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볼일이 있어 시내에 갔다가 의외로 일을 금방 마쳐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보게 되었다.
주의-결말이 포함된 스포는 없지만 그래도 아직 보지 않은 분은 감상을 망칠 수 있습니다.
학부와 대학원 다닐 때 과외를 진짜 엄청 했는데 그때 생각이 났다.
이제는 아이들 얼굴도 희미하지만 그 집들의 구조나 아이들 방의 세세한 디테일이 다 기억난다.
나랑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은 고등학생 아이의 방에 걸린 고가의 원피스를 무심히 오래 지켜본 적이 있다.
아이가 순진무구하게 웃으며 빌려드릴까요? 라고 했던가.
그때 내가 당황해서 뭐라고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낯선 집에 들어섰을 때의 복잡한 감정들이
영화를 보고 나서도 한동안 생생하다.
초반에는 부담없이 엄청 웃다가
마지막에는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아팠다.
게다가 난 이제 혼자가 아니라 아이들이 둘이나 되다보니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를 떠올려보고 조금 아니 많이 마음이 무거워지는
그런 영화이다.
봉준호 감독의 전작들 <괴물>이나 <설국열차> 등과 비교하면
진짜 세상이 나아지리라는 기대가 전혀 없이
그냥 현 상태만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그런 영화다.
봉준호 감독 전작들도 뭐 희망과는 거리가 있지만
이번이 더 암울하다고나 할까?
모두까기일까?
부유한 계층이나 가난한 이들 모두 우스꽝스럽고 일그러져 있다.
<설국열차>에서처럼 이 와중에 희생되는 건 아이들이다.
엄청난 블랙코미디.
보느라 체력 소모를 엄청 해서 그런지 나오자마자 허겁지겁 프렌차이즈 싸구려 쌀국수를 먹었다.
그래도
배우들이 진짜
연기 구멍 없이 다들 어찌나 자연스러운지...
송강호 배우 연기가 평범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그중에서도 전문 가사도우미 역할을 한 이정은 배우의 연기가 엄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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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을 나와서 잡다한 상념이 드는 가운데 작년에 본 <어느 가족>이 떠올랐다.
신기하게도 동아시아 작품이 연속해서 칸에서 상을 탔구나.
똑같이 '계층 차이', '가난', '가족', '공간'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한 것을 소재로 삼았는데 감정의 결이 너무나 다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에서는 '체념'이나 '공동체' 정서가 있는데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어떤 '분노', '파편화' 같은 것이 느껴진다.
혹시 그 정서의 원인이 우리나라에만 있는 반지하 같은 독특한 가옥구조 때문은 아닐가 지레 짐작해 보았는데 검색해보니 일본에도 반지하 비스무리한 데가 있다고 한다.
<어느 가족>의 이 공간들은 뭔가 정겹다.
그래도 사람사는 곳 같다.
가장 큰 차이는 햇볕이 든다는 것.
그런데 <기생충>의 공간은 항시 어둡고 곱등이가 가득하고
창 밖에 노상방뇨하는 주취자가 자주 출몰한다 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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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층의 삶을 직시하고는 있는데
애정 어린? 따스한 시선이 느껴지지 않았다. (가난하다고 해서 무조건 선한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약한 사람을 처절하게 짓밟는 모습이 드러난다.)
그건 감독이 매정해서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사회적 모순, 시스템에 더 관심이 많아서 그런듯하다.
그런 문제 의식이 있어 주 52시간 표준근로시간을 지켜가며 영화를 제작하게 된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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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집안의 가장은 과연 누구일까?
남녀노소를 떠나 가정에 가장 책임을 느끼는 사람이 아닐까?
신기하게도 이 집안은 자식들이 가장의 정신을 가지고 있다.
그것도 참 아이러니하다.
아니다.
송강호도 전에는 실은 무엇이 되었든 간에 뭐든 해보려던 가장이었는데
계획하는 족족 망하게 되자
아들에게 무계획이 실은 가장 좋은 계획이 아니겠냐고 궤변을 펼친다.
어떻게든 풍파를 헤쳐가려는 자식들에게 능청스럽게
아들아 그래도 너는 계획이 있구나, 계획이 있어, 라고 말하는 게 우스우면서도 슬펐다.
계획대로는 절대 안 되기 때문에 부자들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일삼는 것이 극빈자들의 생활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종자돈을 모으기보다 간간이 생기는 수입을 바로바로 먹거리나 이상한? 사치품(폰을 바꾼다거나 하는), 허접한 물건을 사들이는 데 낭비해버린다.
사기를 치거나 도둑질을 하면서도 자신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어느 가족>에서도 좀도둑질을 하면서 빌린다고 하거나 <기생충>에서 학력 위조를 하면서도 곧 진학할 대학이니 거짓말은 아니라고 애써 합리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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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이 바라본 부자의 삶도
빈자들과 비교해 크게 다를 것도 없다.
극히 단순하고 충동적이다.
다만 돈이 넘쳐나기에 엄한 데에 낭비해도 데미지가 크지 않다.
뭔가 부자들은 자신들은 체계적이라고 믿는데 주변의 그럴듯한 농간에 손쉽게 넘어간다. 조여정을 보면서 약간 ㄹ혜스러운 행태를 목격했다. 자신이 구체적으로 알아보지도 않고 그냥 믿을 수 있는 주변 누군가의 정보에 전적으로 의지한다.
그리고 얼핏 부유층 마약? 문제 이런 것도 비치지만 본격적으로 나오진 않는다.
그저 부잣집 가장인 이선균과 안주인 조여정은 우습기는 하지만 상식적인 선에서 사람들을 대하는 그리 나쁘지 않은 사람들로 그려진다.
그렇지만 영화 말미에 그들은 가난에 대한 멸시를 숨기지는 않는다.
부자의 한계로 보기보다
이게 또 우리들 대다수의 모습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부자들에게 무시당하는 건 싫지만 나보다 좀 낮은 계층은 은근히 무시하는.
온라인상에서 흔히 보이는 1호선 국철 타기 싫은 이유 같은 글이 그렇다.
그 가난에 대한 멸시가 후에 자신의 아이에게 큰 충격을 ㅜ.ㅠ
스포가 될듯해 여기까지만.
뭔가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많이 가졌든 그렇지 않든
엄청나게 찜찜하고 서글프고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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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을 하자면 별점 네 개 반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지만
크게 어려운 영화는 아니다.
제목의 상징성? 그런 것도 엄청나게 직접적인 표현이고
가난한 이의 공간과 부유한 이들의 공간의 대비도 눈에 띄게 드러난다.
부자나 빈자의 공간에 똑같이 계단이 많지만
그 배치나 쓰임이 다른 데에 집중해서 리스펙.
공간의 물건들도 진짜 세부적으로 구현했다.
빈자들이 사는 반지하 욕실에서 역류를 방지하기 위해 변기만 높은 곳에 위치한 것이나 다 쓴 빈 샴프통도 버리지 않고 혹시 잔여물이 있을까 해서 계속 모아두고 방치하다 물때 끼는 거라든가 갑작스런 단수를 대비해 빨간 큰 고무대야를 둔 것이나 어지럽게 빨래들 널어둔 게 너무나 소름끼치게 사실적이다.
많이 다녀보지 못한 부유한 이들의 공간도 공감이 간다.
난 발견하지 못했지만 검색해보니 쓰레기통만 몇 백이라는데 ㅎ
눈에 보이는 공간은 모던하고 심플하지만
조여정이 식기세척기를 들어냈을 때 엄청나게 나왔던 그릇들도 사실적.
최우식이 과외하는 곳에서의 어투와 표정, 집에서 가족끼리 말할 때 어투가 다른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줄거리를 따라 가느라 이런 세부를 놓친 것이 많을듯해 다시 보고 싶기도 하다.
스포가 될 듯해 고만 적어야 할듯
영화 본 사람들이랑 엄청 수다 떨고 싶다.
스카이캐슬을 한 회도 안 봐서 동네서 조용히 찌그러져 있었는데
이제 할 얘기가 생기는 건가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