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연휴가 끝나간다. 그리고 잡념이 많아진다.

어떤 책에서 본 것같이 잡념조차 카테고리화하고 정리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지금까지 온라인이나 오프에서 명절 어떻게 보냈냐 하면 다른 집보다는 수월하다며 대강 웃어넘긴 듯하다. 온라인에 올라오는 괴담 수준의 시댁같지는 않다고 해서 안도하며 정신 승리하는 것보다는 내가 가진 불편이 무엇인지 인식하고 전하고 개선해야겠다는 의지를 다진 명절이었다.  

 

시어머님과 두 며느리가 함께 오순도순 음식하고 이런저런 수다 떠는 것이 아들들이 그리는 이상이다. 그러나 그 한 장면의 연출을 위해서 머릿속으로 얼마나 많은 단어들을 골라야 하며 자신의 이상이나 가치를 얼마나 쉽게 포기해야 하는지 아들들은 잘 모를 것이다. 

 

이번에도 역시 음식은 많이 남았고, 정신적 피로가 그보다 오래 남아서 작년에 놓친 오락영화를 두 편 보았다.

 

캐릭터들이 소소하게 웃겻고 그간 사람들이 왜 이런 말을 했는지 어떤 상황인지 이제서야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이 큰 소득.

 

<종이달> 역시 오락영화와 같이 생각하고 가볍게 읽기 시작했지만 그리 가벼운 것만은 아니었다.

 

소비사회의 폐해, 쇼핑중독, 불륜, 금융범죄, 과도한 절약 등을 다루면서 그런 행위들을 하게 되는 인물의 심리에 주목했다.

 

레스토랑에서도 바에서도 백화점에서도 부티크에서도, 리카네를 맞이해주는 사람들은 웃는 얼굴이 끊이지 않았다. 아주 친절하게, 농담 한두 마디를 섞어서 진심이 담긴 인사를 해주었다. 거기에는 악의도 경멸도 오만불손함도 없고, 그저 포근한 선의만이 있었다. 리카는 은행에 거액의 정기예금이 있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모두가 그렇다고는 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확실히 현실과 동떨어진 듯한 사람들이 있었다. 예를 들면 통장을 리카에게 맡긴 나고 다마에, 야마노우치 부부 등, 해맑게 웃고, 목소리가 거칠어지지 않고, 사람을 밀어내지 않고, 쉽게 사람을 믿고, 악의 같은 건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이 누군가가 자신을 상처 입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눈곱만치도 하지 않는 사람들. 그들은 돈이라는 푹신푹신한 것에 둘려싸여 살아왔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리카는 그래서 출근을 위해 역에 갈 때나 호텔로 돌아오기 위해 붐비는 전철을 탈 때면, 주위에 자각없이 뿌려진 채 방치된 악의에 새삼 놀랐다. 먼저 가기 위해 노인을 밀치고 가는 여자가 있고, 그 인간 뒈졌으면 좋겠어 하고 깔깔 웃으며 얘기를 나누는 금발의 여자아이들이 있고, 가방에 손을 찔러 넣고 정액권을 찾는 리카에게 혀를 차며 어깨를 부딪치고 가는 젊은 남자가 있고, 할머니를 밀어내고 빈자리에 앉는 중년남자가 있고, 고맙다는 말도 없이 잔돈을 던지는 역내 매점의 판매원이 있었다. 전봇대 아래에 토사물이 펼쳐져 있고, 약국 계산대에 긴 줄이 있고, 번화가 보도에는 시끄러운 음악이 흘러나왔다.          p.253   

 

돈의 위력이란 무엇보다 어떤 정신적인 에너지를 쓰지 않게 한다는 게 아닐까. 원래부터 가진 사람들에게는 공기와 같아서 누구나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

 

돈이라는 것은 많으면 많을수록 어째선지 보이지 않게 된다. 없으면 항상 돈을 생각하지만, 많이 있으면 있는 게 당연해진다. 100만 엔이 있으면 그것은 1만 엔이 100장 모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거기에 처음부터 있는, 무슨 덩어리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람은 부모에게 보호받는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그것을 누린다.  

 

리카의 어린 애인인 청년 고타 역시 리카가 횡령해서 마련한 돈을 아무런 거리낌없이 받아들였다. 리카가 꼭 도라에몽 같다며 천진난만한 척하는데 분통이 터졌다. 전업주부일 때나 시간제 사원일 때나 한결같이 리카를 교묘하게 무시했던 남편보다 더 사악한 녀석이다.

"하지만 나는 무엇을 사달라든가 해달라는 말 한 적 한 번도 없어요", 라니.  

 

이 소설에 나오는 여자들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걸 모르고 많이 어리석다.

남자들은 무감하고 무신경하고(그들의 독특한 성격이 아니라 그래도 되는 구조니까) 그게 결국 악을 부른다.

 

그러나 의지박약한 한 개인의 탓으로 돌리기에 이 사회는 너무나 촘촘하게 악의 그물을 치고 있는 게 아닐까?

 

장시간 노동으로 스트레스는 가득하고 건강하게 여유를 가지고 여가를 즐길 환경이 되지 않는다.

진정한 인간관계를 맺을 시간적 정신적 여유도 없다. 심지어는 가장 친밀한 가족과도. 

미디어에서는 풍요롭고 화목한 관계를 모두 물질적 여유로 포장하고 있고 은연중에 사람들은 그것만을 목표로 삼아 앞만 보고 달린다. 열심히 일해서 삼둥이네와 같은 환경을 만든다면 우리 아이들도 그렇게 밝고 구김살 없이 자라겠지. 

 

대부, 소액대출로의 접근은 용이하며 마케팅은 갈수록 교묘해져서 사람들을 어떻게든 지갑을 열게 만든다.

 

결국 평범한 사람들의 말로는 소설 속 인물들과 같이 이혼, 범죄, 파산이다.

 

평온해 보이는 일상이지만 모두가 자갈 가득한 지뢰밭을 맨발로 걷는 셈이다.

 

 

 

 

 

 

 

 

 

 

 

 

 

 

한동안 정리 관련 책을 읽고 버리느라 난리였지만 이제 잘 읽지 않고 이마저 정리해야 할 판이다.

 

미니멀리즘 역시 최근의 유행.

무작정 따라할 게 아니라 내가 왜 그 물건들을 원했는지 그 심리를 돌아보고 물건들 하나하나를 소중히 돌아보고 있다.

 

미니멀리즘을 오해하여 자신이 가진 걸 버리고 무지나 이케아 등 미니멀해 보이는 아이템을 사들이는 게 최근의 한 경향인 듯하다.

 

경주에 지진이 심하게 나면서 둔한 나도 느낄 정도로 여기에도 지진이 있었는데

<우리집엔 아무것도 없어>에서와 같이 안전을 위해 집안을 점검할 필요 정도는 있을 듯하다.

 

생각을 정리한다고 쓰기 시작했는데 시간을 너무 들인 듯하다.

지나치게 생각하지 말고 하고 싶은 말 그자리에서 바로 하고, 해야 할일은 그때그때 바로 하면 잡념이 덜 쌓이겠지.

 

컴퓨터를 이제 끄자, 오늘 하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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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16-09-19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니멀리즘을 오해하여 자신이 가진 걸 버리고 무지나 이케아 등 미니멀해 보이는 아이템을 사들이는 게 최근의 한 경향인 듯하다.` -> 하하하, 저는 이래서 뚜유님이 좋습니다.

뚜유 2016-09-20 04:40   좋아요 0 | URL
사실 자아 반성이랄까요 ㅋ
제가 그럴 뻔했는데 블로그나 카페의 북유럽풍이나 일본식 가정 같은 잘 정돈된 모습도 좋지만, 뭔가 한국형 가정집 같은 저희집에도 만족하기로 했어요. ㅋㅋ

hnine 2016-09-19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갈 가득 지뢰밭>이라는 제목은 제가 어디 적어놓았다가 인용해보고 싶을 만큼 마음에 쏙 들어오는 제목이네요.
생각을 정리한다고 쓰기 시작해서 시간을 너무 들인 듯하다고 하셨지만, 시간 들인 만큼 생각이, 적어도 읽는 저는 정리가 되는 느낌이어요. 미니멀리즘에 대해서는 솔직히 전 미니멀리즘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듯. 뭘 사들이는 것이 싫고 더 줄이고 싶은 생각만 가득한데, 그게 또 제 맘대로 안되는 것이 저 혼자 사는 집이 아니다 보니까 그렇네요.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은 영화 매그니피션트를 극장에 가서 봤어요. 아주 단순하고 딱 떨어지는 영화였어요. 위에 베테랑은 표지가 정말 근사한데요.

뚜유 2016-09-20 04:45   좋아요 0 | URL
좋아해주셔서 감사해요 :)
생각을 더 정리하고 행동으로 옮겨야죠.
앗..부럽습니다. 전 버리고 들이고 요요를 반복중이에요. 아무래도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이 있는데 무조건 제 뜻대로 억제하게 할 순 없으니까요. 결핍을 경험하면 그 반동으로 물욕이 넘 강해질 거 같아서......
매그니피션트도 추천 많이 하시는데 언제 봐야겠어요.
영화들은 둘 다 텔레비전 상영으로 보았는데 상품넣기를 괜히 했다는 생각도 들어요, 표지는 멋지지만요.

요술램프 2022-06-03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세하게 적어주셔서 감사해요. 책을 한편 읽은 기분이에요. 뚜유님의 세상을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바쁘다면 어떻게해야 바빠지지 않을지 힘들다면 어떻게해야 힘들어지지 않는지, 지금 당장 내 마음에서 시작하는 법이 무엇일지 생각해보게 되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