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함께 글을 작성할 수 있는 카테고리입니다. 이 카테고리에 글쓰기

열다섯 살 하영이의 스웨덴 학교 이야기 - 창의.다양.여유를 배운다 양철북 청소년 교양 8
이하영 지음 / 양철북 / 200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만약 1~2년 동안 다른 나라에서 살 기회가 생긴다면 어느 나라에 가서 살아보고 싶은가? 가끔 그런 상상을 한다. 미국은 제외 1순위. 잘은 못해도 최소한 영어가 통하는 나라여야 사는데 덜 불편할 것 같아서 일단 유럽의 여기 저기를 기웃거려본다. 유럽은 어느 나라를 선택하든 그 나라 외의 다른 유럽의 여러 국가를 다녀보기 좋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영어가 통하면서 우리와 많이 다른 문화와 사고 방식을 느끼고 배울 수 있는 곳이라면, 아주 거기 눌러 앉아 사는 것만 아니라면 잠시 살아보기에 좋겠다 생각하던 중이었다. 그러다가 박 수영의 <스톡홀름, 오후 2시의 기억>를 읽으며 스웨덴이라는 나라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 사회주의 국가 스웨덴.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와 참 많이 다른 사회라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호, 불호를 말하기에 섣부른, 그저 관심의 단계였을 뿐, 더 알아볼 기회를 찾고 있던 중 이 책을 보게 되었다. 어른의 관점이 아닌, 열 다섯 살 여학생의 눈으로 본 스웨덴은 어땠을까. 

이 책의 저자 이 하영 양은 이 책이 나올 당시, 그러니까 2008년에 우리 나이로 열 다섯 살. 우리 나라로 치면 중학교 2학년이었다.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미국을 거쳐 스웨덴으로 이주하여 스톡홀름에 있는 에즈베리 학교 8학년에 재학 중이던 때에 이 책을 썼다. 미국에서 이미 해외 거주 경험을 겪어보았던 하영 양 임에도 스웨덴은 참 많이 생소한 나라였다. 언어가 다른 것은 그나마 영어가 웬만큼 통하니 문제가 덜 되었는데, 도대체 공부를 시킬 생각이 없어 보이는 학교 생활은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수업 시간보다 더 긴 쉬는 시간, 시험이라곤 거의 없고 시험을 봐도 등수가 매겨지지 않으니 누구도 신경을 크게 쓰지 않는 것 같다. 새로운 소식에 관한 토론 수업이 있어서 베이징 올림픽과 티베트 사태, 환율 변동 같은 이야기를 나눌 때도 있고 또 어느 주는 스웨덴의 유명한 과학자와 발명가들을 주제로 토론을 하는 학교. 30분이나 되는 쉬는 시간에 교실에 남아있고 싶어도 신선한 공기를 쐬어야 한다며 밖으로 다 내보낸다는 학교. 방과 후 학원이나 과외 같은 것이 없기 때문에 수업이 끝나면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거나 축구장에 가서 축구를 하는 것이 보통이라는 나라. 우리 나라 중학생들의 생활을 아는 저자에게 이런 것들이 얼마나 생소하겠는가.  

장래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라면 우리 나라 학생들은 그 직종이 몇가지 안에서 다 나오는 반면 스웨덴 학생들은 매우 구체적이고 다양한 직업들을 말한다고 한다. 버스 운전사, 스튜어디스, 경찰, 사진사, 농부, 수의사, 건축가, 디자이너, 드럼 연주가, 무용수 등등.
참고로 스웨덴에서는 교사와 의사는 직업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계속 일하기 어려울 만큼 댓가가 적기 때문에 수입을 중요시 한다면 선택하지 않을 직업이라는 것.  

제일 놀라웠던 것은 스웨덴의 고등학교 프로그램이었다. 대학 진학을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당장 직업 전선에 뛰어들수 있도록 교과 과정이 매우 다양하게 세분화되어 있는데 이것이 그야말로 '전공'인 셈이다. 몇가지 공통 과목 외에 스웨덴 고등학교들이 제공하고 있는 프로그램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어린이와 여가 프로그램
-건축 프로그램
-전기 프로그램
-에너지 프로그램
-예술 프로그램
-탈것 프로그램
-상업과 경영 프로그램
-손작업 프로그램
-호텔과 레스토랑 프로그램
-산업/공업 프로그램
-과학 프로그램
-자연 프로그램
-미디어 프로그램
-사회학 프로그램
-간병, 간호, 보육 프로그램
등등.
자신이 직업으로 하고 싶은 분야에 따라 프로그램을 정할 수 있게 되어 있어, 거의 모든 학생들이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고, 수능을 잘 보고 유명한 대학을 가기 위한 과정으로 전락한 우리 나라 고등학교 교육과는 기본부터 다르게 실질적인 교육의 장이 되고 있는 것이다.
대학의 간판을 보고 일단 입학했기에 대학생이 되어 자기 적성에 대한 고민을 다시 하며 방황하고, 따로 학원엘 다닌다, 자격증을 딴다, 스펙을 갖춘다 하며 이중 생활을 해야하는 우리 나라 대학생들의 현실도 다시 되돌아보게 한다. 

물론 스웨덴의 모든 시스템이 한국보다 나았다는 것은 아니다. 일요일이면 문이 굳게 닫혀 있는 경찰서라든지, 비싼 교통 요금, 우리 나라에 비해 너무나 천천히 돌아가는 행정 관료 체계 등.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한국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 많더라는 것은 미국이 아닌 다른 유럽 국가를 가보면 많이들 느끼는 것인가보다. 중국, 일본과 구분 못하고 그나마 한국을 아는 사람이라면 남한에서 왔는지 북한에서 왔는지 부터 물어보는 사람들.
스웨덴 인구가 2008년 당시 1000만 정도란다. 우리 나라의 서울만 해도 인구가 몇이더라? 역사, 문화 외에도 현재 사회 구조가 참 다를 수 밖에 없다는 생각도 든다.
열 다섯 살 나이에 참 귀한 경험을 하고 있다. 스웨덴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었다. 먼저 읽은 책 <스톡홀름, 오후 두시의 기억>과 많이 다른 느낌을 받는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오기 2011-03-21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국에 살아보면 많은 것들에서 배우고 깨우침을 받고... 좋을 거 같아요.
스웨덴 학교는 우리나라 학생들이 부러워할 만하군요.^^

hnine 2011-03-22 21:48   좋아요 0 | URL
외국에 가서 아주 살라고 하면 저는 싫을 것 같은데 이렇게 잠시 살아보는 것은 말씀하신대로 값진 경험이 될 것 같아요. 특히 청소년 시기엔 더욱 그렇겠지요. 우리 나라 교육도 입시 위주가 아닌, 이렇게 실질적인 교육이 된다면 좋겠어요.

카스피 2011-03-22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스웨덴 고등학교에 대한 TV프로그램을 본적이 있는데 정말 우리 청소년들에게는 천국같은 곳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hnine 2011-03-23 06:25   좋아요 0 | URL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공부를 무척 좋아하는 학생이라서, 그런 스웨덴의 학교를 꼭 천국처럼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더군요. ^^
 
길 위의 소녀
델핀 드 비강 지음, 이세진 옮김 / 김영사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잠시 지나가는 길이 아니라, 내 인생 자체가 길 위에 있다는 느낌을 아는가? 더구나 그것이 어디로 이어진 길인지 모른 채, 어디로 방향을 틀어야할지 모른 채, 길 위에 놓여있다는 기분말이다.
해도 자취를 감춰가는 어스름 집으로 향할 때, 이렇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가서 보살피고 얼굴 마주 할 가족이 있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할 때가 있다. 하루도 큰소리 안나는 날 없고, 얼굴 붉히며 언쟁을 벌이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본명이 놀웬이지만 스스로 자기를 '노(No)'라고 소개하는 열 여덟살 노숙자 소녀와, 두번이나 월반을 해서 이미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열 세살 지적조숙아 소녀 '루'가 있다. 학교가 끝난 후에도 집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역 근처를 서성이기 좋아하는 '루'가 '노'를 처음 만나는 장면이다.

노: "너 여기서 전에도 몇 번 봤어. 뭐 하려고?"
루: "사람들 구경하러 왔어."
노: "아, 사람들, 집에는 사람이 없어?"
루: "있어. 그런데 그건 좀 다르잖아." (18쪽)

그래, 그건 좀 다르지.
루가 태어난 이후 루의 동생을 낳고 싶어 오랜 동안 노력 끝에 어렵게 아기가 태어났지만 태어난지 얼마 안되어 세상을 떠나자 그 충격과 슬픔으로 정신줄을 놓아버린 엄마와, 역시 슬픔에서 완전히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아빠 사이에서 루는 외롭다. 늘 의자에 몸을 파묻고 앉아 꼼짝않고 있는 엄마의 그 허무의 눈동자를 루는 혼자 감당하느라 더욱 조숙해져만 간다. 내가 정을 붙일 수 있을 사람, 진정으로 살아 숨쉬는 사람의 움직임을 보고 느끼고 싶어 루는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관찰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다 기차역에서 담배 가진 것 있으면 달라고 말붙이는 노를 처음 만나게 되고, 아빠가 누군지도 모르고, 엄마에게 버림받고 노숙 생활을 하고 있는 노에게 끌리게 된다. 노의 생활 속에, 삶 속에 들어가 그녀가 이 세상에 혼자라고 느끼지 않게 해주고 싶은 루의 마음은 마침내 루의 부모님과 부딪히게 되고, 그 자리에서 루는 말한다.
"우린 내 놓은 애들이잖아요."
결코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이 두 소녀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런 공통점이 있었던 것이다. 아이큐 160에, 언제나 일등을 놓치지 않는 루는 자기 또래와 어울리지 못하고 집에서도 남모르는 아픔이 있기 때문에 그 나이때의 아이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낀다. 어디로 갈지 몰라 방황하는 노 옆에서 떠날 줄을 모르며 지하철 역을 함께 돌아다니며 루가 하는 생각을 봐도 그렇다.

고개를 들어보니 우리는 어느새 지하철 광고판 아래 서 있다. 향수 광고인데 한 여자가 커다란 가죽가방을 메고 머리칼을 휘날리며 단호하고 역동적인 모습으로 걸어가는 사진이다. 여자는 모피 코트를 입었고 뒤편으로는 황혼 무렵의 도시, 거대한 호텔이 보이고 불빛들이 반짝반짝한다. 한 남자가 여자에게 홀딱 매료당해서 뒤를 돌아보고 있다.
광고 포스터와 현실의 괴리. 이건 어떻게 해서 시작되었을까? 현실이 광고에서 멀어진 걸까, 아니면 광고가 현실에서 이탈해버린걸까? 도대체 언제부터? 뭐가 잘못된 걸까? (246쪽)

 루가 노를 떠날 수 없고 옆에 머물고 싶었던 이유는 노의 부모를 찾아주기 위해서도, 노에게 집을 마련해주는 것도 아니었다. 노가 이 세상에 혼자라는 것, 아무도 자기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느끼지 않게 해주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사는 형태는 다르지만 루 역시 알고 있는 느낌이기에.
이런 순수한 느낌은 완전히 어른이 되기 전의, 이 시기에만 가능한 것일까?
원제가 No et Moi (No and I). 즉 노와 나이다. 우리 나이로 올해 마흔 여섯인 프랑스 작가 델핀 드 비강의 세번 째 소설. 번역된 것을 읽었음에도 눈에 들어오는 개성있는 문장 표현들이 많았다. 그녀의 작품을 읽는 것을 이것으로 끝내게 하고 싶지 않게 하는구나.

 

 

 

 

 

 

 

 

 

 

 

 

 


댓글(8)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녀고양이 2011-03-17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길 위에 있어서 다행이고
아는 길 위에 있을 때는 목적지를 잡고 열심히 할 수 있어서
모르는 길 위에 있을 때는 예측할 수 없는 앞날이 흥미진진해서
멋지다고 생각하고 살려고 노력 중입니다.

그리고 타인을 수용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단지, 노력 중입니다.. ㅎㅎ

hnine 2011-03-17 13:34   좋아요 0 | URL
이 책에서는 '노숙'의 의미로 붙인 제목이지요.
넓게 보면 우리는 모두 어떤 길 위에 있다고 생각되는데 말씀하신 '길 위에 있어서 다행' 이라는 말의 의미를 알 것 같아요.
타인을 수용한다는 것 역시 말씀하신대로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계속 노력을 요한다는 것도 동의하고요.

무해한모리군 2011-03-17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본은 표지가 왜 저렇게 됐을까요?

누군가를 전면적으로 온전히 만났다는 느낌을 가져본게 언젠지 기억도 안나네요..

hnine 2011-03-17 13:38   좋아요 0 | URL
나와 아주 다른 사람에게 끌리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경우엔 끌리는 감정을 느껴도 쉽게 다가가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알고 보니 나와 어딘가 나와 비슷한 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특히 그것이 나의 어떤 깊은 내면의 비밀 같은 것일 때 그 사람과 전면적인 관계를 맺고 싶어지는 것 아닐까요.
전면적으로 온전히 만났다는 느낌은 만나는 순간 파박 하고 느껴지는 것일까요, 아니면 차츰 느껴가는 것일까요.

하늘바람 2011-03-17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본 표지 이야기하니 웃음이 나오네요
그 과정들이 뻔히 보여서
주인공들이 재미있는 설정이네요(물론 주인공자체가 재미있는건 아니지만 정말 흥미진진하네요) 저도 봐야겠어요

hnine 2011-03-17 13:40   좋아요 0 | URL
누가 노숙자 청소년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해서 저도 찾아보다가 알게 된 책이랍니다.
표지는 뭐, 저는 내용에 비해 크게 중요시 하진 않지만 책을 만들고 출판하시는 분들 입장에선 그렇지 않겠지요.
말씀하신대로 캐릭터가 잘 살아있는 작품입니다. 더구나 위에도 썼지만 베껴두고 싶은 표현들이 많았아요. 하늘바람님도 한번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양철나무꾼 2011-03-19 0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적조숙아라고 하면 전 '고슴도치의 우아함'이 생각나요.
이 리뷰를 읽으면서 전 아들 또래의 아무것도 모르면서(관심도 없고) 아들을 이해한다고, 그리고 사랑한다고 했던 게 아닌가 싶었어요~ㅠ.ㅠ

hnine 2011-03-19 06:31   좋아요 0 | URL
관심도 없는건 아니시겠지요.
우리가 거쳐간 시기이니 어느 정도는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넘겨 짚기가 쉬운 것 같아요.
 
자신있게 살아라 - 가장 소중한 이에게 전하는 행복의 메시지
앤드류 매튜스 지음, 홍은주 옮김 / 고도 / 199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무슨 이유로 내가 이 책의 제목을 수첩 한 귀퉁이에 적어 놓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해 지난 수첩에서 다른 것을 찾다가 이 책의 제목이 적혀 있는 것을 보고 결국 찾아 읽고야 말았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세계적인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의 첫 작품이라는 이 책은 두께도, 내용도 부담없이 읽을만하다. 다 아는 얘기라고 코웃음치게 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책의 후반부로 가면 자연에서 배워라, 물 흐르는 대로 마음 가는대로, 풀어 주고 놓아 주어라, 마음껏 현재를 누려라 등, 자기 계발서라기 보다는 동양적인 사상을 얘기하고 있는 것 같은 내용들이 많았다.
리뷰를 대신해서 메모해두고 싶은 내용 몇가지를 옮겨본다.

지금을 산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을 가로막고 가두는 것이 아니라 더 유쾌하고 향기롭게 만들어야겠다고 거듭 다짐하는 것이다. 지금을 충실하게 누리고 살면 우리 마음에서 두려움이 사라진다. 움직이지 않을 때, 힘 없이 손도 넋도 놓아 버리고 있을 때, 누구든 격렬한 두려움의 포로가 된다. 무언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정말 무언가 하는 순간, 두려워하는 마음은 깨끗이 사라진다. 언제쯤 보상받을까 조바심 내지 않고 다만 무엇엔가 몰두하라. 그것이 바로 지금을 사는 지혜이다.
마음을 비우고 평화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움직여야 한다. 무엇이든 하고 무엇에든 열중하라. 그래야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다. 무엇이라도 좋다! 아무 것이든 하라! 옛 친구한테 전화를 걸든지, 새 친구를 사귀든지, 체육관에 가든지, 아이들을 공원에 데려가든지, 하다 못해 이웃집 정원 손질이라도 도우며 현재에 몰두하라. (71쪽)
앉아서 걱정만 하는 것만큼 최악이 없다는 얘기이다.

기다릴 때는, 아니면 우리가 간곡히 원하는 뭔가를 기다릴 때는 시간이 지독히 더디 간다. 즉 기다릴 수록 오래 걸린다.
행복해지기 위해 '무엇'에 집착한다면 그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우리가 처한 환경이란 생각보다 심술궂다. 우리가 꼭 그렇게 주장한다면 오히려 반대되는 결말을 초래할지도 모른다.
삶으로 뛰어들라. 바로 지금을 누리며 살아라. 한 가지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다른 일을 하라. 그렇게 하면 결과에 대해 그다지 연연하지 않을 수 있다. 내버려두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74쪽)

여기서 '내버려 둔다'는 것을 평소에 나는 '마음을 비운다'로 바꿔 말하기 좋아한다. 기대와 기다림으로 머리속을, 마음속을 꽉 채우고 있을 때보다 오히려 한켠으로 밀어놓고 잊은듯이 다른 일에 매진할 때 그것이 이루어지는 경험을 종종 한다. 

용서하겠다는 결심은 지금의 삶을 살겠다고 결의하는 것과 같다. 용서하지 않겠다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느니 차라리 과거 속에 살면서 다른 사람 탓이라고 원망할 테야!", 아니면 "내 탓이오, 내 탓이오 하며 살 테야" 라고 소리치는 것이다. 용서하는 일을 뒤로 물러서는 일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누군가를 용서하지 않고 있으면 자신이 괴롭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기도 어렵지만 자신을 용서하기란 더욱 어렵다. 자신이 못난 탓이라고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정신적, 육체적으로 괴롭히면서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쓸데 없는 죄책감을 벗어 던져야 한다. 건강한 몸을 유지하려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듯이 건강한 마음을 갖기 위해서 그에 합당한 노력을 쏟아야 한다.
다른 사람을 원망하는 것은 현실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게으름뱅이의 핑계이다.
우리네 인생과 의좋게 지내면서 지금을 누리며 살 것인지, 저 옛날의 온갖 적의와 싸움 속에 우리를 꽁꽁 묶어 놓을 것인지, 선택은 우리 몫이다. (75쪽)
이건 너무 어렵다. 용서 대신 '포기', '기억에서 지우기'라는 말을 써도 된다면 혹시 모를까.

행복해지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행복이야말로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결심과 결정과 끈덕짐과 자기 수양을 몽땅 쏟아붓지 않으면 안 되는, 삶에서 우리가 직면하는 가장 큰 도전이다. 성숙함이란 우리 자신의 행복을 위해 책임을 진다는 의미이며, 가지지 못한 보다 가진 것에 마음을 쏟겠다는 의미이다.
행복해지려면 행복한 생각에 마음을 쏟아야 한다.(81쪽)

하루에 얼만큼이나 우리는 행복한 생각에 마음을 쏟고 살고 있는지. 단 한 시간이라도?

종종 인생의 목표를 재미있게 사는 것이라고 하는 사람을 보면서, 어떻게 그게 인생의 목표까지 될 수 있나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점차 그 생각이 바뀌고 있다. 아니, 바뀌었다. 재미있게 하고 있지 않는 사람은 그것이 아무리 위대한 일이라도 별로 그 사람이 부럽지 않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보든 간에 자기가 재미있는 일을, 재미있어하며 하는 사람이 더 존경스럽다. 이제라도 그것을 알게 되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잘잘라 2011-03-11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용구 밑에 한마디씩 달아두신 댓구가 더 와 닿습니다.

- 앉아서 걱정만 하는 것보다 최악은 없단 얘기다.
- (용서) 이건 너무 어렵다. 용서 대신 '포기', '기억에서 지우기'라는 말이라면..
- 재미있게 하고 있지 않는 사람은 그것이 아무리 위대한 일이라도 별로 그 사람이 부럽지 않다. [완전 공감!!!]

hnine 2011-03-11 21:52   좋아요 0 | URL
용서는 정말 신(神)이나 할 수 있는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재미있게 하는 사람을 당할 수는 없다고 공자님께서 그러셨던가요? 예전엔 그 의미를 잘 몰랐었어요. 열심히 하는 사람, 잘 하는 사람만 눈에 들어왔는데 언제부터인가 즐기며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완전 공감해주시니 저도 메리포핀스님과 조금 더 가까와진 느낌이 들어요 ^^

마녀고양이 2011-03-12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재미있는 인생을 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싶어요!
하지만 재미라는게 어떤 것이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겠죠.

용서..... 아아, 저는 잘 못 하겠더라구요. 언니 말씀대로 포기나 망각 쪽이.
그렇게라도 잘 살 수 있다면 좋은거 아닐까 하고 저를 토닥토닥. ^^

hnine 2011-03-12 16:15   좋아요 0 | URL
인생의 재미라는 것...글쎄, 그때 그때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사는 것 아닐까요? 2006년 이후로 저는 재미없는 일은 안하고 살기로 작정을 했어요. ^^

꿈꾸는섬 2011-03-13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요새 제 생활보단 아이들 생활에 더 중점을 두고 살고 있거든요. 그랬더니 아이들이 더 많이 밝아지고 자신감도 생기고 긍정적이 되어가는 것 같아요. 그런 모습 보는 것도 즐겁네요.^^

hnine 2011-03-14 04:55   좋아요 0 | URL
아이들이 아직 어리니 아무래도 엄마가 자신의 생활보다는 아이들에 더 중점을 맞추게 되지요. 어릴 때의 아이들은 엄마 에너지의 공급이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자신감과 긍정의 원천이 되는데 한 역할 하는 것 맞다고 생각하고요. 그런 것을 보고 엄마는 보람과 즐거움을 되돌려 받을 수 있으니 좋지요.
 
하드 러브 메타포 8
엘렌 위트링거 지음, 김율희 옮김 / 메타포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1인 잡지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혼자 글을 써서 얇은 잡지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배포하는 것이다. 주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져다 놓으면 관심있는 사람들이 집어다 읽고, 계속 구독하고 싶으면 잡지에 있는 주소로 우표값 정도 보내면 발송해주기도 한단다. 재미있는 아이디어이다. 

나는 감정 결핍이다.

 이렇게 시작하는 이 책의 주인공 존은 소설가를 지망하는 고등학생으로서 '바나나피시'라는 제목의 총 열 두쪽 짜리 1인 잡지를 펴내기 시작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1인 잡지에도 관심을 갖게 된다. 그렇게 해서 '탈출속도'라는 제목의 1인 잡지를 펴내는 마리솔을 만나게 되고 점차 이 4차원 영재 소녀에게 빠져들지만, 스스로 동성연애자임을 밝히고 다니는 마리솔은 존의 감정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른바 하드 러브 (Hard love) 의 시작이다.
여기에 존과 마리솔의 가족 상황도 심상치 않다. 존의 아버지는 단조롭고 가족에 매여사는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엄마와 이혼을 단행하여 집을 나갔고 엄마는 그 이후로 스스로의 동굴에 갖혀사는 생활을 수년간 해왔다. 그런 엄마를 측은해하면서도 동시에 부담스럽고 한심하게 생각하는 존은 막상 엄마에게 새로운 남자가 나타나자 자기의 갈 길에 대해 혼란을 겪으며 더욱 시니컬해진다.
한편 마리솔은 어릴 때 친엄마로부터 버림을 받고 지금의 양부모 밑에서 비교적 이해와 사랑 속에 성장해가지만 자기를 버리고 간 엄마를 늘 잊지 못하면서 원망하기 보다는 이해해보려고까지 노력한다. 그러면서 아빠에게 분노하고 엄마에게 불만을 갖고 있는 존에게, 보내지 않을 것을 전제로 하더라도 부모에게 편지를 써보라고 권한다. 마리솔의 그 충고에 따라 존이 아빠에게 쓴 편지 중 일부가 다음과 같다.

아빠에게

엄마에게 편지 쓰기는 쉬웠어요. 수많은 이유로 엄마한테 화가 나지만 말하고 싶다는 생각은 드니까요. 엄마는 아직도 내가 하는 말을 들어 줄거라는 생각이 든다는 뜻이죠. 아빠는 내 말을 절대 듣지 않겠지만 이건 그냥 연습일뿐이니까 아빠한테도 하고 싶은 말을 써보려고 해요. (...) 아빠를 미워하지는 않아요. 증오는 강한 감정인데 아빠에게는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아서 그런가봐요. 당신은 누구세요? 자신이 바라는 이기적인 생활 방식에 맞지 않는다며 아내와 아들을 떠난 남자. 매주 금요일 밤 아들과 저녁을 먹지만 아들에게 할 말이 없는 남자. 아들이 여자 애를 집으로 데려와서 마리솔의 청바지를 샤워봉에 걸쳐 놓을 때까지는 아들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남자(...) 난 언젠가 정말 멋진 소설을 쓸 거고, 그제야 아빠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질 테고, 세상 사람들에게 "내 아들이에요!" 라고 말하고 싶겠죠. 그럼 난 말할 거예요. "기억나요. 예전에 금요일 저녁 베르투치에서 피자를 먹을 때마다 봤던 사람이군요 (이 아빠는 아들과 만나는 날이면 늘 이 식당에 가서 말없이 저녁을 사주곤 했다). 거기서 나 혼자 저녁을 먹을 때 말이에요."

-아빠를 꼭 닮아 자기 밖에 모르는 아들, 존 프란시스 갈라디 주니어. (188쪽)

멋진 소설가가 될 자질이 보인다는 말 밖에.
마리솔과의 힘든 사랑, 부모 사이에서의 갈등. 어떻게 보면 식상한 주제이지만 작가는 재치있는 대사와 개성있는 캐릭터를 성공적으로 살림으로써 이 소설을 아주 읽을만한 소설로 완성해놓았다.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 나름대로의 개성이 살아있다.
자기정체성, 진실,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상황으로부터의 탈출, 곧 성장. 이것들을 독자들에게 던져 주는 이 소설에서, 힘든 사랑은 성공 여부를 떠나 그 사람의 인생의 퍼즐 일부를 완성시킨다. 더 완성된 사람으로 나가게 하는 것이다. 주인공 존과 마리솔 뿐 아니라, 존의 엄마 역시 자기의 상처에서 힘겹게 빠져 나오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또 언제 어떻게 힘든 사랑을 통해 인생의 퍼즐을 맞춰 나갈지 모르는 일.  

이 책을 읽다 보면 자주 등장하여 궁금해지는 노래와 시와 소설이 있다. 존이 펴내는 1인 잡지의 제목 <바나나 피시>의 유래라고 여겨지는 샐린저의 소설 '바나나피시를 위한 완벽한 날' 이 실려 있는 <아홉가지 이야기>와 시인 John Berryman의 시 Dream song 14, 그리고 밥 프랑케의 노래 Hard Love이다.
<13> 이란 소설집의 필자로 참여한 저자의 글이 재미있어 그녀의 다른 작품을 찾아보다가 읽은 책인데 재미있다. 아마도 그녀의 또 다른 책을 찾아나설 것 같다.  

-- > 작가 홈페이지 

 


댓글(4)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녀고양이 2011-03-12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 바나나피쉬라는 유명한 만화도 있어요, 꽤 충격적인.
바나나피쉬가 마리화나의 은어이지요? 아니면 다른 마약이던가?
그래서 청소년의 반항과 직결되는 용어로 자주 나오나봐요.

편지가 참 좋았어요. 코알라가 제게 쓰는 편지는 어떨까여?
자기 멋대로 하는 엄마, 저기서 별로 나을거 같지두 않아요. ^^

hnine 2011-03-12 16:18   좋아요 0 | URL
아, 그래요? 바나나피쉬라는 만화가 있는 것도 몰랐고, 마리화나의 은어라는 것도 몰랐어요. 바나나피쉬라는 물고기가 정말 있는데 좀 특이하긴 하지요. 전 그것만 알고 있었네요. 청소년의 반항과 직결되는 용어라...
저 책에서 캐릭터가 잘 살아있다고 했는데 저는 아빠의 입장도, 엄마의 입장도 이해가 아주 안되지는 않더라고요. 주인공 남자아이의 입장은 물론이고요. 작가가 글을 잘 썼어요.

하이드 2011-03-12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나나피쉬, 셀린저 단편 중에도 있지 않나요? 뭔가 바닷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바나나피쉬, 전쟁때 군인들이 썼던, 마리화나보다 더 강한 그런 마약.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가물가물하네요.

쨌든, 1인잡지 같은거 늘 하고 싶어하고 있어요. 링크해주신 페이퍼 가봐야겠어요.

hnine 2011-03-13 06:45   좋아요 0 | URL
바나나피쉬, 샐린저의 <아홉가지 이야기> 에 실린 단편 중 하나라고 안그래도 위에 적어놓았어요.
1인 잡지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꽤 있을 것 같은데 요즘은 워낙 블로그가 대세라서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지 않나 싶네요. 더 편하고, 반응이 빠르니까요. 그래도 활자화된 것이 가지는 매력이 있는데 말이지요. 자기가 쓰는 글에 대한 책임감도 좀 더 할 것 같고요.
 
13: Thirteen Stories That Capture the Agony and Ecstasy of Being Thirteen (Paperback)
Howe, James / Atheneum / 200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현재 활동하고 있는 미국 작가 열 세명이 모여 열 세살을 주제로 한 이야기를 담아 책으로 펴냈다.
우리 소설 중에도 열 세살이라는 제목을 가진 작품들이 있고, 제목은 아니더라도 그 나이 주인공이 등장하는 작품들이 많이 나와있는데 다른 나라의 작가들은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냈을까 궁금했다. 어린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나이, 동시에 어린이이면서 어른이기도 한 나이.
"13이 그토록 재수없는 숫자라면서 그 숫자 나이의 한 해 전체를 그대로 겪어내야 하다니. 그냥 건너 뛰어 열 네살로 가면 안될까? "
"다른 누군가를 인정하는 것이 왜 그렇게 어려울까?"
"다른 아이들 모두 신고 있는 운동화를 나도 신고 싶어하는게 잘못된 것일까?"
"다른 남자 아이에게 키스하는 것이 왜 변태야?"
이 책의 내용을 암시하는 물음들이 이 책을 편집한 James Howe가 쓴 서문에 나온다. 열 세살의 나이로 산다는 것은 이리 저리 왔다 갔다 균형을 못잡는 배에 타고 있는 기분과 같다고 한다. 때로는 흥분되고, 때로는 미슥거리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 갈피를 못잡는. 

나의 열 세살 시절을 되돌려 보는 것은 별로 재미없고 답답하기만 한데, 다른 이들의 이야기 속의 열 세살은 왜 이리 웃음도 나오고 뭉클해지기도 하며 120% 공감이 되는지. 읽는 동안 마음 속으로 울고 웃었다. 열 두편의 단편과 한 편의 시가 묶여 있는데 이 중 열 두편의 단편들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해두고 싶다. 

What's the worst that could happen? (by Bruce Coville)
소심하기 짝이 없는 Murphy가, 마음 속에 두고 있는 여자 친구Tiffany의 권유로 용기를 내어 학교 연극에 참가하던 중 일어난 일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Tiffany와 좀 더 가까와 질거라는 애초의 예상과 달리,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만큼 눈에 띄지 않던, 말없는 여자애 Laurel의 관심을 받게 되면서 Murphy는 미래는 정말 예측 불허라는 것을 알아간다. 

Kate the Great (by Meg Cabot)
Jen은 13살이 된 기념으로 귀 뚫는 것과 아기보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부모로부터 허락을 받는다. 처음으로 아기를 봐주러 간 집이 한때 절친이었으나 지금은 관계가 소원해진 Kate의 옆집이었다. Kate는 Jen이 자기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아이 봐주는 일에 매달리는 것을 질투하고 계속 방해하고자 한다. 그런 행동을 하는 Kate의 본심을 Jen은 Kate의 남자친구인 Patrick을 통해 마침내 알게 된다.
이맘때 아이들의 행동은 진심보다는 진심을 숨기기 위한 행동일때가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인데 어디 아이들만 그런가? 어른들도 그러지 않는가.

If you kiss a boy (by Alex Sanchez)
절친 Jarmal과 극장에서 몸으로 부딪치며 장난을 치다가 자기도 모르게 키스를 하게된 Joe는 이후로 Jamal과의 사이가 서먹해졌을 뿐 아니라 동성애자라고 놀림을 받을까봐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고민 끝에 Joe는 이미 동성애자라고 소문이 나있는 과학 선생님에게 자기의 고민을 털어놓고 용기를 얻어 Jamal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틴에이지 때에는 이성에게도 관심이 많아지지만 동성 친구에 대한 특별한 감정이 생기기도 한다. 이것이 더 말못할 고민이 되는 경우가 있음을, 그리고 이것에 어떻게 대응해나가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였다. 

Thirteen and a half (by Rachel Vail) 
사립학교에 다니다가 전학온 친구 Ashley가 내 옆에 앉게 되고, 하교길을 함께 걸어 집에 가게 된 것을 계기로 Ashley는 내게 이것 저것 물으며 친해지고 싶어한다. 그러던 어느 날 열 세살 반이 된 날이라며 집으로 초대한다는 Ashley의 말을 거절할 수 없어 그녀의 집에 간 나는 으리으리한 집의 규모에 놀란다. 큰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Ashley가 세살 때부터 키워왔다고 하는 새가 죽어있는 것을 보고 놀라 소리지르며 흥분하는 Ashley를 본 나는 어찌해야할지 모르지만 함께 그 새를 묻어주고 기도를 해주며 그동안 외로웠던 Ashley의 마음을 조금씩 이해해간다. 

Jeremy Goldblatt is so not moses (by James Howe)
유태인들의 13세는 특별하다. Bar mitzvah라고 하는 소년 성인식을 치르기 때문이다. 이 성인식에서 일어난 예상 외의 사건에 대해 가족, 친구, 랍비 등 관련된 여러 사람이 돌아가면서 화자가 되어 이야기하는 짧은 토막글의 모임으로 되어 있다. 특이한 형식, 특이한 주제가 돋보이는 글이었다. 

Black holes and basketball sneakers (by Lori Aurelia Williams)
아버지 없이 홀어머니 밑에서 많은 형제들과 어렵게 살고 있는 흑인 소년 Malik은 다른 친구들이 모두 신고 있는 신상 운동화를 자기도 신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학교에서 Malik이 다른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을 때 그를 도와주며 호의적으로 접근한 Carl은 Malik에게 자기네 그룹에 들어오라고 권유한다. 운동화가 너무 갖고 싶어 용기를 내어 엄마에게 말해보지만 그 비싼 운동화를 사줄 형편이 못되어 미안하다는 엄마의 말을 듣고 실망에 빠진 Malik은 기분도 풀겸 Carl이 말한 그들의 아지트를 찾아가는데, 그가 그토록 갖고 싶어하는 운동화를 Carl과 그의 친구들이 어떻게 돈 없이도 얻어내는지를 알게 된다.
운동화를 매개로 하여 작가는 결핍과 소외 계층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누구는 당연하게 누리는 것들을, 내 잘못도 아닌데 나는 늘 결핍과 부러움 속에 살아야 한다는 불공평과, 그 감정을 어긋난 방식으로 해결하고 그 결과 새로운 미움과 증오를 낳게 하는 이 세상의 한 면을 열 세살 소년의 경험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Picky eater (by Stephen Roos)
자기가 다니는 학교 식당에서 일을 하는 엄마가 차려주는 음식에 늘 이런 저런 불평을 하며 먹기를 거부하는 Woody. 그의 버릇은 음식 자체보다 자신의 상황에 대한 불만과 거부를 나타낸다고 보여진다. 친구 사귀는 것 역시 아무하고나 친하게 지내기 보다는 차라리 혼자 있기를 즐기는 편인 Woody에게 어느 날 같은 동네 사는 Nelson이 호감을 보이며 가까와지고 싶어하지만 감옥에 수감중인 Woody아버지 얘기까지 Nelson이 꺼내자 Woody는 Nelson을 멀리하며 친구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몸이 늘 허약해보였던 Nelson이 세상을 떠났다는 말을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전해 듣고 Woody는 쓸쓸함을 느끼고, 학교 식당에서 남은 음식이라며 엄마가 가져온 스파게티를 자신은 먹기를 거부했지만 감옥에 있는 아버지에게 면회가면서 싸가지고 간다는 엄마를 기꺼이 동행해준다. 

Noodle soup for nincompoops (by Ellen Wittlinger)
아마도 이 책에 실린 글 중에서 재미로 치자면 제 1순위로 뽑고 싶은 글이 아닐까 한다.
마음을 위로하는 책 중 Chicken soup (닭고기 수프)시리즈가 있다. 그것에 착안하여 학교 신문의 고민 상담 코너를 익명으로 맡게 된 Maggie가 붙인 코너 이름이 이 글의 제목인 Noodle soup for nincompoops. 여기서 nincompoop은 우리말로 하자면 뭐라 해야할까, 약간 제 정신이 아닌 사람, 멍청이라고 할까?
재치가 번뜩이는 이 코너는 단박에 학생들의 인기와 관심을 끌고, 쓰는 사람이 누군지 모두들 궁금해하는 가운데 Maggie의 절친 Liza는 그 코너의 집필자가 Maggie라는 것을 알아챈다. 그리고 실제 Maggie와의 사이에 생겨난 고민을 투고하는 식으로 Maggie의 의견을 알고 싶어하는데.
서로의 오해와 갈등이 풀어지는 과정이 톡톡 튀는 문장으로 재미있게 그려져 있다. 이 작가의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어서 빌려온 <하드 러브>라는 책이 지금 내 옆에. 

Squid girl (by Todd Strasser)
일명 자연친화 가족인 Sierra의 가족.
아빠를 Mr. Nature Man, 엄마를 the Bird Woman이라고 부르는 Sierra는 자연탐사를 좋아하는 부모와 함께 여름 휴가차 오지의 바닷가를 찾는데 그곳에서 역시 휴가차 와있는 멋진 남자 아이를 발견하게 되고, 맘대로 Travis라는 멋진 이름을 붙여 놓고 가까와질 기회를 노린다.
부모님의 영향으로 자연과 과학에 대한 상식이 풍부한 Sierra는 오히려 이런 자기가 Travis에게는 잘난 척이나 하는 아이로 비춰질거라 생각하며 걱정하지만 Travis (그 아이의 실제 이름은 Bob -정말 평범한-인 것으로 나중에 밝혀진다) 는 오히려 Sierra의 그런 점에 매료된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아빠, 엄마의 이름을 저렇게 붙여 부르는 것부터 시작해서 이름 지어서 붙이는데 폭소를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parents를 pair-o-rents라고 한 것도 그 예.
제목이 Squid girl인 이유는 cuttle fish와 squid (우리말로는 둘다 오징어) 를 정확히 구분하여 설명해준 Sierra에게 감탄한 Travis가 붙여준 닉네임이기 때문이다.  

Angel & Aly (by Ron Koertge)
소극적이고 허약하고 의존적이어서 늘 쌍동이 언니인 Mona의 보호와 보살핌을 받아야 하던 쌍동이 동생 Angel에게 어느 날 악어 인형이 생기게 된다. 그날부터 Angel은 이 인형에게 Aly라는 이름을 붙이고 마치 사람 친구를 대하듯이 행동하며 말도 하고, Aly가 말하듯이 대신 말해주기도 하며 평소엔 새모이처럼 먹던 음식을 Aly가 먹듯이 엄청나게 먹어치우는 등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걱정이 된 Mona는 부모님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늘 바쁜 부모는 신경쓸 시간과 여력이 없다. 뒤늦게 문제점을 알게 된 엄마와 아빠는 Angel과 Mona에 대한 그동안의 자신들의 태도를 바꾸게 되고 마침내 Angel은 더 이상 Aly를 사람처럼 대하는 이상 행동을 하지 않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는데에는 행동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바탕에 깔린 문제를 볼 줄 알아야 한다. Aly라는 인형에 자신을 투사하여 행동하는 Angel의 문제점이 다름 아닌 부모의 관심과 애정이었듯이. 

Nobody stole Jason Grayson (by Carolyn Mackler)
자시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nobody 같은 존재라고 여기는 열 세살 여자 아이 Abby는 우연히 같은 반 친구 Daytona의 사물함이 잠겨 있지 않은 것을 보게 되는데 그 안에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 아이 Jason의 사진이 있는 것을 보고 훔쳐서 혼자 간직하게 된다. 뜻밖에 이 일은 학교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물론 범인이 누구인지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Abby는 자기가 더 이상 nobody는 아니라는 만족감을 얻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제목의 Nobody는 그러니까 주인공 Abby 자신을 일컫는 말. 

Tina the Teen Fairy (by Ann M. Martin and Laura Godwin)
정말 이런 요정이 있다면 어떨까? 요정은 아이들의 동화에서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재미있는 환타지이다. 열 세살이 되고 싶어하지 않는 Maia의 열 세번째 생일을 하루 앞둔 밤, Teen 나라의 요정 Tina는 잠자고 있는 Maia를 Teen 나라로 데려가 틴에이지의 의미에 대해 보여주고 알려준다. 이 시기는 성장 (growing)실험 (experimentation)을 할 수 있는 때라는 것. 즉,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지 이렇게 저렇게 시도 (실험) 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는 때이고, 실패는 그 과정의 일부이며 실패를 통해 성장한다는 것을 Maia는 이해하게 된다. 동화같은 이야기에 담긴 의미와 상징이 돋보인다.

이 책은 답보다 더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을지 모른다고 편집자는 말한다. 그 질문은 궁극적으로 '나는 누구인가?' 하는 것. 틴에이지 시기를 출렁이는 배에 타고 있는 시기라고 한 비유를 연장해서, 답이 목적지라면 질문은 그 배를 젓는 노라고 했다. 질문이 없이 닿을 수 있는 곳은 없다는 뜻이다.
마지막 문장이 짧고 명쾌하다.

Set sail. 계속 항해해나가세요!

책이 통째로 재미있다. 제목은 13살이지만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라면 중학교 3학년 정도 이상이면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권해주고 싶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녀고양이 2011-03-05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 여기서 13살이라면 중학생이겠지요?
그런데 저는 한국나이 13살, 즉 초6 때 평생 잊을 수 없는 일이 있었어요.
선생님이 저를 너무 편애하셔서, 일부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아이들 사이에서 제일 인기있던 여자아이에게 뺨을 한대 맞았었거든요.
물론 제 잘못도 있었구요.

두고두고 생각이 많았지요, 그때 일은.. ^^. 그런 나이인가봐요, 그때가.

hnine 2011-03-05 19:04   좋아요 0 | URL
이런...혹독한 열 세살을 보내셨군요. 그 당시에도 6학년 정도면 다 컸지요. 5학년때와는 아이들이 많이 달라보였던 기억이 저도 나요. 저는 더군다나 꼬맹이였기 때문에 ㅋㅋ
여기서 열 세살은 우리 나라 나이로 치면 열 네살 정도 되겠지요? 중학교 1학년이요.
이 책 진짜 재미있어요.

stella.K 2011-03-05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캐빈은 13살이란 외화가 생각이 나요.
그거 정말 재밌게 봤는데.
특히 주인공 더빙한 성우가 어쩌면 그리도 목소리가 좋던지...!
우리나라 나이론 14살쯤 되겠네요. 전 그때 뭐했을까요?흐흑~
이책 번역되서 나오면 좋겠네요.
아님 13살 때를 생각하며 알리더너를 대상으로 수필이나 단편소설
이벤트 해 보면 어떨까요? 얘기들이 많을 것 같은데...ㅋㅋ

hnine 2011-03-05 17:41   좋아요 0 | URL
와, 지난 번에 영화평론가 고 정 영일님도 그렇고 stella님과 저는 똑같은 TV프로그램을 주로 봤나봐요. 저도 케빈은 열세살 정말 재미있게 봤었어요. 성우가 장유진 아니었나 싶은데, 그건 자신없는 기억이고요.
저의 만 열 세살, 중학교 1학년때는 그야말로 생각은 커지고 몸은 아직 애이고, 그랬어요 ㅋㅋ
이책 읽고나서 국내 창작물도 좀 찾아봤는데 이 책만큼 재미있는 건 못찾았네요. 물론 제 개인적인 느낌이고 책들을 전부 찾아본 건 아니지만요.
열 세편 모두 비슷한 얘기가 하나도 없고 작가의 개성이 뚜렷해요.
이벤트 아이디어는 새겨둘만한데요? 기억해두겠습니다 ^^

순오기 2011-03-06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열세 살의 서로 다른 열두 편의 이야기라니 흥미롭네요.
빌려왔다는 '하드 러브'는 읽은 책이어서 눈이 반짝 뜨였어요.^^
우리 창작 읽은 것 중에
최나미의 '걱정쟁이 열세 살'과 김진영의 '열네 살, 비밀과 거짓말'을 추천해요.

hnine 2011-03-06 05:43   좋아요 0 | URL
제목에 맞게 실린 글도 열 세 편이었는데 그 중 하나는 시였어요. 정말 한 편 한 편 모두 재미있고 감동적이더라고요.
'하드 러브' 읽으셨군요. 지금 읽고 있는 '조태백 탈출 사건' (읽으셨겠지요? ^^) 얼른 읽고 읽어보려고요.
우리 나라 작품 속에서의 열 세 살과 비교해보고 싶어서 어제 도서관에 가서 좀 찾아봤어요. 말씀해주신 책들도 적어놓았다가 찾아서 읽어봐야겠어요.

순오기 2011-03-06 14:38   좋아요 0 | URL
<조태백 탈출사건>은 00공원에서 우수리뷰 먹었더랬어요.^^

hnine 2011-03-07 05:03   좋아요 0 | URL
<엄마의 정원> 때문에 읽어보게 된 책인데 실린 다른 글들도 괜찮네요.

다락방 2011-03-06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읽어보고 싶어요! 그렇지만 저는 번역되면 읽어볼래요. 아직 번역작품으로 있는건 아닌거죠? 리뷰를 읽다보니 혹시 읽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엠 아이 블루?]라는 책이 생각나요. 그 책도 여러 작가가 모여서 동성애에 대한 소설을 써낸 작품집이거든요.

케빈은 열세살, 은 저도 즐겨보던 프로그램이었어요. 케빈이 좋아하던 예쁜 여자애 이름이 아마도 '완다'였죠? 케빈 엄마가 케빈 학교로 찾아와서 아이들 다 있는데 큰 소리로

'여어, 케빈' 하고 불러서 케빈이 엄청 창피해했던 에피소드가 특히 기억에 남아요.

소개해주신 이야기들중 저는 [Picky eater]를 가장 읽어보고 싶어요, hnine님.

hnine 2011-03-07 05:09   좋아요 0 | URL
번역서가 나와있는지는 모르겠어요. 다락방님도 번역서 없이 읽으실만 한데...
<앰 아이 블루?> 네, 거의 항상 ㅠㅠ ㅋㅋ 저 아직 그 책 안 읽었어요. 제목은 귀에 익네요. 한번 읽어봐야지.
완다! 케빈이 좋아하던 여자 친구까지 기억하시다니, 저보다 한 수 위십니다. 까다롭게 먹는 아이 이야기는 뭐 이런 애가 다 있어? 하고 시작했다가 뭉클하면서 끝나는 이야기랍니다. 그 밑에 소개한 noodle soup 도 재미있고, 오징어 소녀도 재미있고...몽땅 재미있어요. noodle soup을 쓴 작가의 다른 책을 지금 읽고 있는데 이것도 재미있네요. <하드 러브> 라고, 힘든 사랑이란 뜻이래요.

starover 2011-04-23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보고 싶네요. 이상한 건 미국이 '13'이라는 숫자를 싫어하는 데 왜 이번에 숫자 컨셉이 '13'이냐는 겁니다. 그래서 그런지 더 새로운 시도를 보는 것 같네요. 하여튼 전 여러 작가들이 모여서 만든 책들은 대부분 좋더라구요^^

hnine 2011-04-24 08:49   좋아요 0 | URL
말씀 듣고 보니 그렇네요. 글 내용 중엔 그런 구절이 나와요. 골치 아프고 누구나 피해가고 싶은 이 나이를 왜 건너 뛰지 않고 누구나 다 겪어내야 하느냐고요. 어쩌면 이프리트님이 말씀하신 13이란 숫자의 기피성때문에 일부러 책의 컨셉이 되지 않았나 싶네요.
이 책 권해드릴만 해요. 글 하나하나가 비슷한 것 없이 다 개성있어요. 그런 구성의 책을 좋아하신다면 이란 책도 괜찮을 것 같은데 저도 지금 읽는 중이라서, 얼른 읽고 리뷰 올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