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은 통진당에 매몰되지 않으려고 이 글을 쓴다.
통진당 사태는 사실 상 아는 사람들에게는 예견된 일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폭발적으로 일이 진행될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한 일이기도 하다. 당권파가 억울해 하는 것은 관행화 되고 선수들끼리 다 아는 사실이 이렇게 문제가 될 줄은 몰랐던 것일 게다. 그렇기에 참여계의 당권장악 음모라는 황망한 욕설을 해대는 것이다. 그러나 각각 틀린 정파가 셋이 뭉칠땐 그 정파의 조직문화나 성원들의 성향까지 고려해야 했다. 그건 이미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뼈저리게 학습했던 것 아니었나?
어차피 통합진보당의 출발은 '생존'에 있었다. 4.11 총선에서 각 정파별로 각개약진은 처절한 죽임일 수 밖에 없다는 냉정한 평가와 주변의 압력이 사실 상 통합의 원인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살자고 모여서 죽자고 싸우고 있는 꼴이다.
출발은 진보진영의 선통합으로 시작되었다. 그때까지 참여당계는 사실상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왜냐하면 선통합하려는 진보신당과 민노당계 일부가 격하게 반대했기 때문이다. 사실상 열린우리당이 집권했을 당시에 너무 많은 피해를 봤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다수였기에 참여당계의 통합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진보의 붉은 장미 이정희의 능란한 정치력은 여기에서 빛을 보인다. 사실 (내 생각에) 진보신당은 내적 갈등이 있었다. 민노당계 구당권파와 통합해서 일을 하자니 분당때와 똑같이 갈 것이라는 회의주의와 현재 생존하기도 버거운 사태를 돌파하고 주변의 압력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통합은 시대적 명제라는 딜레마가 존재했던 것이다. 이런 딜레마의 논란이 진행되다가 이른바 진보신당 내 독자파에게 새로운 명분이 발견한다. 이정희와 유시민의 밀월이 그것이다. 이것으로 민노당 당권파는 자유주의 세력인 참여당계와 밀월을 보며 이른자 자유주의자들과 통합하지 못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운다. 좀 비겁해 보이지만 별로 흠잡을 수 없는 명분이기도 했다.
진보신당 내에서 이른바 명망가들로 불리는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는 자신들의 당선을 위해 세력확장이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본다. 그래서 합당에 찬성한다. 그러나 일반 당원들 중 독자파는 이러한 노심조의 생각을 비판하고 끝까지 독자적으로 생존할 것을 결의한다. 무모한 짓이었음은 물론 총선이 끝나고 바로 드러나지만....
이러한 진보신당의 갈등을 교묘하게 이용한 것이 이정희를 포함한 당권파의 정치력이라 생각한다. 통합에 절실한 명망가 그룹을 영입하고 민노당이라는 좌파적이고 고립적인 당의 이미지를 이른바 대중정당으로 바꾸기 위한 참여계와의 통합으로 몸을 불리고 민주당과 협상함으로 최대한 의원을 배출해내는 것이 당권파의 목표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이 와중에 골치아픈 진보신당 독자파들은 참여계를 통해 분리시키고 (당근 통합이 대세인 정세에서 분리를 결정한 진보신당 독자파는 분리주의자 또는 교조주의자, 등대정당 이라는 욕을 뒤집어 쓴다) 당의 외연성을 최대한 확장시켜 낸 것이다.
여기에 참여당계의 절실함도 있다. 이미 지방선거와 봉하지역의 보궐선거에서 패배한 참여당도 독자 생존이 어려운터.... 같이 하자고 손을 내밀던 민노당 당권파의 제안은 달콤했을 것이다. 보수적 양당을 견제하면서 미래의 권력을 쟁취할 수 있는 터를 닦을 수 있다는 기회를 뿌리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들도 생존이 시급했기에 ....
이런 복합적인 사정으로 참여계, 민노계, 진보신당 탈당파의 통합이 이루어지고 '통합진보당'은 탄생했다. 그리고 통합시너지는 사실 상 나쁘지 않았다. 지역구와 비례로 13명의 후보가 국회로 진출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생존을 위해 결합한 패권이 개입하면서 내부의 갈등은 봉합하지 못할 만큼 증폭되었다.
비례대표를 봅기 위한 통진당의 당내 경선은 밝혀진대로 총체적인 부실과 부정이 개입된 선거였다. 그리고 내부 선거에서 각 정파는 일정정도 부정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니까 이른바 당권파만 나쁜 놈이란 뜻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민노당 당권파는 자신들만 생각했다. 참여계와 진보계는 자신들의 국회진출을 위한 도구로만 생각했을 뿐이지 절대 권력을 나눌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던것 같다. 불행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당내 비례대표 선거 과정에서 불거진 갈등을 봉합할 아무런 조치가 없었던 것이다. 불만이 있는 쪽은 거세게 항의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최소한의 민주적 절차마저 내팽겨치고 자신들이 미는 후보를 국회로 보내기 위해 무리했던 당권파는 이들의 불만을 누그려뜨릴 수 없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바로 선거에 대한 진상조사가 진행되었고 지금의 사태를 불러온 것이다.
이전 부터 패권에 대한 논의는 있었고 여기에 대항에서 많은 싸움이 있었지만, 중계를 통해 보여준 당권파의 모습으로 이 정도로 매스컴에 다뤄질 줄은 몰랐다. 이것이 이번 사태를 확장시킨 계기가 되었다. 문제는 어설프게 봉합하는 수준에서 끝내기에는 사태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이 가볍지 않고 격하게 대립하다 분당이라도 하는 경우에는 초기 통합의 조건이었던 생존이 문제가 되는 상황에 이르러 버린 것이다.
여기에 어떤 대안이 있을 수 있을까?
여러가지 대안이 나오지만 확실한 것은 하나도 없다. 그건 피권파의 반이성적 대응이 사람들이 상상하는 수준을 넘어서기 때문이고, 패권파를 물리적으로 배제하기에는 나머지 세력이 힘이 너무 없기 때문이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정리하자... 나머지는 좀 더 생각해보고 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