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도 국민도 고통스러운 ‘사법부 치욕의 과거’ 

판결로 말해야할 때 침묵
‘고문당한 증거 없다’ 외면
국정원 과거사위원 때 자료수집
신 대법관 보면서 집필 결심 

1. 연재를 시작하며


한국 현대사 연구자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가 권위주의 시절 한국 사법부의 부끄럽고 고통스러운 어둠의 역사를 밝히는 장기 연재물 ‘사법부-회한과 오욕의 역사’를 시작한다. 50회에 걸쳐 1년 동안 연재될 이 기획은 한 교수가 2004년 10월부터 만 3년간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발굴한 자료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한 교수는 국정원 과거사위의 보고서 <사법 편>의 책임 집필을 맡은 바 있다. 이 연재물을 통해 사법부의 어두운 역사에 빛이 들고 사법부가 국민의 사법부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전두환이 제5공화국 대통령으로 취임한 지 약 한 달 반 후인 1981년 4월 15일, 대법원에서는 이영섭 대법원장의 퇴임식이 열렸다. 1979년 3월 박정희에 의해 대법원장에 임명되어 10·26 사건과 김재규 재판, 5·18 광주항쟁과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등 격동기의 굵직굵직한 사건을 처리해야 했던 이영섭 대법원장이 정년을 한참 남겨놓고 중도퇴임을 당한 것이다. 이영섭 대법원장은 퇴임사에서 “취임 초에는 포부와 이상이 컸으나 과거를 돌아보면 모든 것이 회한과 오욕으로 얼룩진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고 술회하였다. 그는 퇴임사에 사법부를 사법부(司法府)라 쓰지 않고, 사법부(司法部)라고 적어 사법부의 위상이 행정부의 일개 부처로 전락하였다는 사실을 자조적으로 표현했다.

이영섭 대법원장의 한 서린 퇴임사는 두고두고 인구에 회자되었다. 그가 말한 회한과 오욕은 누구의 회한이며 누구의 오욕이었을까? 그 회한과 오욕이 어찌 신군부의 압력 때문에 입이 돌아갈 정도로 마음고생을 했던 대법원장 한 사람만의 것이었으리오? 그 회한과 오욕은 사법부 전체, 아니 전두환 등 몇몇을 제외한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회한이요 오욕이었다. 그로부터 3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 회한과 오욕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까? 신영철 대법관은, 또는 그를 비호하는 사람들은 회한과 오욕이 무엇인지 알기나 할까
 

 

 1971년 ‘항응접대’를 이유로 이범렬 부장판사 등의 구속영장이 청구됐다는 소식을 들은 서울형사지법 판사 42명 가운데 39명이 일괄사표를 쓰고 있다. 흔히 ‘사법파동’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중앙정보부와 검찰 등 행정부의 노골적인 재판 간섭에 판사들이 집단 항거한 일로, 사법권 독립을 여망하는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한겨레> 자료사진 

사법부-회한과 오욕의 역사’는 우리 사법부가 겪은 고통스러운 순간들에 대한 기록이다. 사법부 문제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신영철 스캔들을 보면서 2004년 10월부터 만 3년간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다짐했던 것을 더 미룰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과거사 진상규명의 대상이 되는 주요 사건들은 한국전쟁 전후의 민간 학살 관련 사건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사법부에서 확정판결을 받은 사건들이다. 흔히 ‘사법살인’이라 불리는 인혁당 사건도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되었고, 수많은 조작간첩 사건들도 모두 법원의 판결에 의해 간첩으로 확정되었다. “피고인의 자백이 그에게 불리한 유일한 증거일 때에는 이를 유죄의 증거로 삼거나 이를 이유로 처벌할 수 없다”는 헌법과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은 대한민국의 법정에서 지켜지지 않았다.

국가보안법 사건에서 사법부가 한발씩 뒤로 물러설 때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처음 국가보안법이 만들어질 때 이북정권을 국가로 인정할 수 없어 도출된 ‘반국가단체’라는 개념은 두 사람만 모여도 훌륭한 반국가단체로 인정되었다. 사법부가 중앙정보부의 요구에 굴복하다 보니 국가기밀의 개념은 한정 없이 넓어졌다. 기밀이라면 당연히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어야 할 터인데, 명문대학을 나와 고시에 합격한 검사님은 ‘짜장면은 싸고 맛있어’나 ‘경부고속도로는 4차선이다’ 등등의 얘기를 간첩이 수집한 국가기밀이라고 공소장에 올렸고, 판사님들은 이따위 공소장을 받아들여 사형에 무기징역을 남발했다.

우리 헌법은 “법관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파면되지 아니하며, 징계처분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정직·감봉 기타 불리한 처분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한 사회가 법관의 신분을 보장하고 그에게 높은 지위를 부여하는 이유는 오로지 법과 양심에 의해 판단할 뿐, 어떠한 내외의 압력에도 굴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한국의 법관들은 너무 쉽게 압력에 굴복했다. 항상 내부자가 문제였다.

중정-안기부의 사법부에 대한 부당한 압력과 개입 문제를 조사하면서 조금 당혹스러웠던 부분은 중정-안기부가 그 험한 시절에도 시국사건과 관련하여 현직 법관을 잡아가거나 고문을 가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는 점이다. 여당 실력자나 현역 국회의원들을 잡아다가 고문하고 모욕주고 수염까지 뽑았어도 현역 법관을 잡아다가 압력을 가한 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 (딱 한 번 1980년 김재규 사건 재판 당시 신군부의 요구사항을 거절한 양병호 대법원 판사가 보안사에 끌려가 고초를 당했다.) 차라리 중정-안기부가 법관들을 잡아다 협박하고 고문하고 해서 사법부가 저 지경이 되었다면 덜 슬펐을 것이다.

지금 수많은 과거사 사건들, 특히 조작간첩 사건들이 재심을 기다리고 있다. 피해 당사자들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던 바로 그 사법부에 자기 사건을 다시 다뤄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용훈 대법원장 취임 이후 사법부는 몇 차례에 걸쳐 과거청산에 나서겠다고 다짐했다. 실제로 인혁당 사건, 수지 김 사건, 함주명 사건, 차풍길 사건 등의 재심에서 억울한 피고인들에게 무죄가 선고되었고, 몇몇 사건의 경우는 피해자들에 대한 금전적인 배상까지 이루어졌다. 이는 과거청산이나 자기반성 문제를 깔아뭉개고 있는 검찰의 몰염치에 비한다면 나름대로 긍정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과거청산의 가장 기본적인 목적은 재발 방지이다. 그런데 신영철 사건과 같은 일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과거사 사건들의 재심을 진행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1979년 3월 박정희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는 이영섭 대법원장. <한겨레> 자료사진 

‘사법부-회한과 오욕의 역사’는 기본적으로 필자가 책임 집필을 했던 국정원 과거사위의 보고서 <사법 편>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점에서는 이 보고서와 확실히 다르다. 사법부는 중정-안기부와의 관계에서는 분명 피해자였고, 국정원 보고서에서는 사법부를 당연히 피해자로 기술했다. 그러나 사법부와 고문조작 사건의 피해자들의 관계, 나아가 사법부와 시민의 관계에서 사법부는 분명 가해자였다. 조작간첩 사건의 피해자들이 그토록 고문에 대해서 호소했건만, 저 높은 법대 위의 재판관들은 끝내 바짓가랑이 한 번 걷어보라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 흔히 법관은 판결로 말한다고 한다. 그 판결문에서 당시의 많은 법관들은 “당사자의 주장 이외에는 고문을 당했다는 아무런 증거가 없다”면서 무고한 시민들을 간첩으로 만들어 버렸다. 뒤에 소장 법관들이 스스로 반성했듯이 한국의 사법부는 “판결로 말해야 할 때 침묵했고, 판결로 말하지 말아야 할 것을 말했던 것”이다.

피해자들이 당했던 고문 이야기를 듣거나, 유죄 판결을 끌어내기 위해 중정-안기부가 사법부를 상대로 은밀하게 공작했던 자료를 정리·분석하는 일은 피해자들의 아픔이 뼈 마디마디에 전해지는 것과 같은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나마 내게 위안이 되었던 것은 그 와중에도 보석처럼 빛나는 판결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당시 몇몇 법관들이 일반 형사사건에서 고문 근절을 위해서 용기 있는 판결을 내렸고, 이런 판결들은 간첩 사건이나 조직 사건에서 뒤늦게나마 무죄 판결이 나오는 길을 닦았다고 할 수 있다. 유신과 5공의 사법부에 벼락이 떨어지지 않은 것은 그래도 사법부에 이런 의로운 법관들이 몇 분은 계셨기 때문일 것이다.

국정원 과거사위 보고서는 국정원에 보존된 내부 기밀자료를 기초로 작성되었다. 1971년 사법파동 이전의 자료는 불행하게도 거의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에 보고서에서 깊이 다루지는 못했지만, 이 연재에서는 사법파동 이전의 이야기를 5~6회 다룰 것이다. 1972년 유신 이후의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중정-안기부 자료를 활용할 수 있었는데, 자료가 많이 남아 있지는 않았다. 아마도 자료를 많이 없앴을 것이며, 사법부와 관련된 사안들은 애초에 자료가 만들어지지 않았을 가능성도 크다. 그래도 남아 있는 자료들을 분석하여 보니, 중정-안기부의 재판 개입과 관련하여 소문으로 떠돌거나 이러지 않았을까 짐작했던 것들이 사실이었음을 보여주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연재물이 다룰 내용은 이영섭 대법원장이 회한과 오욕의 시대라 부른 시기에 벌어진 일들이다. 이 연재에 거론되는 사건에 관련된 법관들에게 이 이야기는 아마도 돌이키기 싫은 치욕일지도 모른다. 그분들도 가슴속 깊이 묻어두었던 사건이 다시 거론되는 게 불편하고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그 고통이 그분들이 내린 잘못된 판결에 의해 인생이 어긋나 버린 채 지금도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수많은 피해자와 가족들의 고통에 비할 수 있을까? 국정원 과거사위 보고서, 특히 <간첩 편>과 <사법 편>은 통곡하는 심정으로 아프게 썼던 보고서였다. 독자 여러분도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 피해자들을 기억하면서 아프게 읽어 주기 바란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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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전교조 등 26개 시민·네티즌 단체 ‘반정부’ 규정 

 
경찰이 지난 1일 노동절 및 촛불 1주년 관련 집회에 참가한 단체 가운데 6개 시민사회단체와 20개 네티즌 단체를 각각 반정부·불법 좌파단체와 상습시위꾼으로 규정하고 검거에 들어간 것으로 18일 확인됐다. 특히 경찰은 불법 좌파단체를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단체’로 규정해 논란이 예상된다. 이는 본지가 입수한 노동절 및 촛불 1주년 관련 집회에 대비한 경찰 내부문건을 통해 드러났다. 문건에는 경찰이 집중 수사 중인 상습 시위꾼의 경우 기존에 알려진 200여명이 아니라 10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이 지목한 좌파단체와 합하면 우선 검거대상 규모만 2500여명에 이른다.
내부문건에는 ‘5·1 민주노총 등 민생민주 범국민대회 상황종합’, ‘촛불 1년 범국민대회 상황 종합 및 조치’ 등이 들어 있으며, 경찰은 노동절과 촛불 1주년 관련 집회를 앞두고 지난달 21일부터 지난 2일까지 강희락 경찰청장과 주상용 서울경찰청장 주재로 다섯 차례에 걸쳐 대책회의를 개최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이 주력 검거대상으로 지목한 좌파단체는 민생민주국민회의, 전교조 등 6개 단체다. 상습시위꾼인 네티즌 단체는 아고라, 촛불시민연석회의 등 20개 단체다.<표 참조>
경찰은 문건에서 지난해 촛불집회와 비교할 때 올해 노동절 및 촛불집회 때 일반 시민은 한 사람도 참가하지 않았고 대부분 좌파단체와 상습시위꾼(네티즌단체) 중심으로 시위가 진행됐다고 분석했다. 문건에는 또 “좌파단체와 상습시위꾼 2500명을 발본색원해 이를 와해시키고 법질서를 빠른 시일내 확립해 정부 정책을 뒷받침할 계획”이라면서 “좌파단체는 당분간 ‘6·10 100만 범국민대회의 안정적인 개최를 위해 시민사회단체, 촛불시위연석회의 등과 세력 연대에 주력할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돼 있다. 


경찰 관계자는 문건 내용에 대해 “정부정책을 반대하면서 정권을 전복시키려 하거나 불법폭력시위를 주도하는 단체가 좌파단체이고 상습시위꾼”이라면서 “민생민주국민회의는 몇백 개 단체가 가입돼 있는지 실체가 규명되지 않았지만 불법 좌파단체인 만큼 소속 단체도 발본색원하겠다.”고 말했다.
김승훈 유대근기자 hunna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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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무서워서 대한민국에서 살 수 있겠나.... 웃기는 건 정부정책을 반대하면 좌파단체고 집회에 참석하면 불법폭력시위를 하는 상습시위꾼이라는 저 개념은 무언지.... 아무리 경찰도 이데올리기적 국가기구의 한 축을 담당한다지만...그래도 헌법에 명시된 민주공화국에서 저런 행태는 정말 ...답답하다. 이거 몸 조심 해야겠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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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국일보에서 김지하가 진중권에게 쓴 소리를 날렸다. "황석영은 그렇게 나쁜 놈 아니다. 진중권이라는 사람은 예술이나 문학에 백치 아닌가." 김지하는 "그 사람(황석영) 변절했다고 그렇게 말하는 건 누구인가? 그 사람이 무슨 공산당이었나"라면서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자기 맘대로 가는 거다. 특히 그 사람은 나그네인데, 가고 싶은 곳으로 휘젓고 다니는 사람인데…. 놔둬라"라고 말했다.또한 김지하는 '기억력이 금붕어 수준'이라며 진중권씨가 황씨를 비난한 것에 대해서는 "진중권이란 사람이 예술이나 문학에 대해서는 전혀 백치다. 작가라는 게 아침마다 변하는데, 기억력이 강한 작가일수록 엉터리 작가다. 그 사람(진중권) 미학과 출신이라는데 미학공부 다시 해야 된다"며 다소 강도높게 비판했다.김지하는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가 '뉴라이트 전향선언'이라며 황씨에 대해 비난한 것에 대해서도 "저희들이나 잘하라. 내가 황씨를 옹호하는 게 아니다. 좌니 우니 해서 작가들에 자꾸 브랜드 딱지를 매기지 말라. 작가는 자유로워야지, 무슨 소리 하고 있어"라며 거침없이 쓴소리를 했다. 

머 좋다 둘이 친해서 두둔하는거 가지고 뭐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원로라는 양반들이 너무 자기 식구 감싸기를 하는 것 같이 보기가 참 안쓰럽다. 진보적 가치를 일정정도 공유하고 그것을 위해 일생을 싸웠다는 사람이 현 정권을 '중도적 실용주의 정권'이라고 두둔하는 것도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것이고, 성격상 마음대로 휘젓고 돌아다니는 그의 성정으로 봐서 나쁘다고 할 만한 일도 아닌데 어린것들이 그것도 예술이나 문학에 대해서 젖도 모르는 것들이 비판하는 꼬라지가 영 아니꼬왔나 보다. 

나도 황석영이를 좌나 우로 브랜드 붙이고 싶지는 않다. 워낙 돌출행동을 잘하는 양반이다 보니북으로도 갔다. 남에서 실용주의 정부도 도왔다 하는 것이 이제는 조금 이해가 간다. 뭐 특별한 가치보다 워낙 성격상 마음대로 휘젓고 돌아다니다 보니 발생한 돌출 행동이었던 것이다. 흠... 내가 고민한 부분을 김지하옹께서 설명해 주니 황석영 옹의 행적 배후가 너무 간단해서 투명하게 드러나오히려 허탈하기만 하다.  

늙으면 죽어야 한다고 말들을 하지만, 늙어서까지 젊은 사람들에게 교훈이 되고 존재함으로 가르침을 주는 사람들도 있다. 물로 더 추해지는 경우도 많다는 것을 부정하진 못하겠다. 왜 그럴까? 

담배 한 대 물고 비슷한 놈들이 꼴값한다고 비웃다가 문득  나이가 들 수록 욕심이 많아 지는 것이 죽음앞에 자신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이루기에 시간이 부족하다는 절대적 초조함이 무리수를 두게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아마도 나이든 사람만이 뼈저리게 느낄 것이고 그러다 보니 나이들어 공동으로 느끼고 계신 김지하옹께서 황석영 옹을 적극 옹호하는 이유의 배경으로도 타당해 보인다.  아~ 죽음앞에 선 욕심이여~

이거 이런 생각이 들자 김지하 옹을 비판하기도 힘들다... 나도 나이 먹으면 저렇게 초조하게 지내가  뒷세대에게 못할 짓 하고 가는 것 아닐까...ㅎㅎ 하지만 내 일생에 존재감으로 비추어 볼 때 주변의 몇몇에게는 못된 놈이 될 지언정, 황석영 옹처럼 전국적인 배신감을 남기지는 못할테니 미리 몇몇에게 미안해 하면 될 일이고 배신이라 해보았자 얼마나 큰걸 이루었다고 충격을 줄 수 있을까? 주변의 몇몇이 짜식 잘난척 하더니 꼴값 떨면서 간다고 비웃으면 끝일텐데...ㅎㅎ 

진중권이 문학도 예술도 모르고 다시 공부해야 할 놈이면 나야 말로 황석영 옹에 대해서는 입하나 벙긋해서는 안되는 처지지만, 민주주의 좋다는 게 무언가? 나도 내가 꼴리면 맘대로 떠들 수 있는게 민주주의 아닌가? 내가 김지하 옹처럼 문학과 예술에 대해 정통하진 않아도, 시대를 왜곡하고 자기 입맛에 따라 구라치는 문학과 예술이라면 그건 머 쓰레기라고 감히 주장하련다. 문제는 그래도 나름 가치있다고 생각해서 구해 놓은 황석영 옹의 책들을 어찌해야 하는지 현실적 생활적 고민이 풀리지 않고 있으니.... 시대를 증언한 문학이로 봐줘야 하느냐, 늙어서 꼴리는 대로 날뛰는 작가의 거창한 썰로 간주해야 하는냐....이것이 문제로다 

진짜 문하과 예술에 대해 모르다 보니 황석영 옹의 작품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누구 아는 사람있으면 답 좀 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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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둥이 2014-01-17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초기에는 독립운동 하다가 변절한 이광수, 윤치호, 기타 등등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한순간 마음을

바꿔 먹으면 편히 살 수 있는 딜레머에 빠진 지식인의 나약함을 그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으리오.

아 가련타. 인간 의지의 나약함이여...
 
공선옥, 마흔에 길을 나서다
공선옥 지음, 노익상·박여선 사진 / 월간말 / 2003년 7월
평점 :
품절


고백하나 해야 겠다. 난 공선옥이란 작가의 작품을 읽어 본 적도 없고, 그저 이 책 저 책 뒤지면서 이런 작가가 있구나 하는 정도의 수준이다. 그러나 '먹고 살기 위해 글을 쓴다'고 했다는 작가의 말에... 이 사람 꽤 솔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위대한 예술이고 사상이고 다 걷어내고 자기 존재의 생존을 위해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공선옥에 대한 평들을 보니 글 잘쓰는 작가로 통하는 면도 있고...어떤 점에선 '불편한 작가'로도 통하는 것이다. 글 잘쓰는데 불편하다면...그건 마주치기 싫은 현실은 아주 잘 표현해내는 작가라고 보면 되는 것일까? 글 한 편 안 읽어 봤으니 내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다 이 책을 마주했다. 마흔 이라는 나이와 떠남 이라는 행위가 결합된 제목의 책..... 

이 책은 '말'지에 연재한 글을 묶어서 펴낸 것이다. '말'지를 구독하지 않았으니, 이런 글이 있었다는 것도 몰랐고, 기행문인가 했더니 기행문하고는 조금 틀리다. 낮선 곳을 신기한 곳을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진기한 풍습을 안내하는 책이 아니라 그야 말로 문득 길을 나서서 만나는 사람과 고장에 대한 작가의 단상을 풀어논 책이다. 문제는 만나는 사람과 고장이 어디이냐 이다. 이젠 잊혀져 가는 농촌, 길에서 등짐지고 가는 할머니, 자식들 다 떠난 곳에서 남아 마을을 지키는 어른신들, 미선이와 효순이.... 이 땅에서 한 세월 부지런하고 순박하게 살았던 바로 우리 이웃들이 작가가 길을 나서서 만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삶의 고단함과 무상함을 본다. 따뜻한 인정과 속절없는 세월을 본다. 작가의 눈에 비친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너무 평범해서 잊혀진 사람들이다. 텔레비젼이나 영화에서 나오는 화려한 도시인들이 아니고 그냥 자연속에서 주어진 삶을 묵묵하게 견뎌온 사람들이다. 그래서 삶의 밑바닥부터 올라오는 그들의 이야기가 단순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거기에는 시대의 아픔과 개인의 고통이 어우러지고 살아온 날들의 고단함과 살아가야 할 날들에 대한 희망도 있다.  

공선옥이 길에서 만난 너무도 평범한 사람들 이야기에 나는 문득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의 껍질이 한꺼풀 벗겨진 기분이다. 의도했는지 의도하지 않았는지 작가가 만난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싶다. 이땅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 지 나도 모르게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고...그러다 보니 정말 공선옥은 불편한 작가 일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이 책을 시작으로 공선옥의 작품을 시작하려고 한다. 나는 공선옥으로 부터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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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28일 개봉한단다...ㅎㅎ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칸에서도 평가가 좋은 것 같아서 더 기대하고 있다.  이영화도 같이 보고픈 사람이 있는데,,,그 분은 어떠실지....ㅎㅎ

봉준호 감독의 새 영화 '마더'도 칸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제62회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된 '마더'는 16일(현지시간) 낮 열린 기자 시사회에 이어 오후 10시부터 드뷔시관에서 공식 상영됐다.
언론 시사에서 호평을 받았던 '마더'는 공식 상영에서도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영화가 끝나자 관객들의 환호와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공식 경쟁 부문은 아니었지만 드뷔시관은 관객으로 가득 찼으며 전날 열린 '박쥐' 공식 상영에서 나온 기립박수보다 시간은 짧았지만 그 환호와 열기는 더 뜨겁게 느껴질 만큼 좋은 반응이었다.
한편 공식 상영에 앞서 열린 레드카펫 행사에는 흰색 드레스 차림의 김혜자와 턱시도를 입은 봉준호 감독, 원빈, 진구가 레드카펫을 밟았다. 
 

13일 칸 영화제가 시작된 이후 첫 주말인 이날 극장 주변에는 많은 인파가 몰렸다. 같은 시간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진행된 리안 감독의 경쟁 부문 상영작 '테이킹 우드스톡'의 공식 상영에 상대적으로 많은 관심이 쏠렸지만 '마더' 팀도 이날의 당당한 주인공이었다.
이날 '마더'를 처음 선보인 봉 감독은 레드카펫을 밟으며 "자기가 만든 영화를 처음 선보이는데 칸 처럼 좋은 곳은 없다"며 "기쁘고 흥분된다"고 소감을 밝혔다.
봉준호 감독은 지난해 같은 부문에 초청받은 옴니버스물 '도쿄!'에 이어 두 번째로 칸에 초대받았다.
 

강종훈 기자 double@yna.co.kr (칸<프랑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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