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자뷰
후지와라 카무이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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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히 우연으로 빌려봤다. 작가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끝까지 다 읽은 후에야 [견랑전설]의 작화를 했던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워낙 디스토피아적인 [인랑]의 암울함이 [견랑전설]에서는 차분하게 가라앉은 우울함으로 변해버린 이유를 알게 된 기분이다.

옴니버스 형식의 이 단편집은 각각의 에피소드가 아무 연관이 없는듯 보이지만 공통적인 주제는 작가가 말하듯이 '기억'에 대한 물음이다. 특히, 이제는 하나의 유행같이 되어버린 데자뷰 - 기시감(旣視感)이 환기시키는 신비스러운 정서는 작가의 나른한 작화에 섞여 더욱 신비하고 몽환적인 경험으로 다가온다. 대부분의 에피소드에 별다른 플롯마저 없기에 더더욱 그렇다.

그리고 특이한 것은 거의 모든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여성이며, 그 여성들의 섹스 이야기 역시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우연의 일치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마도 작가는 섹스 속에서 경험한 몽환감, 첫경험이 불러일으키는 신비감, 섹스 후의 나른함(섹스 중의 격렬함이 아니라)을 무의식적으로 작품에 투영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나른함이 가져오는 수동적인 이미지가 자칫 전형적인 일본 만화식 수동적 여성상을 상기시킬 수 있고, 섹스 이야기는 남성 독자들의 관음증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함이라고 문제삼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기억의 아이덴티티에 관한 조금은 철학적인 질문들에서부터 누구나 한 번은 경험해봤을 법한 데자뷰까지 이 작품에서 끌어낼 수 있는 이야기素들에 주목해야 하겠다. 오랜만에 접한 정말 좋은 작품이었다. 이런게 바로 단편의 묘미가 아닐까 싶다. 한 권 사서 소장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2002. 8. 8 by f.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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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는 괴로워 1
스즈키 유미코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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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칸나는 뚱녀였으나 막대한 돈을 들인 전신성형 끝에 미녀로 탈바꿈한다. 그러나 이른바 '뚱녀기질'은 성형수술 후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칸나균'이라고까지 불리우던 뚱녀 칸나,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그리고 뚱녀기질이란 그토록 나쁜 것인가?

이 만화는 남자들이라면 생각없이 재미있게 읽을 수도 있지만, 당사자인 여성들에게는 어쩌면 불쾌하고 기분나쁜 만화가 될 수도 있다. 작가는 성형수술 찬양만화가 아니라고 말한다. 사실 칸나가 외모에 신경을 쓰지 않고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그녀는 거액을 투자해 성형을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고, 외모 지상주의에 사로잡혔다는 비난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때 문제는, 이 사회가 결코 여성을 외모에 신경쓰지 않고도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작가 스즈키 유미코가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 만화를 통해 이 사회를 풍자하려 했는지 나는 확신할 수 없다. 웃고 넘어가기에 바쁜 이 만화 속에서는 날카롭게 번쩍이는 뭔가가 보이지 않았다. 긍정적인 칸나를 그리고 싶었다고 작가는 말하지만, 긍정적이라는 단어가 꼭 잘생긴 남자와 결혼하는 것을 의미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한 가지 더, 처음에 지적했던대로, 자신이 뚱녀기질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자책감을 느끼는 칸나는 그것이 사회에 의해 강요받은 감정이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사회에 의해 '뚱녀는 나쁘다'라고 자신이 세뇌당한 것을 깨닫지조차 못하기에 '뚱녀도 좋을 수 있다'라며 사회에 맞서지 못하는 것이다.

이상으로 볼 때 이 만화는 외모 지상주의에 대한 민감한 부분은 넘어가고 적당히 웃고 즐기는 만화로 전락해버린다. 비슷한 내용의 만화로 같은 작가의 [미녀는 못말려]라는 만화가 있고, 다른 작가의 [OL 비쥬얼족]이라는 만화도 있다.(그러나 이들 만화에서도 외모 지상주의를 극복하려는 시도는 찾기 힘들다. 어쩌면 그것은 사회 전체를 상대로 혼자 싸워야만 하는 시도일 것이므로.)

2001. 8. 6
by f.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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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1
윤인완 글, 양경일 그림 / 대원씨아이(만화)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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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작품이다. 정말 '우리나라에도 이런 만화가 있구나'라는 말이 안 나올래야 안 나올 수가 없는 작품이다. 선과 악의 이분법적 구도를 탈피한 점, 우리나라 제주도의 민담과 전설에 착안한 소재들, 불교 및 인도 종교쪽으로부터 고증된 주문과 무기의 등장 등 <아일랜드>는 한마디로 놀라운 작품이었다.

그만큼 기대작이었던 만큼 아쉬움도 남는다. 겨우 7권에서 연재를 중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일대결의 구도를 보였던 '또다른 고향' 에피소드를 끝으로 중단되었기 때문에 '잘 나가다가 왜 한일전으로 나가냐'라는 식의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 아니면 차라리 앞부분의 다른 에피소드들을 없애고 '또다른 고향'만을 다룬 작품을 내놓는 쪽이 작품의 완결성에 있어서 더 나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양경일씨가 재충전을 한 후의 새로운 연재를 기다린다. 그리고 반의 숨겨진 과거 역시 무척이나 궁금하다.(7권에서 암시가 되긴 했으나 명확하지는 않다.) <타임시커즈>가 우리나라 SF 만화의 가능성을 보여줬던 것처럼 <아일랜드>는 우리나라 퇴마 만화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 만화도 정말 많이 발전했군. 기대된다 <아일랜드>!

2001. 6.2
by f.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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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 문학사상사 / 199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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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 하루키의 수필들을 문학사상사에서 엮어서 낸 책이다. 그의 수필들이 그렇듯이 - 실은 소설도 그렇지만 - 이 책 역시 아주 쉽게 쉽게 읽혀진다. 거기에 빠지지 않고 하루키다운 유머 감각이, 책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만들곤 했다.

소설에서와 같은 문제의식은 없다.(문제의식이라고 해도, 그것이 전면에 드러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그러나 가볍다고 해서 진지함마저 결여된 것은 아니다. 그의 수필에서는 스스로 말하듯 진솔하고 인간적인 면모가 느껴진다. '어떻게 사는가'와 '어떻게 쓰는가'를 똑같은 명제로 본다면 이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나 역시 그의 수필들을 보면, '나도 저렇게 써야지'라는 생각이 드는 걸 막을 수 없다. 하지만 정작 다른 사람들이 보게 될 글을 쓸 때는 나도 모르게 속마음을 감추고, 괜시리 비판적이 되고, 어려운 말들을 늘어놓게 된다.(어쩌면 지금도... -_-;) 솔직할 수 있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하루키의 표현으로 그것은 '책임을 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책임을 피하려고 하는 난 역시, 아직도 '어른'이 되기를 두려워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삶을 긍정하므로써 하루키는, 자신에 대해 책임을 지는 어른의 모습을 갖춘다. 그렇다. 즐겁게 살자. 한 번쯤 웃으며 살 수도 있는 거잖아? ^_^

00.12. 9 by f.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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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4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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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은 깊이있는 성장소설이다. 감동이 아니라 '울림'이 있는 책이다.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사람에게는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할 수도 있다. 하긴 아무리 <어린 왕자>가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는 해도, 진짜 어른이라면 그런 책을 읽으려고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데미안>에서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아이가 어른이 되는 모습이 그려지는 것은 아니다. 헤세는 내면의 성장에 주목하고 있다. 그것도 굉장히 조심스럽게. 우리는 작품 초반에서 우리의 어렸을 때 모습을 발견하고 전율할 것이며, 마침내 작품이 끝날 때에는 알듯 말듯한 의미심장함 앞에서 또 한 번 전율하게 될 것이다.

한편 이 작품은 당시 시대상황과 관련지어서도 살펴볼 수 있다. 1차 세계대전 후 정신적 공황에 방황하던 젊은이들이 물질주의에서 벗어나 내면에 귀를 기울이기를 헤세는 바랬던 것이다. 실제로 이 작품은 당시의 젊은이들에게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조금 교과서적인 이야기.

누구도 언제까지 아이로 남아있을 수만은 없다. 우리는 피터팬이 아니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어른이 되어야 하는가. 그것은 외적 상황들의 변화로부터 동기유발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정말로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어린 왕자의 말을 떠올리자. 주위에 휩쓸리지 말고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여보는 것이다.

00.12. 9 by f.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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