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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홀름, 오후 두 시의 기억 - 북유럽에서 만난 유쾌한 몽상가들
박수영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1. 스웨덴에 대한 나의 기억
예전에 즐겨보았던 '세계의 어린이들'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 본 스웨덴은 깨끗하고, 눈으로 덮여 있는, 맑고 투명한 세상이었다. 영국에 있을 때, 하이스트릿 한 골목길에, 영어는 아닌 것 같은 제목의 간판을 단 조그만 가게가 있었는데 (ORDIN- 어쩌구 하는) 가방, 문구류, 카드, 노트, 필기도구 등을 파는 곳이었다. 디자인도, 색상도 복잡하지 않으면서 세련되었고, 모던하면서도 품위가 느껴져 탐나는 것들이 많았는데 가격을 보면 그야말로 허걱할 지경. 단순한 디자인의, 그리 크지 않은 가방이 약 십오년 전에 200파운드 (당시 우리 돈으로 약 40만원?)가 좀 넘었으니까 그 당시 내 형편으로는 구경으로 만족해야 했었다. 나중에 스웨덴에서 온 아이에게 그 가게 이름과 그 가게에서 파는 물건들의 상표명을 대니 금방 알아들으며 스웨덴에서는 꽤 알아주는 디자인 회사라고. 그래서 그때 알게 되었다. 스웨덴,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이 디자인 강국이라는 것을.
'오써' 라는 이름의, 위에 말한 그 스웨덴에서 온 아이는 나보다 나이가 어린 여학생이었는데 하얀 피부에 금발 머리, 마른 몸매의 다소 차가운 인상이었고, 멋을 대놓고 내지 않아도 그녀 특유의 멋이 우러나는, 북구 미인이었다. 말이 별로 없었지만 말을 할줄 모르는 것은 아니어서 누가 말을 시키면 말을 잘 하지만 먼저 나서서 말을 하는 타입은 아닌 것은, 영국 사람들과 비슷하나 그 수준이 한수 위였다. 외톨이는 아니지만 혼자서 하는 것을 즐겼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생활에 배어있는 듯. 네덜란드, 독일 출신들 만큼이나 영어를 잘했고, 그래서 그런지 은근히 사람 차별하는 영국 아이들이 만만히 보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2. 이 책의 저자에 대해서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1997년에 등단하여 이미 두 편의 소설을 출간한 엄연한 작가. 그럼에도 문장에 기교가 넘치거나 문학적인 표현들로 자신의 생각을 나타내느라 애쓴 흔적이 없다. 오히려 절제되어 있고, 주관적인 생각보다 객관적인 사실들을 연관시켜 생각하는 흔적이 보인다. 역사적 배경, 민족적 특성, 철학적 근거 등. 학자의 자세랄까?
이화여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가 그만 두고 서울대 철학과에 입학. 굳이 나이가 궁금하다면 84학번. 나보다 무려 1년 연배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작가가 되었고 2006년, 마흔이 넘은 나이에 홀연히 스웨덴의 웁살라 대학 역사학과 석사 과정으로 유학길에 오른다. 스웨덴으로 떠나기 몇년 전 유럽 여행을 하면서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는 이 없고 반가와 하는 이도 없는 완전한 익명성, 그 새로운 존재 방식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에게 좀 덜 알려져 있고 덜 화려하고 들뜬 곳, 차분한 곳을 생각하다가 스웨덴을 선택하게 되었다고.
스웨덴 공항에 처음 도착해서 무거운 짐가방을 질질 끌고 가는 동안, 이런 광경을 그냥 두고 못보고 얼른 도움을 자청하는 런던의 경험과 달리 아무도 나서서 눈길을 주지 않는 것을 보고, 그렇게 겨우 빠져 나온 공항에서 아래 위 검은 옷을 입고 목도리를 휘날리며 혼자 자전거를 타고 가고 있는 금발의 스웨덴 여자를 보며 새로운 눈이 트이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결혼, 나이, 전공, 이런 것으로부터의 구속보다 그녀의 자유 의지가 더 컸기에 가능한 삶. 역사학 공부를 하면서 한편으로는 단편 소설 몇편을 완결시키기 위해 늘 책상위에 노트를 두고 있었다는 그녀의 이름을 기억해두고 있어야겠다.
3. 이 책에 대해서
저자가 간소하고 품위있는 나라라고 말한 스웨덴. 저자가 주로 지낸 곳은 웁살라대학이 있는 웁살라임에도 제목에 스톡홀름이라고 되어 있는 것이 이상하다. 아마 웁살라보다는 스톡홀름이 사람들에게 더 알려진 곳이어서 그런가? 식물의 명명법을 제창한 식물학자 린네가 다닌 대학이 웁살라 대학, 그래서 내게는 웁살라라는 지명이 낯설지 않은데 남편에게도 물어보니 고개를 갸우뚱한다. '스톡홀름, 오후 두시의 기억'이라는 제목에서 오후 두시는 겨울에 스웨덴에서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저자가 그렇게도 좋아한다는 미스틱한 어두움의 시각을 제목으로 삼은 것이다.
글을 쓰는 작가 답게 쿤델라를 비롯해서 문학가, 문학작품 얘기가 종종 나온다. 철학을 전공한 사람답게 철학자와 그의 사상 얘기도 자주 나온다. 유럽의 어느 나라에 있든지 전범국으로서 독일에 대한 얘기는 늘 끊이지 않는 이슈인 것 같다. 그에 따른 정치 이야기, 역사 이야기 등, 저자는 함께 공부하는 여러 국가 출신의 학생들의 이야기 틈틈이 유럽 전반에 걸친 사회 현상과 역사에 대해, 그리고 그에 따른 우리 나라의 문제, 아시아의 주변 상황들에 대한 자기 생각, 그 생각의 근거들을 여기 저기 피력하고 있다. 그래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함께 생각해보게 한다. 그녀의 이력이 그렇듯이 생각이 어느 한군데 고여 있지 않은 것 같아 읽으면서 느낌이 좋았고,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에 지나치게 치우치지 않고 절제력있고 담담한 어조로 조금씩 풀어놓는 방식도 마음에 들었다.
스웨덴은 사회민주주의라는 방식을 택한 나라. 사회주의와 민주주의의 혼합형태라고 보면 될까? 빈부차가 적고 권위로 해결하려 들지 않는 나라. 우리가 말하는 소위 의사, 판사, 정치인 등의 부유층과 수입면으로 최하위층인 노동자 층의 수입 차이가 세배 정도 밖에 나지 않는 것은, 많이 버는 사람에게는 그만큼 많은 세금을 부과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 세금을 견뎌내지 못하고 외국으로 이민가는 사람이 있을 정도.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무료로 공부할 수 있는 것을 물론이고, 저자가 공부할때만 해도 비유럽권 유학생에게까지도 학비 혜택을 주었었다니, 돈 없어서 하고 싶은 공부 못할 수는 없는 나라이다. 남녀에 대한 차별 의식이 없어 여자이기 때문에 받는 부당한 대우도 없고 여자의 외모, 미모를 중시하는 사회도 아니라고 한다. 출산을 앞둔 임산부 앵커가 버젓이 TV 뉴스에서 일기예보를 진행하는 것을 보고 처음에 깜짝 놀랐다는 저자는 스웨덴에서는 오히려 남자가 내성적이고 온순해보이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고. 여자라고 해서 짐을 들어준다던가, 별로 힘이 들지 않은 일도 남자들이 달려들어 도와주려고 한다든가, 그런 일도 없단다. '차가운 등'이라고 표현한 이런 습성은 남녀의 역할과 상하를 구분짓지 않는 그들의 사고 방식에서 나온 것이다.
함께 공부하며 마음껏 우정을 나눈 친구들. 마음껏 누린 스웨덴의 낯선 공기가 익숙해질 무렵, 3년 만에 그곳을 떠나면서 아쉬움과 그리움을 얘기하는 대신 이런 여러 가지를 누릴 수 있어서 내 생활이 풍요로왔고 행복했다고, 그래서 스웨덴을 떠나면서도 슬프지 않다고 그녀는 말한다. 책 중에서 그녀가 인용했던 다음 구절처럼.
고향을 감미롭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허약한 미숙아이다. 모든 곳을 고향이라고 느끼는 사람은 이미 상당한 힘을 갖춘 사람이다. 그러나 전 세계를 타향이라고 느끼는 사람이야말로 완벽한 인간이다. -에드워드 사이드 <오리엔탈리즘> 중에서-
그녀가 좋아한다는 라흐마니노프의 피협을 마치 처음 듣는 사람처럼 다시 들어보고 싶고, 그녀가 자란 곳 춘천에서 부모님과 함께 즐겨 갔다는 까페 '헤븐'에도 언젠가 한번 가보고 싶다.
스웨덴? 스웨덴에도 가보면 좋겠지. 하지만 중요한 것은 스웨덴에 가보고 안가보고, 거기에 있는 것 같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