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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 우리 사회가 보듬어야 할 간병 가족들의 이야기
유영규 외 지음 / 루아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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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도서관에서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을 읽었다. 희망도서로 내가 오래 전에 신청한 책인데 병간호와 기타 잡다한 업무로 분주하게 보낸 지난 두 달 동안 아무도 빌려가지 않았는지 새 책 그대로였다.

 

가족 중에 중병이나 장애로 돌봄을 지속적으로 필요로 할 경우 가족의 삶이 얼마나 뒤틀리는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잘 모를 것이다.

 

예전에 비해서는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요양원이나 요양병원 등을 이용하는 절차나 과정도 그리 수월한 것은 아니다.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을 경우의 돌봄이나 가족 한 명이 아닌 가족 내에서 여러 명이 중복 발병할 경우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정신질환이나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은 환우의 폭력성으로 인해 받아주는 시설이 없어 오롯이 가족이 간호를 감내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정신보건법이 개정되면서 장기간 보호병동 입원이 어려워졌고 정신질환의 경우 보험 적용이 안 되어 치료비가 많이 드는 것도 환자 가정에게 큰 부담을 지우고 있다.

 

자신만의 시간을 낼 수 없어 본인의 건강이 심각하게 위협되고 경제활동을 할 수 없어 결국 가정 전체가 빈곤에 빠져든다.

 

무엇보다 환우 가족들의 가장 큰 고통은 이 간병의 시간이 언제까지 지속되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절망으로 이어져 존속 살인이라는 극단에 달하게 되는 것이다.

 

발병한 지 6-8년 사이 환자를 하루에 8-10시간 넘게 돌보는 경우 극단적 선택에 이르는 경우가 많았다.

 

*

신문 후속보도답게 신파 없이 있는 그대로를 담담하게 전하는데도 읽다가 몇 번이나 울컥해서 혼났다. 내 자리 맞은편에서 잘 차려입으신 연금 생활자이신 것이 분명한 아주머니 한 분이 간혹 나를 쳐다보셨다.

 

기자들이 취재를 위해 찾아왔을 때 가족을 죽인 후에도 살던 집에 그대로 사는 경우가 꽤 된다는 데에 놀랐다. 이사를 갈 경제적 여유가 없어 비극의 현장에 그대로 거주할 수밖에 없는 현실도 마음 아팠다.

 

아픈 사연들이 이어지고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런 가정을 도울 수 있는가에 대해 끝부분에 잠시 기술했는데 각각의 가정이 필요한 돌봄을 충분히 받기에는 아직 우리 사회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듯하다.

 

선진국의 경우 가족이 간병을 맡고 있다고 할 때 비용을 지원하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가족이 간병을 할 경우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있는 경우 하루 한 시간, 달에 20시간 정도 지원이 된다. 겨우 20만원 남짓인 것이다.

 

간병이 오래될 경우 회사를 휴직하거나 휴직 후 다시 복귀하는 것도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일부 직업군 외에는 그리 보편적인 것이 아니다.

 

선진국의 경우 간병이 지속될 경우 가족이 잠시 환자에게서 벗어나 쉴 수 있는 가족휴가제가 있지만 우리나라는 치매 환자가 있을 경우 연간 일주일 정도 휴가를 쓸 수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제도가 널리 홍보되지 않았고 일주일만이라도 맡아줄 기관이 나타나지 않아 가족들은 제도를 활용할 수가 없다.

 

읽는 내내 답답하고 마음 아팠지만 참 이기적이게도 이렇게 힘든 분들도 있는데 

이제부터라도 간병 문제에 직면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동병상련'이라는 말도 잘 와닿지는 않는다.

 

의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같은 이름으로 규정한 병을 앓는다도 해도 각자의 현실이 고유하고 각자의 체력과 성품도 다르기에 서로 이해받고 공감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그래도 비슷한 아픔, 정형화된 비극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을 널리 알리고

막다른 절벽에 처한 가정이나 개인에 손을 내밀에 줄 수 있는 사회

그리고 나부터 손을 내밀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간혹 주부들 커뮤니티에 간병이 힘들다는 하소연이 올라오면

내가 하루만 봐드리고 싶네요

당장 달려가고 싶네요, 라는 덧글이 달리기도 하는데

 

진짜 찾아와주지 않아도

절박한 누군가는 순간

눈물을 닦아주는듯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가족이나 선한 이웃의 도움만으로 해소되지 않는 부분을 해결해주는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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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가 잠든 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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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어가 잠든 집>은 과히 한국판 '마더'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강렬한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추리소설 계열은 아니고 <편지> 같은 계열의 휴먼 드라마 같은 분위기이다.

 

뇌과학 분야의 회사를 경영하는 가즈마사와 그의 아내 가오루코는 가즈마사의 외도 때문에 별거 중이었다. 곧 이혼을 앞두고 있고 각자 일상을 보내던 중에 그들의 딸 미즈호가 호텔 수영장에 빠져 의식불명이 되었다는 소식을 접한다. 

 

의사는 부부에게 미즈호의 상태를 말하고 장기 기증 의사를 묻는다. 부부는 고심 끝에 장기 기증을 결심한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딸의 손을 잡은 순간, 미세한 움직임을 느낀 듯하여 딸을 포기하지 못하고 이혼도 보류하며 누워 있는 상태의 딸을 위해 혼신을 다한다.

 

첨단 뇌과학 분야의 회사를 경영하는 가즈마사는 인공호흡기 대신 AIBS라는 기계를 쓰게 하고 특수한 장치로 근육을 움직이게 하는 기계를 써서 뇌의 작용이 없이도 딸을 움직이게 한다. 그렇지만 기계로 하는 일에는 한계가 있어 가오루코가 친정엄마와 함께 24시간 아이 상태를 세세히 살핀다. 그 결과 아이는 일반 뇌사 상태의 환자들과 달리 건강하게 잠들어 있는 듯이 보인다.

 

자신의 인생도 포기하고 그렇게 해서라도 아이를 보고 싶은 '가오루코'의 심정도 이해된다. 하지만 엄마가 누나에게만 매달리는 동안 남동생 이쿠토의 마음은 곯아만 갔다. 가오루코는 아들의 생일 잔치를 하는 날에도 아들의 심정보다는 아들친구들에게 누워 있는 딸이 기계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줄 생각에 들떠 있었다. 움직이는 것만 보여주면 아들친구들이 누나를 이유로 따돌림을 하지 않을 거라는 비정상적 사고에 빠졌던 것이다. 성장과정에서 줄곧 상처받았던 이쿠토는 실은 생일잔치에 아무도 초대하지 않았다.   

 

가오루코는 미즈호에게만 빠져들어 자신의 인생, 남은 가족의 인생에도 마음을 쓸 여력이 없었다. 여러 사건을 겪고 나서 꿈결인듯 미즈호가 나타나 진정한 작별의식을 치르고 나서야 딸을 떠나보내게 되었다.

 

소설 초반부에 실은 '뇌사 판정'이라는 용어가 장기 기증을 염두에 두고 나온 표현이라는 데 놀랐다. 살아 있는 이의 장기를 함부로 적출할 수 없으니 뇌사 판정은 진짜 엄격하게 시간 차를 두고 여러 번 행해지고 있었다. 장기 기증을 기다리는 사람은 너무나 많은데 기증자는 적으니 해외로 나가 기증을 받고 오기도 한다. 소설 중반부에 난치병과 장기 기증에 관한 여러 물음이 등장한다.

 

생명의 가치와 돈의 문제.

결국 난치병에 걸리면 살아남을 수 있는 쪽은 경제력이 있는 사람들뿐이다. 막대한 비용을 들여서라도 해외에 나가서 이식을 받고, 그 지역 가난한 이들은 또 막연하게 기증자를 기다려야 한다.

 

평소에 장기 기증을 막연하게 필요한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와 가족의 문제로 닥치면 의연하게 결정할 수 있을까?

 

가즈마사 부부같이 막강한 경제력이 있다면, 혹은 기술이 발달하는 요즘이라면 일말의 희망을 품고 기다릴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만 세계의 여러 사례를 보아도 장기간 뇌사였다가 기적적으로 깨어난 일은 없다고 한다. 일부는 신체가 자라는 현상이 보여도 진정한 회복은 아니라고 한다. 사고를 당하기 이전의 상태가 될 확률이 거의 없다면 남은 가족은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할까?

 

미즈호는 들판에서 네잎클로버를 발견하고도 자신은 이미 충분히 행복하니 다른 사람을 위해 두고 가겠다고 말할 정도로 심성이 고운 아이였다. 그런 아이라면 아마도 부부의 결단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며칠 전에 우연히 어떤 기사를 보게 되었다. 호텔수영장에서 사고를 당해 뇌사 판정을 받은 아이의 가족이 장기 기증을 결정했다는 이야기였다.  가족여행 사진 속에서 너무나 환하게 웃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큰아이와 같은 학년이라 그런지 더 오래 마음에 남았던 차에 우연히 이 책을 읽게 되어 그런지 여러 생각이 스쳐간다.

 

인생에서 큰 불행을 피할 수는 없는 일이고 그 이후의 수습은 어찌해야 하는 것인지 묻는 이야기였다.

 

삶과 죽음의 순간을 누가 정하는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받아들이고 애도할 수밖에 없는 남은 자의 시간을 지켜보는 이들은 그들을 충분히 기다려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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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살까지 살 각오는 하셨습니까? - 아프지 않고, 외롭지 않은 노년을 위한 100세 인생 지침서
가스가 기스요 지음, 최예은 옮김 / 아고라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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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살까지 살 각오는 하셨습니까?

 

이 책은 처음부터 이렇게 강렬한 문제 제기에서 시작된다.

현재 중장년기를 헤쳐가는 것만 해도 벅찬데 백 살까지 살 각오라니 과연 필요한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저 처음에는 막연하게 부모님 봉양과 연관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읽다 보니 나에게도 노후의 문제가 아주 먼 미래의 일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각오'의 사전적 의미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나 당할 어려움 따위에 대하여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는 것을 뜻하니 고령화 사회를 사는 우리 누구나 '노후 대비'에 대한 계획을 세워야 하는 것이다

 

90세까지의 생존 비율을 비교해보면 1990년에는 여성 26.3 퍼센트, 남성 11.6퍼센트였으나 2017년에는 여성 50.2퍼센트, 남성 25.8퍼센트로 상승했다. 이제 여성 두 명 중 한 명, 남성 네명 중 한 명은 아흔 살까지 사는 시대가 되었다(그림 1 참조).

그리고 가족이 노후를 책임져줬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가족의 형태도 다양해졌다. 의지할 가족이 없는 독거노인 세대, 노인 부부로만 구성된 세대가 증가했으며 자녀와 함께 사는 고령자 세대는 대부분 미혼 자녀와 동거하는 경우다. 결혼한 자녀의 가족과 생활하는 고령자는 이제 소수파가 되었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 80, 90, 100대의 초고령기를 살아내야 하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26

 

일본의 통계여서 우리나라 현황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특별한 사고가 없는 한 우리는 꽤 오래 살 확률이 높은 것이다. 처음에는 진짜 이 부분에 큰 충격을 받았다.

 

아아아, 생각보다 꽤 오래 살 수 있는데 그간 아무런 대비가 없었구나.

 

서장에서는 100세 시대를 맞아 노년의 경험을 쓴 작가들의 책이 많이 팔리고 있는 현상에 주목했다. 그리고 책을 쓰고 사회생활을 하는 노인들의 경우 단순히 신체의 '건강'만으로 답할 수 없는 뭔가가 있기에 노년에도 왕성한 활동이 가능하다는 데 주목했다. 노년에 이르면 과거에 어떤 병을 앓았든 간에 자신만이 꼭 해야 할 뭔가를 가능하게 하는 '기력'이 있으면 활기차게 지낼 수 있다는 데 주목했다.

 

1-2장에서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기력' 있는 분들의 일상을 들여다보았다. 이분들은 대개 '습관 나이'에 따라 살아가고 있었다. 나이가 들었으니 이런 일은 이제 할 수 없겠지, 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범위에서 그건 해오던 일을 꾸준히 매일 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건강 유지나 사회적 교류, 삶에 위안이 되는 즐거운 활동. 삶의 기력을 북돋워주는 이런 활동들을 일과에 포함시켜 습관 나이로 사는 사람은, 달력 나이를 뛰어넘어 습관 나이로 살게 된다. 그리고 나는 오늘 이 일과를 달성했으니 아직 늙지 않았다라는 형태로 자신의 나이를 느낀다. 93

      

특히 고령 남성의 경우 집안일을 하고 요리를 해서 드시는 분들이 더 기력을 유지하고 계셨다 

'습관 나이'라는 건 중장년에게도 유용한 것 같다. 한동안 이제 틀렸어, 를 달고 살며 운동을 가지 않았는데 할 수 있는 범위에서 매일 조금씩이라도 지속하는 게 기력을 돋울 수 있을 것 같다.

      

3장 이후를 읽으면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중장년이 되어 접하게 되는 '봉양', '간병'과 관련한 주제들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과거의 기억들이 겹쳐졌다 

과거 노인 세대는 본인들도 부모를 봉양했기에 막연하게나마 자녀들도 자신들처럼 부모를 돌볼 것이라 여기고 노후 대비에 소홀했다.

   

그런데 막상 부모가 운신이 힘들 지경이 되면 모두가 당황해 본인이나 자녀가 우왕좌왕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서로가 상처를 주고 받게 된다 

노후에 자신이 거동이 불편하거나 치매에 걸려 판단이 흐려질 것을 대비하는 쪽은 오랫동안 미혼으로 홀로 살았던 경험이 있는 여성들이었다.

   

책에 나온 고령의 어떤 할머니는 젊은 시절에 오래 일을 해서 연금이 충분히 나오게 대비하였고 노쇠해져서 처리할 일들이 생겼을 때 조카에게 일정 비용을 주고 부탁하는 것으로차분하게 자신의 삶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4장 노후를 위해 무엇을 대비하고 있는가, 에서는 자명한 진실이 등장한다. 

 

하지만 극소수의 운 좋은 사람만 예외일 뿐, 누구나 늙고 쇠약해져서 다른 사람의 돌봄을 받는 인생을 살 수밖에 없다.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라면 늙어서 다른 사람의 돌봄을 받는 것도 인간의 운명이라고 봐야 한다 

고령화 사회인 오늘날에는 '어떻게 나이 들어야 하는가.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 그 답을 모르겠다'며 갈피를 못 잡고 헤매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성공적인 노화를 삶의 목표로 삼은 W씨 부부 같은 노인들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149

      

여기에서 W씨 부부 같은 이들이란 돌봄이 필요한 상황을 부정적으로 여기고 그저 좋아하는 활동만으로 노후 일과를 가득 채우는 사람들을 뜻한다. 너무 미래에 대해 비관하는 것은 좋지 않지만, 홀로 거동하기 힘들고 배변을 혼자 처리할 수 없을 때에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을 배우자나 자녀들과 공유해야 하는 것이다.

    

요양센터를 견학하는 부분에서는 많이 슬퍼졌다.

           

특별양호노인홈에 견학을 갔을 때예요. 거기 입소해 계시던 분이 내가 이 시설에서 나가는 날은 죽은 후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그 말을 들으니 노인 요양시설은 종신형을 선고받았다고 생각하고 들어가는 곳이라는 느낌이 들더군요. 그래서 한동안 시설 찾는 일을 중단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절박한 상황이 되었죠. 건망증이 심해졌거든요. (중략)

 

예전엔 오른쪽 귀로 들어가서 왼쪽 귀로 빠져나가던 설명을 이제는 제대로 이해하고 공감하며 들을 수 있었습니다. 194

      

이런 말을 한 X씨는 임종 준비도 차분히 해나가고 있었다. 남들이 우울한 주제라 회피하는 것을 어차피 나중에 자신이 다 처리해야 하는 일들이라 생각하고 피하지 않고 주변의 도움을 받아가며 처리하는 모습이 놀라웠다.

      

부록으로 인생 마무리의 구체적 예시가 목록으로 자세하게 제시된다.

 

부모님이 현재 편찮으시거나 혹은 자신의 노후에 대한 상을 그려가고 싶다면 자세히 정독해도 좋을 것이다.

     

'나가며'에서 저자는 이 책이 단순히 개인의 노후 대비에 그치는 것에 우려를 보이며 고령화와 가족형태의 변화에 대비해 사회적으로 어떤 준비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물음으로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저자는 책의 마지막 문단에

 

"사람은 몇 살이 되어도 계속 변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밝혔다.

 

 

나 역시 노인들을 그간 평면적으로 바라보았는데 이 책을 통해 고령자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생활하는지 엿볼 수 있어서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

 

 

그래서 정말 각오는 되었냐고요?

 

 

막연한 두려움이 확실한 두려움으로 다가오게 되었지만

 

그래도 담대한 몇몇 분의 사례를 통해 약간의 용기를 얻었다고나 할까요?

 

 

성찰의 기회를 주신 데에 감사드립니다.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책을 받아보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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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휘 늘리는 법 - 언어의 한계는 세계의 한계다 땅콩문고
박일환 지음 / 유유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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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 하나

요즘은 일주일에 두 번 학교에 나가고 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대하다 보면 아이들이 하루에 쓰는 단어가 몇 개 되지 않아 놀라곤 한다.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에도 짜증나, 화나, 힘들어, 지루해 등등 다양한 표현이 있지만 극혐(애들말로 그켬)으로 압축된다. 저희들끼리 비난할 때는 '인성 쓰레기네' 로 요약된다.

 

# 장면 둘

카페에서 대화가 들린다. 비루한 몸뚱이가 어쩌고.

'비루하다'는 사전적으로

 (鄙陋--) [비ː루하다]

 [형용사] 행동이나 성질이 너절하고 더럽다.

 

돌아보니 출산 후 몸이 다들 좀 불었겠으나 천하고 너절하고 더러운 정도는 아니다. 온라인상에서 뜻도 모르고 재미 삼아 자주 쓰다 보니 여기저기 다 비루해졌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한때는 '비루하다'라고 온라인에 자주 쓴 적이 있다.

 

무한도전에서 자막으로 퍼뜨린 말 '육덕지다'도 소설 등에서 육덕이 크다, 육덕 좋은 식으로 쓰였다.

 

육덕 (肉德)[육떡] 

[명사] 몸에 살이 많아 덕스러운 모양.

 

예능에서 쓰는 어감과 약간은 다르지만 육덕지다까지는 내 기준으로는 봐줄 수 있다. 하지만

백종원 씨가 퍼뜨린 '고급지다'는 어딘가 불편하다.

 

 

<어휘 늘리는 법>에는 언중들의 다양한 언어 현상에 대한 고찰이 담겨 있다.

 

1. 현대인은 아이어른 할 것 없이 어휘가 빈곤하다.

책을 읽을 시간도 사람들과 대화다운 대화를 나눌 시간도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저 예능에서 쏟아내는 말초적인 자극적 표현에 길들여져 있다. 누가 더 세게 독하게 재미있게 말하나 겨루고 있다.

 

청소년의 어휘력이 부족하게 된 이유로 몇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예전에 흔히 볼 수 있었던 물건이나 풍경, 관습이 사라지거나 어휘 자체가 바꾸니 탓도 있을 테고, 한자 교육 비중이 낮아져서 한자로 된 개념어를 익힐 기회가 적었을 수도 있다. 반면에 청소년일수록새로 생겨난 말에 대한 적응력은 무척 높은 편이다.        20쪽

 

 

책을 읽는 동안 한국사회 전체의 문해력이 높기는 하지만 중장년층의 어휘력이 빈곤하다는 통계에 많이 놀랐다. 학교를 졸업하면 책을 잘 읽지 않고 지식의 변화 주기가 빠른 사회라 장년층 이상에서 그 속도를 따라가기 쉽지 않다. 아이들이 어휘가 빈곤하다 타박하는 나도 새로 만들어진 말이나 기술용어 등에 취약하다.

 

2. 어휘가 중요한 이유는 일차적으로 어휘가 지식 습득의 기본이 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말을 배우며 단어를 물어가며 폭발적으로 사고를 확장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교직생활 이후로 글을 쓰는 필자답게 그간 문학작품에서 접한 다양한 어휘를 소개하고 있다.

 

삽상하다,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 마음이 아주 상쾌하다, 라는 뜻의 형용사를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밖에도 대하소설에 나오는 다양한 우리말 표현이 소개되어 있다.

 

아무래도 요즘에 학생들은 자연이나 전통문화에 대한 단어를 영단어 외우듯 수능을 위해서 공부하는 경우가 많다. 김소월, 백석의 시를 읽다보면 학생들은 도무지 무슨 소리이고 왜 아름다운지 모르겠다고 하는 경우가 많아 씁쓸하기도 하다. 많이 접해보지 않아 낯설고 어색한 탓일게다.

 

3. 자신만의 어휘를 만들어 써도 좋다.

자신만의 어휘라는 건 사전에는 없지만 내가 만들어내어 주변과 쓰면서 뜻이 잘 통하게 된 말이다.

 

우리 아이들이 말을 배울 때는 자신들이 만든 신기한 단어를 많이 쓰곤 했다. 새우깡이니 감자깡이니 하는 스낵류를 먹을 시기에 '자갈치'를 접하고서 이건 왜 '문어깡'이라고 안 하냐고 했었다.

 

메일이나 문자 메시지를 쓸 때면 저는 항상 엎드립니다. 정말 엎드리는 것은 아니고 마지막에 제 이름을 쓴 다음 '엎드림'이라고 썼어요. (중략) 앞에 소개한 김상득 씨의 경우 '엎드림'이라고 보냈더니 그걸 본떠서 '일으켜 세움' 또는 '마주 엎드림', '더 납작 엎드림' 같은 말을 사용해서 답신을 보내온 이가 여럿 있었다고 한다.           79-80쪽

 

유쾌한 장면이다.

이처럼 나만의 어휘를 만들어 지인들과 나누었던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연애할 때 별칭을 짓는다거나 친구들 이름을 형용사로 활용하는 경우를 떠올려보니 빙그레 미소 짓게 된다.

이름이 미정인데 지각을 자주 해서 친구들 사이에서 참 미정미정거린다, 고도 했었는데.

 

4. 우리말의 풍부한 자산 지역말, 방언을 스스럼없이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단어를 그 지역 상황에 맞게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유정의 동백꽃은 실은 강원지역에서는 노란 빛이 도는 생강나무 꽃을 뜻하며 김동인의 감자도 1920년대에는 고구마와 감자를 한데 섞어 감자라고 부르기도 했었다.

 

이 지역에 와서 5년을 살았는데도 사람들은 내 말투만으로 여기 분 아니죠, 라고 한다. 내가 아무리 여기 오래 산다 해도 '느자구'라든가 '귄있다'를 상황에 맞게 살려 쓸 자신은 없다. 제일 적응이 안 되었던 말이 '-하시게요'였는데 명령이 아닌 극존칭이었다.  

 

강원도 사람들은 '뼝대' 혹은 '뼝창'이라는 말을 쓴다, 표준어로 하면 절벽이나 벼랑에 해당하는 말인데, 뼝대와 절벽은 같은 말이긴 하지만 귀에 와 닿는 느낌이 다르다. 강원도가 산간 지역이라는 사실은 다들 알고 있어도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작접 가서 험한 산세를 눈으로 확인하는 것 사이에 커다란 차이가 있다.    99쪽

 

아이들 어릴 때 잠시 강원도에 산 적이 있는데 북한말 억양과 낯선 어휘에 당황한 적이 간혹 있었다. 그러나 강원의 지형을 표현하기에는 그 지역 말만한 것이 따로 없을 것이다.

 

5. 번역어, 사회적 어휘 자산 늘리기 관련한 장에서는 일본 난학자들이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며 많은 어휘를 새로 만들어 쓰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우리는 아무래도 일본의 어휘를 그대로 차용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는 점이 아쉽다.

 

6. 습작기 소설가들은 간혹 사전을 외우기도 한다. 그러나 일상에서 자신만의 어휘를 늘리려면 여러 책 특히 문학작품을 많이 읽어서 늘리는 편이 낫다.

 

여기에 덧붙여 책을 읽기만 하는 것으로 한계가 있는듯하다. 어릴 때 책에 한참 빠져서 뭔가 남들이 안 쓰는 말 어른들이 쓰는 말, 문어체를 그대로 일상에서 쓴 적이 있다. 담임선생님이 편찮으시면 '정양을 잘 하시고' 이런 식으로 말했으니 얼마나 이상하게 보였을까.

 

한정된 분야의 책을 읽기보다는 여러 계층, 여러 연령대의 사람들과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어휘를 확장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회화 학원에서 영어로 말할 때 무슨 뜻이냐고 묻고 답하고 했듯이 국어생활에서도 그런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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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외로

야민정음, 급식체에 대한 생각도 뭉게뭉게.

 

요즘 유행하는 야민정음, 시각적으로 표기가 비슷해 보이는 글자를 다른 글자로 바꾸는 놀이를 한글 파괴라고만 볼 것이 아니라 창의적인 언어 유희 방식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귀엽다를 '커엽다'라고 하는 것이나 멍멍이를 '댕댕이'라고 하는 정도는 봐줄 수 있고,

너무 암호같은 것은 사실 꺼려진다.

 

 

어찌 되었든 간에 국립국어원, 국어 규범에만 얽매이는 언어생활이 아닌 창의적이고 풍부한 언어생활을 위해서는 자신이 자주 쓰는 말, 주변의 언어에 대한 꾸준한 관심이 있어야 할 것이다.

 

얇지만 여러 면에서 언어생활을 돌아볼 수 있는 책이었다.

 

어휘가 풍부한 것도 좋지만 상황에 맞게 적재적소에 정확한 단어를 쓰려면 별도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연유로 앞으로 글을 읽고 쓸 때마다 사전을 자주 찾아볼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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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렸던 복수의 밤
야쿠마루 가쿠 지음, 김성미 옮김 / 북플라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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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이나 등에 문신을 새기고 끝없이 교도소를 들락거리는 사내를 보면 누구나 한심한 인생이라고 혀를 찰 것이다.

 

이름보다 1752번같이 수형번호로 불리는 게 편한 사내.

 

교도관은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출소하는 그에게 하루라도 빨리 안정을 찾으라고 한다. 

 

"교도관님 말씀처럼 하루라도 빨리 안정을 찾도록 노력하겠습니다."  11쪽

 

무심히 읽었던 이 대사가 전체를 다 읽고 나니 너무나 마음 아픈 결심이었음을 이제야 알겠다.

 

*

(내용 유출 주의)

 

쉰아홉인 가타기리라는 재소자는 스물일곱 살에 교도소에 처음 들어간 것을 시작으로 끝없이 범죄를 일으켜 사회와 격리되어 간다.  

 

아내와 딸과 행복한 미래를 꿈꾸던  가타기리는 사소한 시비에 휘말려 조직폭력배에게 상해를 입힌 것으로 구금되어 결국 가정을 잃는다. 그 후 가타기리는 얼굴에 커다란 문신을 새기고 기이한 범죄를 반복하며 전국의 교도소를 떠돌다 잠시 출소한 사이 공장에서 팔을 잃고 그러고도 범죄를 계속해 수감된다.

 

자신의 부인을 구하다 가타기리가 범죄를 저질렀기에 부채감을 지니고 있는 기쿠치, 한심한 아버지를 한순간 외면해 허망하게 보낸 후 가타기리에게 이끌렸던 변호사 나카무라, 가정이 와해되고 외삼촌을 아버지라 믿고 성장한 히카리, 가타기리의 삶을 파괴시킨 가지와라에게 인생을 저당잡힌 아야코,  자신의 범죄를 뒤집어쓰고 가타기리가 교도소에 간 덕에 아들의 임종을 지킨 아라키, 이렇게 다섯 사람의 시선으로 가타기리가 왜 그렇게 범죄를 반복하여 살 수밖에 없었는지 밝혀간다.

 

인생을 걸고 한 여인을 사랑했고 결국 그 여인을 죽게 한 남자를 찾아 전국의 교도소를 떠돌다 자신의 복수를 완성하고야 안정을 찾은 가타기리가 너무나 불쌍하고 한스러워서 이런저런 일을 하다가도 한숨이 나왔다.

 

굉장히 90년대 홍콩 누아르 풍의 이야기이고 신파 그 자체다.

그런데 한 남자가 자신의 인생을 걸고 부인과 딸을 위한다는 그 자체에 매료되었나보다.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자신의 생을 파괴해야만 완성되는 사랑이라니 처절하다.

 

"좋아하기 때문에 어떤 예기치 못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의 절망감은 더욱 크지. 하지만 그런 존재가 마음속에라도 있으면 불행한 삶을 버텨나갈 힘이 되기도 해." 94쪽

 

다섯 사람이 가타기리를 대하는 시선과 그들의 내면, 표면상으로는 중범죄자이지만 그런 인생을 살 수밖에 없는 가타기리의 상황이 잘 그려진다.  

 

특별한 반전은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 반전이 있는 작품이다.

사회파 추리소설이라는 건 이런 풍이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휴가철이나 후텁지근한 여름밤에 볶음우동에 맥주를 마시며 읽기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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