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공중전화 문학과지성 시인선 201
채호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7년 6월
평점 :
품절


나는 맷집이 좋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시에 얻어맞고 뻗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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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기로 했다. 반짝거린 적도 눈부신 적도 없었던 안쓰러운 몸이지만 여튼 받아들이기로 했다.
깨달음으로 이르는 사건은 이렇다. 
친구가 물었다. 숨이 막히게 아쌀한 비키니는 어디서 사야하는가?
나는 말했다. 나를 따르라.  

나는 장담했고 친구는 20년 우정을 믿었다. 나는 기대에 보답했다.  
침이 꼴깍, 눈이 번쩍, 심장이 쩍, 손끝이 달달, 볼에는 홍조, 귀밑머리로 불어오는 춘심.
뭐든 가능하고 뭐든 꿈 꿀 수 있는 비키니가 거기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몸은 그 비키니가 가볍게 내려앉아야 할 몸과 전혀 다른 '대립쌍'을 이루었다. 

'존재하지 않는 여자'를 꿈꾸었던 죄일까. 정녕 우리의 존재는 아무런 '사용가치'도 '교환가치'도 없는 듯 싶었다. 이렇게 말하면 발끈할 언니들이 있지만 상관없다. 언니들에게 맞아 죽으나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자결을 하거나 결과는 똑같을 터.  

친구는 물었다. 엉덩이를 가슴으로 보낼 수는 없을까?
나는 말했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친구는 나를 패지 않았고 나는 20년 우정의 견고함을 맛보았다.
아니다. 그저 미학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우리는 비슷했을 뿐이다.   

그런 쓸쓸함으로 그런 처연함으로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나는 권혁웅의 책을 기억했다.
<두근두근_몸에 관한 어떤 散.文.詩>
그리고 펼쳐진 사백칠십칠페이지. 

너무 자주 만진 손잡이처럼

너는, 내게로, 열리며, 빛난다.

아직도 나를 마주보고 나를 열고 빛난다고 믿어주는 그대가 있다면
나는 사랑하기로 했다. 그리고 어쩔 수 없는 몸, 때나 밀기로 했다. 온천에 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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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1-06-14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의감에 불타 한마디) 속지마세요 여러분!!!!

굿바이 2011-06-14 17:30   좋아요 0 | URL
(억장이 무너져 한마디) 웬디양 더위먹었어요 여러분!!!!

웽스북스 2011-06-14 18:17   좋아요 0 | URL
언니 제가 밤 10시 넘어 맥주에 떡볶이는 먹어도 더위는 안먹어요
;p

굿바이 2011-06-15 10:35   좋아요 0 | URL
째려본다고 내가 겁먹을 줄 아느뇨?
그나저나 나는 어제 10시 넘어 하겐다즈 먹었다오~

風流男兒 2011-06-15 17:56   좋아요 0 | URL
참 웬디님, 굿바이누나 기타는 시작 하셨는지요!! (기대돋음)

굿바이 2011-06-16 09:38   좋아요 0 | URL
풍류님의 조언이 필요한 대목이오~^^

웬디랑 지리산에서 개구리 소리를 들으며 결심한 것인데
이것을 어떻게 현실로 만들 것인가 고민이오.
아참, 생활은 신나오? 뭔가 없는 아들이지만, 아들을 장가보낸 심정이오.
허전하오, 알 수 없는 일이오 ㅋㅋㅋ

風流男兒 2011-06-16 13:58   좋아요 0 | URL
아아, 이거 정말 안타깝네요. 현실로 만들려면 모여야 할텐데, 결심한번 하려는 데 들어야 하는 게 은근 많네요 ;;

생활은 재밌어요. 근데 뭐라해야하지, 시간이 갑자기 두배로 가는 기분이에요. 적어도 집에선.

집 정리가 좀 되면 초대할께요 ^^ 흐흐 이제 많이 정리한 것 같아요 ㅎㅎㅎ

風流男兒 2011-06-14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서는 웬디양이 옳습니다. 여러분

웽스북스 2011-06-14 18:01   좋아요 0 | URL
목에 칼이 들어와도 제가 옳습니다.

굿바이 2011-06-15 10:37   좋아요 0 | URL
그대들은 지금 그대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는도다~;D

Alicia 2011-06-14 1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굿바이님!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저는 비키니가 아니라 속옷가게에 갔었었더랬죠 히힛. 권혁웅시인 이 책 재밌었어요.ㅎㅎ

굿바이 2011-06-15 10:39   좋아요 0 | URL
알리샤님도 이 책 보셨군요 ^^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책입니다.
그나저나 속옷가게에서 비슷한 경험이라면....음...심심한 위로를 보내는 아침입니다 ㅜㅡ
 

불필요한 논쟁이었다. 현직 대통령의 정책에 박수치는 회장님은 무슨 사회적인 이슈만 생기면 나를 떠본다. 오늘은 등록금 문제였다. 개인적으로 회장님이 현직 대통령에게 호감이 있는 것에 나는 아무런 불만이 없다. 싫어할 수도 있고 좋아할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회장님은 내가 현직 대통령의 정책에 호감이 없다는 사실이 괴로운 모양이다. 정녕 괴로운 것은 나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판단을 하는 것이 왜 그리 중요할까. 설령 나를 설득한다고 해도 광화문에 앉아 있는 친구들이 설득당할 것도 아닌데. 아~ 필요없는 논쟁에 매번 덜컹거리는 마음이 문제다. 참말로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하는 오후. 

광화문에 다녀 온 후배가 맥주 한 잔 사달라고 한다. 맥주와 함께 윤제림의 <그는 걸어서 온다>라는 시집 한 권 건내야겠다. 그리고 후배에게 읽어 주고 싶은 시 두 편을 미리 적어본다. 


재춘이 엄마

재춘이 엄마가 이 바닷가에 조개구이집을 낼 때
생각이 모자라서, 그보가 더 멋진 이름이 없어서
그냥 '재춘이네'라는 간판을 단 것은 아니다.
재춘이 엄마뿐이 아니다
보아라, 저
갑수네, 병섭이네, 상규네, 병호네.

재춘이 엄마가 저 간월암(看月庵) 같은 절에 가서
기왓장에 이름을 쓸 때,
생각나는 이름이 재춘이밖에 없어서
'김재춘'이라고 써놓고 오는 것은 아니다.
재춘이 엄마만 그러는 게 아니다
가서 보아라, 갑수 엄마가 쓴 최갑수, 병섭이 엄마가 쓴
서병섭,
상규 엄마가 쓴 김상규, 병호 엄마가 쓴 엄병호. 

재춘아, 공부 잘해라!

 

공군소령 김진평

싸리재 너무
비행운 떴다

붉은 밭고랑에서 허리를 펴며
호미 든 손으로 차양을 만들며
남양댁
소리치겠다
 
"저기 우리 진평이 간다"

우리나라 비행기는 전부
진평이가 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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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 2011-06-08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불필요한 논쟁이네요. 회장님께 등록금 투쟁도 음모가 있다고 말씀을...


굿바이 2011-06-09 09:41   좋아요 0 | URL
네, 늘 허망한 논쟁이에요 ㅜㅡ

잘잘라 2011-06-09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하하.. 저 이 시, 꾹 꾹 눌러 담아가요.
이름에 '춘'자 들어가는 사람을 아는데,
그 사람은 자기 이름 부르면 질색팔색이거든요.
ㅋㅋㅋ 아~ 대책없는 장난기 발동합니다~~

굿바이 2011-06-13 10:29   좋아요 0 | URL
메리포핀스님, 주말은 잘 보내셨나요?^^
어떻게 장난은 잘 치셨는지 모르겠네요 ㅎㅎㅎㅎ

블리 2011-06-09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제가 좋아하는 윤제림씨 시.
반가워라.
전 그 시집의 '손목'에 울컥.

굿바이 2011-06-13 10:30   좋아요 0 | URL
야~ 블리가 윤제림씨 좋아하는구나.
알았으면 선물이라도 해줬을텐데.

그나저나 더운 여름 잘 보내고 있니?
건강 조심하고, 시원한 빙수 생각나면 연락해~!
 

놀라운 일이다. 오늘 나는 올 해 들어 처음으로 무릎이 보이는 치마를 입었으니 말이다.
이런 날은 무조건 맥주를 마셔야 하고 시원시원하게 웃어야 하는데 나는 이미 그 빌미를 찾았다.  
수주 변영로선생의 <명정 40년>을 책상 서랍에서 꺼냈다. 그리고 다시 읽는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선생의 명정기를 읽고 술을 입에 대지 않는 것은 모지리들이나 하는 선택이다. 따라서 오늘 저녁 나의 선택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고 은혜다.
 
우선 선생의 연보를 보면 1919년 YMCA에서 독립선언서를 영문으로 번역,했다는 이력과 1955년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 초대 위원장을 지냈다는 이력이 눈에 들어온다. 물론 어느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쳤던 이력도 있다. 짐작하건데 시대가 시대였으니 온전한 지식인으로 사는 일이 힘겨웠으리라. 그런데 멀쩡한 정신으로도 휘청거리고 전쟁처럼 먹고 사는 일을 처리했을 시절에 흥겹게 마시는 술이야기라니. 뭔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정도의 뒤뜰도 없는 삶이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온통 도덕적 순결함으로 무장한 지식인, 물론 무언가 할 수는 있을지언정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도모할 수 있을까 싶다. 그래서인지 어떤 방식으로든 곁을 내주지 못하는 사람은 매력없다.   
  
여하간 선생의 책 <명정 40년>은 남자가 쓴, 그것도 장난기(?)와 재치와 넉살과 따뜻함이 콸콸 넘치는 남자가 쓴 책이라는 것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오다가다 돌 맞을 소리이지만 이런 남자는 왠지 처음 만난 자리일지라도 '우리 입이나 한 번 맞춰봅시다'라고 생글거려도 어디 한 구석 밉지 않을 것 같다. 아, 이럴 때 보면 나는 마초를 좋아하는구나. 빌어먹을 일이로구나.  
어찌되었건 쓰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명정 40년>에는 큰 웃음이 있다. 이 시원하고 큰 웃음은 한여름 소나기처럼 우르르 우르르 몰려다니다가 여차하면 쏟아진다. 독자는 그저 놀라고 그저 깔깔거리며 소나기를 맞으면 될 터. 이 즐거운 독서를 어찌 마다하겠는가. 또한 이 유쾌하고 발랄한 독서 뒤에 놓여있을 술병을 또 어찌 모른 척 할 수 있겠는가.
<명정 40년>에는 그간 듣기 어려웠거나 어르신들의 수필에서나 가끔 엿볼 수 있었던 1950년대 이전 풍류남들의 이야기가 넘친다. 멸종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확연히 그 수가 준 풍류남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묘한 아쉬움이 차오른다. 아무렴, 저 시절에 태어났으면. 물론 남자로 말이다.
말이 길었다. 억울한 마음은 이 책을 술술술 마시고 술술술 이야기하며 초여름의 목요일 밤을 붙들면 되는 일. 벌써 시간은 4시 30분을 넘었고.

그나저나 에피소드 중 그림같은 장면이 있어 하나 옮겨 적는다. 

역시 혜화동 우거에서 지낼 때였다. 어느 하룻날 바커스의 후예들인지 유령(劉伶)의 직손들인지는 몰라도 주도(酒道)의 명인들인 공초(空超,吳相淳), 성재(誠齋, 李寬求), 횡보(橫步, 廉尙燮), 3주선(酒仙)이 내방하였다. 설사 주인이 불주객이란대도 이런 경우를 당하여서는 별도리가 없었을 것은 거의 상식 문제인데, 주인이랍시는 나 역 술 마시기로는 결코 그들에게 낙후되지 않는 처지로 그야말로 불가무일배주(不可無一杯酒)이었다........우리는 참으로 하늘에나 오를 듯 유쾌하였다. 우아하게 경사진 잔디밭 위에 둘러앉았는데 어 서방은 술 심부름, 안주 장만에 혼자서 바빴다. 술은 소주였는데 우선 한 말을 올려다 놓고 안주는 별 것 없이 남비에 고기를 끓이었다. 
참으로 그날에 한하여서는 쾌음(快飮), 호음(豪飮)하였다. 객담(客談), 고담(古談), 농담(弄談), 치담(痴談), 문학담(文學談)을 순서 없이 지껄이며 권커니 자커니 마셨다.
이야기는 길고 술도 길었다. 이러한 복스러운 시간, 길이 계속되기를 빌며 마셨다. 그러나 호사다마랄까, 고금무류의 대기록을 우리 4인으로 하여 만들게 할 천의(天意)랄까, 국면이 일변되는 사태가 의외에 발생하였다. 그때까지는 쪽빛같이 푸르고 맑던 하늘에 난데없이 검은 구름 한 장이 떠돌더니, 그 구름장 삽시간에 커지고 퍼져 온 하늘을 덮으며 비가 쏟아지기를 시작하였다.......처음에는 우리는 비를 피하여 볼 생의도 하였지만 인가 하나 없는 한데이고 비는 호세 있게 나리어 속수무책으로 살이 부를 지경으로 흠뻑 맞았다......그 끝에 공초 선지식(善知識) 참으로 공초식 발언을 하였다. 참으로 기상천외의 발언이었던바, 다름 아니라 우리는 모조리 옷을 찢어 버리자는 것이었다. 옷이란 워낙이 대자연과 인간 두 사이의 이간지물(離間之物)인 이상, 몸에 걸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럴 듯도 한 말이었다.......(51~54쪽) 

다음이 궁금하시면 <명정 40년>을 읽어보시라. 소설 <소나기>와는 또 다른 그림이 펼쳐질 터.
어찌되었건 나는 오늘 저녁 목울대를 울리는 좋은 맥주하러 간다. 좋은 사람 황군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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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싸리 2011-06-02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술 한 잔 하러 가시는 군요.
저도 급땡기는데요. 여기저기 전화좀 넣어볼까? ㅎㅎ

일제시대에 씌여진 아련한 에세이들이 많죠. 많이 읽어보진 못했지만 이태준선생의 것도 그렇고요.
맥주 맛나게 드시고 잘? 취하세요. ㅎㅎ

굿바이 2011-06-03 09:55   좋아요 0 | URL
어찌 전화는 좀 해보셨나요? ^^

그렇게 오래된 것들도 아닌데 잊혀지는 좋은 에세이들이 많은 것 같아요. 소설도 그렇구요. 세계고전문학은 전집으로 빵빵하게 나오는데...
여튼 내일이면 또 연휴입니다. 뭐든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치니 2011-06-02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이쿠, 이거 또 필독서 추가군요. :)

굿바이 2011-06-03 09:56   좋아요 0 | URL
치니님 이책은 문고판이라 휴대도 편하고 분량도 금새 읽혀요.
한 번 읽어보세요. 뭐 재미없으면 언제든지 항의하세요. 맥주 쏩니다~!

cyrus 2011-06-02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변영로라고 하면 저는 <논개>가 떠올라요. 범우문고라면 얇은 분량의 문고인걸로
알고 있는데 읽어봐야겠습니다. 여기 대구는 날씨가 더운데 시원한 캔맥주가
땡기네요 ^^

굿바이 2011-06-03 09:58   좋아요 0 | URL
ㅋㅋㅋ 시원한 캔맥주는 드셨나요?
범우문고는 휴대하기가 참 좋죠^^ 읽어보세요. 그리고 재미없으면 언제든 항의하십시오. 맥주가 되었건 책이 되었건 합당한 보상을 해드리겠습니다 ~~!

흰그늘 2011-06-03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글.. 좋은데요^^

묘하게.. 사람을 끄는 이들이 있는데.. 위의 '글'에 등장하는 이들처럼.. 이런류의 사람들에.. 정감이 가더라구요^^ 처음 '시' 를 좋아하게 되었던 날이.. 천상병 할아버지의
후일담들을 들으며.. 그분의 '시집' 을 보았던 날이었나봐요..


'뒤뜰'이 활자가 순간 크게 다가왔고.. '우리는 모조리 옷을 찢어버리자는 것이었다'..에서
웃음이 나오네요..

굿바이 2011-06-03 10:45   좋아요 0 | URL
정말 천상병 할아버지와 그분의 사모님 이야기를 참 놀랍게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나저나 흰그늘길님은 이 초여름 잘 보내시고 있나요?
언제든 찾아가서 쉴 수 있는 그런 뒤뜰 하나 만들어 놓으시면 좋겠어요~

風流男兒 2011-06-03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훗 풍류 넘치시는 풍류달인 변샘님. ㅎㅎ 언제나 그렇지만 오늘도 마음에 쏙 들어오는 말들 이 정말 많아요! 저는 어제 저녁을 해먹는데 대충 준비하고 먹기까지 두 시간 정도 걸리더라구요 맛있게 먹으니 어찌나 잠이 솔솔오던지요 흐흐. 현충일이 낀 황금같은 주말을 맞게 되어 어찌나 떨리는지. 아침부터 그냥 신나네요 ㅎ

굿바이 2011-06-03 10:05   좋아요 0 | URL
오호~ 두 시간!!!! 야~ 얼마나 근사한 신혼의 밥상이니!!!!!

나도 떨린다. 이 연휴가.ㅋㅋㅋㅋ
연휴 재미있고 달콤하게 보내.
물론 나는 지리산 어디쯤에서 길을 잃을 지도 모르지만~!(이건 뭐랄까, 그대와 함께 할 수 없음에 심통난다는 뭐 그런 아주 작은 앙탈!!!!!)
 

두통이 문제다. 살살 달래면서 잘 버텨왔는데 근래 일주일은 머리를 들 수 없을 정도다.
할 수 있으면 두개골 속에 들어있는 것들을 모조리 꺼내 찬물에 좀 씻었으면 좋겠다. 여하간 덕분에 일요일은 집에서 쉴 수 있었다. 황군의 극진한 간호를 받으며 맛있는 샌드위치와 커피를 마시고 썰어다 준 수박을 먹으며 세간에 화제가 되고 있다는 음악프로그램을 시청했다.  

노래를 잘한다는 것은 축복인 것 같았다. 단 한 소절을 부르고 그 한 소절을 들었을 뿐인데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무장해제시키니 말이다. 여튼 열심히 노래를 하는 가수들이 있고 또 그 노래를 기쁘게 듣는 사람들이 있는 풍경은 훈훈했다. 물론 출연한 모든 가수의 노래를 다 좋아할 수는 없지만 그건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다. 다행인 것은 황군과 내가 음악적으로 연대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하는 말을 황군은 금새 알아들었고, 황군이 하는 말 역시 설명이 필요없이 이해할 수 있었다. 이건 분명 행운이다.  

음악프로그램은 끝났고 순위가 발표되었다. 그 순위를 보면서 가장 많이 생각했던 것은 '대중'이라는 단어였다. 또한 임재범씨가 BMK를 위로하며 한 말이 계속 맴돌았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동료들이 이해하면 되는 거다'라는 식의 말이었다. 그 생각은 꼬리를 물고 김어준과 노회찬이 나누었던 대화로 이어졌다. 

김어준      그러니까 진보진영은 거의, 언제나, 항상, 도덕적 우위에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그리고 옳은 말이에요. 합리적이고, 논리적이고, 옳은 이야기이기 때문에 반박할 수 없어요. 그런데 국민들이 학생은 아니거든요. 훈계 받거나 가르침을 받고 싶진 않은 거예요. 그런 얘길 듣다보면, 안 그러면 나쁜 놈처럼, 물론 안 그러면 나쁜 놈이야 말하진 않았지만, 스스로 그렇게 느껴지니까 그쪽을 안 쳐다보도 싶은 거예요. 그게 죄의식 마케팅의 한계인데, 그 마케팅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사람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끼리 운동을 하기도 하죠. 그런데 그게 확장이 안 된다는 거죠, 전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게 엄청난 갭인데 그 갭을 어떻게 넘어가느냐....이 설득을 하는 방법론에 있어서의 연구는 안 한다는 거죠. 왜냐하는 우리는 옳고, 이것이 정교하고 훌륭한 플랜이고, 다른 정책보다 우위에 있으니 이것으로 충분하다. 우리나라 진보진영의 멘탈리티가 마치 종교운동의 그것과 비슷하다, 이런 생각도 합니다.  

노회찬      극복되어야 할 부분이죠. 

김어준      그런데 대표님처럼 이미 대중정치를 하시는 분들은 그 한계를 자각하지만, 그래도 안하시는 분들도 물론 있지만, 문제는 그 한계를 인식하는 것까지만 하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것을 극복하고 연구하고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 다른 것만큼의 우선순위, 혹은 그보다 더 높은 우선순위를 두고 연구하지 않는다는 거죠. 그래서 느끼는 안타까움이 항상 있어요. 나는 저 사람들이 좋은데, 저 사람들이 얼마나 좋은지 사람들이 스스로 와서 공부하고 알려고 하지 않는 한. 그건 소비자 보고 이 물건이 얼마나 좋은지 지가 알아서 공부하라 이거거든요. 장사를 하면서 팔 생각은 안 한다는 거죠. 우리 물건이 좋으니까 팔릴 거야. 우리 물건은 짱이야. 자기들끼리 이런 얘기만 한다는 거죠. 자기들끼리 옳으면 뭐해. 이런 것도 있습니다. 똑같은 맥락인데 종교는 구원으로 장사를 하는 거죠, 비유하자면, 그럼 진보진영은 뭘로 장사할 거냐. 진보진영의 장사 패키지가 잘 안 보여요, 대중들한테는. 교회를 가는 건 구원 받으려고 가는 거거든요. 절에 가는 것도 이유가 있는 것이고, 당연히. 그걸로 장사한다고 치면 그럼 진보진영의 구원은 뭐냐, 진보진영의 구원이 예를 들어 무상교육이고 서민들 모두에게 집을 가지게 하는 거라면 말이죠. 교외의 구원이 영생인데 그 사람들이 교회에 안 가고 그걸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잖아요. 그래서 교회는 일단 예배를 보게 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거든요. 그걸 너무 많이 해서 욕먹죠. 그런데 진보진영은 자신들의 예배당에 사람들을 끌어 들이는데 대단히 무심하다. 자신들의 교리만 발표하고 있어요, 맨날. 

노회찬      (묵묵)  

김어준의 말에는, 적어도 내가 듣기에는 상대방을 향한 혹은 진보진영을 향한 애정이 충만해 보였다. 물론 미운 구석이 있겠지만 말이다. 또한 노회찬의 대답없음에는 현실을 자각하고 있는 사람으로서의 답답함이 묻어난다. 

노회찬      제 식으로 얘기하자면, 우리가 어렵게 일을 하다 보니까, 이기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보다는 지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또는 살아남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는 데에 너무 매몰되어온 건 사실이에요. 제가 가장 문제 있다고 여기는 자세가 뭔가 하면, 나는 감옥 가는 걸 두려워하지 않아, 감옥 가는 걸 감수하거나 감옥 가도 변치 않겠다는 말이에요. 이것은 좋은 태도긴 하지만 사실 감옥 간다는 것은 진다는 얘기거든요. 

김어준     그리고 당한다는 얘기죠. 

노회찬     당한다는 거죠, 당하지 않고 적을 무찔러야 되는데, 무찔러서 어떻게 하겠다는 포부보다는 패배주의가 앞서거든요, 그러니까 그 속에는 뭐가 있냐면, 이기기는 힘들 것이다, 질 가능성이 더 높다, 지더라도 변치는 않겠다, 이런 얘기라고요. 그건 생존을 위한 철학은 될 지 몰라도, 변혁을 위한, 변화를 시키는, 이겨야 변화를 시키는 건데, 그 길은 많이 못 미치는, 그런 점에서 패배주의가 짙게 깔려있다. 그렇기 때문에 행태나 운동방식도 그걸 못 벗어나고 있다.  

음악프로그램을 보다가 자연스레 이어질 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나는 계속 <진보의 재탄생>을 뒤적였다. 음악에도 낡은 진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좀 분열되어 다양한 지점들이 생기고 점점 괜찮아 보여서 따라하고 싶고 좋아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이유는 한가지 다양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세상이 좋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노회찬이 선거에서 졌다고 갑자기 홍정욱의원 흉내를 내라는 것은 아니며 이소라에게 후렴으로 가득찬 댄스곡을 주문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 흉하다. 아니 울 것 같다. 단지 친절하고 세련되고 달콤하게 대중을 설득하는 방법을 알아냈으면 좋겠다. 건투를 빈다. 내가 좋아하는 당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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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1-05-30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가수, 이번주 시청 소감은 '분위기가 너무 무겁다' 였어요.
노래하고 나오는 가수 한 명 한 명 모두 무슨 한풀이하고 나오는 느낌이랄까..ㅜㅜ;;
다음주에는, 보게되면 보겠지만, 기다렸다 보지는 않을것 같아요.

굿바이 2011-05-31 13:20   좋아요 0 | URL
좀 무겁게 느껴지기는 하더라구요.
저도 다음 주에는 지리산에 있는 관계로 못 볼 것 같아요.
여튼 어떤 노래를 하게 될 지 모르겠지만 다들 좋은 무대 보여주면 좋겠어요.

pjy 2011-05-30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등교육 안받았더라도 정상적인? 사고과정만 거친다면 모든 일에 대해서 지적질은 쉽죠~~ 문제인식후 그 대안과 구체적인 해결방법부재가 문제인거죠--;

전 겨울보다 여름에 두통이 심해집니다--; 에어컨땜에 머리가 시려서요ㅠ.ㅠ

굿바이 2011-05-31 13:24   좋아요 0 | URL
그렇죠. 일반적으로 지적하는 일은 대안을 내놓는 것 보다 쉬울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정말 제대로 고민하고 지적하는 거라면 그 과정에서 대안이나 해결방법도 자연스럽게 고려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제대로 된 지적은 중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그게 어렵고 또 많지 않아서 문제죠.

pjy님도 두통이 심해지시는군요. 저는 정말 이놈의 두통때문에 가끔 사회생활을 포기할까 고민한답니다. 끔찍한 수준이에요 ㅜㅡ

쉽싸리 2011-05-30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가수는 텔레비를 보지 않는 저도 인터넷을 통해서는 두어 번 보았습니다.
그야말로 다양성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는 새로운 시도고 신선하고, 좋게느껴집니다.
저로써는 이런 시도들이 정치쪽으로도 어떤 전염을 줄 수 있지 않겠나 하고 생각합니다.
곰곰생각해보면 한국은 문화적으로 참 역동적인 측면이 있는 것같습니다. 이것이 일회성이나 한쪽으로 치우칠 위험성도 있겠지만요.

굿바이 2011-05-31 13:29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정치하시는 분들이 이런 문화적 현상을 잘 관찰하고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으면 좋을텐데 말이에요. 물론 미학적인 완성도를 비롯해 확실한 컨텐츠를 갖추어야 하겠지만 말이죠^^
여튼 역동적이라는 말이 긍정적으로 연상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에디 2011-05-31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정일의 구월의 이틀에 나오는 우파의 거두, 거북선생(거부한다..북한을.......-_-)의 말이 생각나네요. (적어도 우리나라에선) 우파라는게 특별한 논리가 없다고...했던가요. 이거보고 낄낄낄 웃었는데.


굿바이 2011-05-31 13:38   좋아요 0 | URL
<구월의 이틀>은 절반 정도 읽다가 잃어버렸어요. 결국 구월의 하루,정도만 읽은 셈이에요 ㅜㅡ
리영희선생님이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라고 하셨는데, 생각해보면 우리 현실에서는 이 새가 날 수 있는지조차 의문이 들어요. 한국의 우파와 좌파라는 날개를 가지고 날 수 있는 새가 과연 어떤 조류인지 참 궁금해요.

風流男兒 2011-05-31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나 지리산에 가시는군요. 어찌 이는 괜찮으세요? 후훗, 즐겁게 다녀오세요! ㅎㅎ

굿바이 2011-06-01 10:12   좋아요 0 | URL
치아는 이제 괜찮아^^
풍류가 철철 넘치는 그대와 함께 갈 수 없어 아쉽지. 그래도 다음에 같이 가면 되니까, 잘 다녀올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