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학교 다닐 때와 달리 요즘은 대학에서 가르치는 사람도 학생으로부터 평가를 받는다. 이른바 강의 평가라는 것이다. 전공 과목인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교양 과목으로 강의를 한 경우에 있어서는 늘 강의가 너무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나름대로 깊이보다는 '흥미' 위주로 강의를 하려고 노력함에도 노력 부족인지. 거기다가 내가 알아서 들은게 그렇다는 것이지 학생들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기가 꺼려질 정도로 막된 표현들도 많다. 솔직히 상처를 받는다. 상처는 상처고 아무튼 학생들의 의견이 그러하니 나는 고민에 빠진다. 어떻게 하면 더 이해하기 쉽게 강의를 할 수 있을까. 쉬운 예를 많이 들어야 하는데.
그런데 또 아이러니한 것은 고등학교 때 배운 것에서 더 배운 것이 없다, 수준이 너무 낮다는 의견들도 꼭 올라온다는 것이다. 이래 저래 학기 끝나고 강의 평가 내역을 보고 나면 여기 저기 퍼렇게 멍이 드는 기분이다. 그 멍이 풀리려면 시간이 좀 걸린다.
이런 와중에 또 나는 이번엔 대학생이 아닌 초등학생 정도 아이들에게 과학을 실험으로 체험할 수 있게 가르치는 사람을 양성하는 코스를 신청해서 지난 한 달 동안 듣게 되었다. 교육이 끝난 마지막 시간에 한사람씩 각자의 지도안을 작성해서 발표했는데, 강의 개요에 많은 사람들이 '과학이 어려운게 아니라 쉽다는 것을 어린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라는 말을 하더라. 그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과연 과학이 쉬운가?
과학의 한 분야를 전공하고 있다는 나는 지금까지 한번도 과학이 쉽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하면 할수록 어려워서 과학이란 분야에 아무리 흥미가 있고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다 할지라도 이런 줄 알았더라면 전공으로까지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말이다.
실험으로 직접 보여줄 때 이해가 더 잘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모르는 상태에서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과학 뿐 아니라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실험이 충분하지 않은 교육 환경 탓을 많이 한다. 실험이 충분한 교육 환경이란 어느 정도의 환경이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보다는 오히려 어릴 때부터 자연을 가까이 하고 거기서 일어나는 변화를 직접 보고 자라는 것, 그 변화는 왜, 어떻게 생기는 것인지 스스로 의문을 품어보고 왜 그럴까 생각해보는 기회가 만들어질 수 있는 생활 환경. 과학을 공부해보고자 하는 동기는 그런 자연에 대한 경외심, 호기심, 파헤쳐 보고 싶은 탐구심에서 생겨나는 것이지 과학이 쉽다는 생각때문은 아닐 것이라고 말하면 그야말로 내가 시대착오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가.
대학 때 다른 학교에 다니던 친구가 자기 교수님으로부터 들었다며 내게 해준 말을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DNA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있다면 다섯 살 짜리 아이에게도 설명해서 이해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과학이란 무엇인가, 과학을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생각할 때 들춰보는 책이다. 과학에 대한 경외심을 잃지 않는 동시에 이 세상이 과학만으로 이루어지진 않았다는 것도 인식하고 있는 노과학자의 자기 성찰적인 글들로 꽉 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