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좋은 사람
줌파 라히리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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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제각기 자기가 읽고 싶은 것만 읽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건지 모르겠다.

요즘 20년지기 친구들과 사소하고 별스런 일도 여러 분쟁을 겪고 나서 느끼는 생각이다. 처음의 분란을 확인하고자 시도하면 어느새 새로운 분란으로 번져버리는 사태(?) 앞에서 사람과 사람의 사이에 참으로 많은 곡절이 생김을 느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유난히 눈에 밟히는 구절들이 그렇다.

대부분 미국으로 이민온 인도인이거나 인도인 2세로 자라난 소설속의 주인공들은 어딘가 뿌리 뽑힌 불안정함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근원에는 가족이 있다. 아니 가족이라는 끈끈한 인연의 굴레가 있다고 해야 하나?

 

이미 저물어 버린 가족 이데올로기를 새삼스러 다시 펼쳐 보이는 건 아닐테고, 어쩌면 인도에서 뿌리뽑혀 미국으로 이민와서 가족과 함께 이질적인 문화를 버텨내면서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이니 가족이 전면에 대두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어느 누구도 가족의 품안에서 따뜻함을 느끼지 못하거나 가족이기에 어쩔 수 없는 애증을 갖고 살아야 하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를테면 '길들지 않은 땅'에서 부인과 사별하고 딸의 집에 방문한 아버지는 딸과 함께 살아야 할지 홀로 살아야 할지 고민한다. 그러나 딸과 몇일 보내고 나서 자신이 결코 가족의 굴레로 다시 엮이고 싶어하지 않음을 발견하다.

 

 

 

그는 다시 가족의 일부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 복잡함과 불화, 서로에게 가하는 요구, 그 에너지 속에 있고 싶지 않았다. 딸 인생의 주변에서, 그 애 결혼 생활의 그늘에서 살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아이들이 커가면서 잡동사니로 가득 찰 커다란 집에서 사는 것도 싫었다. 그동안 소유했던 모든 것, 책과 서류와 옷가지와 물건을 최근에 정리하지 않았던가. 인생은 어느 시점까지 규모가 불어난다. 그는 이제 그 시점을 넘겼다.    

 

결혼 생활이라는 건 어쩔 수 없이 나빠진다는 사실에서 딸을 보호하고 싶었다. 결과를 보면 그가 두려워했던 것들이 사실로 드러났다. 가족을 이루는 일 자체, 이 땅에 아이들을 낳는다는 자체가 때로 만족감을 주는 만큼 애초부터 어딘가 잘못된 일이다. 하지만 이건 그저 노인네의 , 이제는 아이처럼 되어버린 노인네의 생각일 뿐이다.

 

물론 가족이 무조건 경원 시 되는건 아니다. 분명히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떠났을때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그럼에도 때때로 엄습하는 단절감은 애매한 구속을 낳고 있다. 오히려 그 사람이 완전하게 지워질때 비로소 그에 대한 추억이나 기억을 가족이라는 굴레에 넣어도 거부감을 일으키지 않도록 한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면서도 어쩔때는 가장 어려운 사이에 대한 이야기들은 고향이 아닌 타항의 생활에서 더욱 커지게 된다. 인도 고유의 전통을 지켜야 했던 1세대와는 다르게 미국적 정체성을 애타게 갖고자 하는 2세대의 갈망은 단순한 세대차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인도인 뿐만 아니라 어쩌면 새로운 땅에 정착해야 하는 모든 사람들이 겪어야 할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인도 특유의 정서를 느끼게 한다. 인도 특유의 정서라... 왜 나는 이런 표현을 하는 걸까?

 

가족이란 어쩌면 '그저 좋은 사람'들의 모임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그 불안한 가족의 틈에 무언가 연결되어 있는 정서가 이 책이 주는 미덕일테다. 그 정서를 무어라 표현하지 못하겠다. 경계에서 흔들리는 그 어떤 것. 끊어질 듯 위태롭게 이어져 있는 그 어떤 것... 아마 그 어떤 것이 우리를 가족이란 굴레에서 영원히 벗어나게 하지 못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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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06-12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큐리님 덕에 이 책을 다시 펼쳐들고 <길들지 않은 땅>을 다시 읽고 싶어지네요. 저는 이 책에서 <지옥-천국>만 여러차례 읽었거든요. 머큐리님의 리뷰를 읽고 다시 읽는 길들지 않은 땅은 제가 예전에 읽었던 느낌과는 다른 느낌을 전해줄 것 같아요.

머큐리 2014-06-12 19:01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이 방문하시다니요...ㅎㅎ
영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