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은 미적거리고 한나라당은 적극적으로 찬성하면서 이른바 오역투성이로 비판받았던 한국과 EU의 FTA가 국회에서 통과 되었다. 통상이 아니면 먹고 살기 힘든 나라라는 상투적인 표현 말고는 정당화 될 수 없는 협정이 체결된 것이다. 일부는 적극 반대하고 일부는 적극 찬성하며 일부는 조심스럽게 검토하고 제한적으로 다시 체결하자고 했다. 하지만 결국 다수당을 차지한 한나라당의 결행은 FTA가 가져올 파행에 대한 적극적인 검토와 반대 토론도 무시된 채 결정되어 버렸다 국회의원들이야 임기마치고 떠나면 그만이지만 어쩔수없이 이 땅에서 살아야 하는 민초들의 입장에서는 무시무시한 핵폭탄급 사건이 터져버린 것이다. 그리고 더 무시무시한 한미FTA가 기다리고 있다.
진보와 보수의 시금석 중 하나는.... 결국 FTA에 대한 입장에 있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야권이 분발하기 바라지만 민주당을 믿을 수 없는 것이고, 진보를 포장한 채 진보대연합에 기웃거리는 참여당의 태도가 의심스러운 것이다. 참여정권이 상대적으로 이명박 정권에 비해 낫다고 해도 한미FTA에서는 그 보수성이 확연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민주당이고 참여당이고 참여정부시절의 정책에 대한 공식적 사과나 해명이 없으니 이명박 정권이 싫다고 이들을 지지해야 하는가를 생각하면 한숨만 나온다. 정말 대안은 없는건가?
송기호씨의 글을 퍼온다...
FTA는 수출 위주 대기업의 이익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피해는 내수경제와 농업에서 생깁니다. 국가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은 경제의 탈락자들을 지원하는 것이 아닙니다.(국가의 지원이라는 것도 따져보면 탈락자들을 비롯한 시민들이 납부한 세금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탈락자가 양산될 수밖에 없는 틀을 만드는 일부터 하지 않아야 합니다. 시민이 자신들이 마실 물, 먹을 식품, 살 집, 받을 의료혜택 등 어떤 사회에서 살 것인지를 결정하는 문제에 관여할 수 없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사회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민주주의가 없는 사회에서 복지란 양의 탈을 쓰고 가해자가 또한번 피해자를 착취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FTA체제하에서는 민주주의도, 진정한 복지도 불가능합니다.
FTA는 자신의 일상사와 무관한 것이라고 보통 생각합니다. 그러나 서울시내 주택가에서 그런대로 괜찮은 동네슈퍼마켓을 운영하던 시민들은, 재벌들의 동네슈퍼 진출을 적절하게 막아달라는 자신들의 목소리가 FTA 위반이라는 이유로 거부당하게 되자 이제 FTA에 반대하게 되었습니다. 거대 경제권과의 FTA체제는 더욱 많은 사람들의 일상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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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EU FTA가 초대하는 재산권 만능의 나라
이명박 정부는 말하지 않지만, 한·EU FTA는 대한민국을 '재산권'을 위한 나라로 만든다. 한국은 IMF 이후 14년을 거치면서, 기업과 재산권의 힘이 압도적인 패권을 행사하는 곳으로 퇴보하였다. 단적으로 삼성을 견제할 곳이 없는 나라가 되었다. 한·EU FTA는 그러한 한국을 최종적으로 법적인 형태로 보장하는 것이다.
나는 그 근거로 몇 개의 조항을 제시한다. 한·EU FTA에서는 '공공 질서'를 위하여 경제를 규제하려면 '사회의 근본적인 이익(fundamental interests of society)' 중 하나에 대하여 진정하고, 충분히 심각한 위협이 되는 때'에만 가능하다.(7.50조)
이것은 지금의 대한민국 헌법의 경제 민주화 조항을 심각할 정도로 훼손한다. 지금의 대한민국 헌법에 의하면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119조)
그러나 한·EU FTA가 체결되면, 국회의원은 초라한 신세가 될 것이다. 만일 국회의원들이 50년 역사의 길음 시장을 비롯한 동네 골목 시장을 최소한이나마 보호하기 위해 법을 만들 때에, 이마트나 롯데 마트는 국회의원들에게 사회의 근본적인 이익에 대한 진정하고 충분히 심각한 위협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따져 물을 것이다. 한·EU FTA는 헌법의 경제 민주화 조항을 사실상 없애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최대의 성과라고 하는 자동차 분야에서는 어떠한가? 자동차 회사들이 새로운 기술이나 특성을 차에 적용할 때, 그것이 사람에게 안전하다는 것을 자동차 회사가 입증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규제하려는 국회가 그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입증(demonstrate)해야 한다.(부속서 2-C, 6조)
전기담요나, 가습기, 전기 다리미 등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시민들의 일상 생활에서의 안전과 직결된 전기 용품에서 기업에게 자율안전확인 대신 인증을 요구하려면 기업 자율 확인제도가 시민의 건강과 안전에 위험을 초래할 것이라는 것을 국회가 입증해야 한다. (부속서 2-B, 4조)
환율 안정을 위하여 투기 자본을 규제하려고 하더라도, 투기 자본이 시장 수익률을 거둘 수 있는 능력을 방해해서는 안 되며, 그의 상업적, 경제적 또는 재정상의 이익에 대한 불필요한 손해를 피해야 한다. (8.4조)
맥줏집 사장은 월드컵 TV 응원으로 영업을 할 수 있을까?
반면 재산권자들의 권리는 더욱 강력하게 보호된다. 그 대표적인 것이 특허권과 같은 산업 재산권이다.
오늘날의 특허권은 평생을 작업실에서 새로운 기술을 연구하기 위하여 잠을 자지 않고 연구하는 가난한 발명가를 보호하는 것에 주된 목적이 있지 않다. 오히려 이미 충분히 가진 대기업들이 새로운 재산권을 창출하고 막대한 부를 자신의 수중으로 이전시키는 법적 수단이 되고 있다.
'미키 마우스'를 보자. 디즈니 사가 그 저작권으로 벌어 들이는 엄청난 수익은 전적으로 그 저작권의 존속 기간에 의존한다. 만일 1998년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저작권법을 고치지 않았다면 디즈니 사의 저작권은 이미 소멸하였다. 그랬을 경우, 시민들은 누구나 저렴하게 별도의 저작권료를 디즈니 사에 지불하지 않고 필요한 경우 '미키 마우스' 캐릭터를 사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법을 바꾸어 저작권 존속 기간을 연장했다. 법 조항 하나가 엄청난 부와 재산을 창출했다.
유럽연합(EU)과의 FTA에서 특허권이 강력하게 보호되면 될수록, 우리 사회에서 특허권이라는 재산권자와 다수 시민 사이의 공정한 거래는 왜곡되고, 막대한 부가 시민에서 특허권자로 이전된다. 재산권자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부의 창출 방식이다.
한·EU FTA에는 '방송 사업자'에게 자신의 텔레비전 방송의 공중 전달이 입장료의 지급 하에 공중에게 접근 가능한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경우 그러한 공중 전달을 허락하거나 금지할 수 있는 배타적 권리를 부여하도록 하는 조항이 있다. (10.9조) 이 조항은 무슨 의미일까? 나는 이 조항이 이른바 '상업적 공공 시청 이벤트(commercial public view event)'를 노린 것으로 새긴다.
맥줏집이나 음식점에서 월드컵 TV를 중계하는 대형 화면을 설치하고 영업을 하려고 하는 경우, 맥주 값이나 '치킨' 안주 값에는 '입장료'가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이를 간접 입장료(indirect admission fee)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경우라면, 상업적 공공 시청 이벤트에 해당해서, 자영업소 사장들은 별도의 저작권료를 지불하지 않고선 월드컵 중계를 영업에 이용할 수 없다.
또한 한·EU FTA에서는 특허권에 대해서조차 국가가 '국경조치'를 하도록 했다. 관세청은 앞으로 특허권을 침해하는 상품이 수입된다고 의심하기에 충분한 근거가 있다면 그 상품을 압류할 수 있다.(10.67조) 특허권 침해 여부는 특허 법원의 판단이 필요한 매우 복잡한 문제이다. 특허권 침해 소송에서 특허권 침해를 인정하는 판결보다는 침해가 없다고 결론을 내리는 판결이 더 많다. 그것은 단지 위조 상표 여부를 관세청에서 판단하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그런데도 앞으로는 관세청은 특허 침해 여부를 판단하는 짐을 져야 한다. 특허권자를 과잉보호하는 데에 국가를 동원하는 체제가 한·EU FTA이다. 만일 국가가 제대로 하지 않으면 무역 보복을 당하게 된다.(14.11조)
한·EU FTA는 자동차 FTA가 아니다
한국이 유럽연합과 미국과 하는 FTA는 단순히 한국이 자동차를 수출할 때, 관세 할인 혜택을 보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동차 FTA가 아니다. IMF 이후에 형성된 수출대기업과 재산권자를 보호하는 법적 장치이다. 한·EU FTA는 IMF 체제를 제대로 극복해야 할 한국에게 합당하지 않다
저자> 송기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