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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는 독감에 걸려 오늘 아니지 어제 학교에 가지 않았다. 22일에 포켓몬 신작 대개봉이라고 해서 카드 받아야 한다 해서 비오는데 무리해서 먼 영화관을 다녀온 탓인가 아니면 시험 전날 딱 하루 11시까지 공부한 탓일까 자책하다 1호네 반아이들이 이미 a형 독감으로 3명이나 결석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밤새 1호는 뒤척이며 괴로워하며 나 이러다 죽을 거 같다고 하며 날을 샜다, 나도 안타깝지만 딱히 할일이 없어 이런저런 책을 보며 주물러 달라고 하면 주물러 주고 물 먹여주고 그랬다. 이젠 어디 아픈지 말할 수도 있고 열도 38-39도 사이라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그냥 미친듯이 독감 종류 검색하고 타미플루 부작용을 검색했을 뿐이다.

 

다음날 아침 병원에서 결국 독감 판정 받고 학교 쉬고 해열제만 먹이며 쉬었다. 죽 조금 먹고 자고 공기계로 포켓몬 검색해서 누워서 보다 보노보노 보다 동생 기다리다 동생 와서 놀다 지금은 잔다.

 

*

 

2호 재우다 같이 9시에 잠들어 나와보니 <도깨비>가 재방송되고 있었다. 평일에나 볼까 했더니만 이런 행운이!

 

드문드문 봐서 어느 회인지 모르겠으나 <도깨비신부와 보물상자>도 <도깨비>에 나온다. 올해 2호 잘 때 많이 읽어준 책이다. 요즘은 2호가 눈이 많이 나빠져서 잘 자리에 책은 읽지 않고 그냥 누워 두런두런 얘기하다 잔다. 진작 이럴걸. 책을 안 읽는 애들도 아닌데 뭘 잘밤까지 그렇게 책을 읽어주었나 싶다.

 

드라마는 진짜 안 보려다 마늘 찧고 콩나물 다듬다가 <도깨비>를 보았다. 앞의 책에 이끌려 드라마를 보다보니 이건 뭐 공유니므 말이 안 되잖아.

 

계절은 딱 겨울이라 폴라티 자주 입지 긴 코트자락에 얼굴은 신비한 오각형에다 쌍커풀은 없고 눈빛은 깊은데 김고은이랑 티격태격할 때 눈빛 손짓 고개짓에 잔망잔망.

 

3월 초에 2호 책상 사러 가서 가구점에 붙은 화보 보며 이래서 팔리겠어 했던 과거의 나님아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니? 커피프린스 보며 느끼하다 했던 몇십 년 전의 나님아 진짜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지?

 

게다가 애들 학교 보내고 만나는 류배우님(응팔 재방송한다. 맘아파 복습도 못하다 이제 다시 보기 시작. 열심히 일하다 류배우 장면 나오면 달려와 보기 꿀쨈)은 어쩌고.

 

온 나라가 샤머니즘에 사로잡힌 이들의 국정농단으로 초토화된 후 민간신앙?으로 위로받고 있다.

 

사고무친 천애의 고아인 지은탁이 도깨비신부이고 도깨비, 저승사자, 삼신할매 등 온갖 초월적인 존재로부터 보살핌을 받는다.

 

지은탁과 김신이 메밀꽃을 들고 있던 바다를 보고 애들 어릴 때 자주 갔던 강릉이 가고 싶어졌다. 지은탁과 김신이 서 있던 메밀밭을 보니 봉평에 가고 싶어졌는데 실은 촬영지가 고창이란다. 언제 가봐야지.

 

광대 승천해서 보다가 딱 한 번 눈물을 찔끔한 장면은 시각장애인이 세상을 떠나 천국으로 가려고 문을 연 순간 반려견이 기다리고 있는 장면이었다. 난 반려견을 키운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그냥 막 뭉클했다. 내가 문을 연 순간 기다리고 있을 그 누군가가 떠올려졌다. 막 서럽고 벅차서 요나탄을 만났을 때 스코르빤이 그랬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그런 낭기열라에 들면 만나고 싶었던 소중한 사람들 다 만나고 더없이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지고 한없이 부족한 나라는 존재는 온전해지는 걸까?

 

 

도깨비 끝나고 이어서 펼쳐든 <아무도 아닌>

 

그녀는 생각했다.

사람이 죽은 뒤에도 끝나지 않는 뭔가가 있다는 것, 너와 내가 죽은 뒤에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얼마나 위안이 되나.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죽어서. 실리를 만날 것이다. 실리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실리는 죽었지만 살아 있는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고 알 수 도 없는 어떤 것, 어떤 상태로든 남아 있을 테고 내가 죽은 뒤, 실리와 나는 서로 그런 상태로, 그런 상태로라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런 세계가 있을 것이고 그런 세계에 실리가 있을 것이다. 이런 상상은 얼마나 위안이 되는가.

그러나 없다.

없다.

점차로 없고 점차로 사라져가는 것이 있다. 그뿐이다.  

 

황정은, <명실>, p.105   

 

다 굳은 만년필촉을 미지근한 물에 녹이는 명실이 할머니였다니. 노트나 만년필이 필요하고 젤리를 씹는 사람이 할머니?

 

우리 할머니 오랜만에 나오셨네.

 

전에도 당혹스러웠고 다시 읽는 지금도 역시 그랬다. 잔등긁개나 접는 부채, 중절모, 양갱 등의 소품으로 우리는 노인을 한정한다.

 

애들 아빠 외할머니는 구순을 넘기셨다. 명절마다 방문하면 그래, 너희들이 누구?라고 하신다. 이제 할머니와 혈연관계로 연결되는 분들 말고는 다 돌아가셨다고 한다. 혈연관계라도 아주 가까운 이들은 없다. 그 자손들 뿐. 그런데도 그 이름으로 자주 누군가를 부른다고 하신다.

 

나는 남았다. 얼마나 됐나. 얼마나 오래 남아 있었나.

 

얼마나 무섭고 외롭고 그러실까.

우리가 방문할 때마다 잘 있지? 잘 있지?만 반복하신다. 거기 그렇게 사라지지 말고 있어 달라는 뜻으로 들려, 슬프다.

 

애들은 그때마다 집에 가고 싶어한다. 겨우 일 년에 한번 될까 말까 한 방문인데.

 

나도 그랬다. 우리 증조할머니도 구순을 넘기셨다. 난 시골집에 갈 때마다 마귀할멈이 내 손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며 울었다. 도시에서 살다 방문한 어린시절의 난 꽁꽁 얼은 자리끼와 거친 손등, 검버섯 등이 정말 낯설고 무서웠다. 고려청자빛 요강이 방구석에 놓여 있고 쥐오줌 자리로 얼룩진 천장이라는 배경도 내 두려움을 증폭시켰다.

 

그런 증조할머니도, 아빠도, 세종대왕도, 이순신(뜬금없지만 1, 2호가 천국이 있다면 만나고 싶단다)도 내 몸에서 넋이 분리되는 그 순간 만나게 되는 걸까? 그 넋은 어느 아름다운 곳으로 향할까? 아니면 온전히 소멸하는 것일까? 아직 나는 잘 모르겠다.

 

*

내일이면 크리스마스 이브(아니, 오늘이지)이고 온갖 대형교회와 성당에서 예배와 미사가 성대하게 거행될 것이다. 그렇지만 아버지가 세상을 너무나 사랑해 아들을 보내고 그 아들을 희생해 인류를 죄로부터 구원했다는 기독교의 정수는 한국인에게 얼마나 낯선 것일까?

 

병인박해 때부터 믿기 시작해 그 조상을 본받아 정통 신자라는 교인분 말씀을 들으며 난 그것을 실감했다. 예수님을 본받아도 아니고 병인박해 때 돌아가신 조상이라니.

 

평범한 신자가 기독교 사상을 서구처럼 체화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이건 공부하고 고민해서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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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인 2호는 학교독서카드를 거의 매일 적는다. 가끔은 전혀 엉뚱한 감상을 쓰기도 하지만

어쩔 때는 단 한 줄만으로도 단박에 이해가 가는 감상을 내놓는다.

 

2호의 <복 타러 간 총각>의 한줄평은 '저에게도 복이 있겠죠?'였다.

2호 특유의 필체와 함께 보는 순간 절로 미소.

소심하고 걱정이 많은 아이라 어쩐지 찡했다.

그래 복이 많을 거야. '화가가 될 복'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 2호를 위해 같이 복을 빌었다.

 

2호는 책을 읽으며 열심히 일해도 복이 없는 총각을 안타까워하고 쭉정이라는 낱말이 뭔지 물어보았다. 나는 2호에게 총각이 여자, 노인, 이무기를 만나고 그들의 소원을 이루어주려다 자신도 소원을 이루게 된다고 설명을 해주었다. ㅋ 주입식 교육의 폐해. 이건 '구복설화'의 하나로서 밑줄 쫙.

 

<빨간 끈으로 머리를 묶은 사자>는 '거미는 참 야무져요'로 충분하다.

사자가 땅에 박힌 빨간 끈을 빼내어 머리를 묶으려 한다. 잘 되지 않자 이빨이 강하거나 힘이 센여러 동물을 동원해 끈을 뽑으려 하지만 역시 모두 다 실패한다. 이때 거미가 나타나 끈이 땅에 박힌 채로 그냥 사자 머리를 묶어주고 사자는 웃으며 만족한다는 얘기다.

2호가 전라도 네이티브였다면 거미는 참 오지네 했겠지만 ㅋ 오져부려인가 ㅋ

 

 

 

 

 

 

 

 

 

 

 

 

 

육아서는 고만 보고픈데 읽을 만한 책이 계속 나온다.

학교에 다니는 1호와 2호는 매일매일 수업을 듣고 정글인 초등교실에서 인간관계를 이어오느라 나름 많이 힘든 듯하다. 학교를 안 가겠다고 하진 않지만, 그래도 집에서 보고 싶은 책 보고 편히 쉴 때가 가장 좋다고 한다. 여러 기술적인 게 많이 있겠지만 결국 심리적 에너지가 축적되어야 살아갈 힘을 낼 수 있지 않을까? 

 

나의 근간은 '비관, 냉소, 허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현재(라기보다 청년기)의 내 상태에 비추어

억지로 끼워맞춘 것이고 어린 시절의 난 뭔가 '의지'를 품고 막연하게 '복'을 바라고 산 것 같다.

사실 뭐 1, 2호같이 별 생각 없이 하루하루 살지 않았을까.  

 

전래동화를 열심히 읽고 고무줄에 심취했고 남자아이들과 장난을 많이 쳤던 1학년이었다.

지금의 1, 2호보다 훨씬 극성맞고 밝았던.

 

 

 

 

 

 

 

 

 

 

 

 

 

아이들이 어렸을 때 밤에 자주 깨는 일이 많았고, 검색해서 이런저런 단편적인 정보를 얻을 시기

에 내면아이 치유 이런 것들에 몰두했었다. 유년기의 불우한 기억의 단편을 붙잡고 징징.

좀더 쪽잠을 자고 아이들과 눈을 더 맞추고 더 신나게 놀것을.

책목록 같은 것에도 연연하지 않았을 텐데......전집 들이기 싫고 전집 문화 조장하는 사람들 비판하면서 어린이도서회 추천 단행본 고르고 골라 읽혔다 해도 결국 엄마표 전집 아니었을까.   

 

요즘 우연히 봤던 '힘을내요 노모파워'라는 웹툰을 보면 작가님 아이가 3학년인 1호랑 같아 무지 공감되는 얘기가 많다. 육아의 시행착오도 같고 노화의 진행에 한탄하는 것도 대공감.

 

요즘 진짜 엄마들이 이해된다. 뭐 거시기, 그거 있잖아 저거 그러니까 그거 하라고.

왜 그렇게 '대명사'로만 이야기하는지.

 

웹툰상 '천개번둥'인데도 나 역시 아무렇지도 않게 넘겼다. 남편인 뚱씨가 야외에 나가 신록을 순록이라고 한 것도 웃겼다.

 

대망의 빵 터짐은 어버이날 아들의 카드.

유니세프 후원 아동이 쓴 카드인듯하다는 거.

   

요번 5월에 학교에서 선생님이 불러준 듯한 내용을 갈겨적은 카드를 받고 잠시 허망했던 내 기분을 대변한다.

 

이렇게 봐야 할 책도, 웹툰도, 영화도, 행사도 줄줄이 많은 이 시기는 복이 터진 시기인가보다.

마무리가 힘들어 역시 기승전'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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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10 14: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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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10 17: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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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23 20: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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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24 14: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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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연휴가 끝나간다. 그리고 잡념이 많아진다.

어떤 책에서 본 것같이 잡념조차 카테고리화하고 정리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지금까지 온라인이나 오프에서 명절 어떻게 보냈냐 하면 다른 집보다는 수월하다며 대강 웃어넘긴 듯하다. 온라인에 올라오는 괴담 수준의 시댁같지는 않다고 해서 안도하며 정신 승리하는 것보다는 내가 가진 불편이 무엇인지 인식하고 전하고 개선해야겠다는 의지를 다진 명절이었다.  

 

시어머님과 두 며느리가 함께 오순도순 음식하고 이런저런 수다 떠는 것이 아들들이 그리는 이상이다. 그러나 그 한 장면의 연출을 위해서 머릿속으로 얼마나 많은 단어들을 골라야 하며 자신의 이상이나 가치를 얼마나 쉽게 포기해야 하는지 아들들은 잘 모를 것이다. 

 

이번에도 역시 음식은 많이 남았고, 정신적 피로가 그보다 오래 남아서 작년에 놓친 오락영화를 두 편 보았다.

 

캐릭터들이 소소하게 웃겻고 그간 사람들이 왜 이런 말을 했는지 어떤 상황인지 이제서야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이 큰 소득.

 

<종이달> 역시 오락영화와 같이 생각하고 가볍게 읽기 시작했지만 그리 가벼운 것만은 아니었다.

 

소비사회의 폐해, 쇼핑중독, 불륜, 금융범죄, 과도한 절약 등을 다루면서 그런 행위들을 하게 되는 인물의 심리에 주목했다.

 

레스토랑에서도 바에서도 백화점에서도 부티크에서도, 리카네를 맞이해주는 사람들은 웃는 얼굴이 끊이지 않았다. 아주 친절하게, 농담 한두 마디를 섞어서 진심이 담긴 인사를 해주었다. 거기에는 악의도 경멸도 오만불손함도 없고, 그저 포근한 선의만이 있었다. 리카는 은행에 거액의 정기예금이 있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모두가 그렇다고는 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확실히 현실과 동떨어진 듯한 사람들이 있었다. 예를 들면 통장을 리카에게 맡긴 나고 다마에, 야마노우치 부부 등, 해맑게 웃고, 목소리가 거칠어지지 않고, 사람을 밀어내지 않고, 쉽게 사람을 믿고, 악의 같은 건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이 누군가가 자신을 상처 입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눈곱만치도 하지 않는 사람들. 그들은 돈이라는 푹신푹신한 것에 둘려싸여 살아왔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리카는 그래서 출근을 위해 역에 갈 때나 호텔로 돌아오기 위해 붐비는 전철을 탈 때면, 주위에 자각없이 뿌려진 채 방치된 악의에 새삼 놀랐다. 먼저 가기 위해 노인을 밀치고 가는 여자가 있고, 그 인간 뒈졌으면 좋겠어 하고 깔깔 웃으며 얘기를 나누는 금발의 여자아이들이 있고, 가방에 손을 찔러 넣고 정액권을 찾는 리카에게 혀를 차며 어깨를 부딪치고 가는 젊은 남자가 있고, 할머니를 밀어내고 빈자리에 앉는 중년남자가 있고, 고맙다는 말도 없이 잔돈을 던지는 역내 매점의 판매원이 있었다. 전봇대 아래에 토사물이 펼쳐져 있고, 약국 계산대에 긴 줄이 있고, 번화가 보도에는 시끄러운 음악이 흘러나왔다.          p.253   

 

돈의 위력이란 무엇보다 어떤 정신적인 에너지를 쓰지 않게 한다는 게 아닐까. 원래부터 가진 사람들에게는 공기와 같아서 누구나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

 

돈이라는 것은 많으면 많을수록 어째선지 보이지 않게 된다. 없으면 항상 돈을 생각하지만, 많이 있으면 있는 게 당연해진다. 100만 엔이 있으면 그것은 1만 엔이 100장 모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거기에 처음부터 있는, 무슨 덩어리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람은 부모에게 보호받는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그것을 누린다.  

 

리카의 어린 애인인 청년 고타 역시 리카가 횡령해서 마련한 돈을 아무런 거리낌없이 받아들였다. 리카가 꼭 도라에몽 같다며 천진난만한 척하는데 분통이 터졌다. 전업주부일 때나 시간제 사원일 때나 한결같이 리카를 교묘하게 무시했던 남편보다 더 사악한 녀석이다.

"하지만 나는 무엇을 사달라든가 해달라는 말 한 적 한 번도 없어요", 라니.  

 

이 소설에 나오는 여자들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걸 모르고 많이 어리석다.

남자들은 무감하고 무신경하고(그들의 독특한 성격이 아니라 그래도 되는 구조니까) 그게 결국 악을 부른다.

 

그러나 의지박약한 한 개인의 탓으로 돌리기에 이 사회는 너무나 촘촘하게 악의 그물을 치고 있는 게 아닐까?

 

장시간 노동으로 스트레스는 가득하고 건강하게 여유를 가지고 여가를 즐길 환경이 되지 않는다.

진정한 인간관계를 맺을 시간적 정신적 여유도 없다. 심지어는 가장 친밀한 가족과도. 

미디어에서는 풍요롭고 화목한 관계를 모두 물질적 여유로 포장하고 있고 은연중에 사람들은 그것만을 목표로 삼아 앞만 보고 달린다. 열심히 일해서 삼둥이네와 같은 환경을 만든다면 우리 아이들도 그렇게 밝고 구김살 없이 자라겠지. 

 

대부, 소액대출로의 접근은 용이하며 마케팅은 갈수록 교묘해져서 사람들을 어떻게든 지갑을 열게 만든다.

 

결국 평범한 사람들의 말로는 소설 속 인물들과 같이 이혼, 범죄, 파산이다.

 

평온해 보이는 일상이지만 모두가 자갈 가득한 지뢰밭을 맨발로 걷는 셈이다.

 

 

 

 

 

 

 

 

 

 

 

 

 

 

한동안 정리 관련 책을 읽고 버리느라 난리였지만 이제 잘 읽지 않고 이마저 정리해야 할 판이다.

 

미니멀리즘 역시 최근의 유행.

무작정 따라할 게 아니라 내가 왜 그 물건들을 원했는지 그 심리를 돌아보고 물건들 하나하나를 소중히 돌아보고 있다.

 

미니멀리즘을 오해하여 자신이 가진 걸 버리고 무지나 이케아 등 미니멀해 보이는 아이템을 사들이는 게 최근의 한 경향인 듯하다.

 

경주에 지진이 심하게 나면서 둔한 나도 느낄 정도로 여기에도 지진이 있었는데

<우리집엔 아무것도 없어>에서와 같이 안전을 위해 집안을 점검할 필요 정도는 있을 듯하다.

 

생각을 정리한다고 쓰기 시작했는데 시간을 너무 들인 듯하다.

지나치게 생각하지 말고 하고 싶은 말 그자리에서 바로 하고, 해야 할일은 그때그때 바로 하면 잡념이 덜 쌓이겠지.

 

컴퓨터를 이제 끄자, 오늘 하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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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16-09-19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니멀리즘을 오해하여 자신이 가진 걸 버리고 무지나 이케아 등 미니멀해 보이는 아이템을 사들이는 게 최근의 한 경향인 듯하다.` -> 하하하, 저는 이래서 뚜유님이 좋습니다.

뚜유 2016-09-20 04:40   좋아요 0 | URL
사실 자아 반성이랄까요 ㅋ
제가 그럴 뻔했는데 블로그나 카페의 북유럽풍이나 일본식 가정 같은 잘 정돈된 모습도 좋지만, 뭔가 한국형 가정집 같은 저희집에도 만족하기로 했어요. ㅋㅋ

hnine 2016-09-19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갈 가득 지뢰밭>이라는 제목은 제가 어디 적어놓았다가 인용해보고 싶을 만큼 마음에 쏙 들어오는 제목이네요.
생각을 정리한다고 쓰기 시작해서 시간을 너무 들인 듯하다고 하셨지만, 시간 들인 만큼 생각이, 적어도 읽는 저는 정리가 되는 느낌이어요. 미니멀리즘에 대해서는 솔직히 전 미니멀리즘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듯. 뭘 사들이는 것이 싫고 더 줄이고 싶은 생각만 가득한데, 그게 또 제 맘대로 안되는 것이 저 혼자 사는 집이 아니다 보니까 그렇네요.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은 영화 매그니피션트를 극장에 가서 봤어요. 아주 단순하고 딱 떨어지는 영화였어요. 위에 베테랑은 표지가 정말 근사한데요.

뚜유 2016-09-20 04:45   좋아요 0 | URL
좋아해주셔서 감사해요 :)
생각을 더 정리하고 행동으로 옮겨야죠.
앗..부럽습니다. 전 버리고 들이고 요요를 반복중이에요. 아무래도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이 있는데 무조건 제 뜻대로 억제하게 할 순 없으니까요. 결핍을 경험하면 그 반동으로 물욕이 넘 강해질 거 같아서......
매그니피션트도 추천 많이 하시는데 언제 봐야겠어요.
영화들은 둘 다 텔레비전 상영으로 보았는데 상품넣기를 괜히 했다는 생각도 들어요, 표지는 멋지지만요.

요술램프 2022-06-03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세하게 적어주셔서 감사해요. 책을 한편 읽은 기분이에요. 뚜유님의 세상을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바쁘다면 어떻게해야 바빠지지 않을지 힘들다면 어떻게해야 힘들어지지 않는지, 지금 당장 내 마음에서 시작하는 법이 무엇일지 생각해보게 되네요. 감사합니다.
 

 

 

 

 

 

 

 

 

 

지난 토요일에 사운드파크페스티벌에 갔다. 집 근처 사직공원에서 열리는 공연이었지만 멀리서 동생이 와주지 않았더라면 가기 힘들었을듯.

 

야외공연은 정말 간만이었고, 공연장은 작지만 아늑했다. 라인업 중 10센치, 가을방학의 계피, 이승환 말고는 정말 생소한 이름들이었다.

 

네시 반부터 공연은 시작되었는데 처음엔 정말 어수선했고 아직은 타는듯한 햇볕.

양산을 쓰고도 머리가 얼얼할 정도로 볕이 강했다.

 

'권나무'님

가수라기보다는 문과 대학원생 같은 분위기였다.(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선생님) 

이 더위에 정장으로 차려입으시고도 옛날 선비같이 더운 기색도 없이 차분히 노래를 이어가셨다.

짬이 안 된다며 멘트는 사양하시고 노래를 연달아 네 곡.

노래가 필요할 때, 어릴 때, 사랑은 높은 곳에서 흐르지, 너를 찾아서?  

 

좋구나, 집에 가서 다시 찾아들어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한 청년이 자체 제작한 플래카드를 열심히 흔들며 곡을 따라부르고 있었다.

담담한 가수와 열성적인 청년 팬을 보니 그냥 무작정 찡해졌다.

저렇게 대책없이 좋을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는 게 청춘이지. 

'어릴 때'를 열심히 따라 부르던 청년의 수페르가 운동화 옆선까지 지금도 기억난다.

 

나무 님은 여기에 앉아 있는 모두의 마음이 같지 않다는 걸 알지만 기쁘다고 하셨던가.

이후 권나무 님 차례가 끝나고 언덕 같은 데로 일행들이 올라가자 주변에서 모두 그 팬을 생각하며 빨리 따라가라고 한 목소리로 외쳤다.

 

외국 밴드 둘, 샘 김 순서가 지나고 드디어 계피를 볼 수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 무대를 꼼꼼하게 세팅하고 나서야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정말 평범하고 참하고 수수하지만 뭔가 고집스러울 듯한 발목에 시선을 고정하고 노래를 들었다.

 

<속아도 꿈결>을 라이브로 듣게 되는 날이 있다니.

<베스트 앨범은 사지 않아>, <사하>도 잘 들었다.

중간중간 다정한 멘트와 귀여운 동작들도 예상과는 달랐다.

 

계피 순서가 지나고 공연장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10센치가 나왔고 권정열 씨의 잔망스러움에 많은 처자들이 소리 지르고 난리였다. 대중적인 곡들과 들려주고 싶은 노래를 적절히 섞어 부르는듯. 막 신나다가 이젠 발라드에요. 너무 관객들 좋아하고 분위기 들뜨는 거 별로 안 좋아한다고 하는데 ㅋ 아주 요물이셔. 

떼창이 자주 이어졌다. 봄이 좋냐?, 아메리카노, 쓰담쓰담, 사랑은 은하수 다방에서, 애상 등등

  

마지막으로 승환옹 순서

1999년에 보고 진짜 오랜만인데 세월은 나만 정통으로 맞은듯

페스티벌 특성상 많이 못 불렀는데 원래 받은 만큼만 하는 거라고 농을 하시고 그래도 몇 곡 더 하고 가셨다.

공연장마다 다닌 열성팬은 아니지만 그래도 맨 처음 산 테이프는 승환옹 1집이었다. 꾸준히 듣다가 언제부턴가 찾아듣지는 않았다. 몇 집부터인지도 모르게 멀어져갔다.

 

그래도 10억광년의 신호를 여기서 듣다니. 신기했다. 

 

쨍쨍한 한낮에 시작한 축제는 밤 열 시가 훌쩍 지나서야 끝이 났다.   

동생이랑 한여름밤의 양림동 길을 걸으며 들떠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집에 왔다.

 

다 오랜만이지, 둘에게 이런 시간.

내년에 동생도 가정을 꾸리면 이런 시간은 쉽지 않겠지.

 

육아를 시작하면서 노래를 거의 듣지 않게 되었다. 늘 집 안에는 크고 작은 소리들이 떠돌았고 언제부터인가 쉴 때는 음악을 듣지 않거나 클래식 FM 정도로 만족하곤 했다.

 

이젠 또다시 노래가 필요할 때

오전에 토요일에 들었던 곡들을 다시 찾아들었다. 특히 권나무를 오래 들었다.

 

아무래도 조만간 CD를 좀 더 살 것 같다.

난 옛날 사람 쪽에 가까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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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2호가 학교에서 빌려온 책이다.

 

결혼적령기라는 말이 폐기된 시대에도 '노처녀' 취급을 받는 나이가 된 동생은 올해 엄마가 주선하신 소개팅으로 좋은 짝을 만났다. 내년 초로 결혼을 생각하고 있다.

 

2호는 이모의 결혼을 대비하기 위해 책을 빌려왔다고 한다.  그 순간 어찌나 귀엽고 기특한지 웃고 말았다. 2호는 진지했는지 왜 웃냐고 심통을.

동생에게 책표지를 전송하니 식장도 안 알아보는 자기들보다 낫다며 웃는다.

 

지난 5월에 친정에 가서 집 앞에서 동생의 짝이 될 청년?을 만났을 때 나는 엄청난 흑역사를 생성하고야 말았다. 혹시 어디서 읽은 건 아닐까. 입 밖으로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없겠지.

무슨 말 끝에 "그냥 여자라고 생각하지 말고 피붙이같이, 여동생같이 잘 대해주세요."

아 쫌.....눈물까지 글썽거려서 동생이 사실은 창피했다고 한다.

 

날이 너무 좋아서 그런지 조증이 도져서 고백합니다.

 

날이 좋아서 잠깐 동네 산책을 한다는 것이

양림동 이장우 가옥을 거쳐 유진벨 기념관, 사직공원을 거쳐 광주천을 넘어 국립아시아문화전당까지 내처 걸었다. 둘러보며 잠시 쉬며 두 시간도 넘게 걸어만 다녔다.

 

아시아문화전당에서는 아시아 건축과 한국 사진작가들에 대해 상설 전시를 하고 있었다.

그냥 둘러보다 도슨트 해설로 건물 정면 외벽, 파사드에 대해 알게 되었다. 아름답고 실용적인 여러 나라의 파사드를 둘러보고 만져봤다.(도슨트께서 만져보라 하심)

 

떼어내서 전시해두니 생경하다. 오가며 보던 게 동대문 DDP파사드라니.

 

관람객은 서울서 온 듯한 어떤 젊은 남자분 그리고 나. 아마도 그 넓은 홀에 관람객보다 직원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우리나라 사진작가들 있는 데서 혼자 보고 싶다고 나와서 서가에 가서 사진집을 두 권 넘겨보았다. 전혀 상반된 성격의 사진집이 나란히 꽂혀 있어 신기했다, 꼭 의도한듯이.

 

 

 

 

 

 

 

 

 

 

<미친년 프로젝트>

'또문'이 왕성하게 활동했던 때의 사진집.

단정하지도 정숙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여자들이 거의 대개 멍하니 심술궃게 있다.

흐트러졌거나 신체 일부를 드러내거나 '미친년'의 표상인 낡은 베개를 안거나 꽃 속에 둘러싸여서 불온하게 어딘가를 응시한다.

 

패기 있던 시절이었지, 훗.

웃기도 하고 심각하게 보기도 했다.

한참 보게 되는 얼굴도 있었다.

 

<어머니>

들에서, 장에서, 바닷가에서, 탄광에서 일하는 어머님들.

고되고 힘든 현장에서 막걸리 한 잔에 웃기도 하고 흥정을 하기도 하고 힘차게 물질을 하러 나서기도 하신다. 우리 시어머님 얼굴이 겹친다. 묵직하다.

 

심심해서 해설까지 읽다보니 의학박사인 부인이 본업도 버리고 내조에 힘써서 이런 좋은 작품들도 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사둔 지 오래되었는데 어제 밤에  바람 소리를 들으며 읽었다.

<청춘시대>의 범주에도 속하지 않는 그런 '양'의 세계.

'양'이 살아내고 있다면 앞으로 어딘가에서 '여사님'으로 살아가겠지.

 

그 드넓은 전시관에 '양'이 여러 명, 여사님은 단 한 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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