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 독서모임 작가가 '더글라스 케네디'여서 열심히 읽고 있다. <빅 픽처>로 유명한 더글라스 케네디인데, 여태 읽지 않았다가 단번에 몰입해 여러 작품을 읽어냈다.
처음 읽은 작품인 <스테이트 오브 더 유니언>이 인상 깊고 공감할 수 있었고 <빅 픽처>는 예상한 만큼이었다.
반전의 반전이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슈퍼에고가 강해서 그런지(ㅋ 리얼리?) 살인으로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게 되나 그 살인이 발목을 잡아 다시 삶의 덫에 걸리고 마는 찜찜한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차라리 진정한 사랑을 찾고 작가로서의 꿈을 마무리한 순간 죽음을 맞았더라면.
<모멘트>에서도 역시 원하지 않는 삶을 꾸역꾸역 살아내는 첫사랑에 실패한 작가의 이야기가 나온다. 작가인 토마스는 젊은 시절에 진정한 사랑을 찾았지만 상대를 끝까지 믿지 못했고 자존심만 강해서 사랑을 놓친다.
<모멘트>에는 영화 <타인의 삶>에서와 같이 악명 높은 동독의 비밀경찰 이야기가 나온다. 냉전 시대의 베를린에 글을 쓰러 온 토마스는 그곳에서 운명과도 같이 동독 출신 망명가인 페트라를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사실 그녀는 동독 스파이였다.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토마스는 그녀가 아들을 동독 비밀경찰에 빼앗겨 어쩔 수 없이 임무를 수행해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지금의 자신을 존재하게 만든 과거의 이야기를 바꿀 수는 없다
복잡한 인생의 순간순간이 수없이 모여 이루어진 이야기
즐거움과 두려움, 의욕과 무기력, 빛과 어둠.
그동안 살면서 겪은 일들이 모여 존재하는 게 인간이다.
그리고 우리 인간은 그 모두를 짊어지고 살아가야 한다.
우리에게 결핍된 것
간절히 바랐지만 결코 손에 넣을 수 없었던 것
전혀 바라지 않았지만 결국 가지게 된 것
찾아내고 잃어버린 것
그 모두를 573쪽
..지금에야 깨달았다
내가 지금 여기에 와 있게 된 건 내가 선택한 길이었음을 574쪽
작가의 현재에서 시작해 엄청난 회상을 거쳐 회한이 이어진다.
살면서 소설 속에서와 같이 운명적인 사랑을 겪고 어릴적 꿈을 모두 이루고 경제적 성취와 명예를 얻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만큼이라도 살아보니 알겠는 건
충실하게 바른? 선택을 했든 후회되는 선택을 했든 시기마다 어떻게든 자신의 삶을 정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생의 모든 이면을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소설에서는 충실하게 기록도 남고 그것을 전달해주는 후손이 있기도 하지만 대개의 인연은 서로 오해 속에서 만나지 않게 되다가 차차 잊는 듯하다.
요즘 다시 멘탈이 불안정하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늘 그런 편이라서 담대하게 마음 먹기로 했다. 굳이 원인을 따져보자면 하는 일이 안 풀리고 수면 패턴과 식습관, 살림 상태 등이 엉망이라 그런듯하다.
그런데 애들 개학해서 카페도 가고 산책도 하고 유튜브도 보다보니 역시나 내가 설정한 기준이 너무 높았다는 생각이 든다.
또 하나! 사회적인 환경으로 인한 스트레스도 있다. 연이은 정치권이나 국제 관계, 사회면의 분노할 만한 기사들 때문이기도 하다. 습관적으로 인터넷 뉴스나 커뮤니티 보는 것을 당분간 중단해야겠다.
법무부 장관 임명 문제로 스트레스 받는 것도 관두기로 하자. 전부터 사회가 이런지 모르는 바도 아니고.
나까지 말을 보탤 것도 없지만, 평범한 시민의 '정치적 선택'이란 냉소를 갖지 않고 가능한 선택지에서 최악을 면하는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작은 도덕적 흠결 하나 없는 정치인은 없을 것이다.
다만, 나도 역시 흙수저 오브 흙수저 중의 한 사람으로 씁쓸하고 허탈하기는 하다. 이전의 국정농단 사태에서는 온갖 불법과 비리로 기득권을 유지하는 과정에 분노를 느꼈다면 이번에는 세월이 흐르고 흘러 정교하게 기득권을 유지하는 법과 장치들이 이제 돌이킬 수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안타까움이 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법과 제도를 어떻게 보완하고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과 같은 일이 없으려면 교육과 일자리, 사회보장이 어느 수준에 이르러야 하는지 앞으로 계속 참여하며 바꿔나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유명 대학(명문대) 학생들의 불의에는 눈감지만 불이익에 바로 반응하는 최근의 촛불을 보며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 건지 갑갑하기만 하다.
벌써부터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면 돈이 많이 들지 라고 순진하게 묻는 아이들을 보며 마음 한켠이 답답하다. 동네 엄마들이 이제 겨우 초등에 간 아이들을 돈과 시간을 들여 스카이 대학 캠퍼스 투어를 하는 것도 안타깝고.
이런 잡념들은 접어두고 가을에는 근처 좋은 성지들을 찾아다닐 계획이다. 유명한 전동성당과 목포성지는 가보았고 충청권의 빼어난 곳들을 많이 못 다녀서 아쉽다. 멀리가기보다 일단 전주 쪽 천호성지와 영광성당도 가보아야지.
방학에 삼례예술촌에 가다가 마주친 삼례 성당도 좋았다. 쨍한 여름날 성당 마당에서 물놀이 하던 아이들이 즐거워보여 더 기억에 남는다.
<나의 아름다운 성당 기행>에 나오는 약현을 어릴 때 다녔던 것이 인생 초반의 행운이다. 그런데어릴 때 성당 친구들을 보면 복사까지 했던 열혈 모태신앙 집안 아이들 그 누구도 성당에 나가지 않고 중간에 기독교 사회운동에 잠깐 빠졌던 나만 매주 미사 보는 게 진짜 신기하다.
매주 가기는 하지만 역시나 신앙은 나에게 '부조리한 평화'라고나 할까
힘들 때는 찾게 되는데 온전한 의탁이 되지 않는다.
애들한테 유튜브 본다고 타박하면서
요새 애들 개학하고 엄청 유튜브 애용하고 있다. 조성진 연주, 인디음악 그리고 제3세계 음악도 가끔 듣고 있다.
얼마 전에 아시아문화전당에서 월드뮤직페스티벌이라는 행사를 해서 밤에 가서 들었는데 세상에나 좋으면서도? 힘들고 이건 아니야, 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육체적 힘듦이 좋음을 넘어서니 좋지가 않더라는. (뭔 소리임 ㅜ.ㅠ)
와 진짜 충격충격
조명이 너무나 밝아 눈이 너무 부시고 사운드도 너무나 엄청나고 일단 밤에 나와 있는 게 20-30대 초와 다르게 너무나 싫고 이상했다. 더불어 사람 많은 거 공연 현장이 그렇듯 특이한 사람 많은 거 다 견디기 힘들었다.
역시 이제는 집에서 듣고 보는 게 낫겠구나, 자극이 감당이 안 되는구나.
누가 들으면 40대에 웬 엄살이냐고 하겠지만 노화를 느끼는 데에 개인차가 있으므로.
그리고 또 하나.
진짜 전화나 카톡이 부담스러워진다. 60대가 되면 또 달라진다고 하니 기다려봐야지.
또 누가 알겠는가.
누진다초점렌즈를 끼고 애들한테 장문의 메시지를 날리고 있을지.
아무튼 유튜브에서 빠져나와 <순교자> 얼른 읽어야 한다.
이 가을,
나의 순간을 좀더 나에게 맞는 것들로 채워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