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퍼붓고 또 퍼붓던 날들이 지나고 햇살이 퍼붓고 또 퍼붓는 날들이 지속되면서... 그냥 섞어서 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몽상을 해본다. 아침 햇살이 뜨겁게 내리쬐는 시간에 잠깐 소나기 내려 주시고... 그리고 다시 화창한 날씨로 변하면 이 여름도 그리 버티기 힘들진 않으리라....
오랜만에 맑은 목요일에 반가운 얼굴들을 만났다. 워낙 오랫만에 만나는 얼굴들이라 저녁 식사와 곁들인 반주가 새벽까지 치닫고 있는지도 몰랐다. 진보통합에 대한 각이한 이해관계와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언성도 높아지고 술도 많이 들이키지만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급기야 피곤해진 몸의 아우성에 시간을 보니 새벽 4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아...뭐됐다...
주변엔 술과 함께 장렬하게 전사한 시신들이 널려 있고, 그 전투에서 살아난 인간들은 전투의 휴우증으로 인해 멍한 눈들을 하고 있었던 그 시간... 새벽 4시... 시체들을 처리하고 각자 부상한 사람들을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온 시간은... 새벽 5시 반.... 내가 집에 돌아오는 시간에 출근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보인다.
잠깐 눈을 붙이고...샤워하고... 옷갈아입고... 출근하면서 난 전철에서 졸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인적인 정신은 내려야 할 역을 놓치지 않았으며, 가수면 상태에서 멍하니 계단을 내려가다 문득 허공을 밟은 듯한 느낌과 함께 발을 접지르며 계단에서 넘어졌다. 아.. 뭐 팔려라...
졸음에 잠겨있던 신경이 바짝 긴장하는 전률이 온몸을 관통하면서 후다닥 일어나는데 발목 부근이 묵직하다. 걸음을 떼어 보니 걸을만 하다. 힐끗힐끗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왕 무시하면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어나오니... 내가 희망하던 가랑비가 내리고 있다. 아...우산 없는데...
심하게 젖을 만한 비도 아니고 발목 상태 점검 차 무가지 머리에 쓰고 슬슬 걸어서 출근한다.
지금은 퇴근해야 할 시간.... 회사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난 멍 때리면서 하루종일 무언가를 했다는 사실에 놀라고... 무엇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사실에 허탈하다. 오늘 저녁 모임 약속이 하나 있고, 부천 판타스틱 영화게 자정 관람이 예약되어 있는데.... 남은 일정을 과연 소화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난 오늘의 일정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을까? 나의 하루는 과연 무사하게 끝날 수 있으려나...
그나마 하나 다행스러운 일은 다리 상태가 그리 나쁘지 않다는거...어제 시체들은 낮에 자고 있던데... 밤에는 다시 부활하겠지...
에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