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백화점에 아이신발 수리할 게 생겨 개점 전에 터미널 영풍에 책을 보러 가는 길이었다. 갑자기 백화점과 서점 연결통로에 완전무장한 군인 두 명이 커다란 장총을 들고 앞에서 걸어오는 것이었다.
뭔가 훈련이겠거니 짐작은 했지만 어찌나 섬뜩하던지 한구석으로 조용히 피해서 갔다. 이렇게 도심 한복판에서 군인들을 잠시만 봐도 죄지은 것도 없이 무서운데 80년 광주에서는 얼마나 두려웠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터미널에서 차를 기다리던 연세 높은 어르신 분들도 젊은 군인, 경찰에게 무슨 일이냐 묻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라는 눈치였다.
오매, 징해부러 또 뭔 난리당가.
다행히 화랑훈련 중이었다.
<26년>은 영화도 못 보고 이제서야 책을 몇 달 전에 보았다.
“화해와 용서란…… 잘못을 한 자가…… 반성을 하고 용서를 빌었을 때 그것이 화해이며 용서야. 그렇지 않으면 이것은 그저 잊어버리는 것뿐이야……." - 《26년》 본문 中
<전두환 자서전>이 새로 생긴 청소년도서관에도 있어 의아해하는 중에 <전두환 타서전>을 발견했다. 꼼꼼하게 보지는 못했다.
<전두환 타서전>은 '기사본말체紀事本末體' 정신을 따라 그와 관련된 신문기사를 그대로 엮어 편집하였다. 신문 기사 이외에는 어떠한 주관적 평도 수록하지 않았다. 그 당시 기사들이 상당히 어용적이라는 것을 감안하고 그 기반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게 한계이자 장점으로 남을 것 같다.
<소년이 온다>는 그냥 두고두고 보게 될듯하다.
아 어제 한국시리즈 드디어 KIA 우승.
아들 단원평가도 봐줘야 하고 딸은 내일이 받아쓰기인데 한번만 대충 시키고 저녁도 일찍 먹고 컴퓨터방에서 정자세로 시청했다. 꽃범호가 초반부터 만루 홈런이어서 아, 정말 잘생겼다를 외치며 편안히 보다가 후반에 마음 졸이며 봤다.
양현종 선수 우왕.
김기태 감독님 주르륵. 김기태 감독님 나이 찾아보니 임창용 선수랑 별로 차이도 안 나는데(겨우 69년생이심) ㅜ.ㅠ 모자 벗고 인사하시는데 어찌나 짠하던지. 기아 감독하시면서 몇십 년은 나이드신듯하다.
2009년에 우승할 때에는 강원도에서 딸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였고 열기를 느낄 수가 없었는데 8년 만에 광주에서 야구 보니 정말 새롭다.
우선 집앞 동네 공원에만 가도 선수들 번호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캐치볼하는 애들이 있고 동네 소아과를 가도 기아유니폼 바디수트를 입은 아기도 간혹 볼 수 있다. 육아카페에서도 문화센터에서 양현종 선수를 보았다거나 산부인과에서 김선빈 선수를 보았다거나 주차장에서 윤석민 선수 가족들, 아기를 보았다는 목격담도 자주 나온다.
아무튼 이런 곳이다보니 우승 확정 순간 추워서 문을 꼭꼭 닫아두어 그렇지 이집 저집 함성 발사 중이었을 것이다. 간만에 쉬는 날이었던 애들아빠도 감격에 차서 편의점에 맥주를 더 사러 나갔는데 그 사이 내가 잠이 들어 아쉽다. 9시면 잠드는 노인네가 오늘 그래도 야구도 다 보고 같이 선전했다. ㅋ
<해태 타이거즈와 김대중>, <야구장 습격사건>은 2009년엔가 산 책들일 것이다.
야구 잘알못이지만 어려서부터 보기는 봤다. 대학 가서도 그렇고 해태(기아)가 우승할 때면 해태 골수팬이었던 아버지도 살아 계셔서 계속 보셨더라면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1. ‘브라보콘 팔아 연봉 주는 팀’이 써내려간 전설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한 이후, 1983년부터 1997년 사이 아홉 번 한국시리즈에 진출해 아홉 번 모두 우승했던 전설의 팀, 해태 타이거즈. 수많은 국가대표 선수와 막강한 자본력을 갖춘 삼성 라이온즈가 2002년에서야 두 번째 우승을 거둔 것과 비교한다면, ‘새까맣고 새빨간’ 유니폼의 타이거즈가 기록한 9번의 우승은 불가사의처럼 보인다. 타이거즈는 20년간 여섯 명의 정규시즌 MVP와 46명의 골든글러브 수상자, 공수 주요부문 타이틀 홀더만 46명을 배출한 무적의 팀이었다. 그러나 해태 타이거즈를 한국의 뉴욕 양키스나 요미우리 자이언츠라고 부를 수는 없다. 브라보콘을 팔아 연봉 주는 팀이라는 자조 섞인 농담을 했을 정도로 가난했던 팀, 대한민국에서 정치경제적으로 가장 소외된 호남에 연고를 두는 팀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이 펼친 야구는 단순히 야구가 아니라 우리가 힘겹게 건너온 한 시대의 초상이며, 그들이 보여준 열정과 집념은 무기력한 우리들에게 새로운 자극제이다. <출판사 책 소개>
타지 생활에서 야구 중계 관람은 아버지의 유일한 낙이었을게다.
<해태타이거즈와 김대중>은 정치경제적으로 소외된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팀이 승승장구하는 것과 그 지역 기반의 지도자 김대중을 엮어 다소 투박하게 기술한 책이지만 여러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흥미로운 책이었다.
<삼미슈퍼스타즈...>야 뭐 지금도 널리 읽히는 스테디셀러이고 <해태타이거즈와 김대중>의 정신과도 맞닿아 있다. 영화도 그런대로 잘 봤던 기억이 난다.
<야구장 습격사건>은 일본야구야 더 말할 것 없이 잘알못이라 이해 안 되는 부분도 있지만 하루키 에세이 같아 편하게 흥미롭게 본 책이다. 오쿠다 히데오가 응원하는 팀은 한국선수들이 많이 뛰었던 주니치 드래곤즈. 이 아저씨 야구를 넘모 좋아해서 다시 태어나면 야구선수가 되고 싶다고 누가 다시 나를 낳아달라고 하기도 하고 야구선수들 연습경기 하는 걸 먼 발치서 지켜보는 건 예삿일이다. 다행히 이와세나 이치로 정도는 나도 주워들은 이름이라 그 뒷이야기 듣는 것도 재미있다.
엄마가 편찮으셔서 미루어졌던 동생 결혼식이 내년 2월로 확정이 되었단다.
으왕 한국시리즈 우승보다 더 감격스러운 것. 주말에 듣고 너무나 반가웠다.
13년차 주부이지만 역시 내공이 부족해 날이 밝으면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보고 검색도 해가며 같이 신혼 가전이나 가구를 보러다니려고 한다. 결혼준비를 이렇게 야무지게 했다는 블로그도 넘쳐나는데 굳이 낡은 정보를 가진 나에게 묻는 건 결혼을 앞둔 신부의 막막한 마음 때문이겠지.
큰일 앞두고 누군가에게 기대고 어리광 부리고 싶은 마음.
동생은 국민학교 시절부터 늘 탬버린을 안 가져와도 물감이나 크레파스가 떨어져도 고학년 반으로 나를 찾아와 언니힝~ 부르기부터 했다. 요새도 최근에 결혼한 친구들이 있는데도 한복이나 신행 등을 굳이 내게 묻는다. 나는 무조건 아끼려 알아보느라 골치 썩지 말고 꼭 하고 싶은 건 그대로 추진하라고만 조언한다. 돈대줄 것도 아니면서. ㅋ 그 옛날에 결혼준비하며 무조건 알뜰 최저가를 고집하다 일생 한번인 신행도 망친 기억이 있다.
이런 나의 조언에 힘입어 신행은 하와이로 가기로 했다고 한다. 언니잉, 실은 부곡하와이야 (크게 웃음) 나는 정색하며 거기 없어진 지 언제인데. 이런 애가 결혼준비를 한다니 걱정 한가득이다. 어째 딸키워 시집 보내는 듯하다. 실제로 엄마가 아직도 회복 중이시니 내가 오가며 봐줄 게 좀 된다.
살림을 책으로 배우는 건 위험하지만 검증되지 않은 블로그보다 <생활도감> 같은 부류가 훨씬 유용한듯하다. 내가 놓치는 건 없는지 잘 봐주어야겠다.
오늘 하루 라디오에서 이용의 노래가 종일 나오겠지.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같은 그런 노래들도.
힘겨웠던 여름날에 이런 날이 오리라 상상도 못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주변이 정돈되어 예정대로 결혼이 진행되니 감격스럽다.
아...
제목과 다르게 어제는 비통한 사건사고도 많았다.
같은 작품에 출연한 배우 두 분이나 벌써 고인이 되었다니 믿을 수가 없다. 1박2일에서도 정말 친근했던 구탱이형. 영면에 들다.
진짜...오보가 아닌지 계속 검색해봤다. 시어머님이 구봉서 님 돌아가셨을 때 엄청 충격받으셨는데 나도 그런 기분이다. 동시대 거의 동년배나 다름없는 분들의 죽음은 더 아프게 다가온다.
가까운 사이는 아니였지만 겨우 마흔 갓 넘겼는데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지인들이 내게도 몇 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남은 작품들 열심히 보며 고이고이 기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