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느리게 가는 길 - 지금 내게 꼭 필요한 한마디
김정한 지음 / 레몬북스 / 2021년 5월
평점 :
절판



 

1.

 

하얀 소금꽃이 특별하게 빛날수록 소금 농사를 짓는 염부는 얼마나 많은 들숨 날숨을 내쉬었을까. 또 얼마나 많은 한숨을 토해냈을까. 바다가 내어주는 만큼만 거두며 살아온 세월, 염부는 욕심내지 않는 소박한 삶을 바다에서 배웠다. - p.16

 

삶이란 어쩌면 너무 쉽고 당연하게 흘러가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돈에 대한 지나친 욕심, 사람에 대한 지나친 권력욕, 이런 것들만 조금 내려놓으면 지금의 삶은 몹시도 행복할 어떤 일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때로는 돈이 없지만, 그 속에서도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돈 많고 권력 있는 사람들의 의아함을 자아내기도 한다.

 

조금 더 느리게 가는 길은 삶에 대한 성찰을 하는 에세이다. 저자는 욕심을 내려놓고 사는 법을 이야기한다. 그 삶에서 이 챕터에 등장하는 염부는 바다를 보며 욕심을 내려놓는다. 너무도 넓은 바다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리라.

 

 

2.

 

맨드라미로 붉은 띠 두른,

삶이 뜨겁게 꿈틀대는 증도에서

느림의 미학을 배운다.

서둘지마라, 인생아!

- p.21

 

너무 바쁘게만 가다 보면, 내가 지금 정말 잘 살고 있는 걸까, 제대로 살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제목에서 보여주듯, 느림의 미학은 조금 더 천천히, 그리고 또 행복하게 가게 되는 길이다. 그 길을 가려면, 보다 더 만은 생각들과 깊은 사고가 필요하다. 저자의 에세이는 그래서 깊은 사고를 바탕으로 한다. 저자의 깊은 생각들을 이 리뷰에서 다 담기란 힘들다. 말하자면, 세상의 무게를 견뎌내며 그저 그런 것들이 나를 살게 하는 것들 (소제목에서 발췌) 이고, 이 과정은 나를 보다 더 성숙하고 아름답게 하는 것들이다.

 

 

3.

 

주변에 든든한 울타리가 있으면 외로움을 견디며 산다. 그러나 손을 내밀었는데 손잡아주는 이가 없가면 살겠노라 버티는 마음이 흔들린다. 결국 살겠다는 마음보다 포기하겠다는 마음이 더 강해진다. - p.57

 

성숙하고 아름답고 깊은 사고를 하다 보면, 자살은 해서는 안 되는 거구나, 하는 결론에 도달하게 될 수도 있다. 자살을 하기 전에 한번 더 생각해 볼 것은, 내가 사는 이 세상이 정말로 나를 죽이려 하는 세상인가, 내가 만약 어딘가에 정말로 도움을 청한다면, 나를 도와줄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을까,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어딘가에 반드시 누군가는 도와줄 사람이 있다. 그러니, 지금 자살을 생각하는 어떤 분이여,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라. 이 사람이 나를 안 도와준다고 포기하지 마시라! 어딘가에는 반드시 당신을 도와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

 

 

4.

 

조금 더 느리게 가는 길은 바쁘게 살아가다 보면 얻게 될 수 없는 사색의 시간들이 있다. 그 사색의 시간에 저자의 편안한 문장이 작품을 읽어가게 한다. 그러나 이 작품을 하루에 다 읽기는 조금 벅찰 것이다. 하루 한 챕터씩 깊은 사고를 하면서 읽어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이런 결론에 도달할 것만 같다. 느리게 가는 게 이토록 행복할 줄이야!

 

마음의 어떤 부분, 그리고 생활의 어떤 전선에서는 시간이 생명이 되기도 한다. 시간이 생명인 어떤 전선에서는 느리게 가는 미학을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방법은 있다. 시간이 생명인 어떤 전선에, 욕심의 1프로만 내려놓으면 된다. 지금 내가 벌고 있는 돈,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생활에 100프로 만족이란 없다. 99프로만 만족하면 된다는 마음의 여유를 가진다면, 그렇다면 1프로의 여유를 누군가에게 나누어주게 되지 않을까.

 

나도 그런 사람이고 싶기도 하다. 100프로를 채우려면 욕심을 부리게 되지만, 1프로는 누군가에게 나누어준다고 생각하면,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어느 덧 여름, 마음의 여유가 더욱 더 절실하게 필요한 때다. 에어콘 바람보다, 선풍기 바람소리에 유독 기분이 좋아지는 지금. 1프로가 누군가의 목숨을 살리고 누군가가 살고 싶다는 희망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 삶에도 누군가의 1프로로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되기를. 그렇게 나눔을 주고 받는 삶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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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편의 편지
김태환 지음 / 마인드유니버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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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 만남을 위해 - 

 

 

chapter1. 만남의 문

 

편지를 쓴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소중한 누군가에게 편지를 선물하기로 결단한 당신은

이제 긴 여정을 떠나는 문 앞에 서 있습니다.

문을 나서기 전에 편지를 받게 될 이와의 첫 만남을 잠시 떠올려보세요.

모든 인연에는 어떤 형태로든 만남이라는 시작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 p.8

 

이 서른 편의 편지는 이와 같이 챕터별로 세 개의 편지를 쓰게 되어 있고,총 10개의 챕터와 한 개의 에필로그로 구성되어 있다챕터가 시작하는 부분에 이와 같은 문구가 써 있고각 챕터마다 쓸 수 있는 세 개의 편지는 비어 있다그 빈 공간에 내가 쓰고 싶은 편지를 쓰면 된다.

 

나는 용기를 내어 나의 첫 편지를 공개한다.

 

나는 누구이며왜 편지를 쓰게 되었나요?

 

나는 신다입니다아주 오래오래 기다리던 만남이 있습니다그 만남이 올해 안에는 꼭 이루어지길 바라며 이 편지를 씁니다.

 

편지를 받는 이는 누구이며나에게 어떤 존재인가요?

 

풀꽃이며나에게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꼭 만나고 싶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만나게 되었고어떤 관계인가요?

 

우리는 곧 만나게 될 것이고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을 주고 받는 관계입니다.

 

-------------------------------------------------------------------

 

이렇게 편지를 시작해서 써가는 서른 편의 편지.

앞으로 써야 할 편지는 풀꽃을 위해 남겨 두겠습니다.

그리고 신다를 위해서도요.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그 편지들이 하나둘 쌓여가서 완성이 되었을 때저는 그 편지를 전해줄 겁니다그때에 우리는 무엇이 되어 있을까요인생을 완성하는 서른 편의 편지가 이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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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위로 - 매일 조금씩 마음이 자라는 반려식물 이야기
박원순 지음 / 행성B(행성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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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리뷰가 참 많이 늦었다. 내 잘못은 아니다. 그저, 택배사의 실수로 책이 누락되어서 출판사에서 조금 늦게 보내줬을 뿐. 다음부턴 잘 확인하고 보내주신다고 했으니, 불만은 없다. 위로를 하기 위해 보내준 듯한 사탕과 초코바는 잘 먹고 있습니다. 그래, 가끔은 내 잘못도 아닌데, 억울한 경우가 있기도 하다. 식물이 죽어가는 것도 그들의 잘못은 아닌데, 왠지 억울하다. 그저 조금만 신경 써주면 나 잘 자랄수 있는데, 라고 말하는데, 무심한 식물의 주인은 죽어가고 있는 걸 지켜보지도 않고 방치했으니. 누구 이야기냐고? 내 이야기다. 이미 사라져간 화분의 식물들과 굳어버린 흙들과 깨져가고 있는 화분들을 싹 정리하고 있다. 집안정리를 하면서, 버려져야 할 것들은 버리게 되고 사라져야 할 것들은 사라지고 있고 기억해야 할 것은 다시 기억하게 되고 새로 들여놓아야 할 것은 새로 들여놓게 되고. 그러면서, 내 몸도 축나고 있고.

 

 

2.

예술가나 창작작을 하는 이들이 작품 하나를 끝낸 후 한동안 휴식과 충전의 시간을 갖고 나서 다음 작품을 위한 산통을 다시 겪는 것처럼 꽃들도 그러하다. 누구나 꽃을 피우기 위해 반드시 감내해야 하는 시간이 있기 마련이다.

- p.34

 

집안 정리를 하고 나니, 기분은 상쾌한데 몸의 여기저기가 상해 있다. 그래서 지금은 나도 휴식기를 갖고 있는 중이다. 휴식을 하면서 나의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 내가 가야할 삶을 생각해 본다. 식물이 나의 마음을 환기시켜 주면서 그 기를 바로잡아 줄 것인가. 꽃을 피우기 위해 감내해야 하는 시간이 있듯이, 나에게도 반드시 감내해야 하고 넘어가야 할 산들이 있다. 그 산을 낑낑거리며 올라가고 있는 중이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3.

동백나무는 갑작스러운 변화를 싫어한다. 처음에 놓인 위치, 온도와 습도, 빛과 공기의 흐름이 바뀌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심하면 꽃봉오리를 모두 떨어뜨리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자연 상태에서는 바닷가 근처의 해발 고도가 높은 숲에서 잘 자라는데, 이런 환경은 변화가 급작스럽지 않고 온도와 습도가 일정하게 유지된다.

그리운 사람들과의 관계도 동백나무처럼 보살펴 주면 좋다. 가끔씩 은은한 향기로 찾아오는 좋은 느낌들은 서로 적당한 거리에서 알맞은 관심과 사랑으로 바라봐 주는 데서 비롯된다.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고 무조건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면 오히려 부담이 된다.

- p.52

 

『식물의 위로』는 식물에 대해 어느 정도 소개하지만, 식물에 대한 습성에 대해 소개하는 책은 아니다. 식물의 습성을 통해 이 식물이 사람에게 어떻게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지, 그리고 식물의 특성을 살려 사람의 관계를 재조명하는 휴먼에 가까운 식물을 소개하는 책이라 말할 수 있겠다. 

 

그리움이라는 단어는 기다림과 잘 어울린다. 한 해 두해 살아갈수록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을 사람 또는 아무리 그리워해도 다시 경험할 수 없는 시간들이 늘어만 간다. 내게 상처를 남긴 사람이나 시간이 아닌, 오롯이 추억하는 것만으로도 기쁨이 되는 존재를 그리워하는 일은 오랜 세월 동안 전해 내려온 씨간장을 조금씩 꺼내어 음미하듯 마음에 큰 위안이 될 수 있다. 크리스마스 선인장 꽃이  필 무렵 내게 떠오르는 추억만큼, 이 꽃을 함께 보며 시간을 보낸 사람들에게도 어떤 소중한 기다림과 그리움이 쌓여 갔으면 좋겠다. 기다림과 그리움은 언제나 새롭게 만들어지는 현재 진행형이다.

- p.58

 

 

4.

산세베리아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 한창 더운 여름이나 햇빛이 뜨거운 낮에는 잎의 미세한 숨구멍들을 모두 막아 물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한다. 길고 혹독한 건기를 버틸 수 있도록 물을 몸속에 저장하기 위해서다.

산세베리아는 밤이 되어서야 비로소 숨구멍을 열고 참았던 숨을 내쉬며 가스 교환을 시작한다. 이산화탄소를 들이마시고 산소를 내뿜는 것이다. 침실에 산세베리아를 두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산세베리아는 내가 잠을 자는 동안 공기 중에 떠다니는 독성 물질을 흡수하고 맑고 깨끗한 산소를 내준다. 공기가 맑으면 그만큼 더 깊고 편안하게 숨을 쉴 수 있어 숙면에 큰 도움이 된다.

- pp.97~98

 

버려진 식물들에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러면서, 나는 새로운 식물들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예전에는 식물 자체에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요즘은 식물의 위대한 효능들을 보면서 급!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식물의 치열한 삶들은 나로 하여금 보다 더 식물에 관심이 가도록 하였다. 그 중 침실에서 키우면 좋다는 산세베리아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는데, 막상 뒤져보니 모양은 그렇게 예쁘지 않다. 그러나 자그마한 화분에 담겨있는 산세베리아를 하나 장만하여 방에 놓아두면, 공기정화 역할을 하니 참 좋겠다는 마음이 든다. 관리하기도 그리 어렵지 않고.

 

페퍼민트 화분을 가까이 두고 키우며 가끔 잎을 문질러 향을 맡으면 페퍼민트 캔디나 차를 직접 마시는 것 못지않은 시원한 청량감을 느낄 수 있다.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시키는 것처럼 코끝에서 시작되는 시원함이 머릿속에 신경 세포를 하나 둘 깨운다. 다시 무언가에 집중하게 하는 에너지가 재충전되는 것이다. 여름엔 시원한 물에 각 얼음을 넣고 페퍼민트 잎을 띄워 마시면 오감이 초록으로 물들며 힐링이 된다.

- p.107

 

페퍼민트도 관심이 가는데, 페퍼민트는 직접 키우는 것보다는 페퍼민트 차를 한번씩 우려먹으면 좋을 것 같다.

 

 

5.

풀리지 않는 문제와 고민을 혼자 끌어안고 끙끙거릴 때가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그 문제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그럴 때 그 고민을 잠시 잊고 다른 일에 몰두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의외로 쉽게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가 있다. 당이 떨어지는 느낌이 들 때 달달한 초콜릿이나 사탕이 도움이 되는 것처럼, 자극과 반응의 자연스러운 매커니즘을 이용하면 생활 속에서 겪는 소소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

바질은 뇌에 자극을 주는 훌륭한 반려식물이다. 일이나 공부에 몰두하다가 무언가 풀리지 않거나 몰입이 되지 않을 때 바질 잎을 가볍게 손으로 비벼 냄새를 맡므녀 다시 집중력이 높아진다. 기억하고 집중하는 능력 없이는 공부를 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추억을 나누기도 어렵다. '기억은 인생의 다이어리'라는오스카 와일드의 말처럼 내 소중한 삶의 기록들을 일깨우고 지키는 데 바질 같은 식물은 참 고마운 존재다. 가끔은 커피 대신 바질 잎을 넣은 샤르트뢰즈 칵테일도 즐겨 볼 일이다.

- p.114

 

이제 우리 집에 식물은 남아 있지 않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는 선인장조차도 보기가 싫어져서 잘라서 버려야 했다. 화분도 이제 곧 다 정리가 되면, 남아있는 화분도 없게 된다.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새로 구입하게 될 식물들의 외침. 그러나 나는 신중하게 판단해야 할 것이다. 다시 죽어가고 있는 식물들을 바라만봐야 하는 것은 아닌지. 내가 그 식물들에 애정을 쏟아부을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식물들이 나를 위로해주고, 또 나는 그 식물을 위로해 줄 수 있는지.

 

풀리지 않는 문제를 혼자 끌어안고 있기보다는 추억담을 나누듯 그 문제를 하나씩 꺼내어 공론의 장으로 만들어보면, 의의로 해결책은 엉뚱한 방향에서 나올 수도 있다. 어쩌면, 『식물의 위로』는 그런 나의 마음을 잘 알아주는 책인지도 모른다. 식물이 내게 주는 새로운 삶, 그 새로운 삶을 꿈꾸며 나는 오늘 작은 희망의 위로를 남긴다.

 

- 이 리뷰는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행성B에서 도서를 증정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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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는 식물 - 속이고 이용하고 동맹을 통해 생존하는 식물들의 놀라운 투쟁기 이나가키 히데히로 생존 전략 3부작 1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김선숙 옮김 / 더숲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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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식물을 보면 우리의 몸과 마음이 치유된다. 태양을 향해 나뭇잎으로 펼치며 가지를 뻗어가는 나무 그리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화초. 때로 우리는 이런 식으로 자라는 식물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동서고금의 성인들은 식물처럼 사는 유유자적한 삶을 추구하기도 했다.

- p.11

 

나는 지금 슬프다. 이유 같은 건 없다. 때로는 삶이 무기력하다고 느낄 때, 그런 슬픔을 느끼곤 한다. 무기력한 삶에서 건져낼 수 있는 건, 바로 그 감정이란 놈에 나를 맡겨야 한다는 사실이다. 식물을 보면, 몸과 마음이 치유되는 것처럼, 감정이란 놈은 나를 저절로 치료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슬픔이란 감정은 마치 식물들의 싸움을 보는 것과 같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 치열한 투쟁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도, 이 생존과의 싸움에서 치열한 투쟁을 하기로 한다. 이 무기력한 삶에서 처절한 전투의식을 발휘한다. 싸우는 식물은 그렇게 나의 싸움을 부추기기 시작했다.

 

 

2.

가지를 뻗고 우거지게 해서 서로 공간을 빼앗려고 격렬하게 싸우는 식물들. 그러나 식물의 싸움은 지상에서 끝나지 않는다. 땅속에서는 더욱 격렬한 싸움이 벌어진다.

식물은 뿌리를 뻗으면서 뿌리에서 다양한 화학물질을 방출한다. 그럼으로써 주변의 식물에 피해를 주거나 다른 식물의 발아를 방해하며 다른 식물을 격퇴한다. 이처럼 화학물질을 통해 다른 식물의 성장을 억제하는 현상을 '타감작용' 혹은 '알렐로파시'라고 한다. 알렐로파시는 그리스어로 '서로 감수한다'라는 뜻의 조어다. 따라서 본래는 식물끼리뿐만 아니라 식물과 미생물 혹은 곤충끼리나 미생물끼리 등 모든 생물 사이의 간섭 작용을 의미한다.

-pp. 34~35

 

보시다시피, 『싸우는 식물』은 식물들의 격렬한 싸움을 예고한다. 식물들끼리도 싸우고, 식물은 동물과도 싸우며, 심지어 인간과도 식물은 싸우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 싸움은 서로에게 유익하기도 하다. 그러니까, 식물의 싸움은 자신을 지키이 위한 이기적인 마음에서 시작되긴 하였으나, 이타적인 마무리로 끝이 나는 것이다. 훈훈한 싸움이다.

 

3.

사실 모든 식물이 많든 적든 뿌리에서 화학물질을 방출해 주위 식물을 공격한다. 이렇게 서로 화학물질을 뿜어내는 화학전쟁은 늘 벌어진다. 그러나 어떤 식물이 내보내는 화학물질에 다른 식물이 쉽게 당한다면 싸움이 되지 않으니 주위 식물은 그것을 방어하는 구조로 무장해 피해를 막는다. 이렇게 공방의 균형이 잡히면 겉보기에는 타감작용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에서 양미역취외 싸우면서 진화를 거듭해온 주위 식물은 양미역취가 뿜어내는 독성분을 방어하는 구조가 발달했다. 이렇게 해서 균형이 잡혔으니 양미역취만이 땅을 독차지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 P.38

 

식물들은 혼자서 독식하지 못한다. 어떤 식물이 혼자서 독식하려 애쓴다면, 그 혼자서 독식하려 애쓰는 식물을 공격하는 식물 또한 존재한다. 그러므로 식물들의 싸움은 어찌보면 공평하다. 치열한 감정싸움 같은 거, 그런 거, 슬픔과 기쁨이 공존할 때,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 매일, 날마다 기쁘기만 한 인생, 그거 별로 행복하지 않은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적어도, 내 생각으로는!

 

 

4.

질경이와 별꽃에는 사람에게 밟히는 일이 더는 역경도, 견뎌야 하는 고난도 아니다. 사람에게 밟혀야 종자를 퍼뜨릴 수 있으므로 밟히지 않으면 오히려 곤란해진다. 길가의 질경이와 별꽃은 도리어 지나가는 사람이 밟아주길 원한다.

- P.62

 

때로는 사람과 부딪혀야 할 때도 있다. 항상 내 맘에 드는 사람들만 만날 수는 없다. 그런 만남이 잦아진다면, 더 이상 사람을 만나는 일이 역경이나 고난이 될 수는 없다. 물론, 그 만남을 현명하게 대처했을 때에만. 그런 현명한 만남을 가지고 난 후에는 오히려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어하는  도전의식이 작용하기 시작한다.  식물에게서 배우는 인생의 의미까지도 『싸우는 식물』은 보여준다. 식물의 세상은 우리가 사는 세계와 그렇게 많이 다르지 않다.

 

5.

인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정면으로 충돌해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막강한 적을 힘없는 자가 물리칠 수단이 하나 있다. 독살이다. 막강한 권력자가 의문스러운 죽임을 당할 때는 역사책에 기록되지는 않지만 그 뒤에는 독살이 있을 때가 적지 않다.

식물이 선택할 수 있는 수단도 인간과 마찬가지다. 힘이 없는 식물이 막강한 적인 해충을 쓰러뜨리려고 먼저 생각하는 방법이 독살이다. 따라서 식물은 온갖 독성 물질을 조합해 자신을 지킨다.

- P.112

 

사람이 위기에 처해 있으나, 힘은 없을 때, 그때는 그 사람이 어떤 짓을 할 지 모르므로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을 보일 필요도 있다. 식물이 독성을 품기 시작했을 때, 그것을 그냥 무작정 먹거나, 무작정 없애려고 하다가는 더 큰 화를 당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독성을 어르고 달래서 적당히 순화시킬 때, 식물의 독은 약이 되기도 한다. 그 약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모든 생물을 치료하기도 한다.

 

 

6.

자연계에 상부상조하는 생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생물도 자기 좋은 대로 이기적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경위야 어떻든 서로 득이 되는 관계가 구축되면 나쁠 것은 없다.

기생벌은 식물을 도울 생각이 추호도 없지만, 결과적으로 식물이 SOS 신호를 내보내면 해충을 퇴치할 정의의 아군이 달려오는 구조가 되었다. 식물에게는 이것으로 충분하다.

- P.141

 

모든 사람은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나는 이타적이야, 다른 사람이 누군가를 향해, 저 사람은 남을 위해 사는 사람이야, 라고 말할지라도, 그 사람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신의 이익이다. 이익의 범주에는 물질적 이익만 있지는 않다. 감정적인 이익도 이익의 범주에 속한다. 식물은 누군가를 도우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의 이익을 추구할 뿐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식물은 그렇게 함으로서 모든 생물을 도와주고 있다. 그 도움의 범주에는 인간도 포함되어 있다. 이 얼마나 오묘한 삶의 법칙일까!

 

7,

꽃은 곤충에게 꿀을 제공하고, 곤충은 그 대신 꽃가루를 운반한다. 얼마나 아름다운 공생 관계인가? 그러나 자연계는 눈 감으면 코 베어 가는 세계다. 서로 도와야 한다는 도덕심은 아예 없다. 반드시 우직하게 돕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곤충을 속여 꽃가루를 옮기게 하는 식물도 있다. 곤충은 꽃향기를 맡고 찾아온다. 향기가 난다는 것은 거기에 꿀 같은 먹이가 있다는 곤충과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향기만 풍기고 꿀은 없는 식물이 있다. 그 예로, 좋은 향기를 풍기는 천남성은 파리에게 꽃가루를 운반하게 한다. 천남성에는 암그루(자주)와 수그루(웅주)가 있는데 암그루는 꽃가루를 옮겨온 파리를 꽃으로 유인해서는 파리가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구조 안에 가둔다. 그러면 갇힌 파리가 출구를 찾아 날뜀으로써 수분하는 것이다. 공생과는 거리가 먼 잔혹한 처사다.

- p.150

 

정말로, 끔찍한 처사다. 결국, 파리를 납치해서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식물이 있다는 것 아닌가! 사람 사는 세상을 보는 듯한 느낌은 여전하다. 어쩌면, 식물의 세계에서는 끝나지 않을 인간과의 교감을 위해 그들만의 법칙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8.

어린아이들은 달콤한 과일은 좋아하지만, 쓴맛이 나는 피망이나 여주는 대부분 싫어한다. 이것은 생물로서는 극히 정상적인 반응이다. 달콤한 과일은 식물이 먹으라고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달콤한 설탕을 지나치게 섭취하면 해가 되지만, 자연계에 있는 단맛은 위험한 것이 없다. 또한 인간은 식물이 만들어낸 독성분을 '쓴맛'으로 감지한다. 마찬가지로 어린아이들이 쓴 채소를 싫어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이야기다. 먹히고 싶지 않은 식물과 먹고 싶지 않은 어린아이 사이의 이해가 서로 일치하는 측면이라 할 수 있다.

어른들은 어떠한가. 식물이 일부러 만들어낸 독성분인 쓴맛을 즐겨 먹는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쓴맛이 있는 채소를 남기지 말고 먹으라고 강요한다. 이러한 어른의 취향을 식물이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 p.210

 

내가 쓴맛을 별로 안 좋아하는 것이 비정상이 아니라는, 이 희망적인 말씀. 고로 나는 쓴 채소도 먹지 않는다. 다만, 쓴 맛이 나지 않는 채소는 먹는다. 그러니까, 내가 잘못된 게 아니라는!  

 

 

9,

식물은 꽃가루를 옮기려고 곤충에게 꿀을 제공하고, 씨를 운반해주는 새를 위해 달콤한 열매를 준비했다. 인간에게 맛있는 채소와 과일을 준비하는 일쯤은 어렵지 않다. 인간이 식물을 마음껏 개량해왔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어쩌면 인간에게 더 먹히려고 식물 자신이 진화해온 것은 아닐까? 인간은 식물을 이용한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식물이 인간을 감쪽같이 속여 이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P.218

 

어떤 누군가는 누군가를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 안간힘을 쓰며,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해낼 것이다. 그러나, 그 경우의 수에 포함되지 못하는 것이 바로 변수라는 것이다. 그 변수에는 사람의 감정, 신의 능력, 인간의 놀라운 힘, 그리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영적인 힘 같은 것이 있을 수도 있다. 또한, 누군가를 이용하려 하면 할수록 스스로 함정을 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할 수도 있다. 바로, 저 식물의 기막힌 반전처럼.

 

 

10.

살벌한 자연계에서 동맹을 맺기 위해 식물이 한 일은 무엇이었을까? 식물은 균류와 공존 관계를 구축하고자 먼저 자신의 체내에 균류를 불러들였다. 곤충과 공존 관계를 쌓으려 꽃가루를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곤충의 먹이인 꿀까지 준비했다. 그리고 새와 동물에게 씨의 운반을 부탁하고자 과일이라는 매력적인 선물을 먼저 주었다.

다른 생물과 공존 관계를 구축하려고 식물이 한 일, 그것은 자신의 이익보다 상대의 이익을 우선하고 먼저 챙겨줌으로써 서로 이익을 가져오는 것이었다.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식물은 이 가르침을 설파한 예수가 지상에 나타나기 훨씬 이전에 이 진리를 깨닫는 경지에 이르렀다.

- P.233

 

이제 드디어 『싸우는 식물』의 마무리에 왔다. 식물의 싸움을 보다가, 나의 감정도 차분히 가라앉았다. 감정과의 사투는 그렇게 끝나간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먼저 상대에게 유익한 일을 먼저 하라는 식물의 싸움은 예수님의 진리로 귀결된다. 내일의 내가 잘 사는 길, 누군가를 먼저 생각하고 그 사람의 유익이 무엇인지 먼저 생각하는 길이다. 나눔을 실천함으로서 생명을 보존하고 끝없이 발전을 거듭해온 식물들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 누군가의 유익을 위해 글을 올린다.  이 글을 쓰는 것이, 1차적으로는 누군가를 위한 글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나를 위한 길이라는 것을, 양심 있게 밝히면서!

 

이 리뷰는 도서관에서 빌린 도서를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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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면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인문적 글쓰기 아우름 37
박민영 지음 / 샘터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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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쓰면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박민영]

 

이제 알았쓰글쓰는 이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1.

 

책을 너무 아까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책을 장식용으로 서재에 꽂아 넣으려면 깔끔해야겠지만, 그렇지 않고 내 머릿속에 꽂아 놓으려면 이렇게 밑줄 긋고 메모하면서 보는 것이 좋습니다. 나의 밑줄과 메모가 바글바글한 책은 세상에 한 권밖에 없는 '내 책'입니다. 그것은 누구를 줘서도 안 되고, 잃어버려도 안 됩니다. 그 책은 필자의 생각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도 함께 적힌 '공저'나 다름없습니다.

내 메모가 중심이 되고, 밑줄 그은 내용이 인용되거나 참고가 되면 어떻게 될까요? 필자의 책에서 '내 저서'로 변합니다. 여기에 글쓰기의 비밀이 있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밑줄 긋고 메모하기 전에는 필자의 저서입니다. 이 책은 시중에 나와 있는 동명의 책들과 다를 바 없는 원 오브 뎀 one of them'입니다. 그러나 이 책에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하면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온리 원 only one'이 됩니다. 메모를 중심으로, 밑줄 그은 내용들을 들러라 삼아 글을 쓰면마인 mine'이 됩니다. 이런 단계를 거쳐 남의 저서가 내 저서로 역변됩니다.

- p.67

 

최근에 들은 어떤 강의에서 강사님은 직접 해보지 않고는 자기 것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직접 해봐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책 쓰는 작업은 직접 해 봐야 한다. 하나의 책을 내 것으로 만들어놓고 그것을 통해 자기 글을 쓰는 작업. 이것이 글쓰기의 기본 조건이다. 그래서 요즘 나는 최대한 책을 아끼지 않는 작업을 하고 있다. 최대한 필기를 할 수 있는 대로 해대고 있다. 물론, 그렇게 시작한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문제이긴 하지만. 요즘은, 천천히 읽을 책과 빨리 읽을 책을 구분하여 천천히 생각하면서 읽을 책들에는 최대한 밑줄과 여백에다 그 글에 대한 생각을 떠올리면서 정리해 나가는 작업을 해 나간다. 그렇게 했을 때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저 강사님께서 강조하신 말씀. 해봐야 안다!

 

 

2.

 

쉽게 답할 수 있는 문제라면 애초부터 책으로 쓸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책에는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제시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 방향이 문제 제기 그 자체에 내포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어찌 보면 사족인 셈이지요.

절망적인 문제가 있음을 알았다면 독자가 그 문제를 인식하고 절망하게 하는 것이 작가의 역할입니다.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제대로 된 절망 속에서 희망이 생겨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설프게 희망과 대안을 말하는 것이 실은 절망적 상황을 직시하지 않고 회피하는 경우도 많고요. 그것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킵니다.

- p.112

 

제대로 된 절망 속에 희망이 있다. 책은 가끔 절망적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절망을 통해서 얻게 되는 카타르시스. 그것이 바로 책이 목적하는 바가 아닐까. 책에서 해결책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은 책이 아니라 정책일 것이다. 그렇다면, 책을 쓸 때도? 아마 그렇겠지. 책을 쓰는 사람은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이 그런 것일 것이다. 해결책은 우리 모두가 그 책을 토론하는 가운데서 얻어질 테니까.

 

 

3.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위치에서 생각하고 글을 써야 자기만의 관점, 문제의식, 입장, 가치관이 투영됩니다. 그런 글은 필연적으로 독자에게 호불호 혹은 시비의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런 글은 독자가 동의하는 경우는 물론이고, 동의하지 않는 경우에도 좋은 지적 자극을 줍니다.

객관적이라는 미명하에 자신의 관점, 문제의식, 입장, 가치관이 없거나 잘 보이지 않는 글은 굳이 읽거나 쓸 필요가 없습니다. 저도 이런 글은 읽다가 그만둡니다. 투자하는 시간에 비해 얻는 것이 적고, 얻는다 해도 기껏해야 생기 없는 지식이나 감상일 뿐이니까요. 필자의 관점, 문제의식, 입장, 가치관이 잘 보이지 않으니, 열독하고 싶은 마음 자체가 생기지 않습니다.

 

- pp.117~118

 

이제 조금씩 내가 어떤 글을 써야 할지 감이 잡히기 시작한다. 나는 글의 기본도 모르고 그동안 글을 쓰겠다고 설쳐왔구나, 라는 통렬한 반성! 나의 가치관도 제대로 정립되지 않고 나의 관점도 세우지 않은 채 글을 써왔구나! 글에 ""가 없다면 그 글은 죽은 것이다, 라는 깨달음. 그동안은 ""가 없어야 한다고 알아왔는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구나! 그렇지 맞아,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방향만큼은 있어야 글에 일관성과 가치가 부여되지 않을까.

 

 

4

.

사람들은 흔히 내가 아는 것'을 그냥 쓰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렇게 해도 글은 됩니다. 그러나 좋은 글은 되지 못합니다. 일반적으로 ‘내가 아는 것'은 독자도 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독자는 바보가 아니니까요. 글이란, 글을 쓰려고 모은 자료를 분석하면서 알게 된 것을 쓰는 것입니다. 내가 본래 몰랐는데 알게 된 것을 써야, 독자들도 '이거 읽을 만한데'하는 반응을 보입니다.

- p.140

 

글을 쓰기 위해서는 최대한의 자료가 필요하고, 또한 나만의 관점, 나만의 가치관이 필요하다. 그래, 이제 알았쓰. 내가 어떻게 글을 써야 할지

 

오늘도 새로운 무언가를 알기 위해 고군분투 중인 나에게 칭찬의 말을 건넨다. 나 자신을 좀 더 사랑하기로. 나 자신을 좀 더 소중하게 여기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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