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블루스 - 단편
요네하라 히데유키 지음 / 시공사(만화) / 2002년 6월
평점 :
절판


[풀 어헤드! 코코]로 뜬 작가의 단편이다. 이름세를 타고 출시된건 분명한데 그렇다고 미우라 켄타로의 [베르세르크] 유명세를 타고 발매된 그의 초기작 [왕랑], [왕랑전] 등의 단편들처럼 졸작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단편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완결성있게 전개되는 작품이다.

요네하라 히데유키의 작화풍은 일단 [바스타드]의 카즈시 하기와라와 같은 과장된 인체 데생에서 그 특징이 나타난다. 물론 차이점은 카즈시쪽이 화려한 스크린톤을 자랑하는데 비해 요네하라는 톤보다는 선에 중점을 둔다는 면에서 한층 간결하고 깔끔하다. 이것은 [초콜렛 블루스]에서도 거의 그대로 나타나며, 특히 이번에는 현대의 도시를 배경으로 하기에 상당히 깔끔하게 어울린다.

내용은 [풀 어헤드! 코코]와는 완전 별개라 할 수 있지만 전반적인 정서는 역시 그대로 통하고 있다. 일견 마초적이지만 소년만화적이고 영웅심리를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킬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비정하지 않고 유쾌하다. 그리고 단 한 명도 죽는 사람이 없다. 물론 이것은 비현실적이라는 약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작가는 소년만화의 룰에 철저히 충실하고 있다. 어이없어 보이는 킬러의 슬픈 과거 사연을 에필로그로 제공하는 부분에까지.

전체적으로 괜찮은 만화이다. 무겁게 될 수 있는 주제지만 무거운 전개를 피했고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도 않다. [풀 어헤드! 코코]의 팬이라면 재밌게 읽어볼만한 작품이다. by f.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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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이해
루이스 자네티 지음, 김진해 옮김 / 현암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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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모대학 미학과 교양과목 시각매체예술론입문을 들을 때 모강사께서 선택하신 책이다. 일단 괜찮은 책이다. 분량이 두꺼워보이긴 하는데 스틸사진이 반이라고만 해도 텍스트는 얼마 안 되는 셈이다. 사진이 많다는 것은 사실 영화에 대한 책으로서 상당히 중요한 점이다. 헐리웃 영화에 길들여진 세대가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이나 '노스페라투' 스틸을 보며 표현주의영화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될 수 있다고 하면, 넓게 말해 영화에 대한 눈이 넓어질 수 있다고 하면 그보다 좋은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특히 이 책처럼 큼직큼직한(물론 배판에 비해서지만) 사진이 많이 삽입된 책은 비교대상이 없다시피하다.

내용 역시 평이한 수준이며 책 뒤의 찾아보기를 통해서 해당 영화와 관련된 텍스트만 골라 읽을 수 있도록 되어있는 것도 장점이다. 어디까지나 영화사에 대한 책이 아니라 영화 자체의 시각매체예술적 특성을 파고 들어가는 책이라서 이는 더 유효하다.

한편 이런 장점이 바로 단점이 될 수도 있는데 바로 배판에 비해 사진이 너무 커서 텍스트의 가독성이 떨어져 산만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사진에 대한 설명도 상당히 부실한 편이며, 주 텍스트가 아닌 사진에 대한 설명의 경우에만 이상하게 번역의 질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전체적인 구성이 유기적이지 못하다는 것 또한 장점이자 단점이다.

결론적으로 입문서로는 상당히 적당하지만, 레퍼런스로서의 메리트는 없다. 레퍼런스를 원한다면 두꺼운 영화사를 다룬 쪽을 추천한다. 영화사의 경우 상당히 여러 종류 나와있으며 각자 장단이 있는지라 한 책만을 추천할 수는 없다. 전체적으로 아쉬운 것은 이러한 영화관련서적들의 번역이 한결같이 수준이하라는 점이다. 국내에서 세계에 수출하는 영화서적의 탄생을 기대하는 것은 아직 무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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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wboyBebop 2004-11-24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대 ch 선생님? ㅋㅋㅋ

faai 2004-11-27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그렇습니다 --;;
 
기형도 산문집 - 짧은 여행의 기록
기형도 지음 / 살림 / 199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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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처럼 단순히 기형도의 시에 끌려 그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독자에게 이 책은 그리 친절한 책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완성도도 그다지 높다고 할 수 없다. '짧은 여행의 기록'까지는 예의 흡인력을 보여주지만 그 뒤로 몇 소설을 제외한 서간문이나 기사, 서평의 모음은 일반 독자에게는 거의 아무런 감흥이나 의미를 주지 못한다. 그의 전집 쪽이 메리트를 가지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다.

그럼에도, 작가의 향기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너무나도 아니 지나칠 정도로 관념적인 그의 편지들 속에서 아스라이 향수를 느낀다. 나는 과연 이런 장문의 편지를 쓴 적이 있었던가. 관념으로 가득차 있는, 나쁘게 말하면 혼자만의 중얼거림에 불과한 그의 서간들은, 그러나 그 진실성 때문에 적어도 나에게는 많은 것을 시사했다.

'짧은 여행의 기록'은 그만의 기행문이다. 광주에 경도할 수밖에 없었던, 그러나 한편으로 등 돌릴 수밖에 없었던 당시 세대의 한 단편상이다. 비겁함이 느껴지지만 이내 관념 속으로 묻혀버린다. 아니 그 자체로 비겁하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기형도답다. 그는 아도르노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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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악의 꽃 1
히가키 켄로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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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산에서 번역되는 만화 중엔 가끔 이렇게 지독하게 성인 취향의 작품들이 있다. 이케가미 료이치를 위시로 한 하드보일드 느와르부터 그야말로 호색잡지 수준의 쓰레기 작품들까지. 그중 이 [미악의 꽃]은 조금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일단 섹스신이 거의 매회 빠지지 않고 등장하되 그것이 주를 이루지 않는다. 사실 독자 서비스적인 측면이 없지는 않지만 이 만화에서의 섹스는 주로 주인공 히로우 마사토가 자신의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여성들을 지배해가는 도구로 나타난다. 이런 설정, 다분히 고리타분하고 말도 안 된다는 사실, 두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가하면 섹스 후에 야경을 바라보며 야망을 상상하는 사악한 웃음의 마사토의 꽃미남 얼굴 클로스업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데 이것은 독자를 묘하게 들뜨게 한다. 이케가미 료이치 작화의 만화(원작은 주로 다른 사람이 쓴다)를 읽으며 이른바 '남자의 로망'을 느껴본적 있는 사람들이라면 마사토의 말도 안 되는 야망 앞에서도 비슷하게 그 로망을 느끼게 된다. 사실 그 과정이 말도 안 된다는게 웃기지만 그 말도 안 됨을 말이 되게 하는게 이 작가의 힘이라 할 수 있다(이 문단의 논지는 지극히 反페미니즘적임을 인정한다).

한편 이 작품은 마사토의 야망의 동인이 그의 아버지에 대한 복수심이며, 동시에 마사토로 인해 인생의 모든걸 잃게 된 형사 마사오미가 마사토에 대해 복수심을 불태우며 악의 화신으로 부활한다는 커다란 두 개의 복수라는 축을 가지고 있다. 이 구닥다리 설정이 한편 재미있는 것은 일단 선과 악이 도치되기 때문인데 마사토는 스스로 악의 축에 서있는고로 도덕적인 선악의 대립구도가 아닌 현실적인 혹은 정치 경제적인 선악의 대립구도가 형성된다는 점이다. 누가 뭐래도 마사토는 이 썩어버린 자본주의 속에서는 거대한 善일 뿐, 惡은 될래야 될 수가 없다. 작가는 이렇게 현시대에 대한 자기비판을 본작에 끼워놓음으로써 여타 쓰레기 만화와의 차별을 노정하는데 성공한다.

(이 문단은 스포일러 와닝) 마사토의 야망이 실현되어가면서, 무엇보다 18권에서 두 개의 악의 축이던 마사오미마저 마사토를 막지 못하면서 마사토의 야망은 전부 실현된듯 보이지만 결국 그는 자신이 이용했던 여자에게 배신당해(자신이 그렇게 수없이 해왔듯) 거리에서 비명횡사하고 만다. 그러나 마지막 페이지에서 눈을 번쩍 뜨는 마사토의 얼굴로부터 독자는 깔끔한 엔딩에 감동하지도 후련해하지도 않고 그저 덤덤히 책을 덮을 뿐이다. 이런게 성인물의 맛이라고 한다면 맛일 것이다.

전체적으로 작화수준도 아주 수준 이하도 아니고 터무니없이 말도 안 되긴 하지만 최소한의 오리지널리티와 작품성은 있는 조금 독특한 작품이었다. 괜시리 위악에 사로잡혀있는 소년만화의 군상에 짜증난 독자라면 일독을 권하고 싶다. 끝으로 코믹스톰에 기가 막히는 명언이 실려있어 옮긴다. '불이 불을 끄지 못하듯 악은 악을 없애지 못한다' - 톨스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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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뢰진 1 - 소장본
다카하시 츠토무 지음 / 세주문화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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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고 답답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19권의 3/4쯤 읽었을 때, 몇 페이지 남지 않았다는 걸 알았을 때, 이이다가 입을 열고 말해주기를 미치도록 기대했지만, 결국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피와 섹스와 죽음과 온갖 범죄들이 난무하지만 일상화된 일본 만화의 시각적 폭력 앞에 길들여져서인지 거기에 눈이 쏠리지는 않는다. 유머도 과장도 교훈도 아무 것도 없다. 참을 수 없으리만큼 건조하고 그 비정함과 어둠의 무게만이 읽는 이를 짖누르게 한다.

그리고 배신감을 느끼게 한다. '친절한' 만화들에 길들여진 독자들은 으레 전지전능한 작가가 무언가 말해주길 기대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지뢰진]에 그런 것들은 없다. 묻혀지고 잊혀지고 해결되지만 해결되지 않고... 현실은 이런 거다, 어디까지나.

또한 일상적인 '만화의 법칙'을 나도 모르게 기대하게 되지만 역시 그런 법칙도 깨진다. 파트너 여형사는 그저 파트너 여형사이다. 주위의 인물들이 죽지만 쿄야는 죄책감도 눈물도 분노도 느끼지 않는다. 쿄야를 좋아하는 여자가 등장하지만 그 여자가 총에 맞아 죽어도, 그 장기를 기증한 여자가 또 등장해 쿄야에 의해 두근거림을 느껴도, 쿄야는 여느 때와 같이 냉담하기만 하다.

19권에서 사실은 나 역시 기대했다. 조금이라도 아츠코를 생각해 주기를 바랬다. 그리고 이이다 쿄야란 자식에 대해서 작가가 무엇인가 말해주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없었다. [빅 오]의 로저 스미스처럼. 그에게는 현재만이 있을 뿐이다. 범죄자들을 죽이거나 체포하는 것만이 전부인 현재 말이다. 그것도 형사로서의 윤리나 아이덴티티가 없는 그저 '죽이거나 체포하는 것'만이 전부다. 그에게 있어 형사라는 직업은 단지 '호흡'이며 언젠가 호흡은 멈춘다. That's it.

물론 단점이 없는 작품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은 그 단점들을 지적하기 싫다. 한 가지만 분명히 말하자면 나는 일종의 영웅 심리에 이끌린 것은 아니다. 단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작가로부터 느낀 커다란 공허감에 난 끌려버렸고 나 자신을 잃어버렸다.

2002. 9.19 by f.y. very much mo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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