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도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가
번민이 많았나
며칠 동안 수면 패턴이 깨져서 힘들었다.
10시에 자서 4시 정도에 일어나곤 했는데 9시엔가 잠이 들어 계속 2시에 깨는 바람에 힘들었다. 어제는 작정하고 늦게 자려고 유튜브에서 이런저런 영상을 보다 탄핵 심판 영상을 제대로 보았다. 누군가는 나긋나긋한 강일원 헌법재판관님 목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한다고 했는데 무슨 말인지 알 듯하다. 다시 봐도 좋구나.
잠이 안 오는 동안 비몽사몽간에 책을 엄청 봤는데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이었던 책들.
그래도 나의 새벽을 지켜주었다.
1.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을 보며 일본사회를 읽곤 한다. 항상 느끼지만 일본은 여성의 지위가 참 낮은 사회다.
<그대 눈동자에 건배>와 <10년 만의 밸런타인데이>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2. <달팽이 식당>은 <츠바키 문구점> 읽고 나서 읽으니 동어반복 같기도 하면서 뭔가 구성이 더 허술해서 읽다 말았다.
3. <좋아하는 곳에 살고 있나요?>
좋아하는 것에 둘러싸여 일상을 풍요롭게 사는 것이 극강의 미니멀리즘보다 낫다는 데 동의한다.
그렇지만 블로그나 방송에서 거의 봤던 것이고 아무래도 나의 상황과는 맞지 않는다.
어려서는 돈이 없지, 취향이 없냐를 부르짖곤 하던 나였는데.
역시나 돈이 없다면 취향도 주장하기 힘든 것이다.
게다가 여기에 아이들까지 있다면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냥 '식'에만 몰빵.
지금처럼 '의식주'가 아닌 '식주의' 비중으로 살아가려고 한다.
그래도 후루룩 잘 보았다. 예쁜 걸 봐두어 나쁠 건 없으니.
그리고 나도 언젠가는 작가님같이 취향을 실현할 날이 오겠지.
성탄절에 성당 안 간 것도 참 몇 년 만에 처음이다. 엄마 편찮으시고 나서 하느님, 저 좀 쉬어가도 될까요, 하다가 오래 쉬고 있다. 그래도 요즘만큼 기도가 간절한 적은 없다. 화살기도를 수시로 드리고 있다.
4. 생각버리기 연습 2 도 잘 읽고 있다.
1권과 동어반복이기는 한데 중간중간 4컷 만화도 있고 뒷부분에 뭔가 나오나 싶어 아직 손을 놓지 못하겠다.
5. 안셀름 신부님 책을 보다가 충격받고 있다. 성경 비유나 말씀 중에 이제 생각이 잘 안 나는 것도 있다. 역시 성경을 제대로 읽은 적이 없구나.
6. 그래도 힘든 시기면 자주 보는 송봉모 신부님 책이다.
두려워 말고 항상 오늘을 살아야지.
7. <빛의 호위>는 빌려 읽다가 양림동 아날로그 서점 가서 사와서 읽고 있다.
그간 여러 작가들의 단편을 모은 단편집에서만 해진 작가님을 보다가 이번에야 제대로 읽는다.
<빛의 호위>만으로도 빛나는 작품집이다.
오늘은 애들 방학식이라 동네 샌드위치 가게에서 마지막 만찬을 즐기며 천천히 읽었다. 환하디 환한 곳에서 눈물이 솟으려 해서 클럽 샌드위치 소스 묻은 휴지로 겨우겨우 수습하고 보니 너무 내 꼴이 처량맞아 집으로 돌아오며 뒤통수가 따가웠다. 설마 이런 나를 본 사람은 없겠지.
8. <상냥한 폭력의 시대>
어제 도서관에 책 반납하러 가서 단편 두 편만 읽었다. 읽고 나니 답답하기만 하다. 어쩐지 여성중앙 같은 데 나온 소재 같기도 하다.
<미스조와 거북이와 나>는 한 시절 아버지를 스쳐갔던 여인과 조우하게 되는 남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미스조 같은 여자들이 여전히 많을듯하다. 남자가 다른 이들 앞에 제대로 소개하지 않는 그런 여자가 된다는 건 상당히 서글픈 일일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은 청소년 임신을 다루고 있는데 이런 아이들도 있을 법하다. 남자아이 엄마의 기막힌 대응도 현실과 닮아 있다.
어쩐지 더 읽고 싶지는 않았다. 먹지도 않은 김밥이 어딘가 걸려 있는 기분이 들어 서둘러 책을 북트럭에 올려두었다.
9. <이해 없이 당분간> 역시 유쾌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가득.
그래도 외면할 수 없는 이야기들.
청년들이 진짜 많이 힘들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아무것도 한 것 없이, 아니 그야말로 아무것도 한 것이 없기에 마음이 무거웠다.
제일 인상 깊었던 백가흠의 <취업을 시켜드립니다>
참혹한 착취에 너무나 화가 났다. 해외취업 지원이라는 명목하에 한인 게스트하우스에서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삶을 저당잡히는 청춘들을 보니 화가 났다. 국내 이곳저곳에서도 비일비재한 일이다. 근교 담양 식당에서 청소년 임금체불과 성희롱이 있어 맘카페마다 난리였다. 그래도 곧 사람들은 잊기 마련이다. 여전히 그런 데는 성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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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었던 혹은 겪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겪을 문제들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한국 소설들만 보다보니
불면의 밤이 더 길어진 듯하다.
그래서 저절로 탄핵 동영상을 찾아다녔나보다.
뭔가 뚫린 곳으로, 환한 곳으로 나서기 위해
그 영상을 보는데 503 변호인단이 아무리 답답한 소리를 해대도 화가 나지 않고 웃음만 비어져 나오고 모든 것이 명쾌하게만 여겨졌다. 시청하다 나른해져 잠이 들었다.
그렇게 어제 12시에 자서 오늘 6시에 일어나고 보니 좀더 맑은 정신으로 오늘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그래서 이 글도 쓸 수 있게 된 듯하다.
푹 잔 것만으로도 인생이 훠얼씬 나은 무언가가 되어 있다.
자주 걸려오는 엄마 전화에도 온화하게 대하고
주변에 안부 카톡도 하는 여유를 찾게 되었다.
그리고 방학이니 이제 당분간 한국 소설이여, 안녕.
최대로 안정된 정서를 유지해야 하니
잔잔한 성장소설이나 SF, 추리소설 같은 장르물을 보며 머리를 비워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