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기로 했다. 반짝거린 적도 눈부신 적도 없었던 안쓰러운 몸이지만 여튼 받아들이기로 했다.
깨달음으로 이르는 사건은 이렇다.
친구가 물었다. 숨이 막히게 아쌀한 비키니는 어디서 사야하는가?
나는 말했다. 나를 따르라.
나는 장담했고 친구는 20년 우정을 믿었다. 나는 기대에 보답했다.
침이 꼴깍, 눈이 번쩍, 심장이 쩍, 손끝이 달달, 볼에는 홍조, 귀밑머리로 불어오는 춘심.
뭐든 가능하고 뭐든 꿈 꿀 수 있는 비키니가 거기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몸은 그 비키니가 가볍게 내려앉아야 할 몸과 전혀 다른 '대립쌍'을 이루었다.
'존재하지 않는 여자'를 꿈꾸었던 죄일까. 정녕 우리의 존재는 아무런 '사용가치'도 '교환가치'도 없는 듯 싶었다. 이렇게 말하면 발끈할 언니들이 있지만 상관없다. 언니들에게 맞아 죽으나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자결을 하거나 결과는 똑같을 터.
친구는 물었다. 엉덩이를 가슴으로 보낼 수는 없을까?
나는 말했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친구는 나를 패지 않았고 나는 20년 우정의 견고함을 맛보았다.
아니다. 그저 미학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우리는 비슷했을 뿐이다.
그런 쓸쓸함으로 그런 처연함으로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나는 권혁웅의 책을 기억했다.
<두근두근_몸에 관한 어떤 散.文.詩>
그리고 펼쳐진 사백칠십칠페이지.
너무 자주 만진 손잡이처럼
너는, 내게로, 열리며, 빛난다.
아직도 나를 마주보고 나를 열고 빛난다고 믿어주는 그대가 있다면
나는 사랑하기로 했다. 그리고 어쩔 수 없는 몸, 때나 밀기로 했다. 온천에 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