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메모지에 끄적거린 글을 이제서야 옮겨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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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5.19 10:37   경복궁 어느 건물 마루에 걸터앉아

냄새, 향기, 향, 체취 ...


난 개인적으로 냄새(후각)에 민감한 편이다. 버스에서, 전철에서 길거리에서 나의 코를 자극하는 그 무엇들이 많다.

여자의 향수, 고깃집의 누린내, 담배 냄새, 땀 냄새 등. 때론 즐겁기도 하고 불쾌해지기도 한다. 보이지 않는 냄새에 의해서.

하지만 다양한 냄새 중에서 유쾌, 불쾌의 이분법적 구분에 들어가지 않는 냄새도 있다. 나를 차분하게 때론 상념에 젖게 만드는 향기들도 있다. 그 중 하나가 나무 냄새다.

오늘은 3학년 졸업사진을 촬영하러 경복궁에 왔다. 학교 근처라 매번 지나는 곳이고 몇 번 와 본 곳이지만, 오늘처럼 마루에 걸터 앉아 느긋하게 펜을 든건 처음이다.

아이들 촬영이  끝나고(모이는데 2시간, 사진 촬영하는데 1시간이다. ㅋㅋ) 산책이 하고 싶어 경복궁 안을 혼자 여기저기 지나다, 사람이 좀 없는 곳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내가 편히 앉을 수 있는 곳에서 최대한 편한 자세를 취한다. 편하게 앉아 있으니 마루의 나무들에서 향이 스물스물 나와 나의 코로 들어온다. 말 그대로 '향'이 나에게 '다가왔다'. 그 '향'에서 내소사가 내 고향 집이 생각나는 건 왜일까? 단순히 기분 좋은 냄새는 아니다. 그 보다 더 심원적인 느낌의 무엇인가가 느껴진다. 나를 편안하고 차분해지게 만드는, 뭔가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거 같다. 예전 고향 집 마루에서 외가집 마루에서 지금처럼 마루에 앉아 있던 적이 있었다. 그 어린나이에 그랬었다. 그 어린 나이에도 무언가 생각할게 많았었나보다.

그 10대 시절 나의 코 점막에 새겨진 향이 지금도 남아 30대인 현재의 나에게 그 시절의 기억을 살려주는 것일까? 어찌보면 시각, 촉각보다도 사람의 후각은 인간에게 더 원초적이며 실존적인 감각기관이 아닐까?

초등학교 저학년때 엄마가 잠시 존재하지 않았던(지금 생각해보면 '상실의 아픔', '사라짐'이란 걸 그때 처음으로 자각한거 같다.) 시기가 있었다. 그 시기 나에게 엄마를 느끼고 '상실의 아픔'을 참을 수 있게 해준 유일한 수단은 엄마의 사진이 아닌 엄마의 '옷'이었다. 아니 그 옷에 남아있는 엄마의 '체취'였다. 어두운 방 구석에서 엄마의 옷에 코를 대고 엄마의 체취에 취해 있던 기억이 있다.

대단하다. 그 '냄새'가. 한 인간의 부재를 한 공간의 느낌, 순간의 장면을 기억하게끔 해주니 말이다. 이건 단순한 기억이라기 보다는 머리속에 박힌, 새겨진 무엇인것 같다. 누구나 몇개의 '냄새 조각'이 있을 것이다. 갑자기 궁금하다. 다른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조각들을 품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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