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선택함에 있어서 배우를 보는 경우보다는 감독을 보는 경우가 좀 더 괜찮은 영화를
볼 확율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송강호라는 이름은 그냥 내 발길을 극장으로 이끈다.
이제는 좀 식상할 만도 할 때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툭툭 내뱉는 대사들 하나하나는
어쩌면 이 새대를 살아가는 중년들이 항상 뱉어내는 말이라 그런가?
밥벌이를 위해 간첩을 잡는 일에 투철한 국정원 요원과 남파되어 임무를 완료하고 북으로
돌아가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살고픈 간첩이 서로를 이용하기 위해 만나서 벌어지는
영화의 스토리는 일상 속에서 남과 북의 관계를 그대로 투영하는 듯 해서 그리 만만하게
볼 액션영화의 범주를 벗어나 버린다.
두 사람은 체제 대립 상 어쩔 수 없이 적으로 만나야 하는 사이다. 그럼에도 그 둘에겐
공통점이 있다. 국정원 요원인 한규(송강호)는 일에 치여 가정을 돌보지 못해 아내에게
이혼당한 서글픈 이 시대의 가장이고, 지원(강동원)은 국가의 일(?)로 가족과 떨어져
지내다 일련의 사건으로 배신자로 낙인찍혀 북으로부터 버림받은 처지다.
둘 다, 돌아갈 곳이 없이 떠돌이로 지내야 하는 신세라는 점이다. 그리고 둘 다 국가를
위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상실한 사람이라는 점이다.
둘 사이의 긴장은 남과 북의 정세변화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영향을 받는다. 결국 일상의
자잘한 흐름도 국가의 정책과 전혀 무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의 영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지대하게 영향을 끼친다는 점이다. 결국 체제가 갈라져 다툼이 심할수록
피해는 일반 국민이 받을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은 지난할 수 밖에 없다. 서로를 경계
하고 이용하는 사이에서 신뢰란 싹틀 수 없는 것이다. 일상을 같이하면서 상대방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그 사람이 처한 환경을 바로 이해하게 될 때, 신뢰란 싹이 트는
것이다. 이것 역시 남과 북의 관계와 동일하다.
결국 서로에 대한 이해와 신뢰가 있어야 긴급한 상황(?)에서도 관계가 유지됨을 보여준다
는 점에서 이 영화의 미덕이 살아 남는다. 그 이해와 신뢰는 자신이 충성하는 조직의 논리
와는 다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것을 용인한다는 점에서 더 큰 위력을 갖는다.
(그럼에도 결국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는 한계를 갖기도 한다.)
이 영화에서 킬러로 등장하는 '그림자'가 하는 말 "너무 낭만적으로 본다"는 대사는
혁명이나 배신자들에 대한 단호한 응징의 의지를 나타내지만, 결국 낭만이 빠지 혁명은
그저 피냄새 자욱한 사건일 뿐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과연 역사는 낭만을
허락하는지... 어쩌면 그 피비린내가 역사를 여기까지 움직인 동력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사람들은 피냄새를 지우고 함께 공존하기를 원한다고 감독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일까? 그럼에도 피냄새를 지우려면 그에 상응하는 노력이 뒤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이 영화의 미덕은 남과 북에 대한 관계 뿐 아니라, 이 땅에서 근로하는 외국인들의 처지와
실상을 매우 실감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도 있다.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고 무시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우리는 과연 인간적인 대우를 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의식은 사실
영화 곳곳에서 등장하고 있다. 더불어 사람을 화폐로 등가시키는 이 사회의 무지막지 함에
대한 항의도 종종 드러난다.
한철의 대사에서 드러나는 극우적 발언들 속에서 묻어나는 이 나라 보수들의 정서 역시
날 것으로 드러난다. 부정적인 모든 것을 내부의 문제가 아닌 제3자에게 씌우는 반공이데올
로기는 영화로 봐도 썸찟하기만 하다.
'그림자'가 물어보듯이 과연 낭만적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을까? 그리고 영화
처럼 해피엔딩으로 끝낼 수 있을까? 영화는 낭만의 승리를 얘기하고 있지만, 영화 마지막에
난 그 승리를 결코 예감하지 못한다. 낭만적으로 보기에 역사는 너무 냉정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낭만을 이야기하는 이 영화는 때론 쓸쓸하고 때론 사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