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최근에 장편을 열심히 읽느라 그렇지 않아도 엉망인 집안이 더 난리다.

 

그래도 이 책들을 읽는 동안 푹 빠져서 읽었다.

쾌적한 공간에서 초여름을 느끼며 밀크티를 마시면서 읽는 것이 요즘의 내 낙이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야생동물을 연구한 학자가 일흔에 출간한 소설이다. 

생태학적인 지식에 작가 특유의 감성이 덧입혀졌다.

 

문이과 통섭의 엄청난 저력.

 

방대한 생태학적인 지식을 소설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했다. 오래 야생동물을 관찰하는 건 간절한 기다림과 외로움을 수반하는 일이겠지.   

   

작가는 이 책이 '외로움'에 관한 이야기라고 했는데 과연 그렇다.

 

그냥 외로움도 아닌 절대 고독에 속한다.

 

*

카야의 아버지는 술주정꾼에 가정폭력을 일삼아 가족을 모두 떠나게 만들고 어느 날 그 역시 홀연히 카야를 떠난다.   

 

어린 여자 아이가 야생과 같은 환경에서 홀로 남아 먹을 것을 해결하고 외로움과 추위와 가족과 함께한 기억과 싸워나가는 초반부에 참 슬펐다. 읽고 있는데 전생의 기억인 듯 아득하게 나도 저런 시절이 있는 듯했다.

 

나의 경우 아름다운 대자연이 아닌 좁은 골목과 활자들에 둘러싸인 그런 환경이었지만, 주변 사람들이 다 떠나고 나만 남은 그런 기분이 들 때가 있었다.

 

아무도 이 외로움을 이해할 수 없고 혼자 헤쳐나가야만 한다는 당위에 사로잡힐 때가 있었다.

 

*

카야는 홍합을 따서 기름과 잡화를 파는 점핑에게 가져다주는 것으로 연명한다. 점핑과 그의 부인은 모두가 배척하는 늪지에 사는 소녀를 끝까지 지원한다.

 

또 한 사람 테이트는 카야에게 글을 가르쳐주고 그녀가 생태학자가 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준다. 테이트는 카야의 첫사랑이기도 한데,  대학에 가고 나서 잠시 카야를 저버렸다가 다시 카야와 끝까지 함께한다. 그래도 그들은 평생을 늪지 소녀와 깃털 소년으로 살아간다.

 

카야 인생의 또 다른 남자는 체이스라는 나쁜 남자.

 

초반에 체이스의 죽음과 카야의 어린 시절이 교차되며 서술되어 체이스가 카야의 인생에 어떤 의미일지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후반부에는 나름 반전의 반전을 거듭한다.

그런데 이런 '반전'이 묘미가 아니라 카야라는 캐릭터가 엄청 매력적이라 이야기가 힘을 갖는듯하다.

 

읽다보면 체이스를 누가 죽였는가에 대한 확신이 드는 때가 있다.

 

그런데 사실 체이스를 누가 왜 죽였는가보다는

카야가 앞으로도 '가재가 노래하는 곳'에서 안식을 얻을지에만 마음이 쓰인다.

 

*

 

야쿠마루 가쿠 <신의 아이>도 어쩌면 또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가족이 있지만 없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는 아이가 여기 또 있다.

 

사회파 추리소설작가이자 가족의 끈끈한 정에 집중하는 야쿠마루 가쿠가 이번에도 일본 사회의 여러 문제를 짚어보고 있다.

 

엄마가 키우는 데 돈이 들 거라는 이유로 호적 신고조차 하지 않아 호적 없이 14년간 지낸 소년이 있다. 이 소년이 마치다 히로시이다. 히로시는 엄마가 남자와 만날 때마다 공원으로 쫓겨나는데 그때 미노루라는 지적장애인 소년이 주먹밥을 나누어준다.

 

후에 마치다는 집을 나와 미노루와 어떤 범죄 조직에 속하게 된다. 마치다는 이곳에서 보이스피싱에 가담하며 미노루의 호적으로 살아간다. 호적을 빌린 대신 미노루를 돌보아주는 생활을 하다가 조직이 충성의 맹세로 미노루를 죽이라고 하자 히로시는 거부한다. 이 과정에서 미노루가 조직원을 죽이게 되자 히로시는 조직을 발설하지 않는 조건으로 놓아달라고 하며 미노루의 죄를 뒤집어 쓰고 소년원에 들어간다.

 

소년원에 간 마치다 히로시를 조직의 그 누군가는 포기하지 않는다.

 

나중에 그 누군가는 오랫동안 보육원의 아이들을 지능지수로 선별하여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해왔다는 게 드러난다.

 

그런데 뭔가 결말이 좀 허무해서 이게 뭥미로 끝나고야 말았다.  

 

"범죄라는 건 불행한 인간을 조금 행복하게 하고, 행복한 인간을 조금 불행하게 하지.

 세상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불가결한 것이다."(98)

 

"나는 행복한 인간을 불행하게 하기 위해, 불행한 인간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살아간다. 그뿐이다."(99)

 

 

인용한 부분이 '신의 아이'를 자처하는 조직에서 범죄를 합리화하기 위해 내세우는 구실인데 오래 전의 지존파를 떠올리게 한다. 

 

 

1권은 흡인력이 있었는데 2권에서 급하게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소중함으로 마무리되어 다 보고 나서 허무했다. 

 

 

아무래도 처절한 응징, 권선징악이 좋은 뼛속깊이 한국인. 

 

 

 

사회파 추리소설의 '정의'와는 다른 일들이 요즘 모니터 화면을 가득 메운다. (사회면을 장식한다, 고 무심결에 써버리고 지웠다. ㅋ)

 

자기가 낳은 자식을 돈이 아까워 호적에도 올리지 않는 소설 속 부모보다 더 무심하고 비정한 부모들이 현실에 차고 넘친다. 육아카페에 가면 늘 그런 사람들 소식이 업데이트되고 그들을 비난하고 성토하는 데 그치고 만다.    

 

믿어주고 의지할 만한 존재가 있다면 사람은 어느 순간 일어나게 되어 있다, 는 소박한 낙관을 품고 취약 계층의 삶을 들여다보고 함께 하는 게 어렵다.

 

이만큼 살아보니 다른 사람 핑계 댈 것 없이

나 역시 그릇이 작구나, 품을 수 없구나, 하고 포기하는 단계가 오기도 한다.

 

 

 

 

 

    

 

 

 

 

 

 

 

 

 

 

 

몰입도는 높지만 한동안 정서가 피폐해지는 사회파 추리소설을 치우고

<배를 엮다>를 읽기 시작.

 

왜 이제야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일까?

 

소개받아 두고 한동안 못 보다 어제 할일도 미루고 한참 읽었다.

 

오래 전에 내가 떠나온 세계가 고스란히.

 

졸업하자마자 막 들어갔던 회사 풍경이 떠오른다.

글자공장소녀였던 시절들.

 

 

"사전은 말의 바다를 건너는 배야."

아라키는 혼을 토로하는 심정으로 말했다.

"사람은 사전이라는 배를 타고 어두운 바다 위에 떠오르는 작은 빛을 모으지. 더 어울리는 말로 누군가에게 정확히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만약 사전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드넓고 망막한 바다를 앞에 두고 우두커니 서 있을 수밖에 없을 거야."   36쪽

 

 

<대도해>라는 사전명을 정한 이유

정말 납득이 간다.

 

<행복어 사전>이라고 영화로도 나왔다는데

조만간 꼭 보아야겠다.

 

*

 

책을  보는 중에 자주 중단된 건 아들이 코바늘 좀 도와달라고 불러서였다.

 

여성여성한 취미와 거리가 있어서 아들 덕분에 코바늘을 처음 잡아보았고 유튜브로 보는데도 안 되는 부분이 있어 뜨개방까지 가서 배워 와서 숙제를 마쳤다. 배워서 가르치는데 아들이 배워보려는 의지가 없어 거의 해준 것 같다. 숙제 해주기는 처음이다, 진짜.

 

6학년 아이가 코바늘 수세미 뜨기라니

여전히 우리나라 교육은 백화점 식인듯하다.

 

4차산업혁명 시대에 코바늘 배워 어디다 쓰냐는 사춘기 남자애에게

교육과정에 있으니 배우는 거고

인내와 끈기를 배우는 거라고 답해주기는 했다.

 

 

*

 

이 외에도 소소하게 엄청 읽어대서

딸아이가 요즘 너무나 피곤해 보이니 좀 그만보라고 할 정도였다.

 

주말에 아이가 청소년 문화의 집에서 강좌 들을 때 그곳에 있다가 읽은 책들

 

 

 

 

 

 

 

 

 

 

 

 

 

 

 

 

 

<죽음>은 읽고 있고

<요즘 아이들 마음 고생의 비밀>은 너무나 잘 읽었다.

 

따로 서평을 잘 써보고 싶다. 무기력한 6학년 아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

곧바로 다음날 샤우팅을 하긴 했지만 ㅋ

10-20대를 이해하기 위해서 읽을 만한 책이다.

 

*

 

이렇게 책을 읽고 있으니

 

나도 소설 속 주인공들같이

역시 그런 사람

 

외로운 사람이라 이렇게 활자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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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 있는 서점>은 사두고 계속 안 읽다가 독서 모임 선정 책이 되면서 읽게 되었다. 한 달마다 책이 선정될 때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책이 선정되면 무지 편하다.

그런데 더 좋은 건 내가 가지고 있긴 하지만 읽지 않은 책이 선정되면 더 좋은듯.

 

때로는 적절한 시기가 되기 전까진 책이 우리를 찾아오지 않는 법이죠” 119쪽

 

<섬에 있는 서점>이 막 나왔을 때 사들이고 중간 정도 읽다 두었다. 초반의 뭔가 엉성한 어수선한 분위기가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아침 드라마같은 분위기.

 

소설이 전개될수록 놀라운 사실들이 밝혀지고 결국은 신파인데도 불구하고 이 책이 좋아졌다.

 

떠나간 사람들이 진짜 많은데도 불구하고 어쩐지 해피엔딩인듯.

 

내가 이제는 아이 엄마라는 한계가 있어서 그런지 '아이'가 행복하고 잘 자랐으면 그만인 건가.

 

그리고 아직까지는 책을 그래도 조금은 더 읽는 사람으로서 잘 읽었던 책들이 나오거나 모르는 책이 나와도 무지 반갑고 한번 더 눈여겨 보게 되어 좋았다.

 

일주일 중 제일 한가한 요일에 좋아하는 카페에서 밀크티와 플랫화이트를 마시며 읽어서 더더 좋았던 듯.

 

 

 

  

 

 

 

 

 

 

 

 

 

 

 

 

 

<섬에 있는 서점>에 소개된 책 중에서

특히 반가운 책이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기 위해 책을 읽는다. 우리는 혼자라서 책을 읽는다.
책을 읽으면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301쪽

 

결국 우리는 단편집이야. 수록된 작품 하나하나가 다 완벽한 단편집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알 만큼 읽었다. 성공작이 있으면 실패작도 있다. 운이 좋으면 뛰어난 작품도 하나쯤 있겠지. 결국 사람들은 그 뛰어난 것들만 겨우 기억할 뿐이고, 그 기억도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302쪽

 

 

책에 훌륭한 단편과 장편들이 소개되어 앞으로 읽어야 할 책들이 많아지니

그것 또한 하나의 소득이다.

 

 

*

 

<건지감자껍질파이북클럽>이나 <그런 책은 없는데요> 역시 북클럽과 서점에 대한 이야기들이라 이 책과 엮어서 읽기 좋다.

 

<진짜 그런 책은 없는데요>도 나왔구나.

이번엔 어떤 진상님들이 소개될지.

 

 

 

 

 

 

 

 

 

 

 

 

 

 

 

 

 

 

소설가들의 소설이라는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을 거의 다 읽었고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앞으로 읽을 예정이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에서 어느 편이 가장 좋았는지 말하기 어렵다. 실은 이 소설집을 감히 좋다고 할 수는 없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무신경하게 흘려 넘어갈 부분들까지 집요하게 관찰하여 그에 맞는 언어로 표현하려고 오래오래 공들인 느낌이 난다.

 

끝없이 내가 지나온 생의 어느 단면을 비추어 때로는 아주 환하게 밝히고 때로는 아주 어둡게 가라앉힌다.

 

 

 

 

 

 

 

 

 

 

 

 

 

 

 

 

 

 

어제 기후가 불안정한 날

도서관에서 순식간에 읽었다.

 

아이랑 도서관에 가면 몰입도가 높은 일본 사회파 추리소설류를 보는듯하다. 약간의 길티 플레저를 품고.

 

아이는 문제집을 가져가더니만(내가 풀라고 한 적도 없는데) 옆에서 줄곧 출간된 웹툰만 보고 있었다. ㅋ 

 

<고백>은 명성대로 진짜 숨도 안 쉬어지게 사람을 몰아간다. 구명보트에 몇 명만 탈 수 있는데 누굴 태울거냐 라는 식의 질문을 정말 좋아하지 않는데, 이 소설은 내내 이런 식이다.

 

읽으면서 으으으 미간을 찌푸리게 되고 이미 사회면 기사에서도 이런 흉측한 일들을 자주 보는데 왜 자꾸 보게 되는 것일까?

 

 

아마도 내 안 어딘가에 이런 음습함이 있는 건가 ㅋ

 

 

 

 

 

 

 

 

 

 

 

 

 

 

 

 

갈루아의 <만화로 배우는 곤충의 진화>를 아들이 진짜 재미있게 보아서

<만화로 배우는 공룡의 생태>도 주문했다.

 

<세뿔돼지>라는 단편이 딸려 와서 먼저 보았는데 병맛 코드. 사춘기 남자애는 참 좋아한다.

 

 

 

딸아이는 내가 여기 한데 모아 정리할 수 없을 정도로 이런저런 책을 즐겨 읽고 있다.

 

반면에 아들의 독서는 진짜 빈약하다. 웹툰 모음에 치우쳐 있다. 예능에 빠져서 시간을 허비하고 있기도 하다. 또 이렇게 지나가는 시간인가보다 하고 그냥 두고 있다.

 

이제 내 책을 읽느라 따로 아이들 책을 봐줄 여력이 없다.

 

그냥 언젠가 또 자신들 페이스를 찾을 날이 오리라 믿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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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잠이 드는 게 어쩐지 아까워서 이런저런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연예인이 일반인 가정에 방문해 함께 밥을 먹는다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장충동'

 

어릴 때 서울에서 남산은 자주 갔지만 장충동은 기억에 없다. 밝은 빛이 없는 엄마 이야기 속에서 그래도 좋은 기억으로 가끔 등장하는 동네.

 

엄마 아빠의 연애 시절의 기억이 담긴 공간이라고 한다. 좋은 기억으로 대화를 시작하다가 결국은 그래서 뭐 아무것도 없지, 이런 패턴으로 진행되는 대화에 질릴 대로 질려서 과거 회상은 가급적 하지 않는 편이다.

 

어제는 나가는 학교 공개수업을 나름대로 무사히 마치고

엄마에게 안부를 물었다.

 

최근 일주일간의 근황만.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이라 하시니 감사할 뿐이다.

 

*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을 천천히 읽었다.

읽다가 흐름을 놓쳐 다시 읽기를 여러 차례.

어쩐지 그 장면이 그 장면 같기도 한 회상들.

 

시가로부터 출신이랄 것도 없는 출신의 아이라는 평을 받는 루시 바턴은 이제는 작가로 성장해 자신만의 삶을 꾸려가고 있다. 그래도 아플 때는 원 가정이 생각나기도 할 것이다. 가벼운 병으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 엄마와 대화를 나누기를 원한다. 하지만 예전 이야기라는 것들은 거의 전에 알던 사람들이나 함께한 아주 오래전의 시공간에 대한 단편들일 뿐이다. 대화는 자주 어긋난다. '나' (루시 바턴)는 엄마가 나의 삶에 대해 물어봐주기를 바라지만 엄마에게는 그럴 여력이 없다.

 


사람은 지치게 마련이라는 것을. 마음, 영혼, 혹은 몸이 아닌 뭔가에 우리가 어떤 다른 이름을 붙이건 그것은 지치게 마련이다. 100쪽

우리가 다른 사람 혹은 다른 집단보다 스스로를 더 우월하게 느끼기 위해 어떤 방법을 찾아내는지가 내게는 흥미롭다. 그런 일은 어디에서나, 언제나 일어난다. 그것을 뭐라고 부르건, 나는 그것이, 내리누를 다른 누군가를 찾아야하는 이런 필요성이 우리 인간을 구성하는 가장 저속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111쪽

다른 사람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 그것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절대로 알지 못하며, 앞으로도 절대 알 수 없을 것임을. 138쪽

"자기가 하게 되는 이야기는 오직 하나일 거예요.""하나의 이야기를 여러 방식으로 쓰게 될 거예요. 이야기는 걱정할 게 없어요. 그건 오로지 하나니까요." 169쪽


작가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생의 부침을 담담하게 전하고 있다. 다들 이런저런 일을 겪고 그래도 살아남았다. 엄마나 이모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같다. 어느 집 아이가 어느 학교에 가서 무슨 일을 하다가 그만 결혼을 했는데 이렇게 안 되었더라, 혹은 이렇게 잘 되었다더라 하는 이야기들.

 

 

일어난 사건은 명확하지만, 여러 입을 거치며 조금씩 변주된다. 자신이 현재 처한 처지에 맞게 그 상황이 변주되는 것을 듣는 것이 흥미롭다.

 

 

<한 여자>도 아껴가며 잘 읽었다.

 

 앞으로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다. 여자가 된 지금의 나와 아이였던 과거의 나를 이어 줬던 것은 바로 어머니, 그녀의 말, 그녀의 손, 그녀의 몸짓, 그녀만의 웃는 방식, 걷는 방식이다. 나는 내가 태어난 세계와의 마지막 연결 고리를 잃어버렸다.  110쪽

 

나에게도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두렵다. 엄마를 생각해서 그런 게 아니라 나를 생각해서 두려운 거라 생각하면 더 서글프다.

 

 

 

 

 

 

 

 

 

 

 

 

 

 

 

 

 

 

 

 

 

 

 

분위기 전환차 읽은 <망원동 브라더스>

 

중반까지 읽다가 포기할까 했는데 다 읽고 나니

딱 이 시기에 읽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지쳐서 역시 대책없는 해피엔딩이 필요해.

 

뭔가 <아는 형님>같은 왁자한 분위기에 젖어 피식하다가

아, 만약에 이들이 현실 남자친구나 남편이라면

여초 사이트에 살아야 하나요, 말아야 하나요

사연을 올릴 만한 일들이 가득이네그려.

 

 

 

소문으로 익히 듣다가 이제야 읽는 <당신의 노후>

할일이 많고 기분이 엄청 가라앉은 일요일 새벽에 다 읽었다.

 

바로 앞 핀시리즈 <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와 구성이 겹치는듯 아닌듯.

 

요즘의 노인 혐오 분위기(틀딱, 할줌마 등)를 보아하니 이미 소설 속 일들이 진행되고 있는 건 아닌지.

 

국민연금을 현재는 납입하고 있지 않아 다행인 건가, 불행인 건가.

 

'노후'라는 괴물에 잠식당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지만

때로는 과도한 불안에 사로잡힐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면 일종의 이이제이.

불안을 또 다른 불안으로 몰아낸다.

 

아아아

 

내가 아주 먼(?) 내 '노후'를 벌써부터 걱정할 때가 아니지.

애들도 아직 더 키워야 하고 양가 어머님도 그래도 가끔은 뵈어야 하고. 

 

이런 식으로 겨우 마음을 가라앉혔다. 후훗.

 

아무튼 <파과>를 읽었을 때와 같은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주변에서 마주치는 연장자분들을 더 이해하고.....그럴 수 있을까, 과연.

노화에 대한 대국민 계몽의식이라도 벌여야 하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죽은 노인은 착한 노인이다. 자살한 노인은 우리 사회의 동지다. 76쪽

 

제 풀에 격해진 젋은이가 가슴까지 들썩이며 말했다.

" 왜 안 죽어? 응? 늙었는데 왜 안 죽어! 그렇게 오래 살면 거북이지 그게 사람이야? 요즘 툭하면 100살이야. 늙으면 죽는 게 당연한데 대체 왜들 안 죽는 거야!......." 126쪽

 

*

 

아니, 아니지

실은 내가 급속도로 노화를 겪고 있는듯해 요 며칠 심난했다.

 

독서모임 분들과 내가 아는 카페를 찾아가야 할 일이 있었다.

 

원래 가던 길이 아닌 다른 골목으로 접어들다보니 도무지 알 수가 없고

갑자기 앱을 켜려다 버벅거려서 아무데나 들어가고야 말았다.

 

불운하게도 그곳은 청년들 인스타에 핫한 곳이었고

음료도 원하던 맛이 아니라 일행에게 너무 미안했다.

 

본가 근처 식당에서 약속을 잡을 때

엄마가 집이 아닌 다른 데서 그곳을 찾아오실 때 못 찾고 헤매시면 답답해했는데

이제 내가 그러고 있다.

 

 

 

 

 

 

 

 

 

 

 

 

 

 

 

 

여러 가지 상념에 빠져들기보다는 당면한 문제 해결이 필요하겠지.

 

초반을 읽고 있는데 실제 나의 양육과 수업에 적용시킬 일이 늘 고민이다.

일단은 친해져야 함께 뭔가 쓰고싶어지는 것은 맞다.

 

우리 아이들은 읽는 건 그래도 또래보다 꾸준하지만

별로 쓰고 싶어하지 않는다.

 

딸아이는 전에는 학교 신문에 글도 실린 적이 있고 일기도 공들여 쓰는 편이었는데

4학년에 되어 여자애들 카톡에 빠져들면서 조금 주춤하다.

 

아들은 늘 그렇듯이  할말도 없는데 쓸건 더 없다고 ㅎ

 

주로 먹는것과 예능, 영화, 가끔 역사 이야기 정도 나눈다. 어제인가는 꽤나 심각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뻔하다가 운동 가야 할 시간이 되어 집을 나섰다.

 

*

 

 

지쳤을 때는 어떻게 다시 힘을 내어야 하는 건지

여전히 알 수가 없어서

늘 하던 대로 활자의 숲으로, 숲으로만

다니고 있다.

 

 

*

진짜 숲길을 걷고 싶다.

 

5월의 담양 같은 그 길들.

 

혹은 화순의 옛길들.

 

아쉬운 대로 오늘은

산수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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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지만

그저 잠시 쉬어간다.          

 

 

함지 (地)                                                      

  • 1.

    명사 움푹 꺼져 들어간 .

  • 2.

    명사 북한어 사방에서 공격을 받아 빠져나가기 어렵게 처지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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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가 잠든 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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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어가 잠든 집>은 과히 한국판 '마더'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강렬한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추리소설 계열은 아니고 <편지> 같은 계열의 휴먼 드라마 같은 분위기이다.

 

뇌과학 분야의 회사를 경영하는 가즈마사와 그의 아내 가오루코는 가즈마사의 외도 때문에 별거 중이었다. 곧 이혼을 앞두고 있고 각자 일상을 보내던 중에 그들의 딸 미즈호가 호텔 수영장에 빠져 의식불명이 되었다는 소식을 접한다. 

 

의사는 부부에게 미즈호의 상태를 말하고 장기 기증 의사를 묻는다. 부부는 고심 끝에 장기 기증을 결심한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딸의 손을 잡은 순간, 미세한 움직임을 느낀 듯하여 딸을 포기하지 못하고 이혼도 보류하며 누워 있는 상태의 딸을 위해 혼신을 다한다.

 

첨단 뇌과학 분야의 회사를 경영하는 가즈마사는 인공호흡기 대신 AIBS라는 기계를 쓰게 하고 특수한 장치로 근육을 움직이게 하는 기계를 써서 뇌의 작용이 없이도 딸을 움직이게 한다. 그렇지만 기계로 하는 일에는 한계가 있어 가오루코가 친정엄마와 함께 24시간 아이 상태를 세세히 살핀다. 그 결과 아이는 일반 뇌사 상태의 환자들과 달리 건강하게 잠들어 있는 듯이 보인다.

 

자신의 인생도 포기하고 그렇게 해서라도 아이를 보고 싶은 '가오루코'의 심정도 이해된다. 하지만 엄마가 누나에게만 매달리는 동안 남동생 이쿠토의 마음은 곯아만 갔다. 가오루코는 아들의 생일 잔치를 하는 날에도 아들의 심정보다는 아들친구들에게 누워 있는 딸이 기계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줄 생각에 들떠 있었다. 움직이는 것만 보여주면 아들친구들이 누나를 이유로 따돌림을 하지 않을 거라는 비정상적 사고에 빠졌던 것이다. 성장과정에서 줄곧 상처받았던 이쿠토는 실은 생일잔치에 아무도 초대하지 않았다.   

 

가오루코는 미즈호에게만 빠져들어 자신의 인생, 남은 가족의 인생에도 마음을 쓸 여력이 없었다. 여러 사건을 겪고 나서 꿈결인듯 미즈호가 나타나 진정한 작별의식을 치르고 나서야 딸을 떠나보내게 되었다.

 

소설 초반부에 실은 '뇌사 판정'이라는 용어가 장기 기증을 염두에 두고 나온 표현이라는 데 놀랐다. 살아 있는 이의 장기를 함부로 적출할 수 없으니 뇌사 판정은 진짜 엄격하게 시간 차를 두고 여러 번 행해지고 있었다. 장기 기증을 기다리는 사람은 너무나 많은데 기증자는 적으니 해외로 나가 기증을 받고 오기도 한다. 소설 중반부에 난치병과 장기 기증에 관한 여러 물음이 등장한다.

 

생명의 가치와 돈의 문제.

결국 난치병에 걸리면 살아남을 수 있는 쪽은 경제력이 있는 사람들뿐이다. 막대한 비용을 들여서라도 해외에 나가서 이식을 받고, 그 지역 가난한 이들은 또 막연하게 기증자를 기다려야 한다.

 

평소에 장기 기증을 막연하게 필요한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와 가족의 문제로 닥치면 의연하게 결정할 수 있을까?

 

가즈마사 부부같이 막강한 경제력이 있다면, 혹은 기술이 발달하는 요즘이라면 일말의 희망을 품고 기다릴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만 세계의 여러 사례를 보아도 장기간 뇌사였다가 기적적으로 깨어난 일은 없다고 한다. 일부는 신체가 자라는 현상이 보여도 진정한 회복은 아니라고 한다. 사고를 당하기 이전의 상태가 될 확률이 거의 없다면 남은 가족은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할까?

 

미즈호는 들판에서 네잎클로버를 발견하고도 자신은 이미 충분히 행복하니 다른 사람을 위해 두고 가겠다고 말할 정도로 심성이 고운 아이였다. 그런 아이라면 아마도 부부의 결단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며칠 전에 우연히 어떤 기사를 보게 되었다. 호텔수영장에서 사고를 당해 뇌사 판정을 받은 아이의 가족이 장기 기증을 결정했다는 이야기였다.  가족여행 사진 속에서 너무나 환하게 웃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큰아이와 같은 학년이라 그런지 더 오래 마음에 남았던 차에 우연히 이 책을 읽게 되어 그런지 여러 생각이 스쳐간다.

 

인생에서 큰 불행을 피할 수는 없는 일이고 그 이후의 수습은 어찌해야 하는 것인지 묻는 이야기였다.

 

삶과 죽음의 순간을 누가 정하는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받아들이고 애도할 수밖에 없는 남은 자의 시간을 지켜보는 이들은 그들을 충분히 기다려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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