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자매의 영향력-형제자매들이 싸우는 진짜 이유 146-167쪽

 

(    )는 공감이거나 제 의견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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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싸우기 시작하면 화물열차가 바로 옆을 지나가는 것만 같아요. 도무지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어요.”

만 5세 딸과 만 6세 아들을 둔 엄마의 이야기다. 그녀는 임상 정신의학자로 부상당한 퇴역군인들을 돌보고 있다. 그러나 자기 자식들이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훨씬 더 고통스럽다고 털어놓았다. (극공감!)                p. 149

 

 

관찰연구결과 만 3세와 만 7세 사이의 충돌은 평균 시간당 3.5회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충돌 가운데에서도 일부는 짧은 마찰이었고, 또 일부는 그보다 길었다. 거기에 덧붙여 매 시간 중 10분을 말다툼으로 보내고 있었다. 워털루대학교의 힐디 로스 박사에 따르면 총 8회의 충돌 가운데 화해와 타협으로 끝나는 경우는 단 한 번이라고 한다. 나머지 일곱 번은 그냥 물러나거나 주로 큰 아이가 작은 아이를 괴롭히고 협박하는 것으로 끝났다.

뉴욕주립대학교 제네서칼리지의 개니 드하트 박사는 만 4세 아동이 어린 동생을 대하는 태도와 친한 친구를 대하는 태도를 비교해보았다. 박사가 추출한 표본에서 이 아이들은 친구들보다 동생에게 부정적이고 명령하는 언어를 일곱 배나 더 많이 사용했다.  p. 150

 

형제자매는 수천 번의 상호작용을 통해 쑥쑥 자라고 있는가? 크래머 박사에 따르면 사실은 그렇지 않다. (중략)

크레머 박사는 형제자매 사이의 관계도가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눈에 띄게 안정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중략) 명령형이거나 통제형이거나 다정하거나 사려가 깊거나 어린 시절에 형성된 분위기가 계속 유지되는 경향을 보였다. (중략)

 

연구에 참여한 가정 아이들이 20대가 되어 물어본 결과

“아이들이 잘 지내느냐고 물어보면 늘 변함없이 똑같다고 대답들을 합니다.”라고 크래머 박사는 말했다. (우하하! 이모랑 외삼촌 우리엄마 만세! 어릴 때 사이 좋으면 좋은 사이 어려서 쌓인 건 노인 되어서까지 못 잊어. 특히 제사상에서 맛난 것만 먹던 오빠 )  p.152-153

 

프로이드는 틀렸고 셰익스피어가 옳았다. ‘태어나면서부터 형제자매는 부모의 애정을 향한 끊임없는 갈등에 사로잡힌다’는 프로이드의 주장은 학자들과 부모들 모두에게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짜증나는 애첩설! 첫째가 둘째아이를 본 심정이 본부인이 첩본 것과 같다는 주장, 돌이켜보면 어릴 때 주로 2호 누워 있던 시기에 가장 사이 좋음, 누워 있던 게 일어나 자신의 것을 만지면서 전쟁) 그러나 프로이드의 이론은 완벽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형제자매간의 경쟁은 부모의 사랑을 둘러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보다는 리어왕 이야기에 더 가깝다.

영국과 미국의 선도적인 학자들로 구성된 한 연구진은 콜로라도 지역의 형제자매 108쌍에게 정확히 무엇 때문에 싸우는지 물었다. 부모의 사랑은 맨 꼴지를 차지했다. 겨우 9퍼센트가 부모의 사랑을 말다툼이나 경쟁의 원인으로 꼽았다.

아이들이 서로 싸우는 가장 보편적인 이유는 고너릴과 리건(리어왕의 첫째, 둘째)이 파멸당한 이유와 같았다. 즉 성 안의 장난감을 나눠 가지는 문제였다. 큰 아이의 78포센트, 작은 아이의 75퍼센트가 물리적인 소유물을 나누는 문제 혹은 소유권을 주장하는 문제로 대부분의 싸움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163쪽

다른 이유는 아주 미비했다. 작은 아이의 39퍼센트가 싸움의 원인을 ‘싸움’이라고 답했다. 기본적으로 이들은 큰 아이가 자신을 때리는 것을 막기 위해 싸움을 시작한다고 주장했다.

164쪽

 

 

“다른 요소들과 비교해보면 나이 차는 그리 강력한 예측 요소가 아닙니다. 성별도 마찬가지입니다. 걱정해야 할 다른 많은 요소들이 있어요.”

 

 

그럼 무엇이 중요하냐는 질문에 크래머 박사는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일러준다. 두 형제자매가 얼마나 잘 지내는가를 가리키는 가장 좋은 예측장치 가운데 하나는 동생이 태어나기 전에 결정된다는 것이다. 정말 놀라운 발언이다. 한쪽의 성격이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데 어떻게 두 성격의 충돌이 예측 가능하다는 말인가? 어떻게 미래의 관계를 알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설명을 들어보면 꽤 합리적이다. 이는 부모와 아무 상관이 없다. 오히려 예측 요소는 큰 아이가 친한 친구와 맺은 관계의 성격이다.

크래머 박사는 둘째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는 가족의 어린 자녀들을 연구해보았다. 박사는 이 아이들이 친한 친구와 일대일로 노는 모습을 관찰했다. 상호간에 우호적인 아이들은 몇 년 뒤 동생과도 좋은 관계를 보여주었다.

 

오래 전부터 형제자매는 서로에게서 배운 사회적 기술을 가족 밖의 또래 집단과의 관계에 적용한다고 추측해왔다. 그러나 크래머 박사는 정반대의 흐름도 있다고 말한다. 큰 아이는 친구들과의 사이에서 배운 것을 이후 어린 동생에게 적용한다. (둘이 자주 싸운다면 또래 관계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닐까? 안녕하세요 고민 상담에 나오는 권위적이고 찌질한 오빠들)

 

사만다 펀치 박사가 지적하듯이 형제자매 관계는 어떤 일이 생겨도 내일 또 볼 수 있는 관계이기 때문에 별 장려책이 없다. 이들은 평생 함께 살아야 하는 종신형 선고를 받은 죄수와 같아서 좋은 행동을 했다고 해서 특별히 감형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굳이 변화할 동기가 없는 것이다. (찰지다! 엄마 간수 아래 종신형을 사는 두 죄수, 사식이라든가 누울 자리를 가지고 끊임없이 싸울 수밖에 없다.)

크래머 박사는 또한 어린이집과 보육시설에서의 행동도 고려했다. 아이들이 학급에서 협동을 잘하거나 집단놀이를 함께 해냈다는 사실이 이후 형제자매 관계를 향상시킨다는 예측은 하지 못했다. 정말로 중요한 요소는 친구들끼리의 진정한 관계, 즉 좋아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행동이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마음 쓰는 것이다.

“부모는 아이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높은 동기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다른 아이들은 내가 지금 배가 고픈지 무릎에 멍이 들었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습니다. 자기들도 다 멍이 있으니까요”라고 크래머 박사는 설명했다.

다시 말해 부모에게서 필요한 것을 얻어내는 것은 쉽다. 그러나 친구들에게서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부모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 중요한 것이지요”라고 크래머 박사는 결론지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크래머 박사가 진정으로 하고자 애쓰는 일은 아이들의 관계를 형제자매 관계에서 진정한 우정에 가까운 무언가로 개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이들이 서로 함께 하는 것을 즐거워한다면 싸움은 새로운 희생타(야구에서, 타자 자신은 아웃되지만 자기편의 주자가 진루하거나 득점할 수 있게 치는 타격)가 된다. 싸움에 대한 벌은 단지 타임아웃으로 끝나지 않는다. 가치 있는 적수를 잃게 되는 것이다. (충분히 싸우게 두라는 것, 물리적이거나 심각한 언어 폭력이 없으면 개입하지 말자. 대개 내가 시끄럽고 불편해서 관두라 하는 것이니 자기들끼리 의사 소통을 조율할 것!)

 

 

 

 

 

 

 

 

 

 

 

 

 

 

 

훈육하는 데 현실적 팁이 있음! 블로그에서 봐도 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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