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척 고단한 일정을 마치고 어제는 간만에 단잠을 잤다.

 

<내가 내일 죽는다면>은 오래 전에 감명 깊게 읽은 책인데, 어제야 비로소 실천을 했다.

 

엄마 병원에 계신 동안에 집을 리모델링하기 위해 보관 이사를 신청하면서 무시무시한 잡동사니 더미와 마주했다. 

 

남편의 이동 때문에 이사를 여섯 번이나 다녔지만 어제 이사가 제일 힘들었다.

 

이 나이 먹어서 똥멍청이 짓을 한 탓인데 급하게 업체를 알아보고 사무실 말만 믿고 신청했더니 반포장 이사였다.

 

싸게 견적받았다고 좋아한 바보. 역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무엇이든 가격만큼 하는 것이다. 싸고 편한 것이란 없다. 

 

주방이모님도 오지 않고 아저씨 두 분뿐이어서 내가 거의 이사업체 이모님처럼 일했다. 그 좁은 집에 두 대나 있는 엄마의 냉장고는 엄청났다. 깊이가 엄청난 옛날 냉장고와 작년에 새로 들인 김치냉장고에 있는 엄청난 양의 김치와 종류별로 썩은 과일들, 각종 양념, 여러 가지 담금 액체류를 버리는데 너무나 힘이들었고 음식물 쓰레기 봉투도 엄청 들었다.

 

그러고 나서 씽크대 상하부에 묵은 옛날 그릇을 전부 버렸다. 저장 강박이 있는 엄마는 밀가루도 몇 포대, 엄청난 장류, 다시마, 미역, 말린나물 등 끝도 없이 뭔가를 모아두셨다. 화를 낼 기력도 없이 기계적으로 일했다.

 

그리고 내가 결혼하기 전에 쓰던 작은 방에 있던 책장 하나분의 책들을 거의 전부 버렸다. 알라딘 중고로 팔 것을 분류할 기력도 없어 그냥 다 버렸고, 오래된 테이프(이런 게 아직 있다니!)나 씨디들도 거의 다 버렸다.

 

엄마의 이불과 옷도 엄청났지만 그건 건드리지 않았다.

 

하나 살 때 품질 좋고 비싼 제대로 된 걸 사기보다는 그때그때 싸고 편한 것을 구매하는 엄마가 안타깝지만 불안정한 소득 때문에 생긴 오랜 버릇이라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일이다. 숱하게 싸우고 좋은 걸로 사드리기도 하지만 고쳐지지 않았다.

 

내가 선택해서 그때그때 사들이는 기쁨을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이니.

 

그래도 다이소(진짜 싫은 다있소!)에서 기분대로 산 여러 플라스틱 류에는 진짜 한숨이 나오고 여기서 생활비가 줄줄 샜다는 생각에 화가 났지만 편찮으신 분이니 어떻게 해볼 노릇이 없는 일이다. 병원에 입원한 동안 늘 해온 일이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아저씨들도 나중에는 내 사정을 딱하게 여기며 반포장인데도 쓰레기도 다 내려주시고 많이 도와주시고 가셨다. 내려가서 경비 아저씨한테 엄청 버렸다고 한소리 듣고 대형폐기물 처리하고 동생이 와서 마저 정리했다.

 

다음은 인테리어 업체와 미팅이 있었다. 블로그에서 본 업체는 디자인이 좋았지만 예산을 엄청 초과해서 그냥 집앞 상가에 맡기기로 했다. 오랫동안 소형 평수 전문으로 하셨고 연세가 있어 감각적이진 않지만 소박하고 실용적으로 잘 바꿔주시리라 믿고 계약했다. 이러면 될 것을.

 

블로그 여러 개 보고 찾아가고 고생한 게 아깝다. 특히 집닥이나 숨고 같은 앱에서 견적 받아 엄청난 전화 공세에 시달린 게 바보 짓이었다. 힘든 때에는 뭐든지 편하고 단순하게.

 

이제 병원에서 퇴원하시면 고친 집에 살게 되실지 고친 집을 세를 주고 광주로 내려와 사시게 될지 아니면 다른 기관을 알아봐야 할지 모르는 일이다.

 

이 책들을 다시 읽고 싶어졌다.

 

 

 

 

 

 

 

 

 

 

 

 

 

 

 

 

 

 

<한 여자>

 

어머니가 4월 7일 월요일에 돌아가셨다, 로 시작되는 이야기.

 

어려운 살림을 꾸려가면서도 딸은 남부럽지 않은 교육을 받게 하고 그 딸이 꿈을 펼치도록 살림을 맡아 해주기도 했지만 결국 치매에 걸려 요양원에서 죽음을 맞은 어머니를 회상하는 책이다.

 

나는 내 딸이 행복해지라고 뭐든지 했어.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걔가 더 행복한 것은 아니었지.

102쪽 

 

정말 그랬다.

어딘가 영화 <보이후드>를 떠올리게 하는 구절이다.

 

 

<나의 엄마 시즈코 상>

사노 요코의 어머님도 모진 삶을 살아내셨다. 이 책에도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낸 후의 죄책감, 회한 등이 그려진다.

 

왜 엄마와 딸들은 서로 애써 노력하는데도 종국에는 이런 관계에 놓이게 되는 것일까?

 

혈육이란 몰라도 되는 것까지 알게 하는 집단이다. 서로가 서로를 너무나 샅샅이 알기에 잔인해질 수 있고, 가장 가까운 집단이다 보니 알 게 모르게 실망과 상처를 주게 되는 건지도 모른다.  

228쪽

 

옮긴이의 말에 나오는 구절도 공감이 간다. 진짜 엄마랑 있다보면 내 바닥을 보일 때가 많다.

 

 

*

<나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는 오며 가며 읽으려고 했는데 머릿속이 복잡해 많이 읽지는 못했다. 생각보다 분량이 많이 적어 아쉽다.

 

 

 

 

 

 

 

 

 

 

 

 

 

 

 

 

 

 

집 비우는 동안 애들 보라고 주문했는데 ㅜ.ㅠ

책은 안 보고 안 봐도 그냥 유튜브다.

 

딸은 <수화 배우는 만화>에 나오는 오빠라는 표현의 손동작이 법규랑 비슷하다며 좋아했다.

 

꼭 오빠를 수화로 부르겠다고.

 

*

 

오며 가며 휴게소에 들러도 점포들도 편의점말고는 거의 문을 닫았고, 이용객도 거의 없었다.

이 시국에 이동할 일들이 자꾸 생기니 큰일이다.

 

개학이 언제 될지도 알 수 없고

어서 진정되면 좋으련만.

 

이렇게 자가 격리, 강제 휴식하는 동안 열심히 집에서 비울 것 비우고 나눔하며 보내봐야겠다.

 

 

*

 

미사를 못 드리니 이렇게라도  

 

 

하느님 아버지,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부터

저희를 보호해주시길 청하며 당신께 나아갑니다.

 

이 질병의 성격과 원인을 연구하며

더 이상 전염되지 않도록 분투하고 있는

이들을 위한 당신의 도우심을 청합니다.

 

의료진들이 환자들을 잘 돌볼 수 있도록

능력과 연민을 더해주시고,

정부와 담당자들이 치료 방법과

이 사태에 대한 해결책을 찾도록,

이들의 마음과 손길에 함께해 주십시오.

 

또한 이 질병으로부터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의 쾌유를 위해 기도드리며,

모든 이의 선익을 위해 일하고

특별히 곤경 중에 있는 이들을 도울 수 있는

은총을 저희에게 내려주시길 간구합니다.

 

성부와 성령과 함께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 모든 그리스도인의 도움이신 마리아,

◎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대천사 라파엘,

◎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Oratio Imperata" (2020년 1월 29일, 필리핀 주교회의) PRAYER FOR PROTECTION against the spread of N-CORONAVIRUS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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