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위구르 최악 유혈사태]
위구르인 2명 한족과 패싸움에서 숨진뒤 시위 촉발
중 정부 “망명지도자 레비야가 사주”…사실상 계엄 

 

5일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발생한 대규모 유혈사태는 중국 내 민족갈등이 비등점을 향해 치닫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탄이다. 더욱이 이번 사태가 10월1일 건국 60돌을 앞두고 벌어졌다는 점에서, 공산정권 수립 이후 중국 정부가 펴온 소수민족 정책이 도마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시위는 5일 오후 5시께 우루무치 시내 인민광장에서 300여명의 위구르인들이 소수민족 차별 철폐를 요구하는 침묵시위를 벌이면서 시작된 것으로 전해졌다. 누얼 바이커리 신장위구르자치구 주석은 “경찰이 70여명을 체포했지만, 해방남로와 얼다오차오 등 위구르족 밀집지역에서 사람들이 무더기로 몰려나오며 구호를 외쳤다”고 6일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3000여명으로 불어난 시위대가 시내 곳곳을 점거한 채 “용기를 내라”는 구호를 외치자, 공안 당국은 1000여명의 경찰을 급파해 강제해산에 나었다. 시위대는 밤 11시30분까지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위구르인 수백명이 체포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정부는 사망자가 156명, 부상자가 828명이라고 발표했지만, 사상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고 있다. 하지만 관영 <신화통신> 등은 6일 구타당한 채 숨진 여성 주검 등을 공개하면서, 시위대가 집단으로 몰려다니며 흉기를 들고 행인들을 공격했다고 강조했다. 중국 당국은 이번 시위가 위구르족 망명지도자이자 세계위구르협회 회장인 레비야 카디르가 사주한 ‘분리주의 폭동’이라고 주장했다. 신장에선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정부기관에 대한 무장공격이 잇따르는 등 분리독립 세력의 힘이 커지고 있다.

반면 위구르 망명단체들은 자신들이 이번 사태를 조종했다는 중국 정부의 주장을 부인하면서, 평화적으로 시위를 벌이던 위구르인들이 경찰의 강경진압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강조했다. 위구르아메리카연맹의 알림 셰이토프 부회장은 “우리는 중국 보안당국의 무자비한 탄압에 큰 슬픔에 빠졌다. 오늘은 위구르인의 역사에 처참한 날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함 마흐무트 재일위구르연합 회장은 <에이피>(AP) 통신에 “경찰이 전기봉을 휘두르고, 하늘을 향해 총을 쐈다”고 말했다.

위구르인들은 지난달 25일 광둥성 사오관의 한 장난감 공장에서 벌어진 위구르족과 한족의 패싸움에서 위구르인 2명이 숨진 데 격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한족 노동자들은 위구르인들이 한족 여성을 성폭행했다고 주장하며, 위구르인 노동자들을 습격했다. 이 주장은 일부 한족들이 꾸며낸 헛소문으로 밝혀졌다
우루무치 곳곳엔 군과 경찰이 배치돼 있고 야간 통행금지와 교통통제가 실시되고 있다. 하지만 <에이피>는 신장 제2의 도시인 카슈가르에서 6일 300여명이 시위를 벌였다고 보도해 사태가 확산될 가능성을 시사했다. 야구푸라는 이름의 남성은 이날 오후 카슈가르 중심 이드 카르 모스크 밖에서 300여명이 시위를 벌였고, 경찰이 이들을 애워쌌으나 충돌은 없었다고 말했다. 며칠 안에 신장 내 주요 도시들로 시위가 확대될지 여부가 이번 사태의 분수령이 될 듯하다.


» 5일 신장위구르자치구 우루무치에서 위구르인들이 민족 차별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일 당시 중국 경찰들이 시위대를 막고 있는 모습으로 보이는 사진이 6일 네트워크 사이트 트위터에 올라왔다. 중국 당국은 이번 시위사태로 140명이 죽고 800명 이상이 다쳤다고 발표했다. 우루무치/로이터 연합

민족·종교 이중차별 ‘중 제2의 화약고’ 

투르크계 이슬람교…“한족이 자원수탈” 반감 커 

올해는 신장위구르자치구가 중국에 귀속된 지 60돌이 되는 해다. 5일 우루무치에서 발생한 대규모 유혈사태는 지난 60년 동안 위구르인들을 ‘국민’으로 포섭하려 한 중국의 정책이 성공을 거두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미국과 유럽의 인권단체들은 위구르인들이 민족과 종교라는 ‘이중의 차별’을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투르크계 민족인 위구르족은 혈통·문화·언어에서 한족과 뚜렷이 구별되며, 종교적으로도 이슬람교를 믿는다. 신장 전체 인구 약 2000만명 가운데 약 940만명이 위구르족으로 추산된다.

신장위구르자치구는 티베트에 이어 ‘중국 제2의 화약고’로 불린다. 위구르인들은 1949년 신중국 통치 아래 들어간 뒤에도 끊임없이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시위나 봉기를 일으켜 왔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전체 영토의 6분의 1을 차지하는 거대한 영역, 중앙아시아로 이어지는 중요한 지정학적 위치, 막대한 천연자원을 가진 신장을 확실히 장악하기 위해 한족을 끊임없이 이주시키며 동화정책을 펴 왔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신장 통치가 시작된 1949년 당시 신장 인구의 6%에 불과했던 한족은 이제 41%로 급증했다. 이는 다시 한족들이 자신들의 삶의 터전과 경제적 권리를 빼앗고 있다고 느끼는 위구르인들의 원망을 키우며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위구르족은 1960~70년대 중국 전역을 휩쓴 문화대혁명 때 가혹한 종교적 박해를 받았다. 문화대혁명을 지지하는 이들은 당시 이들의 모스크를 파괴하고, 알라에 대한 신앙을 모욕했다. 티베트(시짱자치구)에서 티베트인들의 사원을 훼손하고 승려들을 탄압했던 양상과 비슷하다.

위구르족은 1864년과 1944년 두 차례에 걸쳐 동투르키스탄이란 독립국가를 세웠고, 현재도 동투르키스탄공화국 수립 운동을 벌이는 이들이 있다. 중국 당국은 이들 분리주의자를 ‘테러집단’으로 비난한다.

위구르족은 특히 중국 정부가 석유와 가스 등 이 지역의 풍부한 지하자원을 수탈해 간다며 반감을 가지고 있다. 신장에는 중국 석유 매장량의 30%, 천연가스 매장량의 34%가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이 지역을 여행한 한 한국인은 “신장의 서부와 남부 도시에선 한족 지역과 위구르 지역이 완전히 분리돼 있다”며 “위구르족 사이에 한족들이 자신들의 부를 빼앗아 가고 있다는 인식이 팽배하다”고 말했다.

우루무치/유강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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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09-07-07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어떻게 될지 걱정이에요. 너무 거대한 중국이라니.. ㅠㅠ

머큐리 2009-07-07 20:25   좋아요 0 | URL
사회주의 중국의 또다른 야만...그 민족적 폐쇄성은 정말 정나미 떨어져요....그냥 사이좋게 서로 돕고 산다는건 힘든일인가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