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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긋기의 어려움 - 고종석 시평집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2009년 2월
평점 :
고종석 시평집이다. 대략 2007년에서 2008년까지의 여러가지 사건에 대해 한국일보와 씨네 21, 시시인등에 기고한 칼럼들이다. 고종석에 대해서는 로쟈님 서재에 들락거리다 알게 되었고, 로쟈님의 책에 고종석과 김훈, 김규항에 대한 비교글에 많은 깨우침을 받은 바 있다. 어찌 알게 되었건 자칭 보수주의자라고 칭하는 사람의 글을 맛깔스럽게 읽는 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난 보수나 우파라는 단어를 아주 싫어하며, 그런 사람들은 속이 시커먼 위선자로 여긴다)
신기한 건 고종석의 글에서는 사실 우파의 색깔이 그리 잘 드러나지 않는다. 대선 전후를 통하여 민주노동당에 대한 애정을 토로한 글을 읽다 보면, 이 사람이 정말 우파 맞나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의 글들을 계속해서 읽다 보면...합리적 보수라는 자신의 주장이 맞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그는 인간의 추악하고 더러운 부분에 대해 부정하지 않으며, 인간이 쉽게 변하리라고 믿지도 않는다. 여기에 그의 보수주의적 기질이 있다고 보여진다.
다만, 보수이되 합리적이고, 워낙 우리사회가 우편향으로 기울어져 있다보니 조금만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결국 진보의 색깔이 덧쒸워지는 것 아닌가 한다. 하지만 고종석이 민노당 내 자주파나 수구반북주의자나 민족제일주의를 보수로 규정할 때 최소한 그는 좌파다.
그리고 시사저널 사태에 대한 그의 언론관과 삼성에 대한 그의 태도는 우파가 가져야 할 최대치와 좌파가 가져야 할 최소치의 경계를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독점화가 진행된 자본주의 사회에 살아야 하는 지식으로 지켜야 할 것과 거부할 것이 복잡하게 혼재되어 있다는 사실에 곤혹스러워 하는 양심과 도덕을 가지고 있다.
합리주의자 이지만, 하나를 주장해도 그의 글에는 아취가 있다. 비판을 하더라도 아름답게 선명하게 하는 그의 글을 읽다보면, 절제된 글과 잡글의 차이점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건 내가 잡글만 쓰는 사람이라 더 심하게 느끼는 것 같다) 자신은 진중권류의 글쓰기가 조금은 부러운 듯한 모습도 있지만, 그는 고종석이고 역시 고종석은 고종석식 글이 아름답다.
칼럼에는 가끔 서평이나 책 서문이 있다. 고종석은 강준만을 좋아하고 김진석에 대해서도 후하다. 강금실하고는 친한 사이인 모양이다. 어쩌면 고종석은 균형주의자 인지 모르겠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사회가 어는 한 쪽으로 너무 편향되어 있기에 고종석은 좌측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처럼 과거로 돌아가고 있는 이 시기에 고종석 같이 균형을 잡는 보수가 있다는 것은 우리사회에 행복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