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세상을 읽다 - 인문으로 읽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박민영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누구에게나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있을 것이다.
관점은 창과 같이서 테두리가 한정되어 있는 그 너머를 보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인간은 테두리를 넘어서지 못할 망정 관점이 가진 효용성을 알기에 그대로 진화했나 보다.  

인문학은 어쩌면 고답적인 학문이다. 그때 그때의 시류도 중요하지만, 뭔가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탐구가 우선이기에 정체되어 보이기도 한다. 최근의 인문학 위기 담론과 더불어 인문학을 실용과 결합시키려는 경향성이 눈에 많이 띄인다. 광고를 통해 인문학과 창조성의 문제를 연관시킨 책도 있고, 인간의 문제를 효율적으로 풀어내려는 경영과 인문학과 접합시키려는 시도도 보인다. 결국 인문학이 무용한 학문이 아니고 적용하기에 따라서 무궁한 쓰임새(?)가 있다고 주장하는 폼새인데 글쎄다... 난 무용한 인문학이 더 맘에 와 닿는다.  

그럼에도 인문학이 아무런 용도가 없음은 아닐 것이다. 근원을 파헤쳐 무엇인가를 궁리한다는 것은 무용해 보임에도 그 속의 유용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실용적으로 판명되지 않을 지라도 인간과 인간이 섞여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를 이 시대를 읽어나가는 힘이 되는 것도 사실일 테다. 그렇지 않다면, 인문학이야 말로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이 책의 부체가 '인문학으로 읽는 정치,경제,사회,문화'다. 인문학적 소양을 기반으로 이 사회의 전반을 두루 살펴보겠다는 의도이고 시도이다. 그건 고답적인 학문이지만 현실에 대한 균형감각을 잃지 않고 오히려 더 인문학을 통해 깊이있는 통찰을 할 수 있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여타의 실용을 강조하는 인문학 서적과는 그 의도가 틀린 이 책의 장점은 역시 사람을 소외시키는 제반 사회현상에 대한 비판적 주시이다. 인간은 어쩔 수 없는 환경의 동물이다. 환경의 변화에 따라 인간의 태도와 생활은 변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을 통찰해 내기는 쉽지 않다. 환경에 적응하다보면 환경자체를 당연시 여기게 되기 때문이다. 인문학의 힘은 그 당연함을 낯설게 보게 하는 힘일 것이다. 그럴때 자신의 인식의 틀 너머에 있는 새로운 것을 알게된다. 이 책의 역할은 결국 그러한 새로움으로의 초대인다.  

경제가 만능인 사회에서 정치와 경제의 관계를 묻는다. 경제가 정치를 좌지우지하면서 일어나는 모순된 현상들에 대한 고찰은 익숙하면서도 새롭다. 세상을 보는 관점은 욕망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닌가 보다. 경제에 관한 시선도 참신하다. 특히 신자유주의 경제질서를 주도하며 성장한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자유무역의 허구성에 대한 지적은 계속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이 땅에 대한 부동산 문제도 그렇고... 그런데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경제적인 문제를 경제로 해결하기 어려운 것은 경제도 결국 인간의 활동이라서 그렇다.  

가장 참신했던 시선은 노마디즘에 대한 비판이라 하겠다. 내가 즐겨 읽는 많은 철학자들과 사회학자들에게 보기 힘든 들뢰즈에 대한 비판은 신선하기 까지 하다. 노마드의 현실을 직시한다면 결국 신자유주의적 질서로 회귀하게 된다는 분석은 참고할 만 하다. 예전에 '유목주의는 침략주의'라고 주장한 어느 책이 혹독한 비판에 직면했다는 점에서 아직 들뢰즈는 이 땅에서 많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완벽한 이론과 사상은 없는 법! 들뢰즈의 소수자에 대한 애정과는 별도로 한 번 따져볼 건 따져봐야 할 듯하다.  

총체적인 난맥상으로 병든 사회를 진단하는 글들도 탁월하다. 전문화의 환상과 노동의 소외를 다룬 글들도 그렇고 디지털 시대의 인간의 문제, 광고와 언론에 대한 분석도 좋다. 결국 이러한 문화적 환경이 현대인들을 얼마나 병리적으로 몰아가고 있는지... 결국 개인의 병리적 현상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라는 인식에 도달한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 설정의 문제는 사회의 문제이고 이건 결국 인문학이 영원이 풀어내야 할 숙제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시류적인 글 속에서 느껴지는 인간에 대한 부단한 탐구가 돋보이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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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10-14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책들을 읽으면서 제가 고민하는 부분이 바로 사람의 위치 설정에 대해서 입니다.
관심가는 책이고 관심가는 리뷰입니다~^^

머큐리 2010-10-14 18:25   좋아요 0 | URL
아마 평생토록 고민해야 할 부분이 사람의 위치 설정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양철댁님 힘 내세요..^^

호우 2011-12-08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인문학으로 보는`이라는 제목으로 시작되는 글들이 참 많아지는 요즘입니다. 저도 하나 의뢰받았는데.. 한참써놓고 보니 인문학으로 보는 글이라는게 어떤건지.. 먼저 알아야겠더군요. 물론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한데 의뢰받은 주제라 그렇습니다. 아무튼 이런 숙제를 해결해 나가는데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