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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 크라이스트 - Antichrist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이 영화를 내가 즐기는 영화로 봐야 할지 모르겠다. 어지간한 영화는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보는 편이지만 이 영화는 보는 내내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다. 영상이 잔혹하자만 그보다 잔혹한 영상에 눈하나 깜짝하지 않기에 단순하게 영상의 문제는 아니다.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터인데 사실 그것이 무엇인지 혼란스럽기에 그런것일까?
그냥 느끼는대로 끄적여야 겠다.
영화 처음 프롤로그에서 헨델의 '울게하소서'를 배경음악으로 두 남녀의 정사 장면이 나온다. 슬로우 모션으로 격렬한 쾌감에 빠져있는 남녀를 뒤로하고 자신의 침대에서 빠져나온 어린아이가 눈내리는 창가로 올라가 떨어진다. 죽음....그 죽음도 모르고 쾌락에 빠진 부부....여기에 슬픔과 불행이시작된다.
여인은 비탄에 빠져 무기력하게 있고 남자는 여인을 치료하기 위해 헌신하다. 심리치료사인 남편은 여인의 상태를 자식을 잃은 부모의 정상적인 감정패턴으로 파악하고 조속하게 정상적인 심리상태로 복구하려고 노력하고... 비탄에서 공포로 넘어가는 감정의 전이에서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공포를 느끼게 만드는 대상과 맞서게 한다. 여인의 깊은 곳의 공포는 숲이고 남편은 그녀를 치료하기위해 그들이 '에덴'이라 부르는 숲과 그속의 산장으로 출발한다.
자신의 쾌락으로 인해 자식이 죽었다는 죄의식... 서양 기독교 문명의 근저에 깔린 죄의식은 그 속에 슬픔과 공포, 절망을 지니고 있나보다. 그들이 찾아가는 에덴은 그들이 잃어버린 낙원이었고 낙원으로의 회귀는 그들의 슬픔과 절망을 치유할 장소였다. 그러나 영화는 오히려 낙원에서의 진실과 절망을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아이가 떨어지는 것을 알고도 쾌락에 빠져 방치한 여인은 이미 예전의 그곳에서 삶의 비밀을 깨닫는다. 그것은 살아남기 위해 죽어가는 생명들의 처절한 비명이었고 삶은 희망이 아닌 절망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절망은 그녀가 저술하는 책의 주제로 부터 파생된다. 이른바 '여인살인'에 대한 끔찍한 역사적 사실과 그 사실을 연구하면서 느껴야 했던 혼란...
마녀사냥이나 역사적 위기때마가 희생양이 되었던 여성의 역사를 연구하다 가해자들이 그녀들에게 지웠던 죄에 대한 남성들의 독단이 그녀를 잠식했던 것이다. 그녀는 스스로의 내면에 남성들이 두려워 떨었던 어떤 악마성을 있다고 두려워한다. 그리고 자연(nature)은 사탄의 교회라고 칭한다. 여기서 여기서 자연은 인간과 대립하여 객관적 실체로 드러나는 대상이나 그녀 자신의 본성이기도하다. 이런 2중적 의미의 nature은 공포의 심연이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잠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외부와 조응하여 발생하는 내부의 공포감....
공포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영화는 극단으로 흐른다. 성기절단과 상해, 교살.... 시체의 화장...이러한 극단적 절망과 폭력이 나타내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영화제목이 '안티크라이스트'라는 점에서 서구의 죄의식에 대한 안티테제를 내세운 듯 한데... 영화 겹겹이 나타나는 우의들을 짧은 지식으로 알 수 없으니 절름발이 이해일 뿐이다.
숲속의 동물들.... 죽은 새끼를 뺀 사슴이나 자신의 살을 뜯어 먹는 여우, 까마귀는 슬픔과 공포와 절망을 나타내는 듯한데...솔직히 모르겠다. 인간의 내면속의 악마를 그린건지... 여성에 대한 억압을 항의한 건지... 그저 무의미한 죄의식에 대한 저항인건지... 영화를 연상하면 정리되는 것 하나 없이 이리저리 꼬이기만 한다.
어쨌든 영화를 본 후... 상큼하기보단 무언가 불편하다. 어떤 이유로든 불편한 영화는 나름 가치가 있다. 쉽게 비웃지도 공감하지도 못하는 그런 불편함은 생각할거리라도 던져주니까...그런데 연상되는 장면들이 워낙 강렬해서... 생각도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