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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작가가 되는 길, 작가로 사는 길
박상우 지음 / 시작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리뷰를 오늘까지 미룬 것은 좀 더 생각하고 좀 더 잘 정리해서 써보고 싶었기 때문이지 하필 오늘, 이런 기분인 날이 될 때를 기다려서 그런 것은 결코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책 읽는 것을 좋아함에는 변함이 없지만 학교 다닐 때 한번도 장래 희망으로 작가를 생각했던 적은 없었다. 오히려 나이를 먹을만큼 먹은 최근에 와서 작가란 사람들을 선망의 눈으로 보게 되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아마도 창작 활동이라는 것에 대한 새로운 매력을 느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내가 직업으로 해오고 있던 일에 대한 반항일 수도 있겠다.
작가가 되기를 꿈꾸던 사람이 작가가 되는 건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작가가 된다는 것은 작가로 평생을 사는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작가라는 직함만 붙이고 산다고 해서 작가의 인생이 조성되는 것도 아니다.
보통사람과 마찬가지로 작가는 죽는 날까지 완성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평생 결핍감에 시달리며 자신을 보완하려는 열정을 잃지 말아야 한다. (103,104쪽)
평생 결핍감에 시달리며 사는 길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어야 한다. 또한 작가가 된다는 것이 곧 작가로 사는 일을 뜻하진 않는다.
그럼 어떤 사람들이 작가가 되는 것일까?
사람으로 태어나 세상을 산다는 건 자기 방식의 인생을 배우고 터득하는 과정이다. 각자 다른 인생과 개성이 생겨나는 과정이지만 뒤집어 말하면 보편성을 상실하는 과정이기도 하다....그처럼 인간의 삶은 굴곡을 만들고 그것은 정신에 주름을 남긴다. 소설을 쓰는 기초 단계는 결국 나의 주름진 정신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것을 이해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자신을 극복하는 초기단계를 넘어서지 못하면 소설을 쓰기 어려워진다. (178쪽)
글을 쓰게 하는 내적 동기가 무엇이었든, 어떤 치유되지 않은 한이 나의 손을 움직이게 했든, 그안에 갇혀서, 그것을 넘어서는데 성공하지 못하면 소설가가 될 수 없다는 말이다.
작가란, 그리고 작가로서의 삶이란 한마디로 말하기 어려운, 참으로 다양하고도 복잡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떤 한가지에 얽매여서도 안되고, 천개의 눈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 같으면서도 어느 순간엔 그 천개의 눈을 하나로 통일시킬 수 있는 집중력도 필요한 삶. 구도자와 같은 자세로 평생을 정진해야 함은 비단 작가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구도자와 같은 자세란 말 속에는 어떤 한가지 일의 무한반복 과정이 내포되어 있고, 그 말은 목표를 향하여 정진하는 방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여기 올려두진 않겠지만 이 책에는 소설가로 서기 위해 습작을 위한 여러 가지 팁, 그리고 소설 작법에 대한 혼동하기 쉬운 사항에 대한 친절한 설명 등이 들어있는데 최근 신춘문예 당선작들을 예로 들어주고 있다. 가령 플롯과 줄거리는 어떻게 다른가, 서사와 묘사의 뜻, 서사가 쓰여야 할 곳, 묘사가 쓰여야 할 곳, 문학과 학문의 차이, 단편과 장편은 길이 외에 어떤 점이 달라야 하는가 등.
소위 화려한 등단이라는 것을 한 이후 주목받는 작가로서 순조로운 여정을 시작했으나 10년 동안의 침잠의 세월을 보내야했던 그의 목소리는 줄곧 진지하고 자기 성찰적 이다. 그래서 책을 읽는 사람도 진지하다 못해 때로 경건한 마음까지 들게 했다.
우연히 어떤 분이 같은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꼭 읽어보라고 강력 추천하시기에 읽어보게 된 책이다. 2009년에 초판이 나왔는데 품절 상태여서 재판 요구 신청 해놓고 몇달을 기다려 구입할 수 있었다. 다 읽고서 권해준 그 분께 짧은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감사하다고.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실린 어느 신춘문예 당선자의 당선 소감은 소설이 아니더라도 자기의 길을 선택하여 걷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감이 될 듯하여 옮겨놓고 나 역시 나의 선택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려한다. 그 선택을 위해 지불해야할 비용에 대하여, 그럴 때 나의 마음가짐에 대하여.
선택은 선택하지 않는 것들을 비용으로 지불한다고 했다.
소설을 위해 포기했던 많은 것들은 때때로 내게 감당하기 힘든 대가를 요구했다. 춥고 어두운 터널을, 그 끝 어딘가에 있을 출구를 그리며 무작정 걸었다. 나는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선택하지 않은 것들의 끊임없는 아우성. 그것들에서 해방되는 순간은 오로지 글을 쓰는 시간뿐이었다. 달콤하고 불온한 유혹에서 나를 붙잡아준 것 역시 소설이었다.
두 평 남짓한 골방은 세상에서 가장 크고 따뜻한 나의 정원이었다. 싹을 틔운 글감은 그곳에서 무럭무럭 자라났다. 때론 애만 태우다 시들고 말라버렸지만 그것조차 내겐 소중한 가르침이었다.
이제 첫 번째 터널을 지났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얼마나 긴 터널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뒤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27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