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런 계절이면 전에는 그 유명한 <러브레터>를 보곤 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남극의 셰프>를 보게 될 것 같다.

 

첫 장면부터 심상치 않다.

 

가도가도 끝없는 눈밭.

무슨 일이 있는지 몰라도 한 대원이 이탈하려고 한다. 그러자 모두가 포기하지 말라며 기운을 북돋우며 끌고 와서는 고작 마작을 재개한다. '마작' 팀 정식 명칭은 '중국문화연구회'

 

*

남극 대륙 한참 깊은 곳에 ‘돔 후지 관측 거점’, 통칭 ‘돔 기지’가 있다. 이 돔 후지 관측 거점은

해발고도 3,800m, 평균 기온 영하 57도, 최저 기록 영하 79.7도로 세계에서 가장 혹독한 관측

지대이다. 오죽하면 펭귄, 바다표범은 물론 바이러스조차 생존할 수 없다.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만 좋다.

 

이곳에 통신 담당, 차량 담당, 설빙기상학자, 연구원, 전담 의사, 요리사 등 총 8명이 파견되어 함께 일하고 쉬고 먹는 소소한 일상이 펼쳐진다.

 

극지방이니 만큼 엄청난 스펙을 자랑하는 인재들이 모여 있지만, 현실은 기다리고 기다리는 지루한 날들이 이어질 뿐이다. 가족과 떨어져서 단신 부임하는 데서 오는 외로움과 애인과 헤어지는 실연의 고통도 나오지만 그래도 잔잔하고 가끔 피식 하게 되는 그런 분위기이다. 

 

영화 후반부에 돔 기지와 통신 연결된 아이가 기대에 차서 남극이니 펭귄은 있나요? 바다표범은 있나요? 하고 물으니 꾀죄죄한 아저씨들이 "우리들이 있지요" 라고 답해서 제일 크게 웃었다.

대장이 몰래 라면을 훔쳐먹다 바닥이 나서 니시무라 준이 수제 라면을 개발했을 때 모두가 감동하며 먹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진짜 행복해 보였다. 대장은 늘 나의 몸은 라면으로 이루어져있다고! 하고 외치던 사람이니.

모두가 일생에 한번쯤은 꼭 보고 싶어하는 오로라이지만 극지방에선 오로라보다 오직 라멘. 이런 오로라는 관측하기 힘들다고 하면서도 결국 라멘이 불을 것이 걱정되어 식탁으로 발길을 돌린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모두가 외쳤던 에비후라이. 일본에서와 같은 새우튀김을 생각하며 사람들은 셰프에게 에비후라이를 외쳐대는데 만화에나 나올 법한 왕새우라서 모두가 황당해한다.

 

극지방에서의 관측과 연구보다 니시무라 준이 요리하는 과정이 더 세세하게 나온다. 힘겨운 상황에서 오직 셰프의 요리와 소소한 장난들이 그들을 지탱하게 해준다.

영화 말미에 대원들이 일본으로 돌아가서 하고 싶었던 일들을 챙겨 꼭 하는 것을 보고 흐뭇해진다.

니시무라 준은 가족들과 소소한 일상을 즐기며 정말 그곳에 갔다오기는 한 걸까, 하고 중얼거린다. 거짓말처럼 이전과 비슷한 일상이 펼쳐진다. 놀이동산에서 패스트푸드를 맛보며 '맛있엉' 하고 감격. 역시 뭐니뭐니 해도 남이 해준 건 다 맛있음.  

찾아보니 원작 에세이도 있어서 책으로도 보고 싶다.

 

*

<체공녀 강주룡>은 금요일에 빌려서 읽기 시작했다. 역시나 명성대로였다. 이미 십대 때부터 화려한 수상 경력을 가진 작가는 돈이 되는 다른 여러 일을 하면서 우직하게 이 작품을 완성했다.

지식채널 e에서 보았던 '지붕 위 여자'를 박서련 작가는 생생하게 눈앞에 그려냈다. 전반부에 남편 전빈과 주룡의 미묘한 감정선까지 제대로 짚은듯해서 정말 신기했다. 그 시대 어르신들만 아는 그런 애틋한 부부의 정?을 잘 표현했다. 서로 잘 모르고 집안이 정한 혼사이지만 차차 정을 붙여가는 모습. 이때 주룡이 더 주도적이고 더 큰 사랑을 품고 있어 좋았다. 모든 것을 거는 절대적인 신뢰와 애정.   

주룡은 어린 남편 전빈을 따라 독립군이 되었지만 솥에 강냉이를 끓여내거나 임산부로 위장해 무기를 나르는 한정된 일만 할 수 있었다. 사소한 갈등 끝에 주룡은 독립군을 나와 친정으로 갔지만 친정 잡다한 일에 치여 산다. 이후 반 년만에 남편이 죽어간다는 소식을 듣고 남편의 최후를 지켜보게 된다.

슬픔에 빠진 주룡은 어이없게도 남편 잡아먹은 어쩌고 하는 흉한 소문과 함께 감옥에 갇힌다. 풀려나서 친정에서 지내다가 다른 동네로 이주해서 친아버지가 자신을 중늙은이에게 팔아넘기려 하는 것을 알게 되어 다시 홀로 떠난다. 그리고 평양에서 고무공이 되었고 투쟁의 선두에 서기까지의 장면을 지금 읽고 있다. 사료가 풍부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작가의 생생한 묘사로 마치 전기를 읽는듯하다.

 

*

살다보면 더 이상은 못하겠다,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이렇게 텍스트로, 화면으로 도피하곤 했다.

본가의 상황이나 단신부임(일본 소설 영화에서 나오는 표현, 어쩐지 주말부부보다 더 명확한 표현 같다)해 있는 남편이나 다 힘들어 보여 굳이 나까지 보태려 하지는 않는다.

그냥 니시무라 준처럼, 주룡처럼

매일 해야 할 일을 꾸준히 하는 것말고는

마땅한 수가 없다.

 


천변에 나가 빨래를 해 와서 널고, 보리방아를 찧고, 무채를 썰어 꿰어 말리고, 시간이 남아 정주간 황토 칠을 싹 새로 하고, 식구들 밥상을 올리고, 야학에 나가려는 전빈을 배웅하고, 밤불을 홧홧하게 때고, 큰할머니부터 형님네까지 문안을 돌고, 방에 들어앉아 관솔불을 밝히고 식구들 옷깃을 뜯어고친다.
이만하면 오늘도 떳떳하다.

<체공녀 강주룡> 34쪽

*

버티다 보면

겨울도 지나고

햇볕 따스한 어느 공터에서 지난 겨울에 그런 일도 있었나?

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니시무라 준같이

한 끼 한 끼 성의를 다해서 차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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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오은

 

1월엔 뭐든지 잘될 것만 같습니다
총체적 난국은 어제까지였습니다
지난달의 주정은 모두 기화 되었습니다

2월엔 여태 출발하지 못한 이유를
추위 탓으로 돌립니다
어느 날 문득 초콜릿이 먹고 싶었습니다

3월엔 괜히 가방을 사고 싶습니다
내 이름이 적힌 물건을 늘리고 싶습니다
벚꽃이 되어 내 이름을 날리고 싶습니다
어느 날엔 문득 사랑을 사고 싶었습니다

4월은 생각보다 잔인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한참 전에 이미 죽었기 때문입니다

5월엔 정체성의 혼란이 찾아옵니다
근로자도 아니고 어린이도 아니고
어버이도 아니고 스승도 아닌데다
성년을 맞이하지도 않은 나는
과연 누구입니까
나는 나의 어떤 면을 축하해줄 수 있습니까

6월은 원래부터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꿈꾸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7월엔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가봅니다
그간 못 쓴 사족이
찬물에 융해되었습니다
놀랍게도, 때는 빠지지 않았습니다

8월은 무던히도 무덥습니다
온갖 몹쓸 감정들이 땀으로 액화되었습니다
놀랍게도, 살은 빠지지 않았습니다

9월엔 마음을 다잡아보려 하지만
다 잡아도 마음만은 못 잡겠더군요

10월이 되었습니다
여전히, 책은 읽지 않고 있습니다

11월이 되었습니다
여전히, 사랑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밤만 되면 꾸역꾸역 치밀어 오릅니다
어제의 밤이, 그제의 욕심이
그즈께의 생각이라는 것이

12월엔 한숨만 푹푹 내쉽니다
올해도 작년처럼 추위가 매섭습니다
체력이 떨어졌습니다 몰라보게
주량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잔고가 바닥났습니다

지난 1월의 결심이 까마득 합니다
다가올 새 1월은 아마 더 까말 겁니다

다시 1월,
올해는 뭐든지 잘될 것만 같습니다
1년만큼 더 늙은 내가
또 한 번 거창한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2월에 있을 다섯 번의 일요일을 생각하면
각하(脚下)는 행복합니다

나는 감히 작년을 승화시켰습니다

오은,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2013, 문학동네

 

 

----------------

 

 

어제는 생각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크리스마스였다.

블루 크리스마스.

 

그래도 이 아침에 다시

시작하는 기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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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8-12-27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리스마스 라는 날에 별로 의미를 두지 않지만)
저 역시 생각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었던 그런 휴일이었어요.

저 시의 주인공이 마치 저 인것처럼 느껴져요.

뚜유 2018-12-28 06:07   좋아요 0 | URL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니까요.

한 해가 갈 때 사람들 마음은 다 같아지나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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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초등 고학년인 아이들은 산타를 믿지 않는다.

 

아이들이 미취학일 때는 대목을 맞아 한껏 부풀린 가격으로 뒷목을 잡게 하는 여러 장난감을 찾아 헤매며 보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홀가분하기도 하고 어쩐지 그때가 그립기도 하다.

 

아들은 엄마가 자신이 원하는 로봇 시리즈를 구해오지 못하고 흔한 걸 사왔을 때 산타가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고 한다. 그리고 동생에게도 말해주어 동심 파괴.

 

산타가 있고 나는 착하고 선물을 받을 수 있고

내게 주어지는 모든 것이 당연하다고 믿는 동심.

 

아직도 이 세상에는 선물을 받을 수 없는 아이들도 많다는 것을 헤아릴 수 없는 그런 동심, 은 언젠가는 파괴되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건 너무 삐딱한가?

 

기사를 보니 열 살 전후로 믿는 것은 좋다고 한다.

그런데 이미 그 이전에 세상을 빨리 알아버린 아이들도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브여서 조촐하게 집 근처에서 밥을 먹고 케이크에 잠시 불도 붙이고 아이들이 성탄 즈음이면 자주 보는 나홀로집에를 보았다. 

 

영화 보고 나서 찾아보니 케빈 역을 맡은 맥컬리 컬킨도 아재가 다 되었네.

무심한 세월 ㅜ.ㅠ

 

*

지난 주말에 그 유명한 <아몬드>를 읽었다.

 

-태어나 줘서 고마워.

엄마가 내 손을 조물거리며 덧붙였다. 생일 축하해. 태어나줘서 고마워. 어딘지 식상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해야 하는 날들이 있는 거다.   59쪽

 

크리스마스 이브에 모처럼 나온 가족 외식에서 '윤재'는 가족을 잃는다. 눈앞에서 할머니를 잃고 엄마는 의식을 잃었는데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윤재는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알렉시티미아'를 앓고 있어 사건을 수수방관한 사람들이 왜 그랬는지 의문을 품을 뿐 제대로 애도할 수조차 없다.

   

누구나 머릿속에 아몬드를 두 개 가지고 있다. 그것은 귀 뒤쪽에서 머리로 올라가는 깊숙한 어디께, 단단하게 박혀 있다. 크기도, 생긴 것도 딱 아몬드 같다. 복숭아씨를 닮았다고 해서 '아미그달라'라든지 '편도체'라고 부르기도 한다.

외부에서 자극이 오면 아몬드에 빨간 불이 들어온다. 자극의 성질에 따라 당신은 공포를 자각하거나 기분 나쁨을 느끼고, 좋고 싫은 감정을 느끼는 거다.

그런데 내 머릿속의 아몬드는 어딘가가 고장 난 모양이다. 자극이 주어져도 빨간 불이 잘 안 들어온다. 그래서 나는 남들이 왜 웃는지 우는지 잘 모른다. 내겐 기쁨도 슬픔도 사랑도 두려움도 희미하다. 감정이라는 단어도, 공감이라는 말도 내게는 그저 막연한 활자에 불과하다.  29쪽

 

드라마에서 봤든가 돌처럼 단단해지면 좋겠어, 라고 우는 주인공을 본 적이 있다.

윤재가 이런 상황에서 감정을 느낄 수 없어 덜 괴롭다면 다행일까.

 

가까운 이들을 잃고도 무심히 살아가는 윤재는 담담하게 자신의 일상을 잘 꾸려가는듯이 보인다.

 

폰과 대화하기 앱으로 무료한 시간을 달랜다.

 

잘 지내?, 라고 썼다.

응. 넌?

나도.

굿.

정상적인 게 어떤 거니?

남들과 비슷한 것.

 

한동안 정적. 이번엔 좀 길게 써  봤다.

 

남들과 비슷하다는 건 뭘까?

사람은 다 다른데 누굴 기준으로 잡지?

엄마라면 내게 무슨 말을 했을까.

 

밥 다 됐다. 나와라.               71쪽  

 

감정을 느낄 수 없다는 설정이기 때문에 윤재의 감정보다 이후의 생활과 주변의 반응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가져본 적이 없는 것을 잃을 수는 없으니 윤재가 어떤 마음일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래도 혼자 살아가는 윤재가 어쩐지 한없이 가엾게 여겨진다. 보육원을 나와 독립한 청년들 다큐를 보았을 때처럼.

 

2부에서 '곤이'라는 상처받은 인물이 윤재의 세계로 들어오면서 이야기는 다른 국면을 맞는다. '곤이'를 보면 김영하의 단편 <아이를 찾습니다>가 저절로 떠오른다.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잘 자라다 유괴되어 여러 곳을 전전한 끝에 원 가정에 힘들게 돌아왔지만 모든 게 이미 돌이킬 수없이 어긋나 있다.

 

이렇게 많이 상한 '곤이'가 감정 불능의 '윤재'를 만나고 서로 치유하기까지의 과정이 3부에 담겨 있다.

 

그리고 기적.

 

기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결말.

 

뭔가 크리스마스에 어울리는 이야기이다.

 

억지스럽더라도 해피엔딩, 을 소망하게 되는 시기다.

 

*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은 전에 기말 끝나고 이 시기에 아이들에게 보여준 영화이다.

 

사연 많은 노숙인 긴 상과 트렌스젠더 하나짱 그리고 10대 가출소녀 미유키 세 사람이 크리스마스 이브에 쓰레기더미에서 버려진 아기의 부모를 찾아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블랙유머가 난무하고 어이 없는 설정이 이어지지만 그래도 모두에게 해피엔딩!

 

의외로 하나짱에게 거부감을 갖는 애들도 있으나 재미있게 잘 보았던 영화이다.

 

성탄 미사를 오전에 드리고 아이들과 함께 이 영화도 다시 보고 싶다.

 

 

*

여기부터 철저히 일기

 

또 하나의 기적!

 

아들은 여름 첫영성체 이후 내내 냉담이고 판공성사도 안 봐서 기대도 안 하고 있었는데

성탄 미사를 같이 봐준다고 한다. (핸드폰 시간 늘려달라는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그래, 부활절이랑 성탄절에만 나와도 어디니.

 

작고도 큰 기적들이

지금

이 자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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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해결될 수 없지만 무척이나 마음 쓰이는 일들이 주변에 일어나고 있다.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다면 덩달아 일상의 활기를 잃고 만다. 집도 어수선해서 세탁소 옷걸이가 아무데나 널려 있어 그걸 밟고 넘어져 다치기도 했다.

 

그리고 책으로 도피, 이야기로 도피.

 

분명히 나보다 불행한 사람들이 널리고 널려 있다고 해서 

엄살은 이제 그만일까?

 

남의 불행을 보며 위안 삼는 걸 그만두어야 하지만,

현실 속 인물이 아니라면 그래도 이해받을 만한 사안일 것일까?

 

그냥 복잡한 생각을 잠시 멈추고 싶었다.

그럴 때는 장르물이 제격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작년 즈음부터 많이 읽었다. 새로 나오면 어떤 건 읽어보고 싶지만 소장은 잘 하게 되지 않는다. 두번 읽게 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어제도 어김없이 새벽에 깨서 거의 단숨에 <살인의  문>을 다 읽었다. 찍어내듯이 다작하는 히가시노 게이고도 역시 하루키같이 체력이 좋은 분이다. <살인의 문>은 2003년 작품인데 이제야 소개되나보다.

 

사회파추리소설답게 <살인의 문>은 흥미로운 인간의 심리를 그려낸다. 아주 평범한 사람들도  이건희같은 사람들이 부자인 건 용납하면서 동네 부자는 참아주지 못하는 그런 일그러진 마음을 가지고 있다.

 

죽음을 맨 처음 의식한 건 초등학교 5학년 때이다, 라는 문장으로 소설이 시작된다.

 

동네 유지이자 치과 의사의 아들로 태어난 다지마 가즈유키는 경제적으로는 풍요롭지만, 가정 안에 마음 둘 곳이 없다. 노쇠한 할머니는 집안의 우환이고 간병 문제로  부모는 자주 다툰다.

 

학교에서 조용히 지내던 가즈유키는 가난한 두부 가게 아들 구라모치 오사무를 만나 어울리게 되면서 이상한 기운을 느낀다. 행운의 편지와 비슷한 부류의 '살(殺)'이 새겨진 엽서를 23통이나 받기도 하고 이후 할머니의 죽음, 부모의 이혼, 치과의사였던 아버지의 몰락으로 가즈유키는 자신이 저주에 빠졌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후 가난한 동네로 옮겨가 수영장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다시 오사무와 조우하면서 가즈유키는 원하는 것이 있을 때(주로 여성)마다 오사무에게 빼앗긴다. 초등학교 때의 저주 엽서도 오사무의 소행으로 밝혀지고 오사무는 수상한 일들(주로 사기)을 벌일 때마다 가즈유키를 끌어들여 계속 그의 앞길을 방해한다.  번번이 구라모치 오사무에게 당하면서 가즈유키는 속으로 구라모치에 대한 살의를 키워가지만, 실행에 이르지 못하고 악연을 이어간다.

1권 중반부터 과연 내 인생에도 저런 악연이 있을지 돌아보았다. 희미하게 떠오르는 기억이 있기도 하지만 이제 와서 다 부질없다. 언제부터인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미운 사람들은 이미 죽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미운 사람들이 정말 싫어지는 그 요소들이 다 내 안에 이미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책을 다 덮고 나름 반전을 접하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든다.

 

오사무는 물론 희대의 비열한 사기꾼이고 거대 악이지만 가즈유키 역시 5학년 때부터 스스로 바르지 않은 방향으로 인생의 선택을 지속해왔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을 보고도 할머니 지갑에서 몰래 돈을 빼오고 오사무와 어울렸던 때부터 하나하나 어긋나기 시작했다. 한나 아렌트의 말처럼 악이란 대단히 그럴듯한 어떤 것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데서 나온다. 성찰하지 않고 행동하면서 가즈유키의 삶은 점차로 무너져갔다.

 

그래도 가즈유키만 몰아세우기에는 오사무의 악행이 너무나 지독해서 엄연히 같이 악을 저지른 적도 있는 가즈유키를 변호하게 된다는 게 요상하다.

 

구라모치 오사무가 어딘가 있을 법한 인간이라서 더 그럴까. 주변 모든 인맥을 철저히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동원하는 그런 부류들이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저런 악연을 세상 살며 안 마주치길 바랄 뿐.

 

가즈유키는 늘 당하고 나서 삶의 방향을 다시 잡고 하는데 그때마다 오사무가 나타나 훼방놓는 순간 독자에게도 살인의 문이 열린다고나 할까.

 

사회파추리소설이라 일본사회의 문제, 다단계나 노인 대상 사기 과정 등도 잘 드러난다. 일본이 겪었던 사회 문제를 우리가 그대로 답습하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요즘 우리 지역에서는 사이비 종교가 극성이다. 시내에서 젊은아이들이 잘 차려입고 포교에 열중하는 것을 보면 슬프다.

 

 

*

화요일에 동네 북카페에서 <개인주의자 선언> 속의 아픈 사연들도 드문드문 읽었다. 

 

그리고 드디어 읽게 된 <아무튼, 스웨터>

 

이 시리즈를 좋아하는데 그냥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대충 서서 보게 된다. <아무튼, 스웨터>만 정독했다. 어릴 때 외할머니가 떠주신 스웨터의 색감이 기억났다.

 

터키블루 스웨터 

나란히 네 벌.

 

당시 큰아들과 큰딸이 동시에 힘든 일을 당해 친손주, 외손두 도합 네 명, 미취학과 국민학교 아이들을 돌보며 가게일도 하시면서 스웨터를 네 벌이나 떴던 외할머니께 경의를 표한다. 그중 내가 제일 커서 나만 금색사가 섞인 오렌지빛 카디건도 받았었지. 어린 마음에 할머니는 아들이자 친손주만 예뻐한다고 여긴 적이 있었는데 내가 아이들을 키우고 보니 새삼 그 시절의 할머니가 대단해 보인다.

 

그리고 대학 다닐 때 겨울마다 입었던 여러 스웨터들도 떠올랐다.

 

호감 가는 분이 있어 엄청 신경 써서 스웨터랑 그 안에 받혀입을 조화로운 셔츠도 골라 입고 나갔건만 집에 가다보니 스웨터 아래로 내복이 비어져 나와 있어 지하철 유리문에 머리를 박았던 흑역사도 떠오른다.

 

아이를 낳고 기르며 스웨터의 까슬한 감촉 때문에 잘 입지 않게 되었고 최근에 점차 살이 오르며 니트류는 포기하게 되었다.

 

스웨터가 잘 어울리는 여리여리 체형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이제 힘들듯하고

겨울상품 세일 시기에 현재 내몸에 어울리는 풍덩한 멋스러운 베스트나 한번 잘 골라보아야겠다.

 

*

아무튼, 도피.

 

행복은

어떤 만족은 강도보다는 빈도에서 오는 것.

 

잡다한 책을 읽고 마음 속 깊은 근심보다 가벼운 고민을 말할 수 있는 이들과 차를 마셨다.

판공성사에서도 말을 줄이고 줄여 간단히 고하고 오래 기도하고 침잠하기로 마음먹었다.

 

 

  

 

 

 

 

 

 

 

 

 

 

 

 

 

 

 

행복이란, 온천물에 들어간 후 10초 같은 것. 그러한 느낌은 오래 지속될 수 없기에, 새해의 계획으로는 적절치 않다. 오래 지속될 수 없는 것을 바라다보면, 그 덧없음으로 말미암아 사람은 쉽게 불행해진다. 따라서 나는 차라리 소소한 근심을 누리며 살기를 원한다. 이를테면 ‘왜 만화 연재가 늦어지는 거지’, ‘왜 디저트가 맛이 없는 거지’라고 근심하기를 바란다. 내가 이런 근심을 누린다는 것은, 이 근심을 압도할 큰 근심이 없다는 것이며, 따라서 나는 이 작은 근심들을 통해서 내가 불행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새해에 행복해지겠다는 계획은 없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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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고 나서는 주말이 제일 부담스럽다. 아이들도, 나도 쉰다고 여기려고 해도 온전히 쉬게 되지 않는다.

 

시간을 보내려고 유명한 <고령화가족>을 이제야 읽었다. 재미있다고 추천한 분들 말대로 술술 읽혔지만 뒷맛이 개운하지는 않다. 뭔가 급조한 해피엔딩 같다. 그래도 가족이라면 마땅히 행복해야 한다는 당위를 두고 결말을 지은듯하다.

 

결론은 힘들게 하는 가족이 있다면 담백하게 살기는 힘들다는 것.

 

아마도 현실 속에서는 형 '오함마'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을 것이고 조카 민경이도 섬에 팔려가고 엄마가 과거에 사랑했던 상대를 다시 만나는 일도 없었을 테지만, 이렇게 안 풀리는 사람들도 그래도 종국에는 행복했으면 하는 그런 바람에서 나온 이야기는 아닐지.

 

그냥 <고래>의 환상성과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에 더 매혹되었다고 해두자.

 

영화도 아직 못 보았지만 당분간은 볼 생각이 없다.

 

*  

 

태어날 때 주어진 가족을 벗어나 스스로 가족을 선택하고 지금 이 자리에 있다. 한 사람을 선택하는 순간 원치 않게 맺어지는 인연도 있다. 내 개인적 인연이라면 할말도 편하게 하겠지만, 여러 층위로 얽힌 관계에서는 쉽지 않다.

 

아들이 치열이 고르지 않은 편인데 자라나는 아이라 별 생각 없이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주말에  '헬륨'님(내가 받은 첫 인상으로 가벼워서)이 교정을 해야겠다며 자신이 아는 동생을 소개한다고 한다. 이분은 대체로 아는 형, 아는 동생이 많고 그들을 통해 만사를 해결하려고 한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대부분 그걸 잘하는 사람을 찾기 마련인데 이분은 신기하게 아는 사람 중에 그 일을 할 만한 사람이 있는지 보는 식이다.

 

아무튼 이분 말씀에 따르면 그 아는 동생이 치과에 교정기를 납품하는 일을 하는데 치과 의사들이 수술을 제대로 못하고 영업사원에게 시키는 것도 많고(대체 무슨 근거로 ㅜ.ㅠ) 그래서 심지어 영업사원이 동물에게 연습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누가 봐도 얼토당토 않은 주장인데 옆에서 애들 아빠는

그래서 그 동생이 어디 사는데 하고 묻는다.

 

아, 이래서 원 가족이구나.  

비합리적인 사고라 해도 아예 무시하지는 않는다.

 

나도 왜 헬륨님이 이런 주장을 하는지 생애를 알기 때문에 이해는 한다. 가난한 집안의 장남인데 뜻대로 되는 일이 없어 사회 기득권층에 막연한 반감을 품고 있다. 생각을 교정해주기 어렵고, 그 마음에, 막연한 울분에 공감해주어야 하겠지만 그마저도 나는 원 가족이 아니라 매번 힘들다.

 

그냥 다 듣고 있다가 나중에 기어이 한마디 하는 나.

 

아이 다니는 치과 병원 원장님이 교정 전문으로 대학에 강의를 나가고 있어요.

헬륨님 모교 치과대학 교수고 좀 지켜보자고 했어요.

 

나는 그저 아이 문제에 개입하는 것이 싫을 뿐이다. 

 

이 아이는 어떤 집안의 장손이 아닌 그냥 우리집 아이 아니 더 나아가서는 그냥 누구로만 살면 좋겠다.

 

이어지는 집안 먼 친척 누구누구가 잘되고 어찌 되고 하는 이야기들이 편하게 들리지만은 않는다.

 

그냥 내가 많이 불편하구나, 예능이나 열심히 보자 하고 아이들과 예능을 엄청 보다가 딸아이가 집에 가자고 적당한 때에 신호를 주어 집에 왔다.

 

집에 오고 나서는 본가 식구들이 요새 아프기 때문에 줄줄이 안부 통화를 하다가 또 지치는 부분이 있었다.

 

경계를 설정하고 선을 넘지 않는 선에서?

담백하게 만나기 힘든 관계들이 있다.

 

이번 판공성사는 엄청 길어질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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