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소녀
델핀 드 비강 지음, 이세진 옮김 / 김영사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잠시 지나가는 길이 아니라, 내 인생 자체가 길 위에 있다는 느낌을 아는가? 더구나 그것이 어디로 이어진 길인지 모른 채, 어디로 방향을 틀어야할지 모른 채, 길 위에 놓여있다는 기분말이다.
해도 자취를 감춰가는 어스름 집으로 향할 때, 이렇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가서 보살피고 얼굴 마주 할 가족이 있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할 때가 있다. 하루도 큰소리 안나는 날 없고, 얼굴 붉히며 언쟁을 벌이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본명이 놀웬이지만 스스로 자기를 '노(No)'라고 소개하는 열 여덟살 노숙자 소녀와, 두번이나 월반을 해서 이미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열 세살 지적조숙아 소녀 '루'가 있다. 학교가 끝난 후에도 집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역 근처를 서성이기 좋아하는 '루'가 '노'를 처음 만나는 장면이다.

노: "너 여기서 전에도 몇 번 봤어. 뭐 하려고?"
루: "사람들 구경하러 왔어."
노: "아, 사람들, 집에는 사람이 없어?"
루: "있어. 그런데 그건 좀 다르잖아." (18쪽)

그래, 그건 좀 다르지.
루가 태어난 이후 루의 동생을 낳고 싶어 오랜 동안 노력 끝에 어렵게 아기가 태어났지만 태어난지 얼마 안되어 세상을 떠나자 그 충격과 슬픔으로 정신줄을 놓아버린 엄마와, 역시 슬픔에서 완전히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아빠 사이에서 루는 외롭다. 늘 의자에 몸을 파묻고 앉아 꼼짝않고 있는 엄마의 그 허무의 눈동자를 루는 혼자 감당하느라 더욱 조숙해져만 간다. 내가 정을 붙일 수 있을 사람, 진정으로 살아 숨쉬는 사람의 움직임을 보고 느끼고 싶어 루는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관찰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다 기차역에서 담배 가진 것 있으면 달라고 말붙이는 노를 처음 만나게 되고, 아빠가 누군지도 모르고, 엄마에게 버림받고 노숙 생활을 하고 있는 노에게 끌리게 된다. 노의 생활 속에, 삶 속에 들어가 그녀가 이 세상에 혼자라고 느끼지 않게 해주고 싶은 루의 마음은 마침내 루의 부모님과 부딪히게 되고, 그 자리에서 루는 말한다.
"우린 내 놓은 애들이잖아요."
결코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이 두 소녀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런 공통점이 있었던 것이다. 아이큐 160에, 언제나 일등을 놓치지 않는 루는 자기 또래와 어울리지 못하고 집에서도 남모르는 아픔이 있기 때문에 그 나이때의 아이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낀다. 어디로 갈지 몰라 방황하는 노 옆에서 떠날 줄을 모르며 지하철 역을 함께 돌아다니며 루가 하는 생각을 봐도 그렇다.

고개를 들어보니 우리는 어느새 지하철 광고판 아래 서 있다. 향수 광고인데 한 여자가 커다란 가죽가방을 메고 머리칼을 휘날리며 단호하고 역동적인 모습으로 걸어가는 사진이다. 여자는 모피 코트를 입었고 뒤편으로는 황혼 무렵의 도시, 거대한 호텔이 보이고 불빛들이 반짝반짝한다. 한 남자가 여자에게 홀딱 매료당해서 뒤를 돌아보고 있다.
광고 포스터와 현실의 괴리. 이건 어떻게 해서 시작되었을까? 현실이 광고에서 멀어진 걸까, 아니면 광고가 현실에서 이탈해버린걸까? 도대체 언제부터? 뭐가 잘못된 걸까? (246쪽)

 루가 노를 떠날 수 없고 옆에 머물고 싶었던 이유는 노의 부모를 찾아주기 위해서도, 노에게 집을 마련해주는 것도 아니었다. 노가 이 세상에 혼자라는 것, 아무도 자기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느끼지 않게 해주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사는 형태는 다르지만 루 역시 알고 있는 느낌이기에.
이런 순수한 느낌은 완전히 어른이 되기 전의, 이 시기에만 가능한 것일까?
원제가 No et Moi (No and I). 즉 노와 나이다. 우리 나이로 올해 마흔 여섯인 프랑스 작가 델핀 드 비강의 세번 째 소설. 번역된 것을 읽었음에도 눈에 들어오는 개성있는 문장 표현들이 많았다. 그녀의 작품을 읽는 것을 이것으로 끝내게 하고 싶지 않게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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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3-17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길 위에 있어서 다행이고
아는 길 위에 있을 때는 목적지를 잡고 열심히 할 수 있어서
모르는 길 위에 있을 때는 예측할 수 없는 앞날이 흥미진진해서
멋지다고 생각하고 살려고 노력 중입니다.

그리고 타인을 수용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단지, 노력 중입니다.. ㅎㅎ

hnine 2011-03-17 13:34   좋아요 0 | URL
이 책에서는 '노숙'의 의미로 붙인 제목이지요.
넓게 보면 우리는 모두 어떤 길 위에 있다고 생각되는데 말씀하신 '길 위에 있어서 다행' 이라는 말의 의미를 알 것 같아요.
타인을 수용한다는 것 역시 말씀하신대로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계속 노력을 요한다는 것도 동의하고요.

무해한모리군 2011-03-17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본은 표지가 왜 저렇게 됐을까요?

누군가를 전면적으로 온전히 만났다는 느낌을 가져본게 언젠지 기억도 안나네요..

hnine 2011-03-17 13:38   좋아요 0 | URL
나와 아주 다른 사람에게 끌리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경우엔 끌리는 감정을 느껴도 쉽게 다가가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알고 보니 나와 어딘가 나와 비슷한 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특히 그것이 나의 어떤 깊은 내면의 비밀 같은 것일 때 그 사람과 전면적인 관계를 맺고 싶어지는 것 아닐까요.
전면적으로 온전히 만났다는 느낌은 만나는 순간 파박 하고 느껴지는 것일까요, 아니면 차츰 느껴가는 것일까요.

하늘바람 2011-03-17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본 표지 이야기하니 웃음이 나오네요
그 과정들이 뻔히 보여서
주인공들이 재미있는 설정이네요(물론 주인공자체가 재미있는건 아니지만 정말 흥미진진하네요) 저도 봐야겠어요

hnine 2011-03-17 13:40   좋아요 0 | URL
누가 노숙자 청소년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해서 저도 찾아보다가 알게 된 책이랍니다.
표지는 뭐, 저는 내용에 비해 크게 중요시 하진 않지만 책을 만들고 출판하시는 분들 입장에선 그렇지 않겠지요.
말씀하신대로 캐릭터가 잘 살아있는 작품입니다. 더구나 위에도 썼지만 베껴두고 싶은 표현들이 많았아요. 하늘바람님도 한번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sslmo 2011-03-19 0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적조숙아라고 하면 전 '고슴도치의 우아함'이 생각나요.
이 리뷰를 읽으면서 전 아들 또래의 아무것도 모르면서(관심도 없고) 아들을 이해한다고, 그리고 사랑한다고 했던 게 아닌가 싶었어요~ㅠ.ㅠ

hnine 2011-03-19 06:31   좋아요 0 | URL
관심도 없는건 아니시겠지요.
우리가 거쳐간 시기이니 어느 정도는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넘겨 짚기가 쉬운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