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계기로 알게 된 동네 엄마가 갑자기 카톡을 보내왔다. 포스터 한 장과 일정표가 있었고 따로 비용은 없으니 시간 되면 갈 수 있냐고 물어왔다. 마침 수업이 없는 날이라 간다고 답은 했는데 전에 알던 엄마가 신천지 모임 비슷한데 데려간 적이 있어 의심병이 또 도졌다. 포스터에 있는 연락처로 주관은 어디에서 하느냐고 꼬치꼬치 물어보았다.

 

청년은 잠시 웃더니 우리동네협동조합이라는 담양의 청년들이 사회적 기업으로 꾸려갈 단체에서 공정여행 파일럿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했다. 혹시 신천지는 정말 아니죠, 라고 했으니 얼마나 황당했을지.

 

화요일 아침에 너무 감사하게 은하 씨가 데리러 와서 투어행 버스에 올랐다. 먼저 간 곳은 관방제림 뒷편의 연화촌이라는 곳이었다. 아이들 데리고 다니던 뒷편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게 한적한 숲길이 있었다. 죽암 전명운 의사 추모비가 건너다 보였다.  관방제림에 관련된 이무기 설화를 설명해주셨고, 여러 야생화, 이팝나무를 지나 플라타너스 가득한 길로 들어섰다. 그곳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다리를 지나 우리가 익히 아는 그 관방제림으로 들어섰다.

 

 

평일 오전 관방제림은 한산하고 녹음이 우거진 관광공사 사진 공모전에 나오는 그런 분위기였다. 자전거를 타는 관광객 몇이 있을 뿐.

우왕. 역시 평일 여행이 진리! 

 

관방제림 바로 근처에 담빛예술창고라는 문화공간이 있다. 전시관과 카페를 겸하고 있는데 지역 육아카페와 SNS에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진 유명한 곳이다.

 

 

전시관에 들어가 '컨템포러리아트 인 남도' 전을 관람했다. 동시대의 남도 작가들의 작품을 보았는데 큐레이터의 설명이 없으면 보기 힘든 팝아트 등 여러 작품을 보았다. 반가사유상 자세를 취하고 앉아 있는 미키마우스, 돌로 정교하게 만든 명품가방, 몽유도원탁상도 등이 기억에 남는다.

 

 

진짜 그 L가방 같은 정교한 조각

 

 

몽유도원탁상도

 

 

 여기는 카페공간

전에 가본 나주 남양유업공장 더카페를 연상시키는 분위기

 

 

 

카페 공간으로 이동해 정원을 바라보며 라떼를 마셨다. 카페 공간 뒤로 가보니 재미있는 조각들도 많았다.

 

그곳 창가 자리는 정말 오래 앉아 책 보고 싶은 그런 곳.

적당히 서늘한 바람과 꽃향기, 풀내음을 머금은 초여름 분위기가 완연한 곳이다.

 

 

패키지로 오긴 했지만 서로 적당히 떨어져 담소하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밥을 먹으러 근처 황금소나무라는 곳에 갔다. 담양에는 정말 한정식집이 많은데 외지인들이 오면 사실 어느 곳을 가도 다 맛있다. 엄청나게 많은 비슷비슷한 반찬이 나오고 많이 버려지니 안타까울 뿐이다.

 

아이들과 주로 소쇄원 근처 절라도 식당만 갔었는데 이곳은 깔끔한 퓨전한정식이라 괜찮았다. 흑임자 소스와 유자 소스를 주로 냈고 적당한 반찬만 주는 게 마음에 들었다. 진도울금효소가 후식인 것도 마음에 든다.

 

 

두부탕수 우왕 ^^

 

 

 

이후 먹감촌이라는 체험장에 갔다. 그 지역 먹거리 먹감을 요리에 활용해 곶감 머핀을 만드는 체험을 했다.

 

 

 

 

 

 

 

 

 

 

 

 

 

 

 

 

요리하시기 전에 '첫번째 질문'이라는 책을 읽어주셨는데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좋았다.   

 

몇 살의 나를 가장 좋아하나요?

 

어떻게 나이들어 가고 싶나요?

 

이 외에도 그간의 생활을 돌아볼 여러 잔잔한 질문을 담고 있는 책이었다. 이런 질문이 곶감 머핀과 무슨 상관이냐고 하겠지만 매우 연관이 깊다고 감히 주장해본다. 오후 세 시에 홍차와 즐기는 머핀에는 다양한 부재료가 들어갈 수 있다. 주로 아몬드와 같은 견과류가 들어가지만 이렇게 의외의 재료를 조합해 훌륭한 맛을 낼 수도 있다. 우리 삶도 때로는 전혀 의외의 요소가 들어가 풍요롭게 되는 때도 있으니.

 

결론.

전통 식품인 '곶감'과 영국 '머핀'의 조합도 나쁘지 않았다. 다만 우리 조가 성격이 급한 아줌마 셋이라 순서가 꼬였을 뿐.

 

머핀이 구워질 동안 '까망감'이라는 인스타 갬성 충만한 곳에서 차를 마시며 주최측이 준비한 버스킹을 즐겼다.

 

 

 

 

완성된 머핀을 카페로 가져다주셨다 ^^ 

 

 

야외에서 하기 힘든 특성상 카페에서 들었는데 여행을 이끄는 청년 분이 실은 디지털싱글도 낸 가수였다. 이 지역에서 주로 공연하시는 봉훈님은 요새 유행하는 잔나비 노래를 시작으로 마지막에 자작곡으로 공연을 마무리하셨다. 손물결도 만들고 간만에 총각선생님에게 환호하는 여고생같이 관람해서 창피한지 같이 온 엄마가 어느새인가 안 보였다. ㅎ 창피한 건 아니고 근처 웅덩이에 올챙이가 있다고 해서 산책하고 왔다고 했다. 카페 야외 마당으로 나와서 아가씨들이 하듯이 돗자리에 앉아 화관도 쓰면서 이런저런 설정 사진도 찍었다.

 

 

마지막으로 단체사진을 찍고 간단히 설문조사를 하고 헤어졌다.

 

다시 만나기는 힘든 조합이겠지.

 

이렇게 다시 만나기 힘든 사람들과 함께할 때 최대한 좋은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다.

 

원래 사진 찍히는 것을 즐기진 않는데 열심히 요소요소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이제 감사한 마음을 담아

홍보에 도움이 되게 여러 곳에 글을 남길 생각이다.

 

 

 

*

 

사진을 진짜 흥분해서 과장 안 하고 100장도 넘게 찍어 잘 추려보아야겠다.

 

같이 간 은하 씨가 주로 풍경사진을 찍는 나에게 외로운 사람들이 풍경을 많이 찍는대요, 라고 해주어 정신이 퍼뜩 들었다. 앞으로는 함께 다니는 사람들을 더 담아야겠다.

 

버스킹 중에 디지털싱글을 낸 봉훈 님이 새벽 두 시반에 들으면 우울 터지는 노래라고 자기 노래를 소개하셨는데 새벽에 들어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모든 남녀상열지사 노래에 이제는 크게 가슴 아프지 않아 더 씁쓸하다.

 

 

 

 

 

 

 

 

 

 

 

 

 

 

 

 

우리 좀 가벼웠으면, 즐거웠으면 좋겠어요.

-----------------------

여성학자 박혜란

 

 

가벼이, 가벼이 살려고 오늘도 노력한다. 내가 즐거워하는 일이 무엇인가, 나는 어떤 사람을 만날 때 행복한가, 어떤 이야기를 전할 때 좋은가를 곱씹는다. 최소한 비장하지는 않게 옆 사람과 어느 정도 경쾌하게 템포를 맞추고 싶다.                             1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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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많은 일이 있었던 가정의 달 초반이었다.

그 가운데 읽고 있는 책들.

 

은유 님 책을 꽤 오래 붙들고 있었다. 어렵게 글을 쓰는 분은 아닌데 당시의 내 상황이 어려워서 그런지 더디게 읽혔다.

 

읽다가 아는 분 성함이 나와서 놀랐다. 대학 때 동아리 간사를 해주신 분인데 성착취 당하는 청소년들을 돕고 계시는구나.

 

성함으로 기사도 검색해보았다.

참, 여전하시네, 하고 반가웠다.

연락을 하게 될 것 같지는 않지만 그렇게 지내실 거라고 예상했던 그 모습 그대로여서 많이 감사하다.

 

*

대학 때 나는 여성주의자도, 투사도 아닌 그냥 '상처받은 아이'였던 듯하다. 낯선 환경에 적응 못하고 과도하게 밝은 새내기 역을 자처하던 내게 간사님은 '뻥쟁이'라고  하셨다. 나의 본질을 꿰뚫어 보신 분 같다. 입으로는 소외된 여성, 민중이 어쩌고 했지만, 현실은 가장 소외된 여성인 엄마를 보듬지 못하고 있었으니.

 

결혼, 출산, 양육을 통해 켄 로치의 '되어보기의 망토'를 직접 입고 나서야 내가 십대이십 대 때 답답하게만 보았던 '그 아줌마들', '엄마', '이모'의 행동을, 감정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

 

계속해서 은유 작가님은 가사, 육아를 온전히 전담해본 시기가 있었던 사람들이라면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자본주의와 가부장제가 촘촘히 맞물려 돌아가는 이런 사회제도 하의 중년 여성은 가정에서 이중의 임무를 떠맡는다. 자녀 양육과 부모 봉양이라는 사회적 돌봄 기능은 아무런 비용 지불 없이 여성에게 떠맡겨진다. 작가님이 간간히 토로하는 양육의 힘겨움과 봉양의 까다로움이 절절하게 와닿았다.

 

요즘 남성들은 미취학 아동을 기르는 수고로움까지는 공감하면서도 생애 주기를 통해 가정 내에 돌봄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은 간과하는 듯하다. 초등고학년 사춘기에 이르기까지 아이들과 소통하고 먹거리를 챙겨주고 또 여러 지병으로 고생하시는 부모님들의 안부를 묻고 병원에 동행하고 하는 건 모두 사사로운 일로 취급된다. 시간과 품이 많이 드는 돌봄노동은 여전히 '사회제도'가 아닌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 가정 내 사적 돌봄에 머문다.

   

*

 

 

은유 님 책을 읽다보면  성인 여자의 애니메이션 타임(大人女子のアニメタイム)이라는 서늘한 작품이 떠오르기도 한다. 특히 야마모토 후미오의 '어딘가가 아닌 여기에'를 각색한 삽화가 기억에 강하게 남는다. 주인공은 마트 캐셔를 하며 아이들을 기르지만 사춘기 아이들은 엇나가고 연로한 부모는 딸에게 의지하려고만 하고 남편은 가정에 큰 관심이 없다.  

 

 

 

그 고단하고 지난한 삶이 이제는 이해가 된다. 누가 그렇게 살라고 한 적 없는데 어느새인가 그렇게 살고 있는.

 

삶은 언제나 언어를 초과하고, "인간이 명료함을 갈구하는 존재라는 건 삶의 본질이 어정쩡함에 있다는 뜻"이라는 말에도 공감한다. 

   

 

 

그래도 글쓰는 학인들과 연대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려는 작가님의 노력이 간간이 보여서 작은 희망을 찾게 된다.

 

 

자기 언어로 쓰고 연대하고 주변에 소소한 친절을 베풀라!

확실한 것, 무조건 옳은 것이 하나도 없는 이 세상에서 그마저 없다면 얼마나 삭막할지.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이 그림책도 따스했다.

 

헌신하고 희생하신 우리 어머님들의 언어.

뜻밖에도 어떤 회한 없이 담백하게 살아온 이야기를 하시며 그 힘든 세월을 누구의 원망으로 돌리지 않고 순순히 받아들이시는 태도에 감동했다.

 

<아직 즐거운 날이 잔뜩 남았습니다>를 보면서 조금 과장해서 평행우주급으로 거의 다른 시공간을 사는 우리 부부도 나중에는 저렇게 소통하며 지낼 수 있는 노년이 되게 노력해보자는 다짐을 했다.

 

홧병 다스리는 비법을 어느 유튜브에서 봤는데 상대(파도)는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파도가 모래성을 허물듯이 파도는 그렇게 치는 것이니 원망하지 말고 모래성을 옮기란다.

 

그러니까 파도가 치든 말든 '내 모래성(내 감정)'을 지키라는 것이다. 애초에 바닷가를 잘 선택했어야 했나. ㅎ  현재는 뭐 주위를 보니 어느 해변도 다 거기서 거기더라고. 훗.

 

 

 

 

 

 

 

 

 

 

 

 

 

 

 

 

 

 

 

집 근처 북카페에서 읽었는데 아무튼 시리즈는 부담없이 읽기 좋다.

 

<아무튼, 계속>을 쓰신 분을 굳이 명명하자면 초식남 계열인데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이 부분이 마음에 든다. 저자는 혼자 사는 남성으로 수영장에 오랜 기간 꾸준히 다니고 있는데 아마 이런 연유로 오래 다니게 되는 듯하다고 전한다.

 

 

나 역시 (열심히 나가지는 않지만) 배드민턴 클럽에서 가끔 이런 느낌을 받는다.

 

대화에 열심히 참여하지는 않지만 배드민턴 단톡방에 올라오는 아재 개그들에 오후에 잠시 웃게 되는 때도 있다.

 

 

 

소소하게 밑줄 그을 부분이 있었는데 집에 와야 했다.

아이들이 올 시간에 그냥 밖에 있기, 이것이 참 아직도 어렵다.

 

 

 

 

 

 

 

 

 

 

 

 

 

 

 

정은 작가님의 추천도서.

 

몇 장 읽었는데 진도가 안 나간다. 이런저런 잡다한 일에 빠져서 그런가보다 ㅋ

애들도 봐야 하고 일도 해야 하고

혼자 놀아야 하기도 하니

책을 진득하게 못 붙들고 있다.

 

정은 작가님이 가부장제가 한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고 하셨으니 조만간 역작이 나오리라 믿는다.

 

<디디의 우산>을 잘 읽었는데 말하기 어렵다. 아직도.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연대에서의 그 일들

멀찍이 보고 안타까워만 했는데 이제라도 증언이 나와주어 고맙다.

그래, 아시는구나, 싶었다.

 

 

*

 

참 여전하다.

대학 때 어느 선배가 지적했듯이 정리되지 않고 장황하다, 나란 사람.

 

 

그렇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여전히 나는

이런 내가 나라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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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걱정 - 기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 간 창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 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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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듣게 된 노래인데


그대 춤을 추는 나무 같아요. 

그 안에 투박한 음악은 나에요.


이 부분

 

'투박한'을 처음에 자꾸 츄바카로 듣고는


왜 츄바카 같은 이라고 하지


자학하나


이러고 있었다는 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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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영화관에 두 번이나 갔다.

 

새로 CGV지점이 생겨 시사회가 있어 아무 정보도 없이 <나의 소녀 시대>를 보게 되었다. 말할 수 없는 비밀이나 그 시절 우리가 사랑한 소녀 류의 영화일 거라 생각했는데 처음엔 너무 병맛 코드여서 적응하기 힘들었다.

 

영화를 보다 보니 대만의 학교도 우리나라 80-90년대의 하위 문화가 그대로 있었다. 교편을 든 선생님, 행운의 편지 같은 것이 대만이나 한국에 그대로 있는 것을 보면 일본의 학교문화가 식민 지배를 받던 나라들에 그대로 이식되었을 거라고 추측하게 만든다. 아무튼 그런 하위문화 속에서도 아이들의 풋사랑은 싹튼다.

 

갑돌이와 갑순이 같은 엇갈린 사랑 이야기.

 

청춘영화의 흔한 클리셰.

 

아들은 어디에선가 클리셰라는 말을 주워 듣고는 줄곧 시도때도 없이 써먹으려고 든다. 말을 안 들어 뭐라고 하면 요즘 애들 클리셰지, 이러고 동생이랑 하도 티격태격해서 뭐라고 해도 현실 남매의 클리셰지, 이런 식이다.

 

중고등 때 남들 거쳐가는 할리퀸도 안 보았는데 다늦게 이런 영화들을 분기별로 꼭 보게 된다.

그때 보고 설레고 풋사랑도 했어야 했나.

중고등 때는 연예인 좋아하고 또래 남자애들 좋아하는 친구들을 좀 딱하게 보았는데 실은 가장 가여운 건 나였나봐.

이십대 중반에서야 바로 그냥 현실 연애

뒤이어 바로 결혼해서 그런지 청춘물에 빠질 때가 있다. 청춘만이 품을 수 있게 허락된 그런 감정들이 부럽고 아련한 것이다.

 

응사나 응팔 같은 것도 그래서 봤다.

그러다 현실로 돌아오면 허무하기 그지없었다.

준열배우 덕질 할 때 몸서리치며 운빨로맨스까지 본 건 엄청난 흑역사.

 

하지만

청춘시대 같은 잘만든 작품도 있기에 청춘물을 아예 안 볼 수는 없을듯하다.

 

*

 

지난 토요일에 딸아이 자격증 시험이 있어 교통문화연수원에 갔다. 마침 그 옆이 남편의 모교인 살레시오여서 학부모 가득한 홀에서 기다리느니 간만에? 교정 산책이라도 하자고 했다.

 

처음에 남편은 그리 달가워하지 않다가 막상 교정에 들어서니 아련 열매 먹은듯한 표정이었다. 지금은 중학교, 고등학교가 함께 건물을 쓰고 있는데 예전엔 고등학교가 여기고 기숙사가 어디고 도서관이 어디였는지 열심히 알려주렸다. 메타세콰이어 뻗은 길이 멋져서 여기를 걸었겠네, 하니 학교 다닐 때는 없었던 길이라고 한다.

 

 

 

 

천주교 재단 학교라서 곳곳에 성인과 성모상이 있어 나에게는 보기 좋았다. 그리고 오솔길, 숲길도 많이 조성되어 있어 좋아 보였다. 이십 년이 훌쩍 지나 가보니 모든 것이 낯설었는지 계속 이 위치가 아니라는 말만 반복했다.

 

열심히 둘러보는데 지킴이 아저씨가 오셔서 어떻게 오셨냐고 하시길래 졸업생이어서 한번 둘러보러 왔다고 했다. 그러자 옆에서 남편이 아주 정색을 하고 나를 보며 '이 사람은 졸업생 아닙니다' 하는 것이다.

 

아무렴, 아저씨가 그걸 모르실까. 나만 혼자 빵 터져서 돌아서서 웃었다. 요즘 남성호르몬 뿜뿜 넘치는 중년이지만 남자양복 같은 체크상의를 입긴 했지만, 남고를 나오지 않았다는 건 알 정도인데.

 

나오면서 내가 이십 년 전에는 이 길을 부인이랑 나중에 걸어볼 거라고 생각해봤냐고 하니 아무 생각이 없었다 한다. 참 한결같은 사람. 늘 아무 생각이 없다.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서로를 만나기 전에 그 사람이 오래 시간을 보낸 장소를 같이 찾아다니면 그 시절 내가 몰랐던 그 사람의 모습이 그려지면서 아련한 부분이 있다. 까까머리 중학생을 갓 벗어나 이 길을 코피를 닦아내며 들어서서는(고등학생일 때 코피를 자주 흘렸다고 한다) 꽉 짜인 일정을 보내고 집이 아닌 기숙사로 돌아가 잠을 청했겠지.

 

그때로부터 세월이 많이 흐르기는 했지만 남편의 평소 생활은 그 시절과 비슷하다. 가족과 떨어져서 일을 하고 혼자 저녁밥을 먹고 관사로 돌아가 잠을 청하는 게 일상이다.

 

그런 일상이 안쓰럽기도 해서 쉬는날에 최대한 잘 지내려 하지만 순간순간 감정이 널을 뛴다. 오전 산책을 잘 마치고 아이들과 다같이 어벤저스를 보러가서였다. 딸이 실수로 음료를 극장 복도에 쏟았는데 남편이 무안할 정도로 심하게 화를 내는 것이다. (아마 남편은 애들이 극장에서 무얼 안 먹었으면 해서 더 화가 났을 것이다. 나도 안 먹었으면 하지만 이제 엄마가 못 먹게 한다고 안 먹을 나이도 아니니) 딸이 위축되는 걸 보니 답답했다. 조심성이 많은 아이인데 여러 일이 많아 들뜬 하루였나보다. 그리고 쏟는 건 어른들도 가끔은 하는 실수인데 남편은 유독 쏟는 것에 민감하다. 일단 딸을 안심시키고 부자를 극장에 들여보냈다. 직원들에게 사과하고 나서 치운다고 대걸레 위치를 물어보았는데 미안하게스리 치워주셨다. (화를 내고 들어가기보다 조심하라고 선선하게 일러주고 같이 치우면 좋았겠지만 안 될 것을 알기에 먼저 가라고 함)

 

아이들과 남편은 디씨니 마블이니 하며 모조리 섭렵했지만 히어로물에 관심이 없기에 알라딘에서 시간을 보났다.

 

영화를 보고 나서는 아빠와 아들은 집으로 가고 딸과 남아서 광주 프린지(거리극)를 보았다. 광주 프린지 페스티벌은 꽤 오래된 행사인데 이번은 딸에게 말은 못했지만 익숙해진 건지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다.

 

그래도 서커스디랩이라는 팀의 이준상 씨의 중국요요 공연은 즐겁게 보았다.

서커스도 멋있지만 재치있는 입담에 모두가 모자에 지폐를 줄줄이.

 

특히 꼬마 관객들이 열성적으로 지폐를 넣었다. 

 

이때

얘들아, 꼭 색이 파랑일 필요는 없어

아저씨 다른 색도 좋아해.

 

이런 드립은 어떻게 얻는 감각일까 ㅋ

 

연예인 관련 불쾌한 뉴스가 많은 요즘 이렇게 몸으로 부딪혀 관객과 직접 만나는 이들을 보며

아 저런 청춘들이 아직도 많구나 하는 생각에 뭉클했던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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