어보내기도 하던 시였는데.  

오랜만에 만나본 윤 동주. 예전에 읽은 기억이 나는 시들이 많아서 반갑고, 책의 기획 의도가 새롭다. 귀엽고 예쁜 현대적 일러스트보다는 나 어릴 때 교과서 삽화를 연상시키는 소박한 그림들도 정이 가는, 정성 가득한 책이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1-07-14 22: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15 17: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15 08: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15 17: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1-07-15 17:05   좋아요 0 | URL
원문에 '햇님'이라고 나왔기에 인용하는 입장이라서 그대로 옮겼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