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초등학교는 봄 방학이 없이 쭉 두 달을 이어서 쉰다. 선생님들이 미치기 전에 방학을 하고 엄마들이 미치기 직전에 개학을 한다는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겠는 명언은 2000년대의 속담으로 남을 것이다.
목요일에는 독서모임 언니와 시내에서 잠시 커피를 마시고 책과 생활 서점에 들러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를 샀다.
어슐러 르 귄을 막연하게 남성작가로 생각했던 적이 있다. 나 역시 SF를 남성작가의 전문 분야로 여기고 있었나보다.
SF를 쓰는 여성작가가 노년에 이르러 남긴 단상들.
아시아문화전당 북라운지에서 몇 장만 읽었는데 벌써 매료되었다. 하버드동창회에서 노년에 여가를 어떻게 보내냐는 설문을 보냈다. 골프 등 여러 여가생활이 등장한 끝에 작가가 평생의 업으로 삼은 글쓰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작가는 노년에도 왕성하게 활동하기 때문에 은퇴가 없는 직업이고 더 이상 남겨둘 시간이 없다고 단언한다.
남겨둘 시간이 없다는 건 주부에도 적용된다. 돈을 받는 가사도우미같이, 수업료를 받는 학원강사같이, 전문 간병인같이 살림과 육아에 관련된 일을 여러 가지 하려고 들면 남겨둘 시간 따위는 없다.
주부는 동동거리며 이렇게 여러 가지 일을 동시다발적으로 처리해도 늘 집에 있는, 시간이 남는 사람으로 치부된다. 학교 총회에서도 슈렉의 엄마인지 뭔지 이름마저 전근대적인 녹색어머니회 이야기를 하며 집에 계신 어머님?들은 되도록이면 나와주셨으면 한다고.
주부에게든 회사원에게든 하루를 여는 아침시간은 정말 소중하다. 한번은 주부들이 많이 다니는 사이트에서 녹색어머니를 공공근로로 돌려야 한다는 취지로 글을 길게 썼다가 댓글 포화를 받았다. 학교 자원봉사인데 그 정도는 엄마들이 해줄 수 있지 않냐고.
나는 학생들 안전에 직결된 것이고, 학부모에게만 부담을 지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노년층 인력을 활용해 공공근로의 형태가 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미 학교지킴이는 그런 식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매일 필요한 인력을 이런 식의 자원봉사에 기대는 것은 무리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주제를 주변에는 말하지 않는다. 그냥 나는 녹색어머니회 봉사에 동의하지 않고 별로 하고 싶지 않구나, 하고 결론지었을 뿐이다 (다른 형태로 학교 봉사를 해본 적은 있다. 그리고 사정상 학교 봉사를 안할 수도,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유명 여배우들도 녹색어머니회를 한다는데 집에 있으면서 그 정도도 못 하느냐는 소리를 같은 엄마에게 듣고 싶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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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아들이 방학 중에 파자마 파티에 초대를 받아 그집 엄마에게 답례로 차를 사드리는 시간을 가졌다. 서로 신상 소개를 간단히 하고 아이들 이야기가 이어지니 급격하게 피로감이 몰려온다.
막연히 주부끼리는 이야기가 잘 통할 거라고들 생각하지만 다년간의 경험으로 그렇지 않다. 나의 취향과 성격은 배제한 채 아이들 학년, 동네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만나서 겉도는 이야기를 하다 헤어질 때가 많다. 가끔 이야기가 통하는 순간도 있지만 대개는 거래처 사람들과 만나는 것과 같다. 자신과 아이들에게 유리한 무언가가 있지 않게 되는 순간 거래는 종료된다. 무형의 이 거래는 엄청 까다롭다. 거래를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세계.
품앗이 육아나 공동체 그런 걸 생각도 해봤지만,
네 이웃의 식탁과 같은 상황이 될 뿐이다.
오래 주부로 충실히 삶을 꾸리셨는데도 내가 하는 일을 듣고는 갑자기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 진짜 능력 있으시네요, 라고 한다. 그냥 내가 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인 수업노동자로 일하면서 나 역시 주부이기도 한데 과도하게 추어올리시니 불편했다.
가끔 이렇게 다른 활동이 없는 엄마를 만나면 흔하게 마주치는 광경이다. 대놓고 스스로 집에서 노는 사람이라 소개하기도 한다. 그리고 끝없는 비교, 행불행의 상호대조표를 만들어 같은 패턴의 대화가 반복되면 지루해진다.
어떤 분은 여자가 200만원 넘게 못 벌면 육아 살림만 전담하는 게 이득이라는 황당한 주장을 하기도 한다. 이건 아이들이 초꼬꼬마 0-24개월일 때나 해당되고 경력 단절이 길어질수록 좋을 건 없다. 물론 각자 개인의 사정과 가정경제상황이 다르니 일을 하네, 마네 하는 것도 자신이 정하고 가족과 상의해 하면 될 일이다.
어제 만난 엄마는 아들이 둘인데 대화 중에 계속 남자는 역시 능력이라는 말을 많이 하셔서 황당했다. 그리고 아무래도 딸아이보다는 아들 공부에 더 신경이 쓰이지 않냐는 진짜 황당한 이야기 끝에 자신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그런지 그냥 적당히 예쁘게 지내다 시집가면 된다고 생각하신다고. 아아아....엄청 열심히 들어드리기는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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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샤 튜더의 말대로 주부는 잼을 만들면서도 셰익스피어를 읽을 수 있기도 하다.
꼭 셰익스피어를 읽는 게 아니더라도 뜨개나 다른 창의적 활동을 할 있게 시간을 잘 꾸려야 한다. 주부 역시 다른 직업과 마찬가지로 시간 관리나 자기 관리가 있어야 가정생활이 잘 기능할 수 있게 한다.
적절한 때에 대화 흐름을 끊지 못해서 이후 저녁시간이 좀 틀어져서 피곤했다.
이제 아이들이 컸으니 아이들친구 엄마와 따로 만나는 것 없이 아이 편에 작은 선물을 보내는 편이 나았을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역시 자신의 시간을 내는 것만큼 큰 접대는 없다고 생각해서 만난 것이니 이제는 비루한 생각들 털어버려야겠다.
'이진순의 열림'을 통해 한번은 본 기사이지만 그래도 다시 빌려왔다.
프롤로그가 특히 좋았다.
열림을 통해 만난 분들 모두가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활동을 하는 분들이었다.
그렇지만 저자는
"그렇게 훌륭한 인물은 세상에 없어요"
인터뷰를 위해 내가 만난 모든 이들이 내겐 감동이고 기쁨이고 희망이었지만, 그 누구도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만큼 위대하거나 훌륭하지 않았다. 시련이 깊을수록 내상은 깊었고 외로움과 두려움 앞에서 갈등하고 자책하는 사람들이었다. '백마 타고 오는 초인' 같은 존재는 현실에 없다.
(중략)
누구의 인생도 완벽하게 아름답지만은 않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한 방은 있다. 삶의 어느 길목에선가 자신의 가장 아름답고 선한 열망을 끄집어내 한순간 반짝 빛을 더하는 사람들이 있어 세상은 망하지 않고 굴러간다. 7쪽
인터뷰이로 책에 나오기도 한 장혜영 감독의 인터뷰가 다시 봐도 좋다.
독립영화관에 아직 <어른이 되면>이 걸려 있는데 잠시 보고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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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기 전에 활동하던 동호회에서 연말이면 앙케이트를 하곤 했다.
그중 질문 목록에 '일 년 중 내가 가장 반짝이던 순간'은? 이라는 항목이 있었다.
늘 거침없이 적어가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육아를 하면서는 한참 생각해도 적을 게 없어졌다.
커뮤니티 자체의 쇠퇴로 이제 활동이 없는 곳이지만
가끔 이전 내 글들을 찾아보고 얼굴이 벌게진다.
20대에 굉장히 명랑소녀인 척하고 살았구나.
늘 약간은 울적했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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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반짝이는 순간보다
그저 은은하게 비추는 그런 삶을 택했다.
뭐가 되었든 아주 사소한 선택이라 해도
후회하고 자책하지는 말자.
곧 개학도 하고 봄도 될 테니
조금만 더 버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