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실체가 실제하는지 아닌지 어떻게 아느냐고?

아주 간단하다. "고통을 느낄 수 있는가?" 라고 질문해보면 된다.

제우스의 사원을 불태워도 제우스는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유로화가 가치를 잃어도 유로화는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은행이 파산해도 은행은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한 나라가 전쟁에서 패배해도 그 나라가 실제로 고통을 느끼지는 않는다.

이런 경우 고통은 단지 은유이다.

반면 병사가 전투에서 부상을 당하면 그는 실제로 고통을 느낀다.

굶주린 농부는 먹을 것이 전혀 없을 때 고통을 느낀다.

갓 태어난 송아지와 떼어놓으면 어미 소는 고통을 느낀다.

이런 경우 고통은 실제이다.

 

 

 

-유발 하라리 <호모 데우스> 246쪽-

 

 

 

 

실제인지 허구인지 알 수 있는 방법.

 

 

 

 

 

 

 

 

 

 

 

 

 

 

 

 

 

 

 

 

 

 

 

 

포스트잇, 연필, 다 치우고, 볼펜으로 줄을 쭉쭉 그으면서, 감히 책에다 끄적거리기까지 하면서 읽고 있는 중이다.

 

 

그나저나 오늘 하루의 더위는 또 나에게 얼마나 고통을 주려나.

더위의 고통을 느끼는 "나"는 실제한다. 실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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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7-07-27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는 방법이군요.
더움에도 불구하고 좋은 저녁이 되시길...

hnine 2017-07-27 23:09   좋아요 0 | URL
고통은 실제를 증명할 수 있게 한다...고통스러운 시기에 떠올릴 수 있으면 좋을 말이지요.
 

 

 

 

4시에 일어나면 아침이 얼마나 긴지.

일요일 아침.

하늘은 꾸물.

우산 하나 들고 동네 한바퀴.

 

 

 

 

 

 

 

 

 

 

 

 

일부러 찍은 사진이 아닌데 잘못 눌러 찍혔나보다.

지우려다가 그냥 남겨보기로 한다.

내 다리 한짝. 그늘은 들고 있는 우산때문에 생긴 것.

 

 

 

 

 

 

 

 

 

 

 

감이 벌써 이만큼 자랐네.

 

 

 

 

 

색 좀 봐.

이보다 더 선명할 수 없다!

 

 

 

 

버섯 나라를 지나고

 

 

 

 

 

 

 

 

 

 

 

 

 

 

수련이닷!

 

 

 

 

 

 

 

 

 

물결.

바람이 불고 있다는 증거.

 

 

 

 

 

 

 

 

 

 

 

 

 

 

 

볼빨간 사춘기.

 

 

 

슬슬 돌았는데도 집에 돌아오니 땀이 난다.

강아지가 자기 안데리고 갔다고 삐졌다.

 

 

 

 

 

 

 

 

nama님 댓글때문에, 버리려고 했던 다른 사진 한장도 올려본다.

폰을 들고 있던 왼손이 우산 들고 있던 오른손을 찍었다.

by acciden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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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2017-07-16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아지한테 산책시켜줬으면 합니다. 원래 가희들은 야행성(野行性) 동물이잖아요. 그런데 방 안에만 갇혀 있으면 얼마나 답답하고 괴로울까요? 신발도 신기지 말고 맨땅 밟고 뛰놀게끔 해줬으면 좋겠네요. 바깥 산과 들의 수풀과 푸른 나무들에서 나오는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 강아지한테 정말 좋을 텐데요. 비 온 날 흙내도 맡게 하고요. 그러면 강아지가 무척 고마워하겠죠?

hnine 2017-07-16 16:00   좋아요 0 | URL
거의 매일 산책 시키고 있답니다 ^^
오늘 아침엔 제가 좀 귀찮았나봐요. 빗방울이 금방 떨어질 것 같기도 했고요. 강아지 데리고 나갈땐 준비물이 이것 저것 필요하거든요. 데리고 나갔다 들어오면 샤워시키고 말려주고 빗겨주고...

qualia 2017-07-16 16:23   좋아요 0 | URL
호와, 정말 훌륭한 주인이시군요~ ^^ 강아지가 호강하겠어요.

근데 제가 저런 댓글 굳이 써올렸던 까닭은 어떤 영향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옆집 건너건너 옆집에 송아지만한 가희(시베리안 허스키 같은)가 있는데 스트레스를 얼마나 받는지 거의 매일 하울링을 어찌나 해대는지... 듣는 이웃 사람들이 더 스트레스받을 지경이죠. 그렇게 크고 혈기왕성한 가희를 집안에만 묶어두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옆집 아주머니 말씀에 따르면 아주 가끔은 그 집 아들이 공원으로 데리고 나온다고는 합니다만... 그래서 제가 가희들한테 측은한 마음이 들었던 것 같아요. 이런 상태에서 위 hnine 님의 “강아지가 자기 안데리고 갔다고 삐졌다.”는 글을 읽었으니 걍 자동반응한 것이지 뭡니깤ㅋㅋㅋ

hnine 2017-07-16 20:07   좋아요 0 | URL
지금 막 산책 데리고 나갔다 왔어요.
샤워시키고 털 말려주며 보니까, 이 녀석 또 한쪽 귓털에 진드기를 붙이고 왔네요.
이번엔 손으로 쉽게 떼어졌는데, 언젠가는 진드기가 살 속으로 파고 들어서 결국 동물병원가서 간단하지만 수술 해서 빼냈답니다.

qualia 2017-07-16 21:27   좋아요 0 | URL
와~ 산책하고 샤워하고 얼마나 좋을까요. 헐~ 근데 진드기라니 소름이 쫙 끼치네요. 그걸 손으로 떼어내는 hnine 님, 정말 용감하시네요. 그곳 수풀에 진드기가 많은가 봅니다. 그렇다면 야생 생활하는 집 나온 가희나 길고양이들 진드기한테 많이 시달리겠는데요. hnine 님 강아지 산책시켜주실 때 신경 쓰이시겠어요. 수풀이나 잎사귀 많은 곳, 가랑잎이나 썩은 나뭇가지가 많은 곳으로는 가지 못하도록(않도록) 해야 될 것 같네요.

hnine 2017-07-17 05:52   좋아요 0 | URL
그런데 강아지는 꼭 풀 많은 곳으로만 다니려고 해요 킁킁 거리면서 ㅠㅠ

nama 2017-07-16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리 한 짝‘ 사진이 가장 기억에 남을 듯해요.^^

hnine 2017-07-16 20:08   좋아요 0 | URL
저 정도만 나와줬으니 올렸지, 아마 더 많이 나왔더라면 못 올렸을거예요 (근육질 다리라서...^^).

nama 2017-07-16 20:41   좋아요 0 | URL
방금 올리신 마지막 사진에 제목을 붙여보면....<애착>이 어떨까요? 차마 놓아버릴 수 없는 안타까움과 놓치지 않으려는 힘이 느껴지네요.

근육질 다리라고요? 제 다리도 남 못잖은 근육질인데요. 팔뚝은 가련형이지만...

hnine 2017-07-17 05:54   좋아요 0 | URL
건강검진할때 저보고 무슨 특별한 운동하냐는 말 들었을 정도 ㅠㅠ
다리에 특히 근육량이 많대요 매일 걷는 운동을 해서 그런가봐요.
<애착>이란 제목, 좋아요! ^^

신지 2017-07-16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게으른 저도 산책나가고 싶어지는, 사진들이네요.^^

강아지가 자기 안데리고 갔다고 삐졌다-니 생각만 해도 귀엽습니다( 삐지면 어떤 모습일지 ^^)

hnine 2017-07-17 05:58   좋아요 1 | URL
저도 게을러요 신지님. 그런데 산책이 주는 잇점이 생각보다 많더라고요. 밤에 잠도 더 잘오고요, 기분도 좋아지고요, 생각도 정리가 되고요. 저렇게 일부러 나가지 않으면 저란 사람 일주일 동안 집 밖으로 안나갈때도 있답니다.
강아지는 삐졌다기보다 시무룩해있다고 해야 더 맞을 것 같네요. 제가 나갈땐 따라가려고 막 꼬리치고 방방 뛰다가, 여의치 않아 혼자 나갔다 들어와보면 바닥에 턱까지 붙이고 완전 몸을 깔고 있어요 ㅋㅋ

페크pek0501 2017-07-27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이 호강했네요. ㅋ

hnine 2017-07-27 18:11   좋아요 0 | URL
빗방울 떨어지지 않았으면 좀 더 돌아다니는건데...
더위에 어떻게 지내세요.
 

 

 

이 책상 어때요?

 

 

 

 

 

 

책상, 의자, 조명까지

모두 한 사람 작품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카림 라시드 전시회 다녀왔습니다.

 

 

 

카림 라시드가 누구? 하시는 분이라도 위 사진 가운데 있는 저 물병 혹시 눈에 익숙하지 않으신가요?

파X 바게X 에서 파는 생수 용기인데 카림 라시드 작품 중 하나랍니다.

 

 

 

 

 

카림 라시드 디자인의 특징은 한마디로 올록볼록, 유선형의 곡선 디자인.

이것을 블롭젝트 (물방울 모양의 물체)  디자인이라고 한답니다. 애플사의 컴퓨터 일체, 폭스바겐사의 자동차 비틀 등이 그 예라고 하겠지요.

 

 

 

 

의자를 보니 언젠가 대림미술관에서 본 필립 스탁의 의자가 떠올랐습니다.

 

 

 

 

 

 

 

이집트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1960년 9월 18일, 이집트 출생이지만 태어나기만 했지 아주 어릴 때부터 이나라 저나라 옮겨 다니며 살았기 때문에 이집트에 대한 추억이 별로 없다네요. 현재는 뉴욕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원래 건축에 관심이 있었지만 차선으로 선택한 산업디자인이 더 적성에 맞아서 디자인의 길로 들어섰대요.

 

 

 

 

 

 

 

 

 

 

 

 

일상 생활 관련 작품들이 많다보니 가지고 싶은 것도 눈에 많이 들어옵니다.

위의 휴지통은 Garbo Trash can 이라는 이름으로 카림의 대표작품 중 하나랍니다. 현재 뉴욕  MoMA에 영구소장품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저 핑크색 예쁘지 않나요?

실제로 카림이 핑크 덕후였다네요. 그중 비비드 핑크를 제일 좋아해서 이번 전시로 한국을 방문할때 핑크 양복을 입었다고 해요.

 

 

 

 

 

 

Global love라는 이 대형 작품은 이번 한국 전시를 위해 기념상징조형물로 제작된 것인데 카림이 디자인하고 한국의 아나테름 스튜디오에서 제작했답니다. 전시가 끝나도 한국에 둘거래요.

 

 

 

 

 

 

 

저런 기호를 이용한 디자인이 많습니다.

 

 

 

 

 

올록볼록 ^^

 

 

 

 

 

 

 

 

 

 

 

 

이거 꼭 생화학 책에 나오는 단백질 4차구조 같다고 생각하고 작품 제목을 보니 Genetik.

흐흠, 그렇게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는군요.

 

 

 

 

 

 

 

그 옆에 있는 작품 제목은 Vacuole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세포 소기관중 액포를 Vacuole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이건 실제 Vacuole 형태와 별로 안비슷하네요.

 

 

 

가장 좋은 디자인은 대중이 많이 소비하는 디자인이며 누구나 즐길수 있어야 한다는 카림 라시드.

다양한 분야의 디자인에 관여했고 그래서 상도 많이 받았답니다.

6월 30일에 시작했고 10월 7일까지 전시한다니 한번 들러보세요. 재미있습니다 ^^

 

 

 

 

 

 

저는 요 사인도 맘에 듭니다. 역시 핑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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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7-07-14 0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지통,커피포트기,냄비 저도 갖고 싶네요^^
요즘 저도 핑크에 꽂혔는데~손잡이를 핑크로 해놓으니 너무 이쁩니다^^
전시가 꽤나 흥미롭고 좋네요?
덕분에 구경 잘했습니다.
전 멀어 못가봐 나인님 아녔음 모를뻔 했었던 작가와 전시작품이었어요^^

hnine 2017-07-14 07:40   좋아요 1 | URL
올리지 않은 사진도 많아요. 저도 처음 들어본 디자이너인데 가서 보니 워낙 전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의외로 눈에 익숙한 작품들이 있더라고요. 주방기구, 하이힐, 청소용품, 향수병, 의자, 조명, 옷, 등등...분야를 따로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하더군요. 그냥 구경만 하는 디자인은 싫대요. 사람들이 직접 사용하고 느끼고 친해지는 것들을 디자인하고 싶답니다. 그러니 보면 탐나는 것들이 많을 수 밖에요 ^^ 아마 저도 가까운데 살아서 들고 올수만 있었다면 뭔가 하나 사서 들고 왔을지도 모르지요.
재미있는 전시였어요.

세실 2017-07-15 1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빵집에서 보고 참 예쁘다 했는데 유명한 디자이너 작품이군요. 베리 굿입니다.
부드러움.....뾰족한 마음일때 위로가 되겠어요^^

hnine 2017-07-15 13:33   좋아요 1 | URL
저런 전시 보러 혼자 버스에 오르는 날은 제가 마음이 신나거나 즐거울 때 보다는 마음이 푹 젖어있거나 말씀하신 것처럼 뾰족해져 있을 때거든요. 두어 시간 전시 둘러보면서서 부드러워지고 뽀송해져서 돌아왔답니다.
저 물병 보셨지요? 한번 쓰고 버리기 아까웠던 물병이었어요.
 
산책자 - 로베르트 발저 작품집
로베르트 발저 지음, 배수아 옮김 / 한겨레출판 / 201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그 누구도 생각하려고 애쓰지 않는 것을 나는 하루 종일 생각했다. 그러나 얼마나 감미로운 생각이었는지. 아주 드물게 슬픔이 나를 방문했다. 때때로 보이지 않는 무모한 무용수처럼 내 방으로 불쑥 뛰어드는 바람에 웃음이 터진 적도 있었다. 나는 아무도 아프게 하지 않았고,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 역시 아무도 없었다. 나는 참으로 멋지게 그리고 보기 좋게 옆으로 비껴나 있었다. (8)

8쪽의 이 대목부터 였다. 버스 속에서 읽고 있었는데 연필도 아니고 가지고 있던 볼펜으로 밑줄을 주욱 긋기 시작한 것이.

다 읽고 나서도 역시 마음에 제일 남겨두고 싶은 부분, 역시 여기다. 이 책의 내용을, 그리고 로베르트 발저라는 사람을 제일 처음 느끼게 해준 이 문장을 되풀이해서 읽어본다. 입으로. 소리내어.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듣게 된 EBS 책 소개 프로그램이었는데 마침 진행자와 이다혜 기자가 이 책을 소개하고 있던 중이었다. 이 다혜 기자 말이, 누군가에게는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책이라고 했는데 오히려 그 말이 이 책 아주 재미있다는 말보다 더 흥미로와 계속 듣다가 어찌어찌 해서 청취자 몇사람에게 이 책을 보내준다는데 걸리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다소 지루할 수도 있는 내용이라는 말을 듣고 읽기 시작했음에도 나는 읽자 마자 책 속으로 빠져들고 만걸. 뭐든 억지로 좋아하려고 할 필요 없는 것이다. 노력 없이도 좋아지는 것들이 이 세상엔 분명히 존재하므로. 책도 그렇다.

 

로베르트 발저. 1878년 스위스 태생. 금수저는 아니었고 굳이 비유하자면 흙수저.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 중학교를 중단했어야 했고, 나중에도 그럴 듯한 배경이 될만한 학교를 제대로 졸업하지 못했다. 한때 배우가 되고 싶어 했으나 그러지도 못했고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글쓰는 일을 생계 수단으로 삼게 되는데 독일과 스위스에서 어느 정도 명성을 얻긴 했지만 문학인들의 사회에 끼지 못하고 점차 사람들로부터 멀어졌다. 어머니는 우울증 환자였고, 형제중 한명은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했으며 다른 한 형제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 역시 정신병원에 입원, 자살 시도, 마지막 날까지도 집없이 떠돌다가 자신은 조롱만 당하고 성공하지 못한 작가라고 알고 세상을 떠났다.

 

삶이 내 어깨를 붙잡았고, 비범한 시선으로 내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세상은 여전히 살아 있었으며 여전히 가장 아름다운 순간처럼 아름다웠다. 조용히 나는 그곳을 떠나 거리로 나섰다. (17)

<빌케 부인>이라는 글의 마지막 부분이다. 하숙하던 집의 늙은 여주인 빌케 부인이 죽었고, 며칠 지난 후 그녀가 쓰던 방을 들어가본 그는 허무함과 덧없음때문에 꼼짝없이 서서 한참을 마비된 듯 서있어야 했다. 허무함과 덧없음을 느끼게 하지만 거기서 끝나게 하지 않고 그래도 내 어깨를 붙잡아주는 삶. 비범한 시선으로 내 눈동자를, 다른 곳도 아니고 눈동자를 들여다보는 삶에 대한 우리의 응답은, 그래도 여전히 살아있는 세상을 향해 다시 나아가는 것이 아닌가.

 

수십편의 짧은 글 모음집이라지만 어떤 글은 정말 짧고 어떤 글은 꽤 길다. 어떤 글은 짧은 소설 같고 어떤 글은 일기 같다. 어떤 글에서는 동물이 의인화되기도 하고 어떤 글은 그림이 주인공이 되어 말을 하기도 한다. 가령 <세잔에 대한 생각>이라는 글에서는 그는 이렇게 그만의 그림 보는 방식, 태도를 보여 준다.

그가 과일들의 처지를 가엾게 여겼을 것이 분명하고, 그런 다음에는 문득 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에 빠져 들었을 것이며, 하지만 무엇 때문에 그런 감정이 드는지 그 이유는 오랫동안 전혀 알지 못했을 거라는 뜻이다. (244)

그가 마법을 써서 종이 위로 옮겨놓은 꽃들은 식물 특유의 흐느적거림을 그대로 유지한 채로 여전히 이파리를 떨었고, 방종한 몸짓으로 미소를 머금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식물의 살덩어리, 특별한 천성에 깃든 불가해한 비밀의 정신을 표현하는 일이었다. (248)

 

식물의 살덩어리, 불가해한 비밀의 정신이라니.

그는 세잔이라는 화가의 그림을 보기 시작하다가 그 그림을 그린 화가의 마음 속에 들어가 그림을 그린 화가의 마음을 읽어보았고, 나아가 그림 자체와 그림을 보는 자신을 일치시켜 교감하였다. 그는 모든 지나간 것, 옆에 없는 존재에 마음이 끌리는 사람이었다. 그것들과 교감해보고 그것들이 하는 말을 듣고 싶어하는 마음이 아니었다면, 어느 미술 평론가라 한들 저런 글을 쓸 수 있을까?

 

길이로 보면 이 책에서 가장 긴 글에 해당하는 <산책>에서 묘사되는 산책이란,  보통 생각하는 것 처럼 그저 여유롭게 길을 따라 걷는 행위가 아니다.

산책자는 사물을 오직 바라보고 응시하는 행위 속에서 자신을 잊을 줄 알아야 합니다. 자신과 자신의 비탄, 자신의 용기와 결핍, 자신의 모든 궁핍을, 산책자는 마치 용감하고 투철하고 헌신적이며 모든 자질이 입증된 군인이 전쟁터에서 그러듯이, 전부 무시하고 개의치 않고 잊어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성실하고 헌신적으로 자신을 지우고 대상에 몰입하여 자신을 잃는 행위, 모든 사물과 현상에 품는 열렬한 애정은 마치 의무를 완벽하게 의식하고 수행하는 일이 내면의 큰 기쁨이자 충만함인 것처럼 그렇게 큰 행복감을 산책자에게 안겨줍니다. 그저 그런 산책자 이상의 존재로 상승시킵니다. (342)

산책이란, 자신이 무책임한 그저 그런 산책자가 아니라는 확신을 주는 행위이며, 머릿속으로는 치열하게 생각하고 관찰하면서 다양한 사물들에게 말을 건네는 행위.

우리가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이 우리를 이해하고 사랑한다. (349)

 

로베르트 발저. 그에게 산책은 곧 삶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이 현실로 구체화된 것이었다. 그의 생의 마지막도 눈내린 산책길에서였다니까.

 

이런 것은 한 번도 읽은 적이 없어.

나는 매혹되었다. 나는 펄쩍 뛰어오를만큼 매혹되었다.

이 책을 번역한 소설가이자 번역가 배수아의 말이다. 그녀의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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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7-07-13 0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매혹적인 글이에요.^^
로베르트 발저, 모르는데, 궁금하네요.

hnine 2017-07-13 07:25   좋아요 1 | URL
오타도 수정하지 않고 그냥 올려버렸는데 벌써 읽어주셨어요 ^^
매혹적인 책이랍니다.
산책은 누구와 같이 하기 보다 혼자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가, 누구와 함께 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굳이 산책을 택했을까...하는 생각도 들어요.
저도 이 책으로 로베르트 발저라는 사람을 처음 알게 되었어요. 문장이 독특합니다. 한번 읽어보세요.

프레이야 2017-07-13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담아갑니다. 특히 세잔의 정물화를 보고 쓴 문장이 마음을 잡아끌어요. 세잔의 아뜰리에를 찾았던 햇살 가득한 날이 생각납니다. 정물로 재현되어있던 과일들도요.

2017-07-13 07: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7-07-13 08:18   좋아요 0 | URL
정물은 사실 죽어있는 사물이라고 생각하기 쉽잖아요. 그런데 말씀하신 것 처럼 거기서 다시 생명을 재현해낼 수 있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이 책의 저자 같은 사람이요. 살아있는 것 뿐 아니라 죽어있는 것들에조차 연민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의 마음을, 글을 읽으며 헤아려 볼 수 있는 것으로도 행복했어요.
세잔의 아뜰리에 직접 가보면 어떤 느낌일까요. 저는 상상의 즐거움을 누려봐야겠어요.
제가 좋아하는 구절을 함께 좋아해주셔서 좋고, 오자 알려주셔서 감사드려요.
햇빛이 벌써 힘부리기 시작한 아침입니다 ^^

꿈을 향해서 2017-08-20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 한 번쯤 읽어보고 싶네요 우연히 이 책이 내 눈에 또 들어온다면 부러 읽어봐야겠어요!

hnine 2017-08-20 22:45   좋아요 0 | URL
이 책이 꿈을 향해서 님 눈에 또 들어온다면, 우연이 아니라 인연이다 여기고 읽어 주시길~ ^^
 

 

 

 

 

 

 

 

 

 

 

 

 

 

 

 

 

 

 

 

저녁 설겆이까지, 하루 일과를 모두 마친 후 저녁 9시쯤. 나가서 아파트 주위를 한 바퀴 어기적 어기적 걷고 들어오면

그날밤 잠이 훨씬 푹 드는 느낌이다. 느낌인지 실제 그런지 모르겠지만 느낌만 그래도 좋다.

조명을 받으니 낮에 보는 것과 완전 다르게 보이던 담벼락의 나무와 꽃.

낮에는 분명 꽃이 저런 빨강 아니고 잎이 저런 초록 아니었는데.

 

 

 

 

 

 

 

 

 

 

 

카페와 식당 같은데 가면 그곳의 천장을 찍어보는 버릇이 생겼다.

아래 사진의 천장을 우물형 천장이라고 한다고. 나는 보자마자 바로 한칸씩 잘라먹는 초코렛이 떠올랐는데 ^^

그런데 왜 우물형 천장이라고 하지? 아마 한자의 우물 정자 처럼 생겨서 그런가보다.

 

 

 

 

 

 

당근 케잌을 참 좋아하는데, 카페에서 커피와 함께 주문했더니 비싸기도 비싸고, 덜 달았으면 좋겠고, 층층이 들어가있는 프로스팅 대신에 케잌으로만 되어 있으면 좋겠고.

그래서 그냥 만들어봤다. 프로스팅 생략했더니 만들기도 간단하고 버터 대신 포도씨유 넣고 만들었더니 폭신폭신 찜케잌 느낌도 나고.

원래 당근 케잌의 모양은 아니어도 나한테는 99% 만족스런 맛이었다. 이게 문제야. 나는 내가 만든 건 뭐든지 맛있다는거. (나만 맛있어 한다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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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7-07-03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만든것보다 남이 만들어줄때 더 맛있지만, 내가 만들때 완전 맛있으면 물개 박수 나온답니다. ㅎㅎㅎㅎ
당근케잌 맛잇어 보여요~~

hnine 2017-07-03 20:2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입에 착 붙는 맛이라기보다 건강한 맛이라고 자무합니다.
원래는 층층이, 또 맨 윗면에 하얗게 프로스팅 들어가고 맨 위엔 견과류도 좀 뿌려주고, 더 멋 내자면 작은 당근 미니어처로 위에 장식도 하고 그래야 하지만 그런건 아마추어에겐 당치 않은 얘기지요 ㅋㅋ

Joule 2017-07-04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줄 님이 첫 번째 사진을 좋아합니다. ㅋ

내가 만든 건 뭐든지 맛있는 거 그거 좋은 거예요! 저는 정반대거든요. 전 제가 만든 거 대부분 맛없어요. 근데 또 나가서 먹어보면 다른 음식들도 거의 다 맛없더라고요. 거의 언제나 실망하게 되는 맛이랄까. 그래도 먹긴 잘 먹어서 살은 또 안 빠지네요. 헤헤헤 요즘 저는 기승전살입니다.

hnine 2017-07-04 13:27   좋아요 0 | URL
양을 조금씩 만들면 음식 맛 내기가 더 어렵더라고요. 저는 딱 한번 먹을 만큼 만들자 주의라거 그렇게 하니 국이고 김치고 반찬이고 별로 맛이 없는데 에라 모르겠다 하고 volume up 시켜 만들었더니 맛이 좀 나지뭡니까. 그렇다고 식구 적은데 매번 그럴 수도 없고 말이예요.
저는 기승전 까지 가지도 않아요. 기 다음에 바로 살. ㅋㅋ

stella.K 2017-07-04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왕, 멋집니다!!
이젠 천장도 접수하셨군요.ㅋ.
역시 사진을 찍으면 보는 게 남달라지는가 봅니다.^^

hnine 2017-07-04 20:57   좋아요 0 | URL
저 원래 천장 잘 쳐다보거든요 ^^
정말 사진 찍을 생각 하고 있으면 저도 모르게 유심히 보게 되고 방향을 바꿔가며 보게 되고 그렇더라고요. 그 재미인가봐요. 멋지다고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