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에서 10까지 사랑의 편지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4
수지 모건스턴 지음, 이정임 옮김 / 비룡소 / 2002년 4월
평점 :
절판


누가 이 책이 어떻냐고 물어보면 난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수지 모건스턴이야."
그것으로 대답은 충분하다.
그녀의 90여편의 작품 중 내가 읽은 것은 열 편 정도에 불과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그녀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녀의 작품은 지루하지 않다. 남들이 다루지 않은 소재를 다룬 것들이 많다. 재치가 있다. 어둡지 않다.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는 감동을 남긴다. 메시지가 있다. 무엇보다도 인간을 보는 눈이 따뜻하다.

열한 살 남자 아이 어네스트는 엄마 아빠 얼굴도 모르고 여든 살 할머니와 함께 산다. 엄마는 어네스트를 낳고 바로 돌아가시고 아빠는 그 이후 집을 나가버렸다. 할머니에게도 이 일은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할머니는 웃음을 잃고 말을 잃고 사람과의 교류도 잃었다. 집 안에만 있으면서 과거를 떠올리고 그리워하며 있는 듯 없는 듯 숨만 쉬며 지낼 뿐이다. 이런 할머니를 보면서 어네스트는 열 한 살이 되도록 사람을 사귀는 것도, 대화를 나눈다는 것도 모르며 조용히 자기가 할 일만 한다. 그렇다고 자신을 비참하게 생각하거나,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말썽만 피우거나, 아니면 모든 일에 심드렁하여 의욕이 없거나, 그런 아이도 아니다. 학교에서는 모범생이고 할머니를 가엾게 여길 줄도 않다.
그러다가 어네스트의 학교에 빅투와르라는 여자 아이가 전학을 오게 되면서 모든 것이 달라진다. 어네스트를 좋아하고 자기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며 행동으로 보여주는 아이. 심지어는 어네스트와 몇년 몇 개월 후에 결혼할거라고 말하고 다니는 천진난만한 아이.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어네스트와 달리 열 세명의 형제를 두고 있어 늘 복닥이는 환경에서 자라온 아이.
꾸밈없고 발랄, 경쾌한 소녀 빅투와르에 의해 어네스트는 점차 다른 사람과 말을 주고 받고, 더 나아가 마음을 주고 받는 것을 배워간다. 매일 같은 사람과 같은 메뉴의 식사를 하고,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옷을 입고 같은 말만 몇 마디 오고 가는 단절된 세상에서 살던 어네스트에게 그것은 새로운 세상으로 안내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네스트는 변한다. 어네스트의 할머니도 변한다.
이 작품은 사람과 사람이 어울려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이 사람을 변하게 만드는지,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어야 할 것,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준다.

내게도 어느 날 빅투아르라는 이름의 천사가 나타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그러다가 이 세상에 빅투아르 같은 천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왜 누군가에게 빅투아르가 되어주지 못하나 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마지막 책장을 덮는데 마음이 따뜻하게 데워져 있음을 느낀다. 표정도 분명 책을 읽기 이전보다 훨씬 밝아져 있을 것이다. 이 책이 잠시 동안이나마 나에게 빅투아르가 되어 준 것이다!

그러니까 수지 모건스턴이다. 언제부터인가 나에게 위로이고 비타민이고 어깨를 토닥이는 손이고 힘들 때 마시는 녹차라떼가 되어주고 있는, 수지 모건스턴인 것이다.
고맙고 또 부러운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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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09-23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수지 모건스턴이야, 다른 말이 필요없지요.^^
위로이고 비타민이고 어깨를 토닥이는 손이고 녹차라떼 같은 수지 모건스턴에 공감해요!

hnine 2011-09-23 12:51   좋아요 0 | URL
지금도 같은 작가의 책 읽고 있답니다. <딸들이 자라서 엄마가 된다> 이건 작가 자신의 이야기라서 또 색다른 느낌이네요. 몇 페이지 안 남았어요 ^^

달사르 2011-09-23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새는 청소년 소설이 눈에 자꾸 들어오더라구요. 수지 모건스턴, 알아놔야겠네요. 남들이 다루지 않는 분야를, 그것도 재미나게 쓰는 능력이라니요. 와, 멋진 여자같애요.

hnine 2011-09-23 12:59   좋아요 0 | URL
미국태생인데 이스라엘에 유학가서 프랑스 사람인 지금의 남편을 보고 첫눈에 반해서 결혼까지 하고 이후로 프랑스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살고 있답니다. 그림책도 있고 어린이책도 있고 이렇게 청소년소설도 있어요. 제가 워낙 청소년소설을 좋아하는데 좋아하는 작가가 쓴 청소년 소설이니 더 말할 나위 없었지요. 달사르님도 수지를 만나보세요~ ^^

잘잘라 2011-09-23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왜 누군가에게 빅투아르가 되어주지 못하나,,,,,,,,, 한참 생각해봅니다. 생각해보니 옛날 옛날 한옛날에는 누군가에게 빅투아르가 되어준 적도 있습니다. 지금은.. 옆 집에 사는 사람과도 통성명도 한 번 안하고도 잘도 살아갑니다. 작정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하고 다녀본 적도 있습니다. 생각해보니 그 날은 제가 많이 웃고 행복했습니다. 옆집에 사는 사람과도 통성명도 한 번도 안하고도 잘도 살아가는 지금은, 잘 웃지를 않습니다.

hnine 2011-09-23 20:03   좋아요 0 | URL
메리포핀스님의 이 댓글이 왜 이리 쓸쓸하게 들리는지요.
대신 지금은 여기 이 공간에서 웃음과 즐거움을 주시잖아요 ^^
 
살리에르, 웃다 - 제6회 푸른문학상 수상작 푸른도서관 29
문부일 외 지음 / 푸른책들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2008년 제6회 푸른문학상 수상작과 역대 수상작가 초대작 모음집이다.
국내에 청소년소설 공모를 하는 곳은 꽤 있지만 대부분 책 한권 분량의 장편인 경우인데 반해 푸른책들에서는 단편도 대상으로 해오고 있다. 이 책에는 단편 청소년 소설로서는 푸른문학상의 첫 수상작인 문부일 작가의 <살리에르, 웃다>와 그의 신작 <6시 59분>, 그리고 역대 수상작가인 강미, 백은영, 정은숙 작가의 초대작 세편이 실려 있다.

<살리에르, 웃다> - 문 부일
다음의 '6시 59분'도 그렇고 문부일 작가는 일단 제목을 참 잘 짓는 것 같다.
문학 공모전에 도전하지만 열의에 비해 계속 낙방을 하는 남자 고등학생이 주인공. 결국 응모고 글쓰기고 다 포기하기로 하고 마지막으로 그 결의를 담아 올린 글이 수상을 하게 된다.  
소재도 참신하고,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도 있고, 의미도 담고 있는, 수상 자격이 있는 글이라고 생각된다. 

<6시 59분> - 문 부일
중학생 신분에 혼자 제주도 여행을 꿈꾸는 주인공. 요즘의 청소년들이 예전에 비해 더 의존적이 되어가고 있다고도 하지만 여기의 주인공은 보란듯이 자기의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아들의 비밀스런 계획이 엄마의 걱정으로 수포로 돌아가지 않게 하기 위해 아버지는 묵인해줌으로써 아들의 성장을 지지한다. 산뜻하고 희망적인 결말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모래에 묻히는 개> - 강 미 
현재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고 있는 이 작가는 예전에 '길 위의 책'이라는 장편 소설로 알게 되었다. 이후작 '겨울, 블로그'도 그렇고 흥미진진한 내용 보다는 평범한 소재를 가지고 무난하고 잔잔하게 이야기를 이끌어간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이 단편은 앞의 두 작품보다 더 좋아졌다는 생각이 든다.
장남, 장손이라는 위치에 있어 집안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는 주인공이 교내 회장 선거에 출마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는데 현관 벽에 걸린 그림으로 시작해서 역시 그 그림으로 이야기를 맺으며 거기에 이야기 전체의 의미를 싣는 방법이 돋보인다. '물살을 거스르는 개'라는 그림의 다른 제목이 '모래에 묻히는 개'였다는 것과 주인공의 심리, 그리고 이모의 결혼 등이 아귀가 잘 맞게 처리가 되어 있다. 

<짱이 미쳤다> - 백 은영
남자 고등학생들의 세계는 나에게 거의 미지의 세계이다. 작가는 이 이야기를 쓰기 위해 특별히 취재를 다녔을까? 남자 중학교의 패거리 짱과 관련된 이야기라고 하면 언뜻 짐작되는 내용이 있을텐데 읽어보면 그것이 전부가 아닌, 작가만의 목소리가 분명히 전해져 오는 작품이다. 그러면서 은근히 교훈적인 효과도 있다. 너무 드러나지 않는 이런 교훈적 메시지는 작품의 진가를 높이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열 여덟 살, 그 겨울> - 정 은숙
최근의 정 은숙 작가의 신작을 보관함에 담아 놓고 못 읽고 있어 아쉬운 차에 이 책에 작가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 것을 보고 어찌나 반갑던지.
열 여덟 살. 어린 나이가 아니면서도 어딘가 아직 꽉 차려면 좀 모자란 듯 해보이는 나이. 이 작품에 등장하는 열 여덟 청춘들은 각자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포기하거나 어른들의 손에 맡기지 않고 스스로, 또는 자기들끼리 서로 도와 가며 해결해보려 한다. 그 모습이 이 땅의 모든 열 여덟의 모습이었면 참 좋겠다.

얘들아, 기다려라. 내가 간다.
겨울 칼바람에 땀나도록 죽어라 달려갔다.

 라는 마지막 문장도 어찌나 힘차고 든든한지.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은 모두 독자를 만족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어보인다. 

 

* 정 은숙 작가의 <열 여덟 살, 그 겨울>은 2011년에 출간된 <정 범기 추락 사건>책에도 '좀도둑과 목격자'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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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9-21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짱이 미쳤다'가 구체적으로 무슨 이야기일지 몹시 궁금한데요? 어린 남자들이 벌이는 치기 어린 싸움 이야기로 끝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최근에는 청소년 소설을 읽은 적이 없지만, 가끔 읽을 때마다 내 청소년기와는 또 다른 이야기를 읽는게 신기해요. 나는 저런 적이 없지만 저럴 수도 있었겠구나. 이런 생각하면서 읽으면 재밌더라구요 ㅎㅎ 그러고보니 '살리에르, 웃다'는 제가 늘 꿈꾸던 그런 이야기네요! hnine님은 청소년 소설 읽으면 보통 무슨 생각이 떠오르세요?

hnine 2011-09-22 04:47   좋아요 0 | URL
성인 소설은 저의 나이대이기 때문에 공감이 가서 읽지만 사실 마음의 위로가 되고 깨우침이랄까, 그런 것은 오히려 어린이 책들을 읽으면서 얻게 되는 수가 많고, 청소년 소설은 제가 그냥 끌려서 읽어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청소년들 자체가 넘쳐나는 소재의 근원지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무슨 얘기를 해도 이야기 거리가 되는 것 같고 제가 청소년 시기에 마음껏 펼치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서인지도 모르겠고...저도 뚜렷이 모르겠네요 ^^

2011-09-22 0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22 05: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1-09-23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단편집 참 괜찮았어요, 아니 참 좋았어요~~
나는 줄거리만 풀어논 리뷰를 썼지만, 짧아도 강한 끌림이 있어요.^^
정범기 추락사건 책만 사놓고 펼쳐보지도 않아서, 겹치는 줄도 몰랐네요.ㅜㅜ

hnine 2011-09-23 13:01   좋아요 0 | URL
단편의 묘미를 알게해주는 책이지요. 짧은 이야기 속에 작가들의 내공과 진심이 유감없이 드러나더군요. 정 범기 추락사건 책도 보고 싶어요.
 
희망의 처방전 정신의학 -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현대인에게 드리는
고시노 요시후미 지음, 황소연 옮김, 표진인 감수 / 전나무숲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줄기세포, 클로닝, 유전자 조작 생물에, 복제 인간도 곧 가능할 지 모르는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에 쌓여 있는 분야가 뇌 관련 분야가 아닐까 한다.
이 책 이전에 읽은 <내 몸안의 지식여행 인체생리><내 몸안의 주치의 면역> 에 비해 두께가 얇고 설명이 불충분한 곳이 많은 것이 이 책의 질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오히려 이 시리즈의 책들이 보여주고 있는, 필요한 지식을 다 설명하면서도 장황하거나 어렵지 않은 집필 방식은 이 책에도 역시 일관성 있게 흐르고 있었다. 
정신 의학에 관한 본론에 앞서 첫 장에 뇌에 대한 소개로 시작하는 것도 마음에 든다. 뇌의 구조, 뇌는 신경세포의 집합체라는 것, 신경세포가 어떻게 신호를 전달하는지 설명하고 나서 드디어 정신 의학에서 진단과 치료에 핵심역할을 하는 신경전달물질에 대해 설명해준다. 이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이 마음의 병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마음의 병을 약물로 치료하는 방법은 대개 이 신경전달물질 조절과 관련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설명해준다.
다음으로는 마음의 병의 네 가지 범주를 보여준다.
-기분장애
-불안장애
-정신분열병
-기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우울증은 기분장애의 대표적인 증상이고, 강박장애, 공포증 등은 불안장애에 들어간다. 마지막의 기타에 들어가는 것으로 불면증, 치매, 수면증,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ADHD)이 있는데 어느 하나 귀에 생소하게 들리는 것이 없는 것으로 보아 우리 생활에 이미 정신 의학이 얼마나 가깝게 자리잡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우울증을 진단할 때 중요한 척도 중 하나는, 우울증이 의심되는 사람이 취미 활동에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라고 한다. 평소에 심취했던 취미나 오락에 흥미나 관심을 완전히 잃어버렸다면 우울증일 가능성이 높다고. 또하나, 우울증은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나을 수 있는 병이 아니라고 한다. 즉, 꼭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라는 것이다.
우울증을 치료하는 약물의 작용 기전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이 잘 되어 있다. 벤조디아제핀은 GABA 수용체와 결합함으로써, 세로토닌 부족시에 세로토닌을 직접 투여하는 대신 SSRI (selective serotonin reuptake inhibitor)를 쓰는 이유, 각각의 장단점까지.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프로작'은 대표적인 SSRI이다.
물론 인지치료나 행동치료도 중요하지만 약물치료와 병행할 때 효과가 있다고 한다.

원래 약이란 것을 별로 신임하지 않는 나란 사람은 더구나 마음의 병을 약물에 의존해 치료한다는 것을 크게 확신하고 있지 않는 편이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 필요성을 좀 더 이해하게 되었다. 하지만 어떤 약도 그렇겠지만 '남용'이 문제.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이용되어야 하는데 그 기준이 문제이다. 미국에서 가벼운 우울 증상에도 약을 처방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봐도 그렇고, 수면장애용으로 멜라토닌 같은 약이 나라에 따라서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곳이 있는가하면 그렇지 않은 곳도 있으니 그 기준이라는 것이 얼마나 모호한지 알 수 있다. 

시리즈 세권을 다 읽었다. 그 중 제일은 역시 처음에 읽은 <인체생리> 

세권을 나란히 꽂아놓으니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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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09-22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일반인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인가 봐요.
참 부지런하심다. 어느새 영역을 확장해서 이런 분야도 읽으시고.^^

hnine 2011-09-22 11:53   좋아요 0 | URL
영역 확장이라기보다 원래 영역이라고 할 수 있지요 ^^
먼저 읽은 두권 <인체 생리>, <면역> 보다는 일반인들이 읽기에 덜 어려울 것 같네요.
 

 

친정아버지 생신 축하드리러 어제 친정에 다녀왔다. 

차례 준비 하고 시아버님 산소에 성묘까지 다녀오려면 나와 남편이 많이 피곤할거라며 오지 마라고 하시길래, 썰렁한 집에 두분만 적적하실 걸 알면서도 추석에도 찾아뵙지도 못했었다. 

나와 여동생 가족과 함께 케잌 주위에 둘러 앉으니, 결혼해서 지금까지 살면서 처음 해보는 일이시라면서 엄마께서 아버지께 직접 쓰신 생일 카드를 건네주신다. 

또박또박 쓰신 카드를 아버지께서 읽으셨다.

지금까지 함께 한 시간들에 감사하다,
앞으로도 옆에서 서로 의지가 되어주자는 내용. 

마지막 줄에 날짜를 쓰시고 당신의 짝꿍이라고 쓰셨다.

듣는 우리들은 웃는데
아버지와 엄마는 눈에 눈물이 맺히시더니 울먹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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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1-09-19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멋지게 나이드셨네요
늘 투닥거리는 우리 부부도 나이들면 그럴까 싶어요

hnine 2011-09-19 13:41   좋아요 0 | URL
저희 부모님도 늘 알콩달콩하는 모습은 아니셨어요. 오히려 치열하게, 빈틈없이 사시느라 퍽퍽해보이는 삶을 사셨달까요.

파란놀 2011-09-19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짝꿍은
아이들한테도
어른들한테도
모두 예쁜 말이에요.

hnine 2011-09-19 13:42   좋아요 0 | URL
어쩌면 이렇게 느낌이 그대로 살아있을까 싶은 우리 말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짝 꿍

sangmee 2011-09-19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뭉클하다...
지금의 우리 나이보다 훨씬 젊은 나이의 너희 부모님 모습이 떠오르는구나.
너희 부모님도 우리 엄마 아빠도 ,짝꿍 끼리 재밌고 건강하시고 행복하게 지내시면 좋겠다.

hnine 2011-09-19 13:43   좋아요 0 | URL
그래, 그 마음 뿐이야. 자식은 옆에 끼고 있어도 걱정이지만 언젠가 다 부모님 품을 떠날 사람들이니, 함께 끝까지 옆에서 같이 하는 부부가 최고라고 그러시더구나. 100% 동의하지.

세실 2011-09-19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당신의 짝꿍이라니 눈물 나려고 하네요.
아름답게 서로 의지하며 사시는 두분 모습 참 좋아요^*^

hnine 2011-09-19 13:47   좋아요 0 | URL
엄마와 아버지 성격이 비슷하시기 보다는 대조적이기 때문에 두분이 토닥토닥 하시기도 많이 하셨어요. 그런데 이제 연세가 칠십을 훌쩍 넘기시고 두분만 한집에 사시다보니 이런 저런 일 다 함께 겪어내고 지금까지 옆에 함께 있어주는 배우자가 또 하나의 '나'처럼 생각되어 지나봐요.

무스탕 2011-09-19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른께 죄송한 표현이지만 참 이쁘십니다.
서로 의지하며 같이 늙어간다는 말 그대로세요 ^^

hnine 2011-09-19 13:50   좋아요 0 | URL
죄송한 표현은요 뭘. 무슨 뜻으로 하시는 말씀이신지 다 아는걸요 ^^
어떻게 살아라 라고 말씀으로 일러주시는 것 보다 이렇게 보며 배우는 것이 더 마음에 와 닿는 것 같아요. 부모님의 모습은 곧 우리의 미래의 모습이기도 하기 때문에요. 남편에게 잘 서운해하고 속상해하는 저로서는 오랜만에 반성을 할 기회가 되었네요.

마노아 2011-09-19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답고 감동적인 풍경이에요. 부부가 함께 해로하는 건 정말 복이에요.

hnine 2011-09-19 13:51   좋아요 0 | URL
마노아님, 좋은 짝꿍 만나세요 ^^

비로그인 2011-09-19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짝꿍이라는 말이 이렇게 아름다운 말이었나요. 왜 눈이 시큰해지는지... 가족의 생일에 카드를 써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난다는 게 참, 부끄럽네요.

hnine 2011-09-19 13:53   좋아요 0 | URL
저희 부모님 아직도 여보 당신 이렇게도 안부르시거든요? 멋적어 하시면서요. 평소에 그냥 누구 엄마, 이봐요~ 이렇게 부르시는 분들인데 '짝꿍'이라는 말이 얼마나 신선(!)하게 들리던지요 ^^

잘잘라 2011-09-19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어..... 왜 제 가슴이 이렇게 찡-할까요.

hnine 2011-09-19 13:54   좋아요 0 | URL
아무 생각없이 자식들은 재미있다고 웃었답니다, 부모님께서도 웃고 계실 줄 알았다가 울먹이시는 모습보도 아차 싶었답니다 ㅠㅠ

2011-09-19 1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19 1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1-09-19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당신의 짝꿍'에 눈시울이 촉촉히 젖어요.
평생 동반자인 부모님이 쓰시니 그 의미가 새롭게 다가오네요.
두분의 눈에 맺힌 눈물이 더 많은 이야기를 전하는 페이퍼에요.

hnine 2011-09-19 13:56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철모르는 자식들을 그냥 재미있어서 웃었답니다. 부모님께서 눈물 글썽이실줄은 상상도 못했지요. 에효, 자식들은 그저 자식들입니다.

프레이야 2011-09-19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감동이에요.
글썽~ 어머니 참 사랑스러운 분이시네요.
아버님 생신 축하드립니다. 건강히 오래오래 사시길 바랍니다.

hnine 2011-09-20 04:46   좋아요 0 | URL
평소에 제 어머니가 그리 다정다감 하신 편이 아니시거든요. 오히려 냉정하신 분에 가까운데, 그래서 뜻 밖이었어요. 아마도 두분 연세 드시면서 여기 저기 아프시고, 그럴 때마다 멀리 있는 자식들보다는 가까이 있는 배우자가 훨씬 힘이 되고 의지가 된다는 것을 직접 겪고 계셔서 그러신 것 같아요. 그래서 자식으로서 더 송구스럽고 마음이 안 좋지요.
제 아버지 생신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책가방 2011-09-19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버님이 참 행복하셨겠어요. 센스만점인 어머님이 곁에 계셔서요..^^

가끔 남편과 싸우고 엄마께 이러쿵저러쿵 이를때면... 싸웠던 것 마저도 그립다고 하시더군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거든요.
엄마는 아버지가 꿀벌이 되셨다고 생각하세요.
그래서 엄마는 노란 국화꽃이 되고 싶으시다네요.
아버지가 가을에 돌아가셨거든요.
꿀벌과 노란 가을국화.... 짝꿍 맞죠??^^

hnine 2011-09-20 04:47   좋아요 0 | URL
책가방님 어머님, 시인이세요 ^^
연세 들어가면서 얼마나 더 아버님이 그리우실까요.
싸웠던 것 마저 그립다는 말씀을 저도 꼭 기억하고 있어야겠어요.
지금 가을인데...책가방님께서도 아버님 생각 더 나실텐데...

yamoo 2011-09-19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감동적입니다. 아직까지 저런 낭만을 간직하고 계시다니!

hnine 2011-09-20 04:49   좋아요 0 | URL
저희 부모님 평소에 전혀 낭만적인 분들이 아니시랍니다.
거의 오십 년을 함께 하시다보면 배우자는 남이 아니라 또다른 나 같기도 하고 그런가봐요.
저도 적지 않은 나이이면서도 내게도 저런 때가 올까 싶어요.

울보 2011-09-20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멋진 아버님이시네요,

hnine 2011-09-21 05:57   좋아요 0 | URL
자식들 다 출가시키고 두분만 지내시다보니 더 애틋해져 가시나봐요. 예전엔 토닥토닥도 많이 하셨었는데 말이어요 ^^
 

 

실험이 꼭 거창해야하는 것은 아니지 

<마법의 실험아, 과학을 다 알려줘> 
정 홍철 지음, 초록아이

평이 좋은 것에 비해 개인적으로는 기대에 못 미친 책이다.
기획은 좋았다. 과학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종이를 뜯어 종이 접기 하듯 쉽게 금방 눈으로 확인해볼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는 효과가 있다.
과학은 '손'을 움직여야, 즉 직접 해보아야 비로소 '머리'로 잘 들어온다고 평소에 말하고 다니지 않았던가.

아쉬움을 느꼈던 것은 직접 해본 실험 속에 담긴 원리를 설명하는 부분이었다. 아이들에게 지나치게 깊은 내용을 길게 설명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은 알지만 대신 열줄 미만에 아이들이 이해할 만한 용어로 요점을 잘 잡아내주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한가지 실험을 위해 짧은 동화로 도입을 하고, 간단히 종이로 만들어볼 수 있는 실험 등을 할 수 있는 연령대의 아이들이라면 그 수준에 맞춰 원리 설명이 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별히 그런 신경을 쓴 것 같지 않은, 단순히 설명의 양만 줄여놓은 것은 수박 겉핥기 식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아마 이 책을 구입한 대부분의 아이들이 실험을 해보며 재미있어 했을 것이고 그걸 보며 부모는 흐뭇했으리라. 하지만 그게 무엇에 관한 실험이었는지 제대로 이해하는데까지 책의 효과가 미쳤는지는 모르겠다. (별점을 준다면 다섯개중 세개)

 

 

"왜?"라고 물을 수 있다는 것


<학교는 왜 가야하지?>
오스카 브르니피에 글, 델핀 뒤랑 그림, 최 윤정 옮김, 바람의 아이들  

내 맘대로 이 책을 어린이를 위한 철학책이라고 불러본다.
학교는 왜 가야하는지, 나는 지금까지 한번이라도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던가? 당연히 가야하는 것으로 알았고, 결국은 누구나와 같이 더 좋은 학교에 가야하는 것이 더 행복한 인생을 살기 위한 필수 관문쯤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에 실패하는 것은 곧 행복한 인생을 살기는 틀린 것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왜?'란 질문은 감히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고 있어도 곤란했던 학창시절. 지금의 아이들은 좀 다를까?
이 책에서는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꼬마가 이런 의문을 갖는다. 나도 지금까지 해본 적이 없는 의문을.

이 책을 읽고 나도 내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학교에는 왜 가야하냐고. 공부하기 위해서 간단다. 그럼 공부는 꼭 학교에 가야만 할 수 있나 물어보았더니 그런건 아니란다. 그런데 왜 학교에 가야하냐고 계속 물었더니 여기서부터 대답이 흐지부지.
학교는 왜 가야하는지, 자기가 지금 막 하려고 하는 일에 대한 의미를 알고 싶어하고 그 답을 찾아내기 위해 이 책의 아이가 하는 일을 따라가 보라. 궁극적으로 어떤 답을 얻어내는지 보라.
끌려가는 삶을 살지 않기 위해, 흉내내는 삶을 살지 않기 위해, 겉만 보고 속은 놓치지 않기 위해, 어떤 일의 진정한 의미를 알면서 하기 위한 첫 걸음으로 이 질문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
꼬치꼬치 캐묻는 것을 견제하는 우리나라의 교육 분위기에서 더욱 주목해볼 내용이다. 기대이상이었던 책. (별점을 준다면 다섯개중 여섯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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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18 09: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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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19 08:5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