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슬픔의 원더랜드
정미경 지음 / 현대문학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기대하지 않고 집어들었다가 정신없이 빠져 들었다. 그건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그 시대를 견뎌냈던 사람들의 방황이기 때문이며 그 시대를 견뎌내고도 극복하지 못한 자본의 시스템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사전정보 없이 그냥 '정미경'이란 이름으로 집어든 책이다. 그녀의 소설 속에서는 항상 비릿한 무언가가 있다. 사랑도 생활도 소비도 자본의 비릿함을 견뎌야 하는 현재의 속성이 잘 포착하고 있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신경숙류의 아련함이나 애상과는 다른... 여성특유의 섬세함 속에서 표현되는 비릿함은 그녀의 매력이다.  

80년대의 회고류의 작품들도 많았고, 얼핏 보면 그저그런 회고담으로 읽힐지도 모르겠다. 패배한 자들의 고백이라는 진부하고 지루함을 넘어서는 또 다른 무언가를 던져주고 있다. 그건 변화하고 있는 사회이고 또 변화해 가는 사회이며 그 사회를 겪어나가는 사람들이 던져지는 문제이다. 그 과거는 잊어버릴 수도 청산할 수도 없는 과거이며,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항상 무거운 짐으로 남아있는 과거이다. 그 부채감과 새로운 길 속에서 방황하는 사람들을 이렇게도 형상화 시킬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들었다.  

한 시절의 아픔을 보내고 다시 새로운 생활에 정착하면서도 웬지 모를 슬픔과 공허함에 빠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화려함 속에서 텅비어 있는 무언가를 묻고 있다. 그것을 찾아내지 못하면 아마 한 걸음도 진전하지 못할 것이다. 무언인가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은 독기와 오기로라도 버텨낸다. 그러나 가진 것이 많을 경우엔 불안에 떨기 시작한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경쟁이 무서운건 경쟁은 사회를 발전시키기 보다 사회를 정체시키기 때문이다. 경쟁을 통한 빠른 성장과 발전은 초기 효과이고 전체가 고루 발전하지 못하는 경우 기득권자들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들은 경쟁을 제한하다. 자신이 잃을 수 있는 게임의 룰을 고쳐서 다른 식의 경쟁의 룰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경쟁에 대한 실체가 아닐까? 경쟁을 외치면서 경쟁을 제한하는 것. 이것이 보수의 본질이 아닐까 한다.  

그들이 다다른 현실은 과거의 암울한 가난도 아니고 핏발선 눈으로 싸워야 할 대상이 뚜렷한 세상도 아니다. 거리는 붉은 물결이 넘실대는 2002년의 월드컵이었고 광장은 싸움이 아닌 축제의 장으로 넘실거린다. 이런 변화의 세월을 쉽게 넘어서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이러한 자유속에 보이는 불온한 느낌을 경계하는 것이다. 그래서 슬픈 것이다. 무언가를 이루었는데 그 실체가 분명하지 않고 오히려 예전이 그리운... 까닭모를 슬픔이 치밀어 오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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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1-04-03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머큐리님, 정미경을 읽으셨네요! 저도 이 소설 먹먹하게 읽었었어요. 물론 제가 가장 좋아하는 그녀의 작품은 아니지만요. 정미경의 소설은 언제나 슬픔을 '극한의 슬픔'으로 몰아가기 보다는 서늘하게 그려내는 것 같아요. 전 그런점을 참 좋아해요. 슬픔으로 치닫지 않아서요.

머큐리 2011-04-03 13:29   좋아요 0 | URL
정미경은 다락방님 때문에 알게 되었다구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