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아이들 새로고침 (책콩 청소년)
로버트 스윈델스 지음, 천미나 옮김 / 책과콩나무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어둠이 내린 거리, 냉기가 감도는 벽돌담에 한 아이가 기대어 앉아 있다. 최대한 웅크리고 앉아서 팔로 무릎을 감싸고 고개마저 숙인 소년. 그의 모습이 곧 사라질 듯 테두리만 남아있다. 거기에 소년을 바라보는 것 같은 고양이의 그림자. <사라지는 아이들> 표지만 봐도 암울함이 감돈다. 실낱같은 빛 한줄기조차 비치지 않는 그 모습에 괜시리 울적하고 쓸쓸해진다.




소설은 시작부분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곧잘 잊는다. 이 책을 읽을 때도 그랬다. ‘나는 링크다. 물론 진짜 이름은 아니다.’ ‘쉘터. 그거야. 맘에 들어.’ 이 대목을 무심코 넘겼다가 20쪽쯤에서 ‘아니, 이야기 진행이 왜 이래?’하며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 그제야 알게 됐다. 책은 구성이나 진행이 좀 독특하다. ‘링크’라는 소년과 ‘쉘터’란 연쇄살인범이 각각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서술방식이다.




아무개 부부의 아들로 태어나 지극히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낸 링크는 열 네 살 때 부모의 이혼과 새아빠의 폭력으로 인해 어느날 갑자기 차디찬 거리로 내몰린다. 고향을 떠나 무작정 런던에 도착한 링크는 직업을 구하기 위해 직업소개소와 사회보장국에 도움을 요청하지만 ‘자발적 노숙자’에겐 어떤 혜택도 주어지지 않는다는 말만 듣는다. 주머니엔 잔돈 몇 푼밖에 없는 상황에 그나마 머물던 숙소에서까지 어이없이 쫓겨난 그는 추위와 배고픔에 허덕이며 거리의 구석진 곳을 찾아다닌다. 우연히 진저라는 또래의 노숙자소년을 만나 구걸하는 방법이나 요령을 배우기도 하고 서로 의지하며 지내던 어느날 갑자기 진저가 사라진다.




쉘터. 의학적인 사유로 군대에서 강제 퇴역당한 그는 자신의 진가를 알아주지 못한 군대에 분노하면서 알콜 중독자나 노숙자로 나라를 더럽히려는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인간쓰레기가 온 거리를 어지럽히기 전에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한 그는 대상자를 물색하기 시작한다. 추위와 배고픔에 지친 노숙자들을 한명씩 꼬여낸 다음 순식간에 살해하는데 그런 일련의 과정이 마치 정당한 행위인양 ‘근무일지’란 형식을 빌어 노트에 적는다. 더불어 자신의 살인행각, 행동이 오히려 고맙지 않냐고 비웃듯이 되묻는다. 그런 그가 어느날 거리에서 마주친 진저와 링크를 처리해야할 적으로 인식하고 그들을 잡기 위해 철저한 작전을 세우는데....




링크와 쉘터, 가정내의 폭력으로 가출하여 노숙자가 된 소년과 미치광이 연쇄살인범의 얘기가 번갈아 진행되는 방식은 책을 읽는 내내 팽팽한 긴장감을 전해줬다. 특히 진저를 간단하게 속이고 살해한 쉘터가 링크마저 잡으려고 할 때, 긴장감은 극에 달했다. 자신의 목을 조이려는 손이 시시각각 다가가는데 정작 링크가 눈앞에 있으면서도 눈치채지 못할 때의 아슬아슬함은 스릴 넘치는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 했다.




하지만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긴박감이나 스릴이 아니다. 오늘, 지금 이 시간에도 거리를 방황하는 수많은 이들이 얼마나 비참한 상황에 놓여있고 그들의 미래가 어떠할지 한번쯤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그럭저럭 구걸해서 오늘은 버텼지만 그들에게 보장된 내일은 없다. 어떤 희망이나 삶의 의욕도 상실한 채, 버젓이 존재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린 이들. 그들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건 무엇일까. 끝없이 빠져드는 절망의 늪에서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책에서 게일이 떠날 때 링크의 손에 돈을 쥐어준 것처럼 돈이 해결책일까?




얘기가 어긋나지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란 에니메이션이 생각난다. 낯선 동네로 이사가던 치히로의 가족이 길을 잘못 들어 찾아간 곳에서 부모님은 돼지로 변하고 치히로 역시 몸이 사라질 듯 서서히 투명해진다. 그때 하쿠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기지만 치히로는 자신의 이름을 잃고 ‘센’이라고 불리며 온천장에서 일을 하게 된다. 자신을 줄곧 지켜주고 돌봐주던 부모조차 없는 상황 속에서 치히로는 매사에 심드렁하고 짜증내기 잘하던 소녀에서 서툴지만 열심히 노력하는 아이로 거듭나고 결국 부모님도 다시 찾게 되는데...만약 링크에게 ‘하쿠’와 같은 인물, 위기에서 구해주고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만약 그랬다면 링크의 오늘은, 다가올 미래는 이렇게 암담하진 않았을텐데...란 생각이 들었다.




영국 런던의 거리, 어둡고 구석진 곳에서 벌어지는 노숙자들의 삶을 얘기한 160여쪽의 짧은 이 책은 무척 쉽게 금방 읽혀진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난 느낌은 한 권의 책을 읽었다는 뿌듯함이나 개운함보다 봐선 안 되는 물건, 판도라의 상자를 몰래 들춰보기라도 한 듯 두려움과 암울함, 깊은 절망감 속에 빠져 허우적댔다. 이야기가 벌어진 장소는 영국 런던이 아니라 대한민국 내가 사는 도시이며  책 속의 미치광이 살인마 쉘터는 바로 나의 또 다른 나였다. 어둠 속에 숨겨진 나의 내면을 마주한 듯해서 마음이 불편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이게 끝이 아니란 거다. 책에서 링크가 그랬듯이 나 역시 희망한다. 이 책이 시발점이 되어 내 속에 잠재해있던 겹겹이 쌓인 편견을 벗어던질 수 있길, 지금까지 그들을 외면하거나 차갑게 바라봤던 시선이 조금씩 따스함을 띌 수 있길...






<기억에 남는 대목....>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한 시간, 두 시간. 잠깐씩 졸기도 한다. 아주 잠깐. 너무 춥고 두렵고 또 아파서 결국엔 어서 아침이 오기를 기도한다. 너무 지칠지라도, 내일 또한 어제와 똑같이 가혹할지라도. 무엇보다 내가 이런 대접을 받아 마땅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잘 알기에 더욱 힘겹다. --- 72쪽.




몇 년 전만 해도 그 애 역시 어여쁜 아기였겠지....그 애의 부모 역시 한없는 사랑을 베풀었을테고...우리 아기는 자라서 어떤 사람이 될까, 뭐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겠지. 그런데 그 예쁜 아기가 자라 비닐봉다리라고 불리며 먹다 남긴 음식으로 연명하다가 어느 날 홀연히 사라져 버렸지만, 신경 쓰는 이 하나 없는 무의미한 존재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으리라. --- 90쪽.




나는 희망한다. 루이즈와 개빈이 기사를 쓸 때, 진실을 담아 줄 것을 희망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 기사를 읽기를 바란다. 사람들이 편견을 벗고 진실을 바라보기를 희망하며, 조금이나마 현실을 제대로 알게 되는 시발점이 될 수 만 있다면.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어선 안 된다. 난 그저 내가 아직 이곳에 있을 때, 희망하는 일들이 이루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 1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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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08-24 0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거운 주제군요. 예전에 아이들에게 너희 집 옆에 노숙자 쉼터 같은게 만들어진다고 하면 너희들은 어떤 생각이 들겠니라는 질문을 던졌어요. 아이들의 생각은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어른들의 생각을 딱 닮았더군요. 위험할 것 같다. 무서울것 같다. 심지어 집값 떨어진다까지... 이 책 주제가 상당히 무거울 것 같지만 관심이 가네요.

몽당연필 2008-08-24 0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쉽고 금방 읽히는데 비해 읽고나서 무척 무거운 느낌을 주는 책이었어요.
아이들이 어른의 생각을 닮게 되는건 아마도 부모나 주변 어른들의 영향이 아닐까...싶어요. 아이에게 잘못 심어준 편견이나 선입견이 나중에 아이가 성장했을때도 영향을 줄거라 생각하면 순간 아찔해져요. ㅠㅠ;;
 
흰옷을 입은 여인
윌리엄 월키 콜린스 지음, 박노출 옮김 / 브리즈(토네이도)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휘~유우....”




<흰옷을 입은 여인> 이 한 권의 책을 숨가쁘게 읽고 나자 그동안 줄곧 참아왔던 숨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약 800페이지 정도의 두툼하고 묵직한 책은 책을 손에 들고 읽는 것 자체부터 버거웠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책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흐름을 따라가다보니 숨돌릴 틈이 없었다는데 있다.




사실 책을 읽기 전엔 표지에 붉은 글씨로 적힌 ‘코난 도일과 찰스 디킨스가 극찬한 서양문학사 최고의 추리소설!’이라는 대목을 그저 홍보나 광고의 일부라고만 여겼다. 그동안 베스트셀러에 오른 어떤 책과 비교하면서 그것과 버금가는 뛰어난 책이라는 문구에 혹해서 읽었다가 씁쓸하게 책장을 덮은 책이 한 두 권이 아니었다. 이 책도 그런 책일거란 생각에 그다지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 의외였다. 대단했다. 책장을 덮으면서 “이건 정말 대박이다!!”란 말이 절로 나왔다.




<흰옷을 입은 여인> 이 책의 저자는 윌리엄 윌키 콜린스. 법률을 공부하여 변호사 자격증까지 취득한 독특한 이력을 가진 저자는 이 책의 출간으로 인해 순식간에 인기작가의 반열에 올랐다고 한다. 도대체 어떤 내용의 작품이길래...? 궁금하지 않은가!




7월의 마지막날, 월터 하트라이트가 뜨겁고 지루했던 여름의 막바지를 돌아보며 책은 시작한다. 금전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최악의 상태, 바닥을 치고 있는 상황이었을 때 월터는 친구를 통해 리머리지 가의 자매에게 수채화를 가르치는 기회를 얻게 된다. 리머리지 가로 떠나기 전날 밤,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서 우연히 흰옷을 입은 여인을 만난다. 온통 흰색의 옷을 입은 것에서부터 대화나 행동도 왠지 의심스러웠지만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리고 리머리지 가에서 로라와 마리안에게 수채화를 가르치게 된 그는 두 자매 중에서 아름다운 로라를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그때 이미 로라에게는 약혼자가 있을 뿐 아니라 곧 결혼도 하게 될 거라는 얘기를 듣고 월터는 리머리지 가를 떠난다.




한편 로라는 자신이 사랑에 빠졌다는 걸 약혼자인 퍼시벌 경에게 털어놓는다. 로라의 고백에 약혼을 파기하리라 예상했던 퍼시벌 경은 오히려 로라와의 결혼을 서두르고 로라는 월터를 향한 사랑을 애써 접는다. 하지만 로라와의 결혼이 자신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목적이라던 퍼시벌 경은 결혼 후 갑자기 태도가 돌변한다. 퍼시벌 경의 친구라는 포스코 백작의 등장으로 인해 로라와 마리안은 궁지에 몰리게 되고 급기야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돌아온 월터는 로라가 죽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  무덤을 찾는다. 로라의 무덤 앞에서 망연자실한 그의 눈 앞에 로라가 나타난다. 그리고 함께 있던 마리안을 통해 소름끼칠 정도로 엄청난 얘기를 전해 듣는다. 로라의 결혼 뒤에 숨겨진 잔인한 음모와 치밀한 범죄를 알게 된 월터는 마리안과 함께 복수를 계획하는데....




책은 독특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3부로 나뉜 구성에 주인공을 비롯한 주변 인물들이 저마다 자신이 사건과 관련된 부분을 1인칭 시점으로 서술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래서 부분적으로 끊어진 사건의 고리들을 이어주기도 하고 복잡하게 뒤엉킨 사건을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 책에서 주변인물은 결코 엑스트라가 아니다. 저마다 중요한 퍼즐 조각을 쥐고 있는 주요인물이었다. 또 본문 중에 언급되는 신분이나 계급, 재산과 복잡한 유산상속 방식, 혼인 약정 등의 요소들이 다소 이해하기 어렵고 낯설었지만 그것 역시 책의 흐름과 사건해결에 빠져서는 안되는 장치였다. 그리고 이야기를 주로 이끌어나가는 인물인 월터와 마리안이 그 복잡한 퍼즐 조각을 이리저리 맞추면서 사건을 풀어나간다.




저마다 개성이 뚜렷한 등장인물과 탄탄한 구성, 흡인력 있는 이야기 흐름, 마치 눈에 보일 듯 표현된 세심한 묘사. 책을 읽다보면 이 책이 도저히 19세기 소설이라고 믿기지 않는다. 윌리엄 윌키 콜린스. 그의 다른 작품은 없을까? <흰옷을 입은 여인>을 만나자마자 난 그의 이름이 새겨진 또다른 책을 찾아 헤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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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예언자 1 오드 토머스 시리즈
딘 쿤츠 지음, 조영학 옮김 / 다산책방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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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옅은 초록빛을 띤 배경에 비해 상대적으로 어두운 얼굴, 그 속에 정면을 뚫어져라 응시하는 이가 있다. 그의 이름은 오드 토머스. 죽음을 보고, 죽은 사람을 보며 죽음을 미리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주인공 오드는 죽음을 예견하지만 평소엔 레스토랑의 주방에서 예술적인 달걀요리와 매혹적인 팬케이크를 만드는 요리사가 직업이다. 페니란 소녀의 억울한 죽음을 해결하고 일터로  돌아온 그는 식당으로 들어오는 바다흐를 목격한다. 실체는 없지만 검은 잉크처럼 불투명한 존재인 바다흐는 곧바로 죽음과 이어진다. 벌이 꿀을 찾아다니듯 죽음을 빨아먹는 그들은 평범한 죽음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폭력과 공포, 죽음과 비명의 회오리가 몰아치는 곳에 어김없이 나타나는 바다흐들이 한 남자의 주위에 무리지어 다니는 걸 본 오드는 불길한 기운을 느낌과 동시에 곧 엄청난 재앙이 남부 캘리포니아의 피코문도 마을에 휘몰아치리란 것을 직감한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들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던 오드는 로버트슨이란 남자의 뒤를 밟고 그의 집에 잠입한다. 로버트슨의 집에서 오드는 시간의 흐름이 부분적으로 역행하는 어둠으로 가득찬 방을 목격하는데 그 곳에는 연쇄살인이나 테러 같은 대량학살의 주범인 사람의 자료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반면에 로버트슨의 이름이 적힌 파일엔 8월 15일이란 날짜가 어떤 기록도 없는 빈 공백으로 남아있는 걸 보고 그 날이 바로 끔찍한 대량살육이 벌어질거라 확신한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오드가 잠깐 머무는 곳마다 로버트슨이 나타난다. 마치 오드가 자신의 집에 몰래 들어갔다는 걸 눈치챘다는 걸 경고라도 하듯이. 시시각각 다가오는  끔찍한 파괴와 대량살육을 막기 위해 오드는 숨가쁘게 뛰어 다니지만 곧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지면서 오히려 오드의 목을 조여 오는데....




<살인예언자>의 저자는 호러 미스터리 작가로 알려진 딘 쿤츠이다. 그는 인간의 마음 속에 숨은 기괴함과 어둠, 공포를 세밀하게 표현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고 하는데 솔직히 이 책만 봐서는 알 수 없었다. 특히 초반의 내용은 정돈되지 않고 이리저리 튀는 공 같아서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30페이지를 넘어서면서 주인공인 오드가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는지 알게 되면서부터는 속도가 붙어서 500페이지 가까운 책이 순식간에 휘리릭 넘어갔다.




‘오드 토머스의 첫 번째 이야기’란 문구에 나와있듯 죽음을 예견하는 오드 토머스의 이야기는 두 번째, 세 번째로 계속 이어진다고 한다. 그래설까. 책을 읽고 나서도 해결되지 않는 의문점이 남았다. 오드의 어린 시절을 비롯해 잔뜩 뒤틀린 부모와의 관계, 죽음을 보는 그의 능력은 언제 어떻게 시작됐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 경찰 서장인 포터의 협력을 얻게 됐는지, 또 간혹 나타나 독자로 하여금 웃음을 흘리게 하는 앨비스의 유령은 오드에게 어떤 의미인지...궁금했다. 알고 싶으면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는 수 밖에 없는 건가...여름이 가기전에 오드의 두 번째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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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놀 지는 마을
유모토 카즈미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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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니는 내 죽었다캐도 오지마라!!”




친정자매 중에 성격이 유난히 불같은 언니가 있다. 그 불의 원조격인 또 다른 불, 친정엄마가 간혹 외나무 다리에서 부딪힌다. 화르륵 화르르륵.... 한치의 물러섬 없이 팽팽히 맞서서 활활 타오르던 불의 전투는 항상 이렇게 끝을 맺는다.




“내 다시는 이 집 대문 넘나봐라.” “오냐, 그래. 니는 내 죽었다캐도 오지마라!!”




친정엄마와 언니, 그 둘의 접전을 곁에서 만류하거나 나중에 전해 들으면 항상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가족끼리 언제나 사랑하며 지내면 정말 좋겠지만 때로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 치더라도 왜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는 걸까. 그것도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책은 열 살인 소년, 나 가즈시의 서술로 진행된다. 또각또각...... 깊은밤 어머니가 손톱을 깎는다. 아이에겐 한밤중에 손톱을 깎으면 부모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다고 호통을 치면서도 정작 자신은 매일밤 또각또각 손톱을 깎고 발톱을 깎는다. 마치 누구에게 들으라고 시위라도 하듯이.




1970년 봄, 이혼한 어머니와 가즈시가 사는 집에 낯선 남자가 찾아온다. 그는 바로 어머니의 아버지이자 가즈시의 외할아버지 ‘짱구영감’이었다. 오래전에 가족들 곁을 떠나 정처없이 세상을 떠돌던 그가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선 좁은 집 방의 한쪽 구석에 웅크리고 자리를 잡는다. 어머니는 그런 짱구영감을 반가워하지도, 구박이나 괴롭힘도 아닌 알 수 없는 태도를 보인다.




그들이 서로에게 어느 정도 익숙해질 무렵, 어머니가 앓아서 누워버린다.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바들바들 떠는 어머니. 그 며칠 뒤 느닷없이 짱구영감이 사라진다. 주위가 어둑어둑해지도록 짱구영감이 돌아오지 않자 걱정이 된 어머니가 찾으러 나서려던 찰라, 짱구영감이 집에 들어선다.  양손에 들고 있는 새빨간 양동이엔 피조개가 가득했다. 온종일 짱구영감이 뻘에서 캔 피조개를 먹고 어머니는 조금씩 건강을 회복하지만 그에 비해 짱구영감은 점점 더 쪼그라들더니 급기야 병원에 입원하고 만다. 그때 이미 짱구영감의 몸은 더 이상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쇠약한 상태였는데....




“죽으면 안돼요.....” 말투는 결코 다정하지 않았다....그때 나는 생각했다. 어머니에게는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고. 아직, 아직 조금만 더.......다음 순간, 자고 있는 줄만 알았던 짱구영감이 눈을 뜨고 이렇게 말했다. “알고 있다.” - 119~120쪽.




엄마와 아들, 그 둘만의 조용한 일상이 짱구영감의 등장으로 인해 일어나는 크고 작은 파문을 담은 소설 <저녁놀 지는 마을>. 저자 유모토 가즈미는 이 책에서 가족에 대해 말한다. 어느 누구보다 서로를 믿고 사랑했기에 미움은 더 깊어지고 서로의 가슴에 맺힌 상처를 멍에처럼 품고 살아가는 가족. 그들이 함께 생활하면서 겪는 사랑과 미움, 이해와 용서, 삶과 죽음 속에서 가족이란 무엇이고 어떤 존재인지 독자로 하여금 돌아보게 한다.




무척이나 얇은 책이었다. 두께가 1센티미터나 될까?...하지만 그 속에 담긴 감동은 실로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한여름 무더위를 식혀주는 소나기가 아니라 봄날의 가랑비 같았다. 어떤 미사여구도 없이 담담한 문체로 풀어낸 글을 읽다보면 어느새 가즈시 가족의 이야기에 푹 빠져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짧막한 이야기지만 울림과 여운은 오래도록 남는 책이었다. 붉게 타오르며 서쪽으로 저무는 태양을 향해 어깨에 양동이를 지고 힘겨운 걸음을 내딛는 짱구영감의 뒤로 길게 늘어진 표지의 그림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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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8-08-11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쉽게 화해가 되고 용서가 될까요? 난 너무 의심스러워요.
 
듀마 키 1 - 스티븐 킹 장편소설 밀리언셀러 클럽 86
스티븐 킹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파도가 치는 바다가 그려진 캔버스. 그 위로 날카로운 칼이  지나갔다. 찢긴 캔버스 위로 뚝뚝 떨어진 붉은 핏방울들...살의를 띈 눈에 칼을 든 사람은 물론이고 피를 철철 흘리며 쓰러진 사람도 없건만 <듀미키> 이 책의 표지를 보는 순간 살짝 소름이 돋았다. 과연 호러 소설의 대가라는 스티븐 킹. <미저리> <쇼생크 탈출> <돌로레스 클레이븐>...을 영화로만 접했는데, 그의 작품을 이제야 드디어 보는구나...실감이 났다.




‘내 이름은 에드거 프리맨틀’이라고 시작하고 있듯 책의 주인공은 에드거 프리맨틀이란 건축사업가다. 그것도 아주 잘나가는 성공남. 나이 쉰이 될 때쯤 4000천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승승장구를 거듭하던 그가 끔찍한 교통사고를 당한다. 두개골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으며 갈비뼈는 우수수 부서지고 오른쪽 엉덩이도 박살이 났다. 거기에 오른팔마저 잃고 만다. 그런 심각한 부상에도 불구하고 생명을 건진건 그야말로 기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따지고보면 그렇지도 못하다. 말 한마디를 하려면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엉뚱한 말을 내뱉는가하면 아내와 주위 사람에게 서슴없이 폭력을 휘두르는 난폭한 성격의 소유자로 바뀌고 말았다.




참다못한 아내는 결국 그에게 이혼을 요청하고 에드거는 자신의 재산 중 대부분을 넘겨준다. 단 한번의 사고로 성공과 재산, 건강과 사랑하는 가족까지 한꺼번에 잃어버린 그는 삶의 의욕을 상실하고 급기야 자살을 결심한다. 그런 그에게 담당 주치의는 “조금만 더 기다렸다 하세요”란 말을 한다. 즉 그가 지금 자살을 할 경우엔 두 딸이 입는 상처가 너무 크니까 최소 1년간, 인적이 드문 교외의 휴양지에서 요양을 한 뒤 제대로 하라고 조언을 한다.




플로리다 해안가의 듀마키에 별장을 임대해서 생활하는 에드거는 오래전 그만뒀던 그림을 다시 시작한다. 그런데 놀라운 건 그동안 그림과 담쌓다시피 살아온 그의 그림이 예사롭지 않다. 사고로 잃은 오른팔이 어느 순간 따끔거리고 바늘로 찌르는듯한 느낌이 올 때마다 그는 그림을 그리고 그런 과정을 거쳐 탄생한 그림은 섬뜩하고 기이하지만 누가 봐도 빠져들만큼 매력적이었다. 거기다 그가 그린 그림이 현실 속에 그대로 벌어지는 게 아닌가. 그는 자신의 그림 속에 숨은 힘을 이용해 현실을 바꿔나간다. 듀마키에서 만난 친구 와이어먼의 눈을 고쳐주고 살인마에게 응징을 가한다. 하지만 그의 힘이 점차 강해지면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에게 불행한 일들이 일어나는데....




책에는 간혹 ‘그림을 그리는 법’이란 짧막한 이야기가 있는데 그건 엘리자베스란 의문의 노인의 어린시절에 대한 이야기다.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어서 기억이 오락가락하는 그녀는 간혹 정신이 말짱해질 때 에드거에게 전화를 하고 주의를 준다. 듀마키에 딸들이 머물지 못하게 하라고, 그림을 거기에 두면 안돼. 밖으로 빼내야한다고...처음엔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는데 후반부로 가면서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됐다.




끔찍한 사고로 치명적인 부상과 정신장애를 입은 주인공이 듀마키라는 섬에 머물면서 벌어지는 섬뜩하고 기이한 이야기 <듀미키>. 스티븐 킹의 작품을 처음 읽는 나로선 비교대상이 없어서 이 소설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처음에만 해도 더디기만 하던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중반을 넘어서면서 가속도가 붙어 급속도로 빨라졌다. 연일 계속되는 열대야의 밤에도 책을 들고 있을땐 오싹 소름이 돋고 왠지모를 공포에 어깨가 으슬으슬해졌다. 이게 스티븐 킹의 위력인가...싶었다. 그의 다른 작품도 만나보고 싶다. 이 작품에 대한 평가는 그 후로 미뤄도 늦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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