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비안의 해적 : 블랙펄의 저주 (2disc) - [할인행사]
고어 버빈스키 감독, 조니 뎁 외 출연 / 브에나비스타 / 2004년 1월
평점 :
품절


---일단, 스포일러 와닝---




재미있는 영화다. 헐리웃의 공식이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짐에도 불구하고 짜증난다기보다는 재미있다. 돈을 퍼부었을듯한 CG를 이용한 액션씬들은 말할 것도 없겠지만, 배경이 되는 카리브 해의 정경도 멋지다. 정말로 극장에서 볼만한 '오락용' 영화다.

연기 면을 보면, 이 영화에서 조니 뎁을 뺀 나머지 배우들의 연기는 전부 형편없다. 그만큼 조니 뎁이 빛나서일지도 모르겠다. 조니 뎁의 캡틴 잭 스패로우 연기는 정말로 웃기다. 관객들이 웃는 90%는 조니 뎁 때문이었다. 옆에 포스터만 봐도, 이른바 히어로격의 윌 터너와 히로인격의 엘리자베스 스완을 합친 것보다 조연격인 잭 스패로우가 더 크게 나와있지 않은가-_-!!!

물론 내가 이 영화에 대해 특별히 리뷰까지 쓰고 있는 것은, 헐리웃 식으로 잘 만들었으니 극장가서 봐라 라고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그것도 조금 있다만), 이 영화에서 주목할만한 무언가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스토리에 대한 이야기다. 바로 아즈텍의 황금을 차지한 해적들이 저주에 걸려 불로불사의 몸이 된다는 설정이다. 그런데 해적들은 불로불사가 되어 좋아하는게 아니라 오히려 그 저주를 풀고자 한다. 불로불사가 되면서부터 모든 종류의 쾌락(-_-!!!)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으나 일단 영화 속의 대사를 통해 추리해보면 술, 음식, 섹스에 의한 쾌락이 사라졌다고 한다. 또한 달(보름달)빛 아래에선 저주받은 모습 즉 해골로 변하게 되며, 바르보사 선장이 해골로 된 상태에서 마신 술은 턱을 넘어가 뼈밖에 없는 몸 아래로 그대로 흘러내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슬프다.

불로 혹은 불사라는 소재는 사실 흔해져버린 소재이다. 드라큐라에서 시작된 흡혈귀, 죽을래야 죽을 수 없는-_-좀비, 최근 또 한번 영화화된(영화 자체는 별로였지만) 도리안 그레이, 만화로 넘어오면 [무한의 주인]과 인어 시리즈까지.


--사례별 분석--
1. 흡혈귀(불로불사)
말 그대로 흡혈에의 욕망에 지배당한다. 그리고 그것이 생존에 직결되는고로 그들의 욕망은 상당히 심각하며 때로는 고통스러운 것으로 이해되어야 마땅하다. 개중에는 그러한 운명을 절망하며 저주하는 경우도 있으니, 대표적으로 베르너 헤어조크 감독의 [노스페라투] 속의 노스페라투(=드라큐라)이다. 이 영화 속에서 노스페라투를 죽이는 방법은 단 한 가지로, 밤새도록 처녀의 피를 빨게 해서 아침 해를 보게 만드는 방법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노스페라투는 죽지만, 그것은 의도한 자살에 가까워보인다. 끝없는 삶이란 분명 인간 -최소한 정신적으로- 으로서는 견디기 힘든 일일 것이다-_ㅜ

2. 좀비(불사)
대부분은 살=고기에 대한 식욕에 완전히-_-! 지배당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마찬가지로 그 행위가 생존에 직결되나, 더티한 모습에서부터 정이 떨어지기에-_-대부분 인간에 의해 참살-_-당하는 역할로 그려진다. '정신'이라는 것 자체도 가지고 있지 못한 모습으로 그려지므로 동정받을 여지가 거의 없다, 이 경우는.

3. 도리안 그레이(불로 그리고 아마도 불사)
알다시피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이 원작이다(리뷰 있음-_-). 초상화가 도리안 그레이 대신 나이를 먹고, 도리안이 추악한 일들을 저질러도 초상화가 추악해진다(cf. 사람 나이 40이 지나면 자기 얼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아마 상처도 대신 받는 것 같다, [젠틀멘 리그]에서 유추해보면. 따라서 도리안은 어떠한 악행을 저질러도 좋다는 뜻이 되며, 실제로 그는 주로 보이지 않는 악행들을 저지르며 살아간다. 단 하나 그가 죽을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의 초상화를 자기 눈으로 보는 일이다. 그리고 그는 그 일을 가장 두려워한다. 원작에서는 200년도 못 살고 스스로 초상화를 보고 죽지만, 영화에서는 적어도 1000년 넘게 살다가 적-_-에 의해 초상화를 보고 죽는다. 전자라면 조금은 동정의 여지가 있지만 어쨌든 그다지 동정할만한 경우는 아니다.

4. [무한의 주인]의 만지(불사)
사무라이-_-? 만지는 어떤 노인(800살-_-)에 의해 몸에 혈선충이라는 벌레를 주입받게 되는데, 이 혈선충이라는 벌레들이 만지가 다치면 그것을 원래대로 복구해준다([총몽] 등에서의 나노 머신과 비슷하다). 머리만 아닌 팔이나 다리 같은 건 떨어져도 붙이기만 하면 오케이. 시간이 좀 걸리지만. 이 점을 빼고는 만지는 보통 인간과 다를게 없다. 팔, 다리가 떨어져도 붙이면 그만이긴 하지만 분명 그 순간만큼은 만지는 엄청나게 괴로워한다. 아직 완결이 안 나서인지 만지에겐 보통 인간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생각은 없는듯 보인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머리를 베인다거나 늙어서 죽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어 보인다.

5. 다카하시 루미코의 인어 시리즈의 인물들(불로불사)
이들은 의도적이건 비의도적이건 인어 고기를 먹고 불로불사의 몸이 된다. 그리고 주인공 둘은 불로불사를 벗어나 보통 인간이 되고 싶어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늙어서 죽거나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거나 한다면 고통스러울 것 같기도 하다만(이것은 이태행의[타임 시커즈]에서도 마찬가지) 무엇보다 역시 영원한 삶에 지쳐버렸기 때문이랄까.


쓸데없이; 길게 써버렸다. 하고 싶은 말은, 캐리비안의 해적들은 기존의 어떤 불로불사의 존재들보다 훨씬더 고통스러우리라 짐작할 수 있다는 거다. 그래서 그들이 인간이 되고자 하는 욕망 역시 훨씬 설득력있게 다가온다. 인어 시리즈 주인공들이 그나마 가장 닮아있다고 할 수 있지만, 캐리비안의 해적들이 누가 봐도 훨씬 더 불쌍하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10년만에 인간으로 돌아가는데 성공하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건 그간의 해적질에 대한 처벌로서의 죽음뿐이었다.

그럼에도 영화에서는 이들의 고통과 비운이 제대로 묘사되지 않았다는게 나에게는 불만이었다. 아까도 말했듯 헐리웃의 공식을 너무나 잘 따른 나머지 이 영화에서는 조금이라도 심각해질만하면 금방금방 분위기가 전환되곤 한다. 정말로 오락 영화로서의 정체성에 충실한 작품이다. 그래서 나로선 불만-_ㅜ

(2003.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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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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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뇌]는 다음과 같은 참으로 드라마틱한 사건과 함께 시작된다: 사뮈엘 핀처라는 한 저명한 정신 의학자는 체스에 입문한지 단 석 달여만에 체스 세계챔피언 딥블루 IV(사람이 아닌 컴퓨터이다)와의 대국을 벌여 승리를 거둔다. 그런데 바로 그날밤, 그는 톱모델인 아내와 정사 중에 사망을 하고 만다. 사뮈엘 핀처의 죽음에 의문을 품은 전직 기자 이지도르는 미모의 여기자 뤼크레스를 겨우 설득해 사건의 진상을 함께 조사해나가기 시작한다.

으레 예상할 수 있듯, 조사가 진행될수록 숨겨진 '엄청난' 사실들이 드러나게 되며 따라서 그 조사과정은 위험천만한 것이기에 독자에게 있어서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흥미진진함을 유발시킨다. 통상적인 의미로서의 남/녀 성역할이 서로 전도된 이지도르와 뤼크레스 콤비의 활약상을, 베르베르는 그 특유의 재치를 이용해 잘 그려내고 있다. 베르베르의 위트는 구성방식에 있어서도 돋보인다. 2개의 관련없어 보이는 에피소드들이 이야기가 전개되어 나가며 접점에 이르게 되는 구성방식은, 이제는 그리 낯설 것도 없는게 사실이긴 하다. 그러나 베르베르는 이 교차되는 에피소드들의 길이를 매우 유동적으로(때로는 롱테이크, 때로는 숏테이크) 배치함으로써 마치 교차편집으로 속도감을 잘 살린 한 편의 액션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까지 들게 한다. 그리고 한 에피소드의 끝문장과 (당연히 시공간적으로 다른 차원에 속한) 다음 에피소드의 시작문장이 묘하게 아귀가 맞아들게 한 것 역시 재미있는 부분이다. 예를 들어 p.424 [그들은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 / 골이다.](이외에도 무척 많다)와 같은 대목이 그러하다.

[뇌]는 이렇게 흥미롭고 또 재미있는 소설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는 헐리웃 블록버스터를 보며 재미와 (때로는) 경탄을 느끼다가도,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면 (갑자기 바쁜 일이라도 생긴 것처럼 급하게) 자리를 일어서며 "재미있네" 한 마디로 영화를 가볍게 정리해버리곤 한다. [뇌]는, 헐리웃식(어찌되었든간에 주인공이 언제나 이기는) 액션신들의 불필요한 출몰에서부터 업무상 파트너로 만난 두 남녀는 결국 연인이 된다는 공식, 주인공들의 싸움은 언제나 '전인류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라는 공식 등 헐리웃 공식들에 너무 충실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원제이자 이 작품의 핵심적인 키워드인 [최후 비밀]이라는 단어가 응당 함축했으리라 기대되었던 상상력의 지평을 넓혀줄만한 임팩트가 실린 '무엇인가'가 [뇌]에는 부재한다. 쉽게 말해, 깨는 맛이 없다. 베르베르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커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뇌] 정도의 소설은, 민감한 소재들로 인해 한때 반짝했던 로빈 쿡의 메디컬 스릴러들과 별다를게 없다. 베르베르의 작품세계가 아우르는 상상력의 부피는 동시대의 작가들에 비하면 큰 편이긴 하나 혁신적이기까지는 못한 것 같다.(Just remember 보르헤스.)

물론 블록버스터도 가끔씩 한 편 봐주면 그리 나쁘진 않다. [뇌]를 가득채우고 있는 뇌에 관한 과학적 지식들과 뇌를 둘러싼 모험들은, 뇌에 관한 관심이 커져가고 있는 오늘날 많은 독자들에게 큰 지적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또한 [뇌]는 번역이 매우 잘 되어있다는 사실도 지적하고 싶다. 특히 한자어가 아닌 순우리말 단어로 번역한 부분이 많이 눈에 띠던데(의학용어 제외), 역자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물론 베르베르씨도 화이팅.(2004.5.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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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의 산맥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지음, 변용란 옮김 / 씽크북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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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광기의 산맥]이 일차적으로 환기시키는 정서는 스티븐 킹 등의 소설 첫인상과 별반 다르지 않다. 고립되고 극한 상황 속에서 미지의 생물체(물론 이 생물체란 대단히 위협적인 존재이다)와 조우한다는 어딘가 익숙한 상황 설정 때문이다. 

단지 흔하고 흔한 공포물들이 치중하는 미지의 물체 그 자체에 대한 가시적이고 물질적, 물리적인 공포에 비해 [광기의 산맥]은 제목이 암시하듯 광기, 즉 좀 더 비가시적이고 다분히 내향적인 심리적 공포를 표현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러브크래프트는 영화처럼 생생하게 공포의 정경을 가시화시켜 독자들의 눈앞에 가져다주려고 굳이 노력하지 않는다. 스티븐 킹의 작품들이 수없이 영화화된 바 있는 데 반해 러브크래프트의 작품들은 그 작품 세계의 특성상 '성공적으로' 영화화된 사례가 별로 없는 것 또한 같은 이유이리라. 러브크래프트는 내향적이고 모호하기까지 한 서술들을 통해 공포심 유발의 과정을 독자에게 떠넘긴다. 바로 이 자발적인 공포 생성의 기작이야말로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에서 찾을 수 있는 매력이다.

주지하다시피 러브크래프트는 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또한 스티븐 킹은 러브크래프트의 영향을 받았다). 특히 [광기의 산맥]의 1인칭 시점은 포의 작품세계를 많이 연상시킨다. 이러한 포의 토대 위에 ‘고립된 상황 하의 미지 생물체와의 조우’라는 후대에 수없이 변주될 테마를 정립해 놓은 [광기의 산맥]은 가히 하나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점진적으로 고조되어가는 상황 전개와 병행하여 그 광기를 더해가는 극중 화자의 절규와도 같은 서술도 작품의 백미이다.


2004년 3월,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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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름 1
키지츠 카츠히사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3년 7월
평점 :
절판


<소름>에 대한 소감을 짧게 정리해 보면, 옴니버스 형식으로 되어있으며 일본 민담 등을 소재로 하는 청년 대상의 호러 만화라고 할 수 있겠다. 덧붙이자면 작화 수준이 좋은 편은 아니다.

우선 <소름>에 전반적으로 일본색이 강하게 드러나는 것은 단행본 순서대로 칠석제, 황천 구먼, 혼죠 7대 불가사의, 두억시니 벚나무, 온타리영 축제, 귀 없는 호이치, 복을 쫓는(=_=) 고양이 등의 일본 민담과 관련된 소재들이 차용되었기 때문이다. 작가 나름대로 현장조사를 통한 고증을 시도했음을 느낄 수 있었지만, 민담이라는 특성상 권선징악적인 측면이 두드러지기 때문에 식상한 면이 좀 있었다. 또한 한국인 독자로서는 와닿지 않는 부분도 몇 있었다.

민담 외에도 작가가 차용한 것은 많다. 도시 전설이라고 번역된 urban legend(영화 제목이기도 하다)의 에피소드를 보면 urban legend와 휴대폰 그리고 귀신(?)을 훌륭하게 결합시키고 있다. 그러나 휴대폰 하면 [폰]을 먼저 떠올릴 한국 독자로서 그다지 신선하다거나 무서운 느낌은 없었다. 그리고 두억시니 벚나무 에피소드는 서큐버스(Succubus) - 夢魔를 차용한 부분이다. 그럼에도 그 신화적인 배경이나 리비도(성인 만화가 아니니까 어쩔 수 없긴 하지만)에 관한 언급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또한 초목점 에피소드는 영화 [엑스페리먼트]와 완전 일치하며, 4권에는 보르헤스(포르헤스라고 무지막지하게 번역되어있다)의 [바벨의 도서관]도 등장하는데, 이 역시 迷宮이라는 표면적인 이미지만을 차용했을뿐 원작에 담겨있는 무한성에 대한 고찰은 찾아볼 수가 없다.

결론적으로 말해 작가는 이것저것을 차용하고는 있으나, 그에 대해 깊은 연구를 한 것 같지는 않다. 그 결과로 호러 만화로서의 공포감을 따지기에 앞서, 창의력 없음과 어설픔에 대한 불만이 먼저 다가온다.(2004.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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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다이스 키스 Paradise Kiss 1
야자와 아이 지음 / 시공사(만화)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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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접한 아이 야자와의 작품이었다. 남주인공 죠지가 말하는 '미니멀리즘은 나의 적'이라는 모토는 작가 자신에게 해당되는 말이 아니었을까. 작품 전체가 화려한 의상에서 시작해서 끊임없는 대사와 잔글씨, 독백으로 가득차있었다. 이러한 외형적인 '럭셔리함'과는 대조적으로 [파라다이스 키스]의 주된 정서적인 분위기는 죠지로 대표되는 '쿨함'이었다.

주인공 캐롤라인(유카리)이 일상 혹은 현실을 대변한다면 죠지는 환상과 일탈의 영역에 속한다. 어지간히 찌들지 않은 이상 현실에 묶여있는 자는 누구라도 일탈을 꿈꿀 것이다. 따라서 캐롤라인이 죠지를 사랑하게 된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되는반면 죠지가 캐롤라인을 그토록 사랑했다는 사실은 믿기 힘들다. 그것도 죠지 정도로 '쿨한' 남자가 말이다. 오히려 죠지가 자신과 닮은 카오리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훨씬 개연성 있다. 동시에 캐롤라인의 자조적인 독백(자신은 인형에 불과하다는 등)들은 캐롤라인 자신뿐 아니라 독자들마저도 사실이 아니라고 믿고 싶어해도, 결국은 사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캐롤라인은 끝까지 죠지처럼 쿨해질 수는 없었다. 그녀는 어디까지나 비루한 현실에 속해있었다. 아무리 겉으로 화려한 드레스를 입는다 해도 말이다.

이 '쿨함'의 정서는 비단 죠지의 온갖 독설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파라키스 멤버들의 자유분방함에서도 발견된다. 가장 구체적인 예로 미와코를 들 수 있는데, 그녀의 거리낌없는 섹스(SM 포함)에 대한 발언들은 주변의 '덜 쿨한' 인물들을 매우 당혹스럽게 만들곤 한다. 허나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이러한 미와코에게 강간당한 경험의 트라우마가 남아있다는 설정이 뒤에서야 밝혀진 일이다. 자신을 강간한 남자에게 SM을 당하면서도 아무렇지 않은듯 굴며 섹스 중독자처럼 행동했던 미와코에 대해서, 최소한 나는 쿨하지 못하기 때문에 화가 난다.

캐롤라인이 죠지에게 빠졌던 것과 마찬가지로 현실에 속해있는 즉, 쿨하지 못한 다수의 독자들에게 [파라다이스 키스]는 굉장히 매혹적인 작품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캐롤라인은 끝내 죠지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마지막에 캐롤라인은 죠지를 떠나보내지만 그것은 죠지처럼 쿨해지기 위함이었다. [파라다이스 키스]는 죠지와 같은 그런 종류의 작품이다. 아무래도 쿨하지 못한 나로서는 이 작품에 다가갈 수가 없다. 그래서 붙잡지 말고 떠나보내야만 한다.(20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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