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최근에 장편을 열심히 읽느라 그렇지 않아도 엉망인 집안이 더 난리다.
그래도 이 책들을 읽는 동안 푹 빠져서 읽었다.
쾌적한 공간에서 초여름을 느끼며 밀크티를 마시면서 읽는 것이 요즘의 내 낙이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야생동물을 연구한 학자가 일흔에 출간한 소설이다.
생태학적인 지식에 작가 특유의 감성이 덧입혀졌다.
문이과 통섭의 엄청난 저력.
방대한 생태학적인 지식을 소설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했다. 오래 야생동물을 관찰하는 건 간절한 기다림과 외로움을 수반하는 일이겠지.
작가는 이 책이 '외로움'에 관한 이야기라고 했는데 과연 그렇다.
그냥 외로움도 아닌 절대 고독에 속한다.
*
카야의 아버지는 술주정꾼에 가정폭력을 일삼아 가족을 모두 떠나게 만들고 어느 날 그 역시 홀연히 카야를 떠난다.
어린 여자 아이가 야생과 같은 환경에서 홀로 남아 먹을 것을 해결하고 외로움과 추위와 가족과 함께한 기억과 싸워나가는 초반부에 참 슬펐다. 읽고 있는데 전생의 기억인 듯 아득하게 나도 저런 시절이 있는 듯했다.
나의 경우 아름다운 대자연이 아닌 좁은 골목과 활자들에 둘러싸인 그런 환경이었지만, 주변 사람들이 다 떠나고 나만 남은 그런 기분이 들 때가 있었다.
아무도 이 외로움을 이해할 수 없고 혼자 헤쳐나가야만 한다는 당위에 사로잡힐 때가 있었다.
*
카야는 홍합을 따서 기름과 잡화를 파는 점핑에게 가져다주는 것으로 연명한다. 점핑과 그의 부인은 모두가 배척하는 늪지에 사는 소녀를 끝까지 지원한다.
또 한 사람 테이트는 카야에게 글을 가르쳐주고 그녀가 생태학자가 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준다. 테이트는 카야의 첫사랑이기도 한데, 대학에 가고 나서 잠시 카야를 저버렸다가 다시 카야와 끝까지 함께한다. 그래도 그들은 평생을 늪지 소녀와 깃털 소년으로 살아간다.
카야 인생의 또 다른 남자는 체이스라는 나쁜 남자.
초반에 체이스의 죽음과 카야의 어린 시절이 교차되며 서술되어 체이스가 카야의 인생에 어떤 의미일지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후반부에는 나름 반전의 반전을 거듭한다.
그런데 이런 '반전'이 묘미가 아니라 카야라는 캐릭터가 엄청 매력적이라 이야기가 힘을 갖는듯하다.
읽다보면 체이스를 누가 죽였는가에 대한 확신이 드는 때가 있다.
그런데 사실 체이스를 누가 왜 죽였는가보다는
카야가 앞으로도 '가재가 노래하는 곳'에서 안식을 얻을지에만 마음이 쓰인다.
*
야쿠마루 가쿠 <신의 아이>도 어쩌면 또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가족이 있지만 없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는 아이가 여기 또 있다.
사회파 추리소설작가이자 가족의 끈끈한 정에 집중하는 야쿠마루 가쿠가 이번에도 일본 사회의 여러 문제를 짚어보고 있다.
엄마가 키우는 데 돈이 들 거라는 이유로 호적 신고조차 하지 않아 호적 없이 14년간 지낸 소년이 있다. 이 소년이 마치다 히로시이다. 히로시는 엄마가 남자와 만날 때마다 공원으로 쫓겨나는데 그때 미노루라는 지적장애인 소년이 주먹밥을 나누어준다.
후에 마치다는 집을 나와 미노루와 어떤 범죄 조직에 속하게 된다. 마치다는 이곳에서 보이스피싱에 가담하며 미노루의 호적으로 살아간다. 호적을 빌린 대신 미노루를 돌보아주는 생활을 하다가 조직이 충성의 맹세로 미노루를 죽이라고 하자 히로시는 거부한다. 이 과정에서 미노루가 조직원을 죽이게 되자 히로시는 조직을 발설하지 않는 조건으로 놓아달라고 하며 미노루의 죄를 뒤집어 쓰고 소년원에 들어간다.
소년원에 간 마치다 히로시를 조직의 그 누군가는 포기하지 않는다.
나중에 그 누군가는 오랫동안 보육원의 아이들을 지능지수로 선별하여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해왔다는 게 드러난다.
그런데 뭔가 결말이 좀 허무해서 이게 뭥미로 끝나고야 말았다.
"범죄라는 건 불행한 인간을 조금 행복하게 하고, 행복한 인간을 조금 불행하게 하지.
세상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불가결한 것이다."(98쪽)
"나는 행복한 인간을 불행하게 하기 위해, 불행한 인간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살아간다. 그뿐이다."(99쪽)
인용한 부분이 '신의 아이'를 자처하는 조직에서 범죄를 합리화하기 위해 내세우는 구실인데 오래 전의 지존파를 떠올리게 한다.
1권은 흡인력이 있었는데 2권에서 급하게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소중함으로 마무리되어 다 보고 나서 허무했다.
아무래도 처절한 응징, 권선징악이 좋은 뼛속깊이 한국인.
*
사회파 추리소설의 '정의'와는 다른 일들이 요즘 모니터 화면을 가득 메운다. (사회면을 장식한다, 고 무심결에 써버리고 지웠다. ㅋ)
자기가 낳은 자식을 돈이 아까워 호적에도 올리지 않는 소설 속 부모보다 더 무심하고 비정한 부모들이 현실에 차고 넘친다. 육아카페에 가면 늘 그런 사람들 소식이 업데이트되고 그들을 비난하고 성토하는 데 그치고 만다.
믿어주고 의지할 만한 존재가 있다면 사람은 어느 순간 일어나게 되어 있다, 는 소박한 낙관을 품고 취약 계층의 삶을 들여다보고 함께 하는 게 어렵다.
이만큼 살아보니 다른 사람 핑계 댈 것 없이
나 역시 그릇이 작구나, 품을 수 없구나, 하고 포기하는 단계가 오기도 한다.
몰입도는 높지만 한동안 정서가 피폐해지는 사회파 추리소설을 치우고
<배를 엮다>를 읽기 시작.
왜 이제야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일까?
소개받아 두고 한동안 못 보다 어제 할일도 미루고 한참 읽었다.
오래 전에 내가 떠나온 세계가 고스란히.
졸업하자마자 막 들어갔던 회사 풍경이 떠오른다.
글자공장소녀였던 시절들.
"사전은 말의 바다를 건너는 배야."
아라키는 혼을 토로하는 심정으로 말했다.
"사람은 사전이라는 배를 타고 어두운 바다 위에 떠오르는 작은 빛을 모으지. 더 어울리는 말로 누군가에게 정확히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만약 사전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드넓고 망막한 바다를 앞에 두고 우두커니 서 있을 수밖에 없을 거야." 36쪽
<대도해>라는 사전명을 정한 이유
정말 납득이 간다.
<행복어 사전>이라고 영화로도 나왔다는데
조만간 꼭 보아야겠다.
*
책을 보는 중에 자주 중단된 건 아들이 코바늘 좀 도와달라고 불러서였다.
여성여성한 취미와 거리가 있어서 아들 덕분에 코바늘을 처음 잡아보았고 유튜브로 보는데도 안 되는 부분이 있어 뜨개방까지 가서 배워 와서 숙제를 마쳤다. 배워서 가르치는데 아들이 배워보려는 의지가 없어 거의 해준 것 같다. 숙제 해주기는 처음이다, 진짜.
6학년 아이가 코바늘 수세미 뜨기라니
여전히 우리나라 교육은 백화점 식인듯하다.
4차산업혁명 시대에 코바늘 배워 어디다 쓰냐는 사춘기 남자애에게
교육과정에 있으니 배우는 거고
인내와 끈기를 배우는 거라고 답해주기는 했다.
*
이 외에도 소소하게 엄청 읽어대서
딸아이가 요즘 너무나 피곤해 보이니 좀 그만보라고 할 정도였다.
주말에 아이가 청소년 문화의 집에서 강좌 들을 때 그곳에 있다가 읽은 책들
<죽음>은 읽고 있고
<요즘 아이들 마음 고생의 비밀>은 너무나 잘 읽었다.
따로 서평을 잘 써보고 싶다. 무기력한 6학년 아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
곧바로 다음날 샤우팅을 하긴 했지만 ㅋ
10-20대를 이해하기 위해서 읽을 만한 책이다.
*
이렇게 책을 읽고 있으니
나도 소설 속 주인공들같이
역시 그런 사람
외로운 사람이라 이렇게 활자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