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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옹호하다 - 마르크스주의자의 무신론 비판
테리 이글턴 지음, 강주헌 옮김 / 모멘토 / 2010년 8월
평점 :
요근래 책을 이것저것 읽기는 많이 했는데 천성적인 귀찮니즘 때문인지 리뷰를 영 신경을 쓰고 있지 않다가 모 서재에 누군가가 신랄하게 평을 쓴 것을 보고서 글도 쓰지 않으면 도태된다라는 생각에 몇 자 적는다. 대부분의 책들이 읽은지 거의 한달 혹은 두 달이 지나서 기억에 의존해서 하다 보니 세부적인 내용보다는 당시에 느꼈던 감정의 편린만 끄적거리게 된다.
테리 이글튼의 경우, 문학도였기 때문에 비평이론 입문과 성스러운 테러 정도 읽어 본 것에 지나지 않지만, 그의 원저을 처음 접했을 때 그의 명쾌한 글쓰기에 흠뻑 빠진 적이 있었다. 특히 비평 이론 입문의 경우, 영문학으로 외국에서 학위를 따고자 했던 후배들에게 영어 글쓰기 모범으로 뻬겨 쓰라고 권유할 정도였다.
이 책의 경우도 그의 번뜩이는 기지가 보이기 하지만, 저자가 무엇을 의도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저자가 비판하는 리처드 도킨스과 허친스의 책을 다 읽어본 나로서는 알 듯 말 듯한 느낌이었다. 일반화의 오류에 대해 비판하고 있는 것은 알겠는데, 서구 기독교 혹은 카틀릭이 언제 본인이 저질렀던 죄에 대해서 참회의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던가? 남미와 미국 인디언들의 학살과 노예제도 추인한 점에 대해서 로마 교황청은 어떤 반응을 내보였는가? 팔레스타인 주민의 학살에 대해서는 그 어는 누구도 얘기하지 않음은 어떤 것인지?
자기 나라 수도 시청에서 미국 성조기를 휘두르는 기독교를 가진 나라에서 건전한 비판은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 많은 나로서는 오래 생명력을 가진 종교의 타당한 구석은 이해하나 그 전에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종교가 아니라 그 종교를 실행하는 사람으로 인해 피해나 상처가 났다면, 그 종교 윗선들이 이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할 것이고 언급하는 것이 서구 좌파의 대가가 언급해야 할 측면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정도 밖에 들지 않았다.
시니컬 하면서 비꼬는 그의 문체를 번역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읽은면서 아는게 적어서 그런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문이 많아서 시간 나면 재차 읽어 보리라 다짐을 해본다. - 근데 어느 세월에 읽을 수 있을까? 책상 앞에 읽은 책이 수 십권이 있다보니 잘 안될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