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의 론도 오리하라 이치 도착 시리즈 1
오리하라 이치 지음, 권일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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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요즘 출간되는 책의 제목이나 표지는 아리송한 수수께끼 같다. 본문에 이어질 내용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경우가 많아서 책을 읽기 전엔 항상 제목이나 표지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도착의 론도> 역시 마찬가지다. 사과 껍질을 길게 깎은 것처럼 연결된 남자의 얼굴은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현상이고 모습이다. 거기에 제목!! <도착의 론도>의 ‘도착’. 한자를 보니 흔히 알고 있던 그 단어가 아니었다. 책날개를 보니 ‘뒤바뀌어 거꾸로 됨, 본능이나 감정 또는 덕성의 이상으로 사회나 도덕에 어그러진 행동을 나타낸다’고 설명되어 있었다. 그럼 ‘론도’는? 검색해보니 음악용어인가보다. ‘주제가 같은 상태로 여러번 되풀이되는 동안에 다른 가락이 여러 가지로 삽입되는 형식의 기악곡’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이 <도착의 론도>는 심리나 감정적으로 어그러진 행동이 연이어 반복, 되풀이되어 나타난다는 건가?

 

 

추리소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살인이나 범죄가 일어지지만 살인자 혹은 범인이 누군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태로 진행되는 것과 이미 누가 범인이고 어떻게 모의를 하는지 다 알려주면서 사건을 벌이는 경우가 있다. 얼핏 생각해보면 후자의 경우엔 무슨 재미가 있을까...싶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저자가 더욱 치밀하게 구성할뿐더러 곳곳에 숨겨진 트릭이나 단서들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책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조차 어렵다.


사설이 길었다. 그럼 <도착의 론도>는? 바로 후자의 경우. 범인이 누구인지 다 드러내놓고 시작한다. 그리고나서 저자는 독자에게 자신만만하게 내기를 걸어온다. “어때? 내가 이만큼 다 까발려놨으니까 충분히 풀 수 있지?”하고. 입꼬리를 한쪽으로 치켜올리고 살짝 웃는 폼으로...틀림없이 독자를 만만하게 보는 거다. 도전은 받아들이기 위해 있는 법. 그래!  뭐든지 내놔 봐! 내가 다~아 풀어주지!! 자신만만하게 책장을 열었다.



책의 몰입도는 정말 상상을 초월한다. 가족들 모두 잠자리에 들고 책을 들어 채 두 시간도 안되서 책장을 덮었다. 당시 나의 상태는? 나의 승리를 100% 자신하고 책에 덤벼들 때와 사뭇 다르다. 이마엔 땀이 삐질...배어나온다. 이거야원...난감하군. 그럼 책의 이해도는 어때? 그...게, 글쎄..... 70? 아니, 60쯤? 아니, 이거 뭐야. 첨하고 다르잖아. 뭐가 문제인거야? 엉?? 그래. 뭐가 문제일걸까.


차가운 바람이 부는 계절, 두 평 남짓한 좁은 방에서 한 남자가 <월간추리> 잡지를 설펴보는 것으로 책은 시작한다. ‘월간추리 신인상 결과 발표! <환상의 여인> 시라토리 쇼. 32세의 신예, 충격의 데뷔, 420매 완전 게재.’ 이걸 본 남자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이럴수가, 믿을 수가 없어. 내 작품인 <환상의 여인>이......”. 분명히 ‘야마모토 야스오’란 자신의 이름이 적혀있어야 하는 곳엔 ‘시라토리 쇼’란 낯선 남자가 수상소감을 늘어놓고 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혹시 이거 도작아닌가?”


이후 책은 자신의 작품인 <환상의 여인>을 빼앗겼다고 확신한 야마모토의 도작과 도착, 도착의 도작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얘기를 풀어내는 저자의 솜씨가 정말 일품이다. 하나에 병적으로 집착한 이가 보일 수 있는 광기와 그로 인한 복수극. 시작부터 끝까지 막힌 곳 없이 일사천리로 쭈우욱 뱉어낸다. 그리고 화룡점정이라도 되는양, 끝부분에서 독자의 뒤통수를 ‘딱’하고 내리친다. “거봐. 내가 안된다고 했지?” 억울하다. 저자의 술수에 말려들지 않으려고 열심히 두 눈 부릅뜨고 읽었는데...화가 난다. 나도 자존심이 있지. 좋다. 다시 도전한다!!


한 권의 책을 읽자마다 다시 처음부터 돌아가서 읽게 될 줄....몰랐다. 두 번째는 처음에 눈으로 훑어가던 것들을 메모했다. 그냥 휙 지나가는 사소한 것들...숫자와 날짜. 그게 단서였다. 저자가 만들어놓은 도작과 도착의 소용돌이, 미로 속을 탈출하는 열쇠였던 거다. 그럼  그렇지! 내가 쉽게 물러날 사람이 아니지...만만하게 보지 말라고! 자신만만하게 책장을 덮었다.


오리하라 이치의 작품은 이 책이 처음이다. 첫만남치고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알고보니 이 책은 오리하라 이치의 ‘도착’ 시리즈 중의 하나라고 한다. 책날개에도 <도착의 사각> <도착의 귀결>이 이어질 예정이라고 한다. 그의 두 번째, 세 번째 이야기가 궁금하다. 어떤 이야기로 나의 뒤통수를 후려칠 것인가...기대가 된다.


 

다만 한가지 의문이 남는다. 책을 연거푸 두 번을 읽고 시계가 이른 새벽을 알릴때 비로소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꿈속에서의 난 아직도 오리하라 이치의 미로 속을 헤매고 있었다. 분명히 탈출구라고 생각한 곳의 문을 열고 나갔는데도 매번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있었다. 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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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상속
키란 데사이 지음, 김석희 옮김 / 이레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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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 어떤 뜻인지 알면서도 단어를 검색해봤다. ‘상실[喪失] 어떤 사람과 관계가 끊어지거나 헤어지게 됨, 어떤 것이 아주 없어지거나 사라짐.’ 그러니까 ‘상실의 상속’이란 사람이나 물건과의 관계가 끊어지거나 사라지는 과정이 다음으로 계속 이어진다는 뜻이다. 거기에 축축하고 어둠이 내려앉은 골목의 표지사진까지. <상실의 상속> 첫만남은 이렇게 짙은 우울함이 비집고 들어왔다.




1986년의 인도. 히말라야 산중의 작은 마을 칼림퐁. 칸첸중가 봉우리가 바라보이는 ‘초오유’란 저택에 은퇴한 판사 제무바이와 그의 애견 무트, 열여섯 살의 외손녀 사이, 그리고 아들 비주를 미국에 보낸 늙은 요리사가 살고 있다. 수학 가정교사인 지안을 기다리는 사이와 티타임에 달콤한 케잌이 없다고 투덜대는 제무바이는 여느때와 다름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짙은 안개가 낀 어느날 갑자기 무장한 소년병들이 초오유에 들이닥친다. 그들은 제무바이에게 “고르카 만세” “나는 바보입니다”고 말하는 수치를 안겨준 다음 음식과 총을 빼앗아 사라진다. 겉으로 보기엔 사건은 큰 불상사 없이 마무리된 듯 보이지만 그 일은 초오유의 고요한 일상에 파문을 일으키는 계기가 된다. 이후 책은 인도와 미국을 오가며 제무바이와 사이, 늙은 요리사, 비주의 과거와 현재의 삶을 보여준다.




자신의 집에 침입한 소년병으로 인해 씻을수 없는 수치심과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제무바이는 젊은 시절 인도에서의 삶이 싫어 영국으로 유학을 간 엘리트였다. 그는 영국에서 영국인으로 살고 싶었지만 타국에서의 삶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영국과 인도, 어느 곳에서도 자신이 머물 자리를 찾지 못한 그는 아내와 딸조차 거부하고 외면한다. 칼림퐁에서 오직 자신의 애견 무트만 애지중지하며 지내는 그에게 어느날 고아가 된 외손녀 사이가 찾아온다. 열여섯,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인 사이는 가정교사인 지안과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인도의 뿌리깊은 신분제도와 극심한 빈부차이로 인해 그들의 사랑은 순조롭지 않았다. 더구나  네팔계 인도인인 지안이 고르카 민족해방전선의 무력시위에 가담하면서 사이는 혼란에 빠진다.




하나뿐인 아들 비주를 머나먼 미국으로 보낸 요리사. 그는 아들에게 편지를 보내고 이웃사람들에게 미국에서 비주가 얼마나 성공했는지 떠벌리는 게 유일한 즐거움이다. 하지만 미국에서의 비주의 삶은 요리사의 생각과 전혀 딴판이었다. 기회의 땅, 미국에 저마다의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모여드는 불법체류자들. 그들에게 기회는 쉽사리 오지 않았다. 비주 역시 그린카드를 얻기 위해 온갖 고생을 다하지만 그의 삶은 인도에서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가슴에 큰 상실감만을 떠안게 되는데...




2006년 맨부커상과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한 인도출신 작가 키란 데사이의 <상실의 상속>. 거의 600페이지 가까이 되는 이 책을 읽어나가는 건 힘든 일이었다. 내용이 어려워서가 아니었다. 지루하거나 재미없는 것도 아니었다. 저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담담한 어투로 얘기를 풀어내고 있었다. 은퇴한 판사와 가족, 그 주변인물들이 겪는 일상을 통해 인도의 신분제도를 비롯한 여러 종족간의 갈등, 영국의 식민지를 벗어나면서 겪는 혼란들을 볼 수 있었다. 떨쳐내고 싶지만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가난과 어딜 봐도 끝이 보이지 않는 상실감, 그 속에서 허우적대는 등장인물들의 삶은 우리의 지난 과거와 흡사했다. 그래서 ‘상실의 상속’이라고 했던걸까.




황혼녘의 어스름한 색조에서 시작한 책은 ‘칸첸충가의 다섯 봉우리가 황금빛으로 변했다’며 아침의 햇살을 묘사하며 끝을 맺는다. 칠흙같은 어둠, 밤을 지내며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큰 아픔과 상실을 겪었지만 새롭게 맞은 아침, 하루는 실낱같은 희망이 반짝일 거라고 애써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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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거울 나라의 앨리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5
루이스 캐럴 원작, 마틴 가드너 주석, 존 테니엘 그림, 최인자 옮김 / 북폴리오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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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가 우리집에 왔다! 그것도 거대한 <앨리스>!! 집에 있는 두 권짜리 앨리스(이상한 나라/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가져와서 비교해봤다. 순간 쿡, 웃음이 나왔다. 두 권을 모두 합한 것보다 더 크고 두껍다. 글자크기도 합본으로 된 <앨리스>가 오히려 더 작은데 말이다. 이유가 뭘까. 힌트는 바로 부제에 있었다. ‘마틴 가드너의 앨리스 깊이 읽기’. 즉 이 책 <앨리스>는 루이스 캐럴의 <앨리스>를 마틴 가드너가 꼼꼼하게 주석을 붙여 제작한 책이었다.




사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어릴 적에 읽었다. 그리고 몇 년 전 국내의 유명출판사에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완역판으로 출간했을 때 반가운 마음에 얼른 구입해서 쓰윽 훑어보고 책장에 꽂아뒀다.  자세하진 않지만 내용이 어떠하다는 건 대충 알고 있으니까 그다지 새로운 건 없을거라 여겼다. 그런데 아니었다. 이번에 만난 마틴 가드너의 주석판 <앨리스>는 내 기억 속의 앨리스와 뭔가 달랐다.




기본 뼈대는 비슷했다. 언니와 함께 시냇가에 갔던 앨리스가 조끼를 입고 회중시계를 찬 토끼가 “너무 늦었다”며 급히 사라지는 걸 보고 호기심에 쫓아간다. 토끼굴로 들어간 앨리스가 한없이 깊은 굴속으로 떨어지면서 이상한 나라에서의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먹거나 마신 음식에 따라 몸이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한다. 이상한 동물이 나타나 말을 하는건 물론이거니와 얼굴이 물고기와 개구리처럼 생긴 하인이나 몸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체셔고양이(어디선가 많이 본 듯하다)를 만난다. 병사들의 몸이 카드처럼 생긴 곳에서는 여왕과 크로케 시합을 하기도 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이상한 일 투성이다. 근데 정말 희한한 건 그 곳 사람들은 오히려 앨리스를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한다는 거였다. 조금 다르긴 하지만 거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자꾸만 ‘반대’를 외치고 거대한 체스 판 위에서 게임을 했으며 시냇물을 건널 때마다 이상한 일들이 벌어졌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저자인 루이스 캐럴이 사랑했던 앨리스란 소녀를 위해 지어낸 이야기에 몇 개의 이야기가 보태져서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상한 나라에서 앨리스가 갖가지 모험을 이 이야기를 아이들뿐만 아니라 물리학이나 철학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학문에서 연구대상이라는 얘길 들은 적이 있다. 처음엔 단순한 판타지 동화 한 편이 뭐 그리 대단할까 여겼다. 저자의 엄청난 상상력이 과연 어디서 비롯됐는지가 더 궁금했다.




하지만 책 속에 수록된 엄청난 분량의 주석, 때론 실제 본문의 내용보다 오히려 더 많은 양을 차지하는 주석을 읽고 나선 생각이 달라졌다. <앨리스>는 단순히 판타지 동화가 아니었다. 특이하다 못해 너무 허무맹랑해서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들이 모두 저자의 철저한 의도에 의해 씌여졌다는 걸 알게 됐다. 당시 영국의 상황이나 풍습, 유행하던 말이나 시를 저자가 동화 속에 상징적으로 묘사해 놓거나 살짝 비틀어서 숨겨뒀는데 그걸 마틴 가드너가 콕콕 짚어가면서  일일이 설명해놓고 있었다. 마치 복잡한 수학 문제로 골머리를 싸맬 때 공부 잘하는 친구가 옆에서 문제 푸는 요령을 일러주는 것 같았다. 여긴 이런 뜻이야, 이건 그냥 말장난이야...하면서. 물론 설명을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지만.




동화란 아이들을 위해 동심(童心)을 바탕으로 지은 문학작품이며 아이들의 가치관 형성에 도움이 되는 교훈을 담은 이야기라고 한다. 그런데 난 지금까지 이 ‘동화’라는 개념에 너무 얽매였던 것 같다. 한 편의 동화를 읽을 때마다 작품 속에 숨은 교훈이 뭔지 찾아내려고 애썼기 때문에 <앨리스>를 그냥 재미만을 위해 만들어낸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앨리스>는 한마디로 놀이다. 앨리스란 어린 소녀가 환상의 세계에서 여러 가지 흥미진진한 모험을 하며 한바탕 신나는 놀이를 벌인 것이라고. 마치 아이들이 낮에 놀이터에서 열심히 신나게 놀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앨리스 역시 이상한 나라와 거울나라에서 재밌게 놀다가 돌아오는 거라고...지금은 우선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 편이 어른인 나에게도 좋으니까. 무엇보다 그래야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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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링턴파크 여자들의 어느 완벽한 하루
레이철 커스크 지음, 김현우 옮김 / 민음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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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한번, 큰아이의 학부모 모임에 나간다. 작년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이 1년 동안 같은 반이었다는 걸 계기로 만나게 됐다. 그 모임에 참석하는 엄마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나이가 대부분 삼십대 후반에 아이는 하나 아니면 둘, 전업주부이거나 평일 낮에 시간을 낼 수 있는 전문적인 일을 한다. 남편은 평균소득을 웃도는 안정된 직업이라 생활도 여유롭다. 비교적 생활수준이 높은 동네라서 아이들 교육에도 열성적이다. 어쩌다 뒤늦게 모임에 합류한 난 매번 겉도는 느낌이 든다. 나이는 차치하더라도 육아단계를 벗어난 그녀들에 비해 난 자유롭지 못하다. 외출할 때마다 기저귀며 갈아입을 옷을 챙겨야하고 모임에 나가서도 아이 뒤꽁무니 쫓아다니기 바쁘다. 그녀들만큼 풍족하지 않고 세련되지도 않다. 나이에 걸맞는 옷차림에 아이엄마라고는 믿기지 않을만큼 날씬한 그녀들을 보면 늘 부러웠다. 모델하우스처럼 정갈하고 깔끔한 살림은 존경스러울 정도다. 그녀들의 하루는 도대체 어떨지 궁금했다. 나와 같은 24시간을 보내는 게 맞을까. 의문이 들었다.




<알링턴파크 여자들의 어느 완벽한 하루>는 제목에서부터 마음이 끌렸다. ‘완벽한 하루’. 어떤 하루를 완벽하다고 하는지 알고 싶었다.




여기 다섯 명의 여자가 있다. 줄리엣, 어릴 때부터 영리하고 공부도 잘했던 그녀는 주위의 기대와 달리 평범한 교사가 되었다. 같은 교사지만 성공가도를 달리는 남편에 비해 자신은 능력조차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현실, 오직 남편을 위해 희생해야하는 삶을 강요당하고 있다고 여긴다. 알링턴파크에서 가장 좋은 집에 사는 어맨다는 하루 종일 집안을 청소하고 정리하는 일에 몰두한다. 오직 그것만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는 듯이. 메이지는 혼잡한 런던을 떠나고 싶어 알링턴파크로 이사 왔지만 그 곳에서도 여전히 안정감을 찾지 못한다. 반면에 크리스틴은 주변 지역보다 삶의 질이 높은 알링턴파크에서의 생활을 만족해한다. 사교적인 성격으로 여러 사람과의 모임을 주선하는 걸 즐기지만 언제나 외로움을 느끼고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넷째 아이를 임신한 솔리는 경제적인 이유로 남는 방에 외국인 학생을 들인다. 그녀는 한동안 머물다 가는 몇 명의 외국인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를 갖는다.




영국의 어느 주택가, 알링턴파크. 그곳에서 살아가는 다섯 명의 여자들의 삶을 그린 소설 <알링턴파크 여자들의 어느 완벽한 하루>. 책은 다섯 명의 단 하루 동안의 생활을 보여주고 있다. 큰 사건이나 사고 없는 하루가 이어지지만 줄리엣을 비롯한 다섯명의 여자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렇지않다. 저마다 다른 이유로 인해 우울해하고 불만과 분노로 가득차 있었으며 팽팽한 긴장감마저 느껴졌다. 가까스로 억누르고 있는 그녀들의 분노가 언제 어떤 계기로 폭발하는 건 아닌지 책을 읽는 내내 불안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해 불편했다. 그녀들의 완벽한 하루를 통해 나의 완벽하지 못한 하루를 보는 듯했다. 내 속에 감춰져있는 우울하고 불안한 심리, 분노로 가득찬 마음이 다섯 명의 이름을 빌어 불쑥 불쑥 나타날 때마다 당황스러웠다. 나 역시 줄리엣처럼 능력을 발휘하고 싶었고 어맨다처럼 자신의 삶에 침범하거나 위협하는 이가 있다면 죽여버리고 싶은 잔인한 충동을 느낀다. 메이지처럼 지금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고 솔리와 같은 고민, 여자로서의 매력을 잃어가는 것이 두려우며 크리스틴처럼 나 자신의 부족함을 감추기 위해 전전긍긍한다. 책 속, 알링턴마을에 비가 내리듯 내 마음 속에서도 하루종일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간혹 집에 놀러오는 사람들이 빼놓지 않고 하는 얘기가 있다. “어머, 아직도 거실에 결혼사진을 걸어두고 계시네요. 사이가 정말 좋으신가봐요.” 그럼 난 이렇게 말한다. “벽에서 떼면 짐이잖아요. 딱히 보관할 곳도 없고...” 사실이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아니, 거의 대부분은 다른 이유 때문이다. 얼굴에 화사한 생기가 감돌고 가슴엔 열정을 갖고 있던 내 젊은 시절의 사진에서 위안을 느끼기 위해서다. 지금은 이 모양이지만 내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노라고 보여주는 전시용인 셈이다.




하지만 난 정말 중요한 걸 잊고 있었다. 내가 예전의 모습에서 떠올려야할 것은 젊음이나 날렵한 몸매가 아니라 ‘꿈’이었다. 작지만 꼭 이루고 싶은 꿈, 내 미래를 위한 꿈. 그 꿈을 언제부턴가 잊고 살아왔다는 걸 알게 됐다. 앞으로 한걸음 내 딛으려면 지금의 모습과 삶, 아내이자 엄마로서의 내 존재를 먼저 인정해야 하는데 그걸 줄곧 거부해왔다는 걸 깨달았다. 그저 완벽하지 않은 지금을, 오늘이 늘 불만이었다.




<알링턴파크 여자들의 어느 완벽한 하루>에 완벽한 하루는 없었다. 줄리엣과 어맨다, 솔리, 크리스틴 그리고 메이지. 그녀들의 결코 완벽하지 않은 하루를 봤지만 내일은 어떨까. 언제쯤이면 그녀들은 자신을 찾고 사랑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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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의 비밀 - 아리스토텔레스와 영화
마이클 티어노 지음, 김윤철 옮김 / 아우라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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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책을 읽을 때 맞은편에 앉아있던 남편이 한마디 한다. “거, 참....(표지가) 그렇네. 여자 표정이나 동작이 도도한 것도 아니고...거만한 것도 아니고...비호감인데...도대체 무슨 책이고?” <스토리텔링의 비밀>. 이 책을 처음 봤을 때 나의 느낌도 남편과 비슷했다. 한껏 부풀린 머리(가발인지, 모자인지 알 수 없지만)에 위로 치켜올라간 검은 안경, 그 속에 시선이 살짝  아래로 바라보는 눈동자(왠지 보바리부인의 분위기를 풍기는), 그리고 여자의 손! 기다란 담뱃대가 아니라 어울릴 것 같은 손가락에 펜대가 끼어져 있다. “참, 그렇다”는 남편의 표현이 딱이네...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만 보고선 이 책을 읽으려고 생각하지 못했을텐데 뭔가 나의 시선을 잡아끄는 게 있었다. 노란 띠지에 적힌 ‘이야기꾼이 되고자 하는 당신에게 추천하는 책’이란 문구와 ‘아리스토텔레스와 영화’란 부제였다. 스토리텔링이 ‘이야기꾼’을 나타내는 건가? 아리스토텔레스와 영화가 무슨 상관이 있지? 의문이 들었다.



<스토리텔링의 비밀> 이 책은 한마디로 시나리오를 잘 쓰고 싶은 사람을 위한 지침서이자 ‘시학’입문서다. 여기서 한가지, 털어놓을 게 있다. 솔직히 말해서 난 ‘시학’을 모른다. ‘시학’이란 말만 들어봤지 그게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책을 읽다보니 글을 쓰고 싶고 기왕이면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차였다. 의외로 큰 수확을 거둘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어느 유명 감독은 미국의 대학에서 강의교재로 사용하는 ‘시학’을 가리켜 “42페이지로 구성된 시나리오를 쓰기에 가장 간결하고 정확한 최고의 책”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즉,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 좋은 지침서가 된다는 것이다. 2천년도 더 된 책이 말이다. 도대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 걸까.



책은 모두 33개의 소제목으로 이뤄져 있다. 서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의 한 부분을 인용하고 본문에서는 그 인용문을 설명하는 방식인데 대부분 영화를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예전에 봤던 영화일 경우에는 수월하게 넘어갔지만 보지 못했던 영화가 나오면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책에는 <시학>을 이해하는데 꼭 필요한 단어가 몇 가지 나온다. 먼저 ‘비극’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슬픈 드라마’가 아니라 ‘진지한 드라마’란 의미이며 비극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플롯(plot)을 구성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이야기’라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훌륭한 작가는 이야기를 위해 일하고, 시원찮은 작가는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위해 일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고 빈번하게 거론되는 것이 바로 ‘액션 아이디어’다. 시나리오의 가장 근본이 되는 ‘액션 아이디어’는 행동을 이야기의 아이디어로 여기는 개념이다. 즉 행동이 사람, 인물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에 시나리오 작가는 등장인물의 대사보다 각각의 인물이 어떤 행동을 취하느냐에 중점을 둬야한다는 강조한다. 한마디로 등장인물의 대사 역시 행동의 일부분이라는 것이다. 이 외에도 실제로 플롯을 구성하는데 어떤 원칙이 있으며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이 겪는 ‘불행’이나 ‘공포’가 어떤 효과를 불러오는지, 누구나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 영화의 리얼리티를 더욱 살릴 수 있다는 것 등을 <죠스>, <대부>, <죽은 시인의 사회>, <터미네이터>, <록키>, <아메리칸 뷰티> 등과 같은 영화로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사실 이 책의 내용은 내가 예상했던 것과 거리가 있었다. 내가 원하고 추구하는 글이 ‘책’과 가깝다면 이 책은 영상화된 글, 영화를 위한 글, ‘시나리오’를 쓰는 것에 대해 풀어내고 있었다. 물론 그 두 가지 글은 서로 다르지만 아주 큰 공통점을 지닌다. 지금까지 읽었던 글쓰기에 관한 책에서 나왔던 것처럼  역시 ‘플롯’이 가장 중요한 것. 코바늘에 걸린 실을 어떻게 잇고 연결하느냐에 따라 문양이 제각각인 레이스가 나오듯 이야기의 얼개를 어떻게 짜맞춰가느냐에 이야기의 성패가 달려있다는 것이다. 플롯, 구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확인할 수 있었던 책이었다.



한동안은 극장에서 영화 한편을 보더라도 머리 속에선 저자의 말이 맴돌 것 같다. 이 영화의 ‘액션 아이디어’는 뭐지? 저 사람에게 닥친 불행은 어떤 사건으로 연결되는 걸까?...으아, 생각만해도 머리가 복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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